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디스토피아로부터]
그 사랑은 기적이다
초등학교 1학년 때 나는 동네에 처음 생긴 서예학원의 첫 수강생으로 등록했다. 상가에 막 들어선 학원을 구경하다 부드러운 화선지와 향긋한 먹 냄새에 취해 서예가 뭔지도 모른 채 엄마를 졸라 학원에 등록한 터였다. 의자에 무릎을 꿇고 올라서야만 글씨를 쓸 수 있을 정도로 어렸던 나는, 그래서 실수로 벼루도 종종 깨먹고, 먹물도 자주 쏟아 책상도 망쳐놓았지만
글: 윤가은 │
일러스트레이션: 마이자 │
2019-02-13
-
[디스토피아로부터]
세상 구석들의 만남
국민문학의 세계시장 진출에 대한 사회학적 연구를 진행하는 해외 연구자를 만나 대화를 나눴다. 그녀는 노벨 문학상에 대한 한국 미디어의 뜨거운 관심을 언급하며 아주 기본적인 그러나 본질적인 질문을 던졌다. “해외에서 인정받는 것이 왜 그렇게 중요한가요?” 자동적으로 ‘국위 선양’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국위 선양은 아마도 스포츠 분야에서 두드러질 것이다. 선
글: 심보선 │
일러스트레이션: 정원교 │
2019-02-05
-
[디스토피아로부터]
달리기 시합
초등학교 5학년, 전학 첫날의 일이다. 쉬는 시간이 되자마자 반 아이들은 통과의례처럼 이런저런 것들을 물어봤고, 그 질문 중 하나는 100m 달리기 기록이었다. 당시 그 학교에서 달리기 시합이 한창 유행인 모양이었다. 나는 당시 이제 막 과체중으로 진입 중이라 작고 통통한 체격이었지만, 100m 달리기는 14초대, 그 전 학교에서 여자 중 최고 기록을 보
글: 권김현영 │
일러스트레이션: 마이자 │
2019-01-23
-
[디스토피아로부터]
타인으로 살아보기
지난 연말 모 방송사의 연기대상을 받은 한 드라마는 한 남자 가장의 영혼이 다른 사람의 육체를 빌리면서 벌어진 이야기를 다뤘다. 올 1월에 시작하는 다른 방송사의 한 드라마도 육체가 서로 바뀌어 다른 삶을 사는 여성의 이야기를 다룬다. 극장가에도 두 주인공이 우연한 사고로 서로 몸이 뒤바뀌는 내용의 영화가 상영되고 있다. 아니, 영혼이 바뀌는 건가.
글: 이동은 │
일러스트레이션: 정원교 │
2019-01-16
-
[디스토피아로부터]
추락이 아니야 도약이야
오랜만에 짧은 휴가를 받았다. 일주일의 꿈같은 방학이 지나면 더 빡빡한 일정이 기다리고 있기에 소중하게 얻은 시간을 최대한 알차고 효율적으로 쓰려고 계획을 촘촘히 세웠다. 일단 작품 하는 내내 방치된 집안 대청소를 시작으로 수년간 버리지 못한 케케묵은 짐들을 싹 비우고, 전력질주한 한해를 돌아보는 반성과 성찰의 일기를 쓰고 밀린 가계부를 정리하는 한편,
글: 윤가은 │
일러스트레이션: 마이자 │
2019-01-09
-
[디스토피아로부터]
퀸이여, 당분간만이라도, 영원하라
록의 레전드, 퀸의 보컬리스트 프레디 머큐리의 삶과 음악을 다룬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를 보고 나는 솔직해져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예전에도 퀸을 좋아했고 지금도 좋아하고 앞으로도 좋아할 것이다. 하지만 어렸을 때, 나는 퀸에 대해 아는 바가 그리 많지 않았다. 인터넷이 없던 시절, 나는 <월간팝송>의 열독자도 아니었다. 나는
글: 심보선 │
일러스트레이션: 정원교 │
2019-01-02
-
[디스토피아로부터]
사랑의 감각이 변하길 바라며
인권에 대한 강의가 끝난 후에 한 중년 여성으로 보이는 수강생이 손을 들었다. 딸에 대한 이야기라고 했다. 중년의 여성들이 하는 질문은 대체로 남편이나 자식과의 관계에서 나오는 질문이다. 조금 아쉬웠다. 가족 말고 자신이 보는 세계에 대한 질문을 하면 많은 것이 달라지는데. 그런데 이분이 궁금해한 것은 딸과의 관계에 대한 것이 아니라, 딸이 만나고 있는
글: 권김현영 │
일러스트레이션: 마이자 │
2018-1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