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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예모 (Yimou Zhang)

1950-11-14

참여작품 평점평균

씨네216

/

네티즌6.4

| 수상내역 3

기본정보

  • 원어명張藝謨
  • 다른 이름장이모;Zhang Yi Mou;장이모우;장이머우; 張藝謀; Zhang Yimou; Yi-Mou Zhang
  • 직업감독
  • 생년월일1950-11-14
  • 성별

소개

장이모는 첸카이거와 함께 대표적인 중국 5세대 감독으로 꼽힌다. 그러나 문화혁명 세대의 감수성과 그것의 변증법적 발전으로 이루어진 자기 반성과 철처한 작가정신으로 5세대 감독으로 머물지 않고, 6세대를 잇는 징검다리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1966년 고등중학을 졸업한 그는 문화혁명으로 인해 하방되어, 산시성의 농촌과 방직공장에서 10년이란 세월을 보낸다. 어릴 때 가졌던 촬영에 대한 호기심으로 1978년 베이징전영학원 촬영과에 입학한 장이모는 졸업 후 장춘차오의 <하나와 여덟>의 촬영을 맡아 영화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특히 첸카이거의 첫번째 연출작 <황토지> <대열병>의 촬영감독을 맡아 명성을 얻었다.

장이모의 작품세계는 크게 1992년 <귀주이야기>를 기점으로 나눌 수 있다. 전반부에 해당되는 작품은 데뷔작인 <붉은 수수밭> <국두> <홍등>으로, 이 시기는 그의 형식적 측면, 예를 들면 일관되게 닫힌 미장센이나 붉은 색채를 위주로 한 아이콘이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데뷔작이자 그의 명성을 세계적으로 알리게 된 <붉은 수수밭 紅高梁>(1987)은 형식적 측면이 강한 영화라 할 수 있다. 베를린영화제 금곰상을 수상한 이 영화는 문화혁명의 혼란을 시대적 배경으로, 그림처럼 붉게 물들인 화면으로 영상미를 강조했다. 두번째 영화 <국두 菊豆>(1990)에서 폐쇄된 가옥 구조나 배경을 담아내는 영상형식은 영화미학적 면에 치중해 온 장이모 감독의 집착을 엿볼 수 있다. 이런 형식적 측면과 더불어 초기 영화들은 주로 닫혀진 중국 역사의 전모를 우울하게 그려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영화 역시 칸영화제 루이스 브뉘엘상을 받아, 장이모란 이름은 중국보다도 해외에서 더 알려지게 되었다. 이어 장이모는 연극적인 미장센과 붉은 색채 이미지를 이어나가 <홍등 大紅燈籠高高掛> (1991)을 완성했는데, 이 영화는 독특한 중국의 가옥구조와 여성의 섬세한 묘사로 베니스영화제 감독상을 받았으나, 지나친 형식주의로 인해 사실적 관점을 놓쳤다는 평론계의 비판을 받았다.

이에 자극을 받은 듯 장이모는 첸카이거가 벗어나지 못했던 문화혁명 증후군에서 탈피해 <귀주이야기 秋菊打官司>(1992)를 통해 스스로 규정한 오리엔탈리즘에 대한 자성과 사실주의적인 비전을 제시한다. 그는 <귀주이야기>를 통해 기존의 침울한 감상주의에서 벗어나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중국인들을 등장시킨다. 농염하게 빛나던 장식적 색채들은 이후 영화에서 생명력과 리얼리티를 갖게 된다. 이렇게 그는 형식주의자에서 리얼리스트로 변신을 시도하는데, 이런 그의 변신은 놀라운 성과를 가져다 주었다. 장이모는 <귀주이야기>를 통해 낙관주의 시각으로 중국인들의 삶을 공시적으로 살핀 후에, <인생 活着>(1994)을 통해 봉건제 중국부터 시작해 문화대혁명에 이르기까지 통시적 역사성을 사실적 관점에서 그려낸다. 중국의 전위작가 유화의 초기 사실주의 원작을 스크린에 담은 <인생>은 평범한 민중 가정을 사실적 관점에서 그려내는데, 역사 속에서 희생되어가는 가족의 고통을 인형극을 통해 알레고리화하고, 부조리한 유머를 생산해낸다. <인생>은 칸영화제에서 큰 호평을 받고, 심사위원대상과 남우주연상을 안겨주었다. 1996년 다시 칸영화제에 출품한 <상하이 트라이어드 Shanghai Triad>(1995)는 1930년대의 할리우드뮤지컬과 홍콩누아르를 반죽해놓은 이례적인 상업영화.

1990년 중반에 들어서 장이모는 중국인 특유의 강한 집념으로 무장하고 <유화호호설 Keep Cool>(1995)을 통해 서구화된 중국 젊은이들 사이로 카메라를 들이댄다. 장이모 자신이 직접 출연했던 <유화호호설>은 현대 중국 젊은이들의 자화상이자, 시대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한 장이모의 눈물겨운 ‘회춘’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문화혁명의 과거사에서 벗어난 장이모는 현실을 직시하는데, 초기에 영화적 무대였던 농촌을 떠나 도시의 거리로 배경을 옮겨간 것도 근대화된 중국에 대한 사실적 고찰의 필요 때문이다.

아직은 40대로 왕성한 활동력을 보여주고 있는 장이모 감독은 최근 첸카이거 감독의 신작영화 <암살자>(1999)의 주연배우로 출연한다고 보도돼 화제가 되었다. 그러나 1997년 이미 우티안밍의 <낡은 우물>을 통해 도쿄영화제 남우주연상을 받은 적 있던 장이모의 ‘숨은’ 경력을 상기해 보면, 이는 단순한 화젯거리가 아니라 장이모의 다양한 영화적 능력을 나타내주는 또다른 예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 영화감독사전, 19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