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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지오 레오네 (Sergio Leone)

1929-01-03

참여작품 평점평균

씨네21--

/

네티즌8.6

기본정보

  • 직업감독
  • 생년월일1929-01-03
  • 사망1989-04-30
  • 성별

소개

미국영화의 강대함과 영향력은 그것을 비판하는 것 못지 않게 거기에 심취하여 방법론을 배우고, 모방하는 몇몇의 감독들에 의해서 다시금 확인되는 면이 있다. 물론 궁극적으로 자기만의 새로운 영화를 창조해 나갔던 감독들, 가령 클로드 샤브롤과 트뤼포 등 누벨바그 감독들은, 필름누아르와 존 포드의 영화에서 작가의 자양분을 습득했으며, 오우삼은 샘 페킨파를 흠모한 나머지 무협지와 누아르를 접목시키는 새로운 장르를 열었다. 아버지의 품에서 자라나 마침내 아버지에서 벗어난 이들 감독군 중에서도 세르지오 레오네는 단연 이채롭고도 특출한 영화들을 만들었던 ‘오페라틱한 영화’의 거장이었다. 그는 <황야의 무법자> <석양의 무법자>로 ‘스파게티 웨스턴’의 창시자라는 말을 들었고 불세출의 걸작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로 어떤 미국영화보다 미국사회의 정서와 삶의 원형들을 생생하게 그려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그의 영화에는 ‘밖에서 미국을 바라보는’ 국외자의 냉정한 시각이 있기도 하다.세르지오 레오네는 원래 1929년 로마에서 태어난 토박이 이탈리언이었다. 무성 영화감독인 빈센조 레오네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자연히 영화계에 발을 디뎠고, 무명시절 비토리오 데 시카의 <자전거도둑>에 단역으로 출연하기도 했다. 그러던 중 2차대전으로 황폐화된 유럽 영화산업이 그 주도권을 미국에 내준 시점에 유럽에서 작업하던 많은 미국영화의 조감독으로 감독 경력을 시작한다. 마빈 르로이, 라울 월시, 윌리엄 와일러 같은 당대의 기라성 같은 할리우드 감독들과 일하면서 영화의 기본을 배운 레오네는 마침 당시에 유행하던 성경을 소재로 한 대작영화의 제작 바람 덕에 <폼페이 최후의 날 The Last Days of Pompeii> (1960) <소돔과 고모라 Sodom and Gomor-rah>(1963) 등의 조감독으로 참여할 수 있었다. 60년에는 데뷔작인 <오드의 투기장 Colos-sus of Rhodes>을 만들지만 열악한 이탈리아영화계의 환경 탓에 다시 조감독 일을 해야 하는 등 나름대로의 고생도 심했다. 레오네가 자신의 색깔을 본격적으로 드러낸 작품은 <황야의 무법자 A Fistful of Dollars> (1964)부터였고 이 작품으로 그는 비평가들로부터 ‘스파게티 웨스턴의 탄생’이라는 평가를 얻을 수 있었다. 이후 <석양의 무법자 The Good, the Bad, the Ugly>(1966) <옛날옛적 서부에서 Once Upon a Time in the West> (1968)로 이어지는 필모그래피 속에서 세르지오 레오네가 보여준 것은 웨스턴으로 상징화되는 미국식 영웅신화의 파괴와 조소, 그 자체였다. 먼저 레오네식 웨스턴은 주인공부터가 다른 면이 있다. 당시 <로하이드>라는 텔레비전 시리즈의 신인이었던 클린트 이스트우드를 기용한 <황야의 무법자>의 주인공은 이전까지 보던 서부의 영웅과는 완전 딴판인 인물이다. 더이상 주인공은 존 웨인이나 게리 쿠퍼처럼 선과 악의 이분법적 구도에서 대의명분이나 정의를 위해서 싸우는 ‘굿 가이’가 아니다. 레오네의 인물들은 주인공을 포함한 등장인물 거의 전부가 자신의 이해와 탐욕을 위해 움직이고 음모와 배신으로 얽히고 설킨다. 그 결과 주인공들은 지독한 공허감 속에서 한순간의 결투를 위해 목숨을 거는 짙은 허무를 머금고 있다. 요컨대 레오네는 어떤 사건의 해결을 위해 플롯을 따라 움직이는 인물보다는 인간자체의 추악한 내면묘사에 더욱 신경을 썼던 것이다. 이를 위해 그가 사용한 테크닉은 극단적인 클로즈업이었다. 레오네의 영화에는 유독 인물에 대한 클로즈업, 그것도 눈이나 입술 등 얼굴의 일부분을 강조한 익스트림 클로즈업이 많다. 그리고 그가 기용한 클린트 이스트우드나 리 반 클립 등의 배우는 유려한 이미지와 대사를 구사하지 못하는 대신 독한 개성과 외모를 통해 관객으로 하여금 대사나 플롯으로 전할 수 없는 인물의 내면을 읽게 하는 특성이 있다. 이같은 인물들을 움직이는 동기는 사회는 물론 가족까지도 저버리는 비정한 것, 바로 부와 권력의 쟁취였다. 어쩌면 레오네는 정의와 꿈의 실현이라는 가치를 스크린에 비추며 대중을 매료시켰던 미국영화에 대해 “결국 인간이란 자기의 탐욕에 따라 움직이는 존재이며 그것이 삶이다”라고 냉정하게 일깨워 주는 존재가 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가 각본을 쓰고 크라우디아 카르디날레가 주연한 <옛날옛적 서부에서>는 세르지오 레오네의 오페라틱한 서부극의 매력이 최대로 발휘된 작품이기도 하다. 이후 그는 <무숙자 My Name Is Nobody> (1974) 같은 영화의 아이디어를 내거나 몇편의 이탈리아영화를 감독한 후 장기간의 은둔생활에 들어간다. 그리고 마침내 자신의 세계관이 가장 완성도 높게 나타난 영화이자 마지막 작품인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Once Upon a Time in America>(1984)를 내놓는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는 코폴라의 <대부>와는 또다른 의미에서 누아르장르를 통한 미국현대사의 해부였다. 그러나 <대부>가 이탈리언이긴 만 이민자의 자손으로서 어느 정도까지는 이미 미국화된 세계관을 가지고 있던 코폴라의 아버지 세대에 대한 애증이 섞인 헌정사였다면,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는 어디까지나 미국사회의 밖에서 안을 들여다보며 냉정하고 침착하게 미국을 그려낸다. 여기서도 인간에 대한 레오네의 시선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주인공들은 어린 시절 대공황과 금주령의 시대를 살아가며 인생의 온갖 역경을 함께 겪지만 결국 성장해서는 각자가 다른 길을 걷다가 심지어는 서로를 속이고 배신한다. 둘 다 대하서사극이라는 점은 같지만 <대부>가 좀더 비장미가 서린 반면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의 느낌은 왠지 쓸쓸한 구석이 있다. 형식미에서도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는 레오네의 최후의 걸작이자 앞으로도 이를 능가하는 작품을 만나기 힘든 필름누아르의 대표작이 되었다. 카메라는 결코 과장되게 움직이거나 주인공에 근접하지 않는데도 충분히 관객을 상황에 몰입시키는가 하면 때로는 관조적인 거리로 물러앉게 하며, 특히 시공간을 오가는 편집은 교과서적인 것 이상의 무엇이 있다. 이 작품은 그때까지 ‘약간 이상한 웨스턴 영화’를 만드는 상업적 장인으로만 그를 취급하 평자들의 왜곡된 시각을 단번에 뒤집는 계기가 되었다. 그는 마지막으로 러시아혁명에 관한 대하시를 쓰고자 했다. ‘옛날옛적 러시아에서’라 명명했던 그의 프로젝트는 아쉽게도 불발로 끝이 나고 불행하게도 레오네는 그의 차기작을 목마르게 기대하던 사람들의 소망을 만족시켜 주지 못하고 1989년 사망하고 만다. 그러나 그의 태양과 총의 오페라는 사람들 머리 속에 웨스턴의 신화를 방증하는 하나의 대하 서사시로 남아 있다. 거친 역사의식과 장대한 시각적 스타일, 영웅보다는 인간을 그리고자 했던 그의 노력들은 할리우드의 변방에서 중심으로 진입한 한 이탈리아 감독의 냉정한 미국사의 해부이기도 하다. <b><font size=4><FONT COLOR="666666">[씨네21 영화감독사전]</font></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