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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알트먼 (Robert Altman)

1925-02-20

참여작품 평점평균

씨네217.6

/

네티즌6.7

| 수상내역 1

기본정보

  • 다른 이름로버트 알트만
  • 직업감독
  • 생년월일1925-02-20
  • 사망2006-11-20
  • 성별

소개

대표작 <내쉬빌> <퀸테트 살인게임>

로버트 알트먼은 70년대 미국영화 비평계의 자랑이었다. 알트먼의 대표작으로 평가받는 <내쉬빌 Nashville>(1975)이 나왔을 때 <뉴요커>의 영화평론가 폴린 카엘은 이렇게 썼다. “당신은 이 영화의 이미지에 취하지도 압도당하지도 않을 것이다. 영화를 보면 그저 의기양양한 기분을 느낄 뿐이다. 순수하게 고양된 감정, 영화가 끝나도 그 감정은 사그라들지 않는다. 이 영화는 영화광을 위한 잔치다.” 알트먼은 다른 어떤 감독보다 미국 비평계의 바람을 대변한 감독이다. 할리우드영화의 관습적인 표현 스타일을 벗어나 새로운 영화스타일을 개발한 감독을 평가하는 비평적 수사로 알트먼 영화가 ‘영화광을 위한 잔치’라는 말은 더할 나위 없이 적절했다. 제임스 모나코는 알트먼이 영화라는 탁자에 차려놓은 풍부한 표현성이 알트먼 영화의 특징이라고 평했다. 그러나 알트먼의 영화가 할리우드라는 미국적 전통보다는 유럽영화의 영향을 받아들여 그것을 흉내내면서도 꽤 잘난 체하는 영화에 불과하다는 평가절하도 물론 있었다. <베트남에서 레이건까지의 할리우드>라는 책에서 우드는 알트먼을 ‘잰 체하는 멍청이’로 평했다.

알트먼은 57년에 첫 장편영화 <전과자들>과 역시 같은 해에 <제임스 딘 이야기>라는 기록영화를 찍었는데, 두편 모두 반응이 신통치 못했다. 텔레비전으로 간 알트먼은 <전투> <보난자> <앨프리드 히치콕 특선>과 같은 텔레비전 시리즈 드라마의 연출자로 일했고 마흔다섯살이라는 장년의 나이에 미국영화의 중심에 진입한 것은 <야전병원 매쉬 M*A*S*H>(1970)이다. 한국전쟁 당시 미군 야전병원을 소재로 한 이 영화는 군대의 관료주의에 대항하는 주인공들의 행각을 블랙코미디식으로 풀어내면서 당시의 반전 분위기에 적극적으로 호소한 풍자극이었다. <야전병원 매쉬>는 대단한 흥행 성공을 거두었고 미국 내에서의 비평적 평가도 좋았을 뿐만 아니라 칸영화제 대상을 수상했다. <야전병원 매쉬>의 성공은 70년대 내내 알트먼이 할리우드에서 입지를 보장받는 안전판이 됐다. 알트먼은 <야전병원 매쉬>의 성공 이후로 산만하긴 하지만 거의 모든 장르에 시비를 걸어보는 것으로 70년대를 보냈다. <매케이브와 밀러 부인 MaCabe and Mrs. Miller> (1971) <버팔로 빌과 인디언 Buffalo Bill and the Indians>(1976)은 서부영화, <길고 긴 이별 The Long Good Bye>(1973)은 필름누아르, <우리같은 도둑 Thieves Like Us> (1974)은 갱영화, <캘리포니아 불화 Califor-nia Split>(1974)는 요즘 유행하는 남성 버디영화(두명의 주인공이 한쌍을 이뤄 얘기를 진행시키는 영화), <내쉬빌>은 일종의 변형된 뮤지컬, <퀸테트 살인게임 Quintet>(1979)은 공상과학영화였다. 그리고 간혹 아주 개인적인 흔적이 묻어나는 유럽 예술영화 스타일의 영화, <세 여인 Three Women> 등과 같은 작품을 찍었다. 이런 전 작품의 경력을 통해 알트먼은 일관해서 장르영화가 기초하고 있는 미국적 신화의 기저를 흔드는 작업을 했다.

70년대가 알트먼의 전성기였다면 80년대는 알트먼의 시련기였다. 1977년부터 라이언 게이트라는 영화사를 설립, 제작자로도 활동했던 알트먼은 자신이 연출하고 제작한 작품의 거듭되는 흥행 실패로 인해 1981년에는 영화사의 문을 닫아야 했다. 설상가상으로 대제작자 디노 데 로렌티스와 같이 하기로 돼 있었던 <랙 타임>의 감독직에서도 해고당했다(이 영화는 결국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아마데우스>로 유명한 체코 출신의 감독 밀로스 포먼이 감독했다). 알트먼은 80년대 내내 연극 무대를 연출하면서 영화는 주로 소규모 독립영화영화사와 작업했다.

알트먼은 타협을 모르는 그의 성품과 냉소적인 작품 경향 때문에 80년대에 할리우드의 변방으로 밀려났지만 90년대에 다시 비평적 관심의 전면에 부상한 것도 그런 그의 특징 때문이다. <플레이어 The Player>(1992)와 <숏컷 Short Cuts>(1993)은 다층적이고 개방적인 스타일과 사회를 냉소적으로 보는 관점이 수준 이상으로 조화된 작품이다. 태작과 수작을 오가면서 알트먼은 꾸준히 전성기 때의 미덕과 한계를 반복해서 보여주는 작품을 찍고 있다. 조각조각난 에피소드들이 주단처럼 펼쳐지는 대중문화의 산실 내쉬빌의 북새통을 이루는 풍경 속에서 미국 사회와 미국 대중문화의 어두운 이면을 본 비판적인 시선이 <숏컷>에서도 여전히 촘촘하게 이어지고 있다. <캔사스 시티 The Kansas City>(1996) <진저브레드맨 The Gingerbread Man>(1998) 등의 영화에서 알트먼은 전성기는 지났어도 여전히 다층적인 화술에 장기가 있는 감독임을 증명했다. 알트먼은 기복이 심하기는 하지만 여전히 현대 미국영화의 뛰어난 이단자이며 또한 관객을 놀라게 하고 불편하게 하는 데 천재다. 잰 체하는 멍청이보다 한수 위에 있는 감독인 것만은 틀림없다. <b>[씨네21 영화감독사전]</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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