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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라우버 로샤 (Glauber Rocha)

1938-03-14

기본정보

  • 직업감독
  • 생년월일1938-03-14
  • 사망1981-08-22
  • 성별

소개

도스 산토스 등과 함께 브라질 시네마노보 운동의 기수로 꼽힌다. 로샤는 지방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하던 시기를 제외하곤 줄곧 영화에 전념했다. 16살 때 영화클럽을 만들었으며, 57년에 영화사를 차려 몇개의 단편을 찍은 뒤 1962년 장편 데뷔작 <바라벤토 Baravento>를 내놓았다. 그는 비상업적 영화언어를 통해 문화적 민족주의를 각성시키려 했다. ‘굶주림의 미학’이라 불리는 영화론을 통해 로샤는 폭력이 식민화된 자아를 각성시켜 굶주림의 현 질서를 변화시킬 것이라는 신념을 피력했다. 유럽과 미국영화에 맞서 시적이며 풍성한 알레고리와 자기반영적 스타일을 구사한 로샤의 영화는 화려한 미장센과 격렬한 카메라워크와 몽타주가 특징이다. 또한 브라질의 토속문화뿐만 아니라 아프리카문화에까지 관심을 가지며 제3세계 민중의 감수성을 탐구했다. <대지의 신과 악마 Deus e o diablo na terra do sol>(1964) <고뇌하는 땅 Terra em transe> (1967) <안토니오 다스 모르테스 Antonio das mortes>(1969) <사자는 7개의 머리가 있다 Der leone have sept cabecas>(1970) <땅의 나이 A idade da terra>(1980) 등이 그의 주요작품이다. 정치영화의 걸작으로 꼽히는 <고뇌하는 땅>에서 로샤는 인민주의적 좌파와 파시스트적 우파가 모두 실패하게 된 과정을 꼼꼼히 파헤친다. 대표작인 <안토니오 다스 모르테스>는 실재인물이면서 많은 브라질민담에 등장하는 총잡이 안토니오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로 브라질 민중의 춤, 노래, 전설이 다채롭게 사용됐다. 전설과 신화와 혁명의 근친성을 드러내는 가장 시네마노보적인 작품. 1968년 브라질 군사정권이 시민권을 제한하자 로샤는 외국에서 작품활동을 펼치기 시작한다. 자이르에서 만든 <사자는 7개의 머리가 있다> 등이 이 시기의 작품으로 로샤의 영화적 시야도 브라질에서 제3세계 전반으로 넓어지게 된다. 1970년 군부쿠데타 직후 추방당한 로샤는 76년 귀국이 허가될 때까지 이탈리아, 프랑스, 스페인 등에서 작품활동을 지속했다. <땅의 나이>는 브라질 정부의 지원으로 만들어졌다. 다음 작품 준비중에 폐질환으로 사망했다.
[씨네21 영화감독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