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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릴린 먼로 (Marilyn Monroe)

1926-06-01

참여작품 평점평균

씨네21--

/

네티즌6.9

기본정보

  • 다른 이름Marilyne Monroe; 마릴린 몬로; Norma Jean Mortensen; 노마 진 모르텐슨
  • 직업배우
  • 생년월일1926-06-01
  • 사망1962-08-05
  • 성별

소개

마릴린 먼로의 본명은 노마 진 모르텐슨으로 1926년 6월 1일 LA의 병원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아버지인 마틴 에드워드 모르텐슨은 마릴린이 태어나기 전에 가족을 버리고 떠났으며 마릴린은 오랫동안 자신의 친부가 누군지 알 수 없었다. 그녀의 어머니인 글래디스는 모르텐슨보다 먼저 사귀었던 베이커란 남자의 성을 마릴린에게 주기도 했다. 마릴린 먼로는 훗날 영화사에서 지어준 이름이다. 글래디스는 RKO 스튜디오에서 근무하며 매력적인 여인으로 이목을 끌었지만 우울증을 앓았기 때문에 마릴린 먼로는 2년 동안 고아원에서 자라기도 했다. 마릴린 먼로는 어린 시절 성폭행을 당하기도 했는데, 그것은 평생동안 큰 상처로 남았다.

마릴린 먼로는 21세 되던 해에 제임스 도허티와 첫 번째 결혼을 했다. 그러나 4년 후인 1946년 두 사람은 이혼했으며, 그 무렵 마릴린은 모델 활동을 하다 미국 영화계의 거물인 하워드 휴즈의 눈에 띄게 된다. 하워드 휴즈는 RKO 필름의 소유주로 마릴린의 연기를 테스트 했지만 그녀는 우여곡절 끝에 20세기 폭스사와 계약하게 되어 <쇼킹 미스 필그림>, <데인저러스 이어즈>의 단역으로 출연했으나 해고되었고 이어 콜롬비아 사와도 계약하여 몇 편의 영화를 촬영했으나 해고되었다. 모델 스쿨로 돌아갔다 복귀하기를 이렇게 몇 차례 반복하던 그녀는 유나이티드 아티스트사의 1949년작 <러브 해피>에 출연하면서 캘린더 걸로 차츰 인기를 얻기 시작했고 플레이보이 매거진의 표지모델을 맡으면서 유명해졌다.

이어 1950년부터 <아스팔트 정글>과 <이브의 모든 것>에 출연하면서 그녀는 급속도로 스타덤을 타기 시작했다. 1952년의 <몽키 비즈니스>, 1953년의 <신사는 금발을 좋아해>, <백만장자와 결혼하는 법>, 1955년의 <7년만의 외출> 등 이 시기에 촬영한 영화들이 그녀의 전성기를 열어젖혔으며, 이제 그녀는 세기의 섹스 심벌이자 스캔들 메이커로 갖가지 일화를 만들어내게 된다. 마릴린 먼로는 뉴욕 양키스가 낳은 불세출의 야구 스타 조 디마지오, 세계적인 극작가 아서 밀러 등과 결혼했으며 미국의 정치 명가인 케네디 가 출신의 대통령인 존 F. 케네디, 법무장관 로버트 케네디 같은 정계의 거물, 그리고 이브 몽땅 같은 스타들과 염문을 뿌리기도 했다. 영화 <7년만의 외출>에서 지하철 환풍구 바람에 말려 그녀의 치마가 올라가는 장면은 마릴린 먼로의 명성과 함께 남은 명장면이 되었다.

마릴린 먼로는 1962년 8월 5일 자택에서 약물과용으로 사망했는데, 사인은 자살로 발표되었지만 그녀의 죽음을 둘러싼 갖가지 의혹은 끊이지 않고 있다. 앞서 언급한 영화들을 비롯하여 <버스 정류장>, <뜨거운 것이 좋아>, <어울리지 않는 사람들>, <왕자와 쇼걸>, <돌아오지 않는 강> 등이 대표작으로 평생동안 30편의 영화에 출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