tree58s 2016.06.10 17:55
일본 만화문화의 세례 흥건한.
monazite 2016.06.29 14:03
꼼꼼한 비평 고맙습니다. 곡성을 둘러싼 질식할 것 같은 찬양 여론에 조금이나마 해갈이 되는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비평가로서 솔직한 자기반성에 감사드립니다. 칸 영화제마저 찬사를 보내며 영화에 모종의 아우라를 덧씌우는 상황에 섣불리 비판을 내놓기가 쉽지 않았으리라 짐작됩니다. 그러나 말씀하신대로 곡성은 참 나쁜 영화입니다. 명백한 숏의 인과를 책임없이 부정해버리곤 왜 기만당하느냐며 조롱하는 영화입니다. 이 과정에 동원된 영화적 장치, 장르 관습도 심히 유감스럽습니다. 본문에서 지적되진 않았지만 이 영화엔 이상하리만치 과잉된 유머가 있습니다. 저는 이 유머가 영화의 비논리를 장르적 특성으로 치환해 '그러려니' 넘기게 하는 데 일조하고 있다고 봅니다. 문제의 좀비 장면에서 들려오는 관객들의 폭소를 듣는 건 끔찍하기 그지없는 일입니다. 윤리적이지 못한 연출의 필연적인 귀결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무튼 본문의 비판에 대부분 공감하며 감흥을 기준으로 영화를 범주화한 설명도 설득력이 있었습니다. 다만 소위 '영화 바깥'을 비판의 근거로 끌고 온 점은 조금 아쉽습니다. 이 영화를 분석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지점이긴 합니다만, 온전히 영화만을 텍스트로 읽어도 이 영화의 나쁜 면모를 밝히기에 부족함이 없었을 것 같습니다. 또한 그 편이 더 타당했을 것 같습니다. “의심과 소문에 시달려본 자가 전달하는 황폐한 복수극”이라는 드라마틱한 추론도 이 영화에 또 다른 아우라를 덧씌울 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결론으로는 이 글도 다시 한 번 영화가 설계한 게임에 포섭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논리의 부재를 서사의 놀이로 오도할 수 있다는 것이 이 영화의 믿는 구석이기 때문입니다. 그 외에 이 영화를 둘러싼 의미심장한 현상ㅡ감독, 관객, 비평 각각의ㅡ을 밝히는 것은 또 다른 글의 몫이어야 할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비평 기대하겠습니다.
hanmazigi 2016.07.03 05:52
글쎄요. 나홍진 감독의 말처럼 시작부터 이 영화는 피해자에 대한 우리들의 냉소적인 태도가 나옵니다. 경찰임에도 살인사건이 났음에도 남의 일처럼 대하는 곽도원씨와 그 가족의 장면부터 시작되지 않습니까? 그리고 자신의 딸이 성폭행을 당하고 미쳐가야만 내 일이 되고 관심을 가지는 모습에서 현대일들이 뉴스에서 벌어지는 사건사고를 대하는 태도를 비유했음을 쉽게 알수 있겠던데요. 감독 스스로가 밝혔듯이 남의 일이라고 생각하고 방관자적인 입장을 가진 우리들에게 너희가 피해자가 됐을때도 그럴건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거라고는 생각이 안드십니까? 물론 이 영화의 재미의 유무는 취향이지만 나홍진 감독의 연출 자체는 정말 훌륭했다고 봅니다. 일더하기 일이 이라는 산수같은 영화만 영화는 아니니까요. 자신이 못알아 듣고 수준이 낮다고 하여서 훌륭한 내용이 저급해지는건 아니니까요. 판단은 주관적으로 할 순 있겠지만 내 말이 정답이라고 할 정도라면 그만큼 설득력이 있을만한 사람이 납득이 갈만한 이야기를 해야하지 않겠습니까. 칸영화제에서 나온 비평이나 유력 영화인사들의 평이 과연 이 글보다 신뢰도가 떨어진다고는 느껴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나같은 사람도 똥인지 된장인지는 구분하기 때문입니다.
hanmazigi 2016.07.03 06:10
그리고 영화가 꼭 인과를 따져야만 한다는 얼토당토 않는 사고를 가지셧다면 그냥 그렇게 생각하고 남에게 영화 평론을 하시면 안될것 같습니다. 알프레드 히치콕의 영화들에선 인과가 있어서 새들이 덤비던가요 왜 싸이코에서 범인이 여장하고 살인을 저지릅니까 거기에서의 인과는 납득이 갈 정도라서요 샤이닝이라는 영화도 그런식으로 따질건가요? 영화의 언어와 표현은 다양한 방법이 있습니다. 미장센만으로 만든 영화도 있습니다. 논리적이지 않은 영화는 영화가 아니라는 우스운 논평도 어이가 없는 생각이지만 곡성이 논리적인 영화가 아니라는 것도 설득력이 없는 주장입니다. 전 어디에서 비 논리적인 전개가 있었는지를 못 찾을 정도였으니까요. 캐릭터에 대한 오컬트적인 설정은 비논리적인 영화의 구성이지만 이야기의 전개 어디에서 모순이 있었는지 모르겠군요. 그리고 이영화는 매우 여러 부분에서 중의적인 의미를 가진 씬들이 많습니다. 그것이 내 입맛에 맞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이 무의미하게 변하지는 않습니다. 아는만큼 보이는 거고 모르는 만큼 배워야 할듯 하네요.
hanmazigi 2016.07.03 06:24
그리고 영화에서 나오는 무수한 시퀀스와 비유 그리고 복선들에 대해서 논리적인 비평없이 단순히 감정에만 치우친 이런 글에대해 느끼는 개인적인 감정은 영화의 의도와 상관없이 단순히 내가 이영화를 싫어해 그것에 대한 포장처럼 느껴집니다. 굳이 싫다면 싫다고 할것이지 없는 것을 사실인양 쓰는 것은 누가 자기기만을 하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 합니다
qudgml2057 2016.07.08 07:29
좋아요
efg13 2016.08.02 19:18
혹시라도 나중에 들어올지 모를 hanmazigi씨에게 이 글을 바칩니다..(1)


감독은 제작 의도에 대해 여러 매체에서 분명히 공통적인 이야기를 한 바 있어요.
동아닷컴 인터뷰에서만 따 봤어요.

 '세상에 어떠한 불행을 겪은 분들이 있지 않느냐. 사건 사고 소식을 보면 현실의 범주 안에서는 ‘결론’이 나 있다. 우리는 그분들이 ‘어떻게 해서’ 불행을 겪었는지 알지만 ‘왜 그분이 당해야 하는지’는 모른다. ‘곡성’은 여기서 시발된 영화다. 나는 현실적인 범주 밖에서 이야기를 풀어야 했다. 선과 악이 존재해야 했고 신이 등장해야 했다.'

 '왜 그 분이 당해야 하는지 모른다' 라는 말은 과학적, 이성적으로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는 의미일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현실적인 범주 밖에서 이야기를 풀어야 했다' 라는 말은 감독이 오컬트 장르를 선택한 이유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었어요.

클라이막스에서 종구는 선택을 해야 해요. 근데 이게, 일광을 믿으면 가족들과 다 같이 죽고, 무명을 믿으면 혼자만이라도 살아남는다, 라는 거예요. 선택지는 두 가지밖에 없는데 두 가지 다 비극이예요. 여기서 감독은 '정말 신이라는 게 있다면 눈 뜨고 좀 보세요, 이 꼴이 지금 말이 됩니까' 라고 하소연하면서 결국 어떤 선택을 하건 비극일 수 밖에 없었던 종구를 비롯하여,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가까운 사람들을 떠나보내야 했던 현실 속 피해자들의 참혹한 상황을 위로하고 싶었다고 인터뷰에서 말했어요.

이것이 감독이 전하고자 했던 진짜 의도예요. 송경원 평론가도 이 의도를 본문 중에서도 인용하고 있어요. 니가 말하는 나홍진 감독이 스스로 밝혔다는 그 말은 대체 어디서 가져온 것인지 도대체 알 수가 없어요. 인터뷰의 행간도 제대로 체크 못하는 분께서 시퀀스와 복선 운운하고 계시는 걸 보자니 복장이 터져요. 그리고 송경원 평론가의 글에서 '인과관계를 따져야 영화이다'라는 말은 단 하나도 찾아볼 수 없어요. 없는 것을 사실인 양 쓰는 것은 송경원 평론가가 아니라 누구란 사실 짚고 가요, 우리.

이 얘길 먼저 할게요.
히치콕 영화 얘기하면서 '인과가 있어서 새들이 덤비는 거냐'라고 말씀하셨어요. '캐릭터에 대한 오컬트적인 설정은 비논리적인 영화의 구성이다'라는 얘기는 또 대체 무슨 개소리인지 고민도 많이 했어요.. 진짜 멍충이 같아서 얘기 안 해줄라 그랬는데 일단 히치콕 영화 얘기를 할게요. 그런 것에는 인과가 아니라 개연성이란 말을 보통 써요. '어떤 일이 일어날 가능성' 뭐 이 정도의 의미랍니다.

그러다 다음 것도 이해하고 말았어요.. 아, 이 분이 현실세계에서 저런 악마가 있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긴 하는데 아쉽게 개연성이라는 것을 알지 못해서 인과관계로 버무리려다 안 되니까 비논리적이라고 적자, 라고 생각했구나 라는 결론에 닿았는데, 오컬트 장르는 초자연적인 것을 다루는 장르이기 때문에 사람이 귀신한테 죽었다던가 이런 일들도 있을 법한 일로 취급될 수 있어요. 곡성은 오컬트 장르니까 악마가 나오거나 주술로 사람을 저주하는 것들도 당연 개연성을 가져요. 그러니까 정말 멍충이같은 말씀을 하신 거예요 :)
efg13 2016.08.02 19:30
혹시라도 나중에 들어올지 모를 hanmazigi씨에게 이 글을 바칩니다..(2)

이제 마지막으로 '곡성이 논리적인 영화가 아니란 것은 설득력이 없다' 라는 말씀에 대해 얘기해 봐요. 그 주장에 대한 근거로, '나는 이 영화에서 비논리적인 전개를 못 찾을 정도였다'라는 아기자기한 말씀을 하시며 '이 영화에는 중의적인 신이 많은데 당신 입맛에 안 맞는다고 무의미해지는 것은 아니니 당신은 공부할 필요가 있다' 라고 써 놓으셨네요, 네. 비논리적인 부분이 있다고 느끼는 사람이 증거를 제시하는 게 맞긴 하니 얘기할게요.

나홍진 감독은, 익히 말씀하신 그 놈의 시퀀스를 이용한 교차편집이라던가 복선 따위를 이용한답시고, 복잡해 보이지만 사실은 그냥 더럽기만 한 트릭을 짰어요. 사실 내가 보기에 이건 트릭이라기보다 클라이막스에 주제를 때려넣고 앞 쪽 전개에는 걍 회수할 생각도 없는 떡밥을 뿌려댄 거예요. 보통 이런 걸 똥을 싸질렀다고들 얘기하죠.
이걸 얘기하려면 송구스럽지만 개연성을 다시 들고 와야 해요. 간단히 얘기해서 앞 쪽 전개는 떡밥을 너무 던져놓은 탓에 개연성이 풍부하다 못해 넘쳐서, 오히려 어떤 해석을 하든지 가능하게 되어버렸어요. 여기에, 앞에 말씀하셨던 그 중의적인 신들이 포함되는 거예요. 곡성의 끊이지 않는 낚시는 거의 여기서 이루어지고요. 열린 결말이라는 해석을 꼭 이 앞 쪽 전개에 갖다붙이는 멍충이들이 있는데 다 뻘짓하고 있는 거예요.

문제는, 이 앞 쪽 전개와 클라이막스를 이어줄 개연성이예요. 외지인이 차에 치어 죽는 바람에 효진이가 정상으로 돌아오고 잠시나마 평화로운 종구의 얼굴을 볼 수 있다만, 외지인이 악마로 부활을 하게 되고 그에 따라 효진이도 사라지면서 클라이막스로 돌입해요. 이삼이 악마의 동굴을 찾아가는 이유는 성복이 살인을 저지른 광경을 보고 악마의 존재를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었다 하는데.. 동굴은 어찌 찾아갔는지 모르겠고, 성복은 대체 뜬금없이 왜 미쳤는지도 모르겠으니, 이게 다 어찌어찌 하여 이삼과 악마가 대면하는 장면을 만들고자 함이라는 생각이 드니까 개연성 같은 거 다 내팽개쳤다는 생각이 들겠어요, 안 들겠어요? 적어도 논리적인 부분은 아닌 것 같지 않아요?
효진이가 괜찮아졌다가 다시 악화되는 것은 외지인이 악마로 다시 부활했다는 이유가 아니라면 정말 뜬금없는 거죠. 감독이 악마에게 예수 코스프레를 맡긴 이유는 효진이가 다시금 병이 들어야 갈등이 생기고 떡밥이 유지되니까 그렇겠지.. 라는. 납득이 안 가지만 어쩔 수 없이 거지같은 해석이라도 끼워맞추며 말을 만들어야 되는 관객들의 모습이 바로, 애써 정색하셨던 자기기만이라는 단어의 의미, 이 거지같은 영화 때문에 자신을 속이고 있는 모습이예요.

저 짧은 순간 사이에 저 무지막지한 것들을 밀어넣으니 자연스러움 같은 걸 느낄 리 만무하지만, 문제는 영화를 처음 볼 때 저런 것들은 대부분 상상조차 하기 힘든 전개라는 것이며, 두 번 이상 관람할 때는 저런 자기기만을 거듭해야만 감독이 진짜 의도한 곳까지 닿을 수 있다는 거.
그리고 그 의도가 진심인지 아닌지도 의심이 간다고 송경원 평론가는 말하고 있는 것 같아요.

저는 송경원 평론가와는 모르는 사람이고, 그냥 글에 공감가는 부분이 조금 많아서 읽었던 건데요.
평론가란 직업을 별로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이렇게 수준 낮은 멍충이까지 나서서 깔 만한 사람은 아니다 싶어 꼴사나워서 스스로가 많이 부족하지만 너보단 나은 것 같아서 hanmazigi씨를 위한 글을 썼어요. 꼭 나중에라도 이 페이지에 들어와 이 댓글을 보길 기도할게요. 공부도 열심히 하시고 건강하시길 빌게요. 안녕.
kieslop 2020.05.24 13:52
ㅎㅎㅎ 친절하신 분. ^^ hanmazigi님이 꼭 읽었기를 기도합니다. ^^
jhkimfilm 2016.08.30 23:17
전적으로 공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