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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마 나기사 (Nagisa Oshima)

1932-03-31

참여작품 평점평균

씨네217.1

/

네티즌6.4

기본정보

  • 원어명大島渚
  • 다른 이름Oshima Nagisa
  • 직업감독
  • 생년월일1932-03-31
  • 성별

소개

대표작 <청춘 잔혹 이야기>,<일본의 밤과 안개>,<교사형>

60년대 일본 뉴웨이브의 기수로 불리는 오시마 나기사는 학생운동 경력을 지닌 일본 감독들 중에서도 가장 정치적인 작품을 양산해온 대표적 감독으로 꼽힌다. 젊은이의 방황과 고뇌, 재일교포 문제 등과 같은 일본 내 차별, 국가권력의 폭력성, 좌절한 이상주의 등이 그가 즐겨 다룬 소재였다.

오시마 나기사도 오가와 신스케, 오시이 마모루 등과 마찬가지로 대학 시절 학생운동에 참가했다. 교토대학교 법학부에서 정치사를 전공하면서 교토학생연맹 부의장을 지낸 그는 일본정치와 사회에 관심을 가지고, 지속된 정치투쟁과 사상투쟁으로 자신을 단련시켰다. 대학을 졸업한 그는 1954년에 쇼치쿠 영화사에 조감독으로 입사하게 된다. 당시 퇴조기에 접어들었던 쇼치쿠 영화사는 위기 타개책으로 일군의 젊은 조감들을 전격 등용시키는데, 그중에서도 오시마는 첫번째 주자로 선택되었다.

데뷔작 <사랑과 희망의 거리 愛と希望の街>(1959)는 비둘기 파는 소년의 일상을 어두운 톤으로 그린 작품으로 평단의 호평을 받으며 일본 누벨바그의 신호탄이 됐다. 이후 오시마 나기사는 반항과 방황으로 점철된 일본 젊은이들 사이로 들어가 <청춘 잔혹 이야기 靑春殘酷物語>(1960)를 찍는데, 이 영화를 통해 오시마 나기사는 ‘일본의 장 뤽 고다르’란 평가를 받았다. 섹스와 폭력으로 점철된 삶의 방식을 지닌 두 남녀를 통해 일본 좌파의 혁명실패 이후의 신세대들의 혼란과 방황을 포착해냈다. 이후 오시마 나기사는 오사카 슬럼에서 벌어지는 혼탁한 삶의 현장으로 들어가 다큐멘터리와 극영화를 혼합시킨 <태양의 묘지 太陽の墓場>(1960)를 발표했다.

네번째 작품 <일본의 밤과 안개 日本の夜と霧>(1960)는 쇼치쿠와 결별하게 만든 문제작. 이 영화는 근본적으로 신좌파의 입장에 서서 당시 일본 구좌파의 비혁명성과 과오를 신랄하게 고발한 작품. 연극적 기법이 창의적으로 활용된 <일본의 밤과 안개>는 정치적·형식적으로도 일본 영화사상 가장 혁신적인 작품 가운데 하나였지만 쇼치쿠는 개봉 3일 만에 종영했고 오시마는 이를 계기로 쇼치쿠를 떠난다. 이후 독립프로덕션인 ‘소조사’를 설립한 오시마 나기사는 이후 연쇄 강간살인범을 다룬 <백주의 살인마 白晝の通り魔>(1966), 일본 여고생 강간 살인죄로 사형당한 재일한국인의 실화를 실험적 기법으로 다룬 <교사형 絞死刑>(1968), 개인의 성적 탐닉과 학생운동을 세미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찍은 1969년 작 <신주쿠 도둑 일기 新宿泥棒日記>, 권력과 결탁해 부를 축척해나가는 한 일본 가족사를 통해 전후 일본사회를 상징적으로 살핀 1971년 작 <의식 儀式> 등 수작들을 잇따라 내놓는다.

그러나 1970년대에 들어서자 오시마 나기사의 왕성했던 작품활동은 급격히 수그러들었고 내용도 정치적 투쟁과 권력비판에서 한걸음 물러서, 개인적인 문제에 천착하는 변화를 보였다. 죽음에 이르는 강박증적 성적 관계를 다룬 <감각의 제국 愛のコリ―ダ>(1976)은 이런 그의 변화의 단적인 예. 이후 <열정의 제국 愛の亡靈>(1978), <전장의 메리크리스마스 戰場のメリ·クリスマス>(1983), <막스 내 사랑 マックス モン·アム―ル>(1986) 등이 그의 뜸해진 작품 목록을 이어왔다. 90년대에 들어와선 거의 활동을 중단했으나 98년 말에 신작에 착수했다. <b>[씨네21 영화감독사전]</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