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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디 서키스 (Andy Serkis)

1964-04-20

참여작품 평점평균

씨네216.8

/

네티즌8.1

기본정보

소개

"부디 열심히 해주세요. 당신의 노력은 우리 영화의 성패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합니다. 한데 당신의 연기는 후반작업으로 다 지워서 스크린에는 하나도 안 나올 겁니다.” 첫날 감독에게 ‘이따위’ 당부를 듣는 배우는 도대체 어떤 기분일까? 악전고투 끝에 근사한 장면을 만들어낸 흡족한 하루의 끝에서 불현듯 “그런데 아무도 내 모습을 못 보겠지”라고 깨닫는 느낌은 얼마나 고약한 것일까. <반지의 제왕> 3부작의 <반지의 제왕: 두개의 탑>과 <반지의 제왕: 왕의 귀환>에서 CG 캐릭터 골룸을 연기한 앤디 서키스가 감당한 마음의 짐은, 말하자면 그런 것이었다.

영국 배우 앤디 서키스(40)는 애초 골룸에게 목소리를 입힐 성우의 자격으로 피터 잭슨 감독의 중간계에 발을 들였다. <아메리칸 뷰티> <로드 투 퍼디션>의 샘 멘데스 감독이 이끄는 돈마르 웨어하우스 극단을 비롯한 다양한 무대 연기로 단련되고, 각종 TV드라마와 마이크 리, 마이클 윈터보텀 등의 영화에 출연한 자존심 센 중견배우 서키스에게, 골룸의 성우 오디션은 사실 내키지 않는 일거리였다. “<반지의 제왕>이라면 폼나는 캐릭터가 수두룩할 텐데 고작 그것밖에 못 따냈어?”라고 에이전트에게 투덜거리던 서키스는, 톨킨의 원작을 잘 아는 아내에게 바로 면박을 당했다. “당신 무슨 소리하는 거야? 이건 골룸 역이라구, 골룸!”

<반지의 제왕>을 숙독한 서키스는 곧 아내의 지적에 공감했다. 아니, 누가 봐도 골룸은 중간계 최고의 골칫덩어리이자 매력덩어리다(오래전 비틀스 멤버를 주연으로 <반지의 제왕>을 영화화하려는 기획이 나왔을 때 골룸은 존 레넌의 배역이었다). 신화의 필체로 그려진 탓에 얼마간 전형화되어 있는 인간, 요정, 난쟁이, 호빗에 비해 반지의 마력이 만들어낸 돌연변이 골룸은 종족의 속성에 구속되지 않는 개별적 존재다. 그리고 절대반지를 소유한 자가 떨어지는 무간지옥의 고통을 이해하는 것도 골룸과 프로도뿐이다. “나는 그가 옛날로 돌아갈 수 있다고 믿어야만 해.” 프로도가 골룸에게 연민을 거두지 못하는 까닭은 골룸의 구원이 곧 자신의 구원이기 때문이다. 에덴에서 추방된 루시퍼이며 친족을 살해하고 유폐된 카인인 골룸은 지금까지의 CGI 캐릭터와 달리 어릿광대가 아니라 누구보다 드라마틱한 인물이다. 서키스가 더빙 도중 보이는 제스처와 표정에 감명받은 피터 잭슨 감독은 디즈니 애니메이터들의 오래 된 방법론을 빌려오기로 했다. 서키스의 음성뿐 아니라 외모와 움직임을 그대로 캐릭터에 옮기기로 마음먹은 것. 하지만 골룸이 그랬듯 앤디 서키스는 소외감과 싸워야 했다. 전신 타이츠를 입고 어슬렁거리는 그를 뜨악하게 쳐다보던 스탭과 배우들의 존중과 동지애를 서키스는 4년간 맨땅에서 구르며 얻어냈다. 서키스는 무대에서 훈련된 육체로 골룸을 상상했다. 현장에 도착한 첫날부터 네발로 기어다니며 골룸의 닳고 해진 팔다리를 자기 것으로 만들었고, 천년 세월 동안 울혈진 고통을 토악질하듯 발성했다. 골룸의 오스카 노미네이션이 진지한 논란거리라면 그것은 골룸이 고립된 기술적 개가에 그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배우 앤디 서키스는 골룸만 열연한 것이 아니라, 통상 ‘있다치고’ 연기해온 CG 캐릭터 신에 직접 들어감으로써 상대배우의 진정한 리액팅을 이끌어낸 것이다.

골룸은 이래저래 문제아다. 앤디 서키스의 연기는 영화 연기의 주체에 대한 근본적 물음을 다시 제기했다. 특수분장으로 완벽히 모습을 감춘 <엘리펀트맨>의 존 허트가 오스카 주연상 후보 자격을 인정받았다면, 디지털 신호로 메이크업을 대신한 앤디 서키스의 연기는 어떻게 평가돼야 옳은가. 조명과 의상, 편집과 촬영이 같이 만들어내는 영화 연기에서 배우의 몫은 어디까지인가? 영화사의 진화와 더불어 더욱 불어날 논란의 불씨를 던져놓은 채, 샘 셰퍼드 감독의 <마음의 거짓말>을 앞둔 앤디 서키스는 속편하게 싱글거리고 있다. “다시 바지를 입고 연기하는 것도 좋겠죠”라면서.

글 김혜리 vermeer@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