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Leonardo DiCaprio)

1974-11-11

참여작품 평점평균

씨네216.8

/

네티즌7.7

| 수상내역 4

기본정보

소개

지금까지 전 시대를 통틀어 가장 높은 흥행수익을 올린 블록버스터 영화 「타이타닉(1997)」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를 세계적인 아이콘으로 만들어주었지만, 그 성공은 그가 호평을 받았던 일련의 어려운 역할들을 통해 차근차근 일구어낸 것이다. 이탈리아인과 독일인의 혈통을 받은 디카프리오는 로스앤젤레스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만화책 도매업자였고 어머니는 법무 보조원이었다. 그가 '레오나르도'라는 이름을 갖게 된 것은 임신 중이던 그의 어머니가 이탈리아의 한 미술관에서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그림을 보고 있을 때, 뱃속에서 그의 발길질을 느꼈고 그래서 그 유명한 예술가의 이름을 따서 아기의 이름을 지었기 때문이다.

디카프리오는 텔레비전 극 「커져가는 아픔(1991~1992)」에서 집 없는 소년 역을 맡아 큰 성공의 기회를 얻었고 이어서 찬사를 받은 몇 편의 독립영화들에 출연했다. 그중 조니 뎁과 함께 출연한 「길버트 그레이프(1993)」로 겨우 열아홉 살의 나이에 아카데미 남우조연상 후보에 오르고, 「디스 보이스 라이프(1993)」에서는 로버트 드 니로와 함께 연기했다. 셰익스피어의 희곡을 새로운 스타일로 연출한 「로미오와 줄리엣(1996)」은 그를 핀업 스타로 만들었고 「타이타닉」은 그런 그의 입지를 정상까지 밀어올렸다. 그는 우디 앨런의 「셀러브러티(1998)」에서 또한 그는 자신의 스타덤을 풍자하기도 했다. 환경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고 다양한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알렉스 갈란드의 베스트셀러를 대니 보일이 영화화한 「비치(2000)」에 출연했지만 평은 별로 좋지 않았다. 그는 「캐치 미 이프 유 캔(2002)」의 스티븐 스필버그, 특히 「갱스 오브 뉴욕(2002)」과 「에비에이터(2004)」, 「디파티드(2006)」 세 편을 함께 한 마틴 스콜세즈를 비롯하여 할리우드의 가장 막강한 감독들과 함께 작업했다. 또한 「블러드 다이아몬드(2006)」로 세 번째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으며, 「레볼루셔너리 로드(2008)」, 「셔터 아일랜드(2010」등에 출연, 2010년「인셉션(2010)」으로는 그의 경력에 큰 상업적 성공을 거두기도 하였다.

2010년 이후, 디카프리오는 "아피아 웨이 프로덕션"이라는 영화 제작사를 설립하고, 「가드너 오브 에덴(2007)」, 「오펀: 천사의 비밀(2009)」, 「레드 라이딩 후드(2011)」등의 영화를 제작하며 영화 제작자로도 활동하기 시작했다.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영화 「장고:분노의 추적자(2013)」에서 악역 '캘빈 캔디'역으로 연기 변신을 시도했으며, F. 스콧 피츠제럴드의 원작 소설을 영화화한 「위대한 개츠비(2013)」에서 "제이 개츠비"역을 맡아 열연하였다.「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2013)」의 "조단 벨포트"를 연기하며, 인간 본성의 탐욕적인 모습과 뇌성마비 환자의 모습등을 훌륭하게 소화하고, 2014년 86회 아카데미 시상식 남우 주연상 후보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