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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키노 비스콘티 (Luchino Visconti)

1906-11-02

참여작품 평점평균

씨네21--

/

네티즌7.3

기본정보

  • 직업감독
  • 생년월일1906-11-02
  • 사망1976-03-17
  • 성별

소개

대표작 <대지는 흔들린다>, <로코와 그의 형제들>, <표범>, <베니스에서의 죽음>, <망령들>
비디오 출시작 없음

출신은 귀족, 청년 시절에는 공산주의자, 말년에는 탐미주의자였던 영화감독 루키노 비스콘티를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렵다. 비스콘티 연구서를 출간했던 영국의 영화이론가 제프리 노웰 스미스는 비스콘티 영화의 핵심고리를 잡아내려다가 실패하고 말았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 <대지는 흔들린다 La Terra Trema> (1947)와 같은 초기작에서 시실리 농부의 착취받는 삶을 분노에 차서 묘사했던 감독이 말년에는 오페라 극장 천장에 매달려 있는 샹들리에에 매혹당한 퇴폐미를 예찬했던 경력을 어떻게 다 설명할까.

비스콘티가 40년대에 만든 두편의 영화는 이탈리아영화의 새로운 전통으로 떠올랐던 네오리얼리즘 경향의 주요작으로 꼽힌다. 제임스 M. 케인의 <우편배달부는 벨을 두번 울린다>가 원작인 첫 작품 <강박관념 Ossessione> (1942)은 남녀의 불륜과 살인이 플롯의 골격이지만, 주인공의 탐욕스러운 인간형을 통해 이탈리아 파시즘 치하에서 억눌린 이탈리아 국민의 이미지를 은근히 암시하면서 정부의 신경을 건드렸다. 이 영화는 이야기의 배경인 포 델타 지역의 지방색을 아주 잘 드러냈다는 점에서도 주목을 받았다.

<강박관념>이 네오리얼리즘의 문턱에서 멈춘 영화라면 <대지는 흔들린다>(1948)는 네오 리얼리즘의 복판에 선 영화다. 시실리 현장에서 촬영했고 현지 사람이 출연한 이 영화는 시실리 지방 농부의 고된 노동으로 점철된 삶을 찍은 서사시이자 보고서다. 인공적인 흔적을 거의 완벽하게 거둬낸 이 영화에서 비스콘티가 전하는 메시지는 간명하다. 힘들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 농부의 진짜 적은 몰인정한 자연이 아니라 지주라는 것이다. 30년대 파리 체류 시절 비스콘티가 공산주의자들과 교류하면서 체득한 세계관이 이 영화에 녹아들어 있다. 그러나 사실주의자 비스콘티는 귀족주의자이자 스타일리스트인 비스콘티와 자주 부딪친다. 공들여 길게 찍은 화면은 이탈리아 지방의 분열상을 분명하게 보여주지만 화면의 미학적 아름다움에도 찬탄하게 만드는 아주 양식화된 형식미를 보여줬다.

네오리얼리즘에서 출발했던 비스콘티는 <애증 Senso>(1954)을 계기로 사극 멜로드라마의 영역으로 관심을 서서히 옮겼다. <애증>의 색채, 구도, 카메라 움직임, 의상, 실내 디자인과 같은 화면에 나타나는 모든 것은 화려한 바로크 취향으로 치장돼 있다. 시실리에서 밀라노로 이주하려는 한 가난한 가족의 고투를 담은 <로코와 그의 형제들 Rocco and His Brothers>(1960)은 멜로드라마적인 구성을 어두운 분위기의 촬영으로 밀고감으로써 냉정하게 이탈리아의 상황을 해석한, 가장 우울하고 진중한 비스콘티의 영화여서 평자에 따라서는 그의 대표작으로 꼽히기도 한다. <표범 The Leopard>(1963)은 비스콘티가 다시 역사 드라마로 복귀한 영화이고 어떤 면에선 가장 비스콘티적인 영화다. 명망높은 귀족 가문의 자제가 중산층 계급 처녀와 결혼하려 하자 남자의 가문에선 못마땅하긴 하지만 그의 결정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가리발디가 이탈리아를 통일했던 시기가 이야기의 배경이지만 정치 문제보다는 장엄한 무도회장의 미학적 향기에 취하는 후기 비스콘티의 취향이 분명하게 드러나기 시작한다. 계급 갈등의 분석은 별로 없으며 세월 앞에 무력해져가지만 부드럽고 위엄있는 백작의 모습에 비스콘티 스스로 일체감을 느끼는 흔적이 보였다.

네오리얼리즘 노선을 배반하고 귀족주의적인 탐미성향에 빠져든 60년대 중반의 비스콘티는 안팎에서 곧잘 비판을 받았는데 <이방인 The Stranger>(1967)은 알베르 카뮈의 실존주의 소설을 ‘오독’한 점에서 평단의 혹독한 비평을 받았다. 그러나 만년에 접어든 비스콘티는 나치 시대를 배경으로 역사와 인간에 대한 극단적인 염세주의와 퇴폐미를 기적같이 조화시킨 <망령들 The Damned>(1969)에 이어 그의 비관적이지만 저항할 수 없을 만큼 완벽한 탐미주의의 예술관을 집약한 <베니스에서의 죽음 Death in Venice>(1971)을 내놓았다. 구스타프 말러의 노년을 다룬 토마스 만의 소설을 영화로 만든 <베니스에서의 죽음>은 병에 걸린 노작곡가 아쉔바하가 콜레라가 창궐하는 베니스에 도착해 해군복을 입은 미소년에게 생애 최후의 사랑을 느낀다는 내용을 담은 작품이다. 죽어가는 세상, 죽어가는 자신의 육체 앞에 예술은 구원이 될 수 없지만 청초한 소년의 미를 보며 아쉔바하는 생명력의 경이를 느낀다. <베니스에서의 죽음>은 비스콘티의 동성애 취향이 노골적으로 드러나지만 미와 생명력을 관조하고 찬양하는 노거장 비스콘티의 숨결이 스며들어 있는 화면은 장엄하기까지 하다. 이 영화는 비스콘티의 만년의 걸작이라는 찬사와 무미건조한 퇴폐미의 극단이라는 평가를 동시에 받았으며 비스콘티가 세상에 남긴 사실상의 레퀴엠이 됐다. 비스콘티는 <베니스에서의 죽음> 이후에 <루드비히 2세 Ludwig 2>(1972) <컨버세이션 피스 Conversation Piece>(1975) <이노센트 The Innocent>(1976) 등 세 작품을 더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오페라감독과 연극감독으로도 유명했던 비스콘티는 무대예술과 미술의 미학을 영화에 옮겨 놓았으며 역설적이지만 연극과 오페라 같은 전통예술은 비스콘티의 손을 거쳐 신생 매체인 영화에서 빛을 발했다. 프랑스 감독 장 르누아르의 영향을 받았고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마이클 치미노, 제임스 아이보리 등의 감독에게 영향을 끼친 비스콘티는 이미 수십년전에 세기말의 황혼을 체험한 영화감독이었다.<b>[씨네21 영화감독사전]</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