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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린 (David Lean)

1908-03-25

참여작품 평점평균

씨네218.5

/

네티즌7.8

기본정보

  • 다른 이름Sir David Lean;데이비드 린 경;데이빗 린
  • 직업감독
  • 생년월일1908-03-25
  • 사망1991-04-16
  • 성별

소개

<아라비아의 로렌스>에서 알리 족장 역으로 나와 국제적인 스타가 된 오마 샤리프는 언젠가 흥행과 비평 모두 성공한 이 영화의 불가사의한 매력을 빗대 이렇게 말했다. “당신에게 돈이 있는데 어떤 사람이 와서 스타도 여성도 러브스토리도 액션도 나오지 않는 4시간짜리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한다면, 게다가 사막에서 엄청난 제작비를 들여 찍는 영화라고 하면 뭐라 할 것인가?” 데이비드 린은 <아라비아의 로렌스 Lawrence of Arabia>(1962), <콰이강의 다리 The Bridge on The River Kwai>(1958), <닥터 지바고 Doctor Zhivago> (1965) 등의 대작영화로 기억되는 거장이자 40, 50년대 영국영화를 대표하는 고전적 이야기체 영화의 거장이기도 하다.

1908년 영국 크로어던 태생인 린은 27년 스튜디오 잡역부로 영화계에 입문해 30년대에는 꽤 촉망받는 편집기사로 이름을 날리고 전쟁드라마 <우리가 복무하는 곳 I’m Which We Serve>(1942)으로 감독 데뷔했다. 그 이후 <밀회 Brief Encounter>(1945), <위대한 유산 Great Expectations>(1946), <올리버 트위스트 Oliver Twist>(1948) 등의 영화를 찍은 데이비드 린은 할리우드의 존 포드나 일본의 구로사와 아키라처럼 영화의 고전적 미학의 깊이를 증명한 존경할 만한 장인이자 영국문학의 위대한 유산을 영화로 옮길 줄 아는 교양주의자였다.

편집기사로 일하던 시절에 린은 주로 전쟁터에서 직접 공수된 필름을 편집해 뉴스릴로 만드는 작업을 했는데 시간에 쫓긴 나머지 본능과 직관에 따라 손이 가는 대로 편집한 뒤 작업실 뒤편 마당을 거닐며 자신의 선택이 옳았는가를 점검하면서 영화 편집의 리듬감을 익혔다. 린의 초기 전성기 영화들은 정확한 드라마의 페이스와 물흐르는 듯한 리듬, 그리고 격한 감정적 순간을 파고드는 날카롭고 단아한 편집과 촬영으로 이름이 높았다.
<밀회>, <위대한 유산> 등에서 보여준 데이비드 린의 품격높은 스타일은 눈에 드러나지 않는 스타일로 이야기를 깊이있게 몰고 들어가는 장인의 솜씨의 그것이었다. 그러나 50년대 중반 린은 할리우드 자본을 축으로 한 다국적 대작영화의 연출로 방향을 돌렸고 린이 초기 영국시절에 만든 작품들의 단아한 고전미학의 정수를 맛본 이들에게 <서머타임 Summer-time>(1955), <콰이강의 다리>, <아라비아의 로렌스>, <닥터 지바고>, <라이언의 딸 Ryan’s Daughter>(1970)로 이어지는 린의 대작 연출 시기는 ‘변절’로 비쳤다. 할리우드 영화산업이 텔레비전에 맞서 무분별하게 크기와 물량으로 경쟁하면서 앞다투어 포장만 요란한 대작을 만들어 자멸의 함정을 파고 있던 시대 흐름에 편승해서 린 감독이 초기 시절의 재능을 교묘하게 빼먹는 멜로드라마 스펙터클로 재능을 탕진하고 있다는 비난이 사방에서 들렸다. 이론의 여지는 있지만 이 시기 린의 대작영화들이 꼭 초기영화에 비해 뒤떨어졌던 것은 아니다.

특히 70mm 렌즈로 잡힌 장대한 사막의 이미지가 압권인 <아라비아의 로렌스>는 세르게이 에이젠슈테인의 <알렉산더 네프스키>나 스탠리 큐브릭의 <2001년 스페이스 오디세이>에 필적할 만한 영화예술의 순수한 시청각적 쾌감의 극점에 도달했다. 생생한 사막의 색채, 모래의 질감과 형태 변화, 바위와 절벽의 절경, 대지의 이글거리는 지열로 강한 느낌을 남기는 <아라비아의 로렌스>의 진정한 주인공은 사막의 풍경이다. 고요히 비어 있는 사막, 사막 위로 떠오르는 태양, 모래바람이 훑고간 사막의 흔적은 말로 요약할 수 없는 풍부한 시각적 체험을 통해 모험에 가득 찬 주인공 로렌스의 삶을 매혹으로 이끈다. 게다가 <아라비아의 로렌스>는 스펙터클로는 아주 드물게 아이러니로 가득 찬 비극적인 정조를 띤다. 영국장교였지만 아랍부족을 이끄는 지도자였던 로렌스가 수행한 역할의 모순은 영화의 말미에 서로 상승작용을 일으키며 로렌스를 역사의 한바닥에 내팽개쳐진 외톨이로 만든다. 린은 풍부한 아이러니를 깔고 영화역사상 어느 스펙터클 영화보다도 가장 복합적이고 비극적인 영웅을 창조했다. 린은 <아라비아의 로렌스>를 신기루처럼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환몽처럼 연출했으며 그것은 이상주의자이자 제국주의자였던 괴짜 모험가의 삶의 자취를 따라가는 데는 더할나위없이 적합한 환몽이었다.

그러나 <닥터 지바고> 이후 린의 후기작에 대한 평론가들의 반응은 차가웠다. <라이언의 딸>은 영국에서 1년간 장기상영됐을 만큼 관객의 사랑을 모았지만 평단의 집요한 비판에 의욕을 잃은 린은 <인도로 가는 길 A Passage to India>(1984)을 내놓을 때까지 무려 14년간을 칩거상태로 보냈고 조셉 콘라드의 <노스트로모>를 기획하는 도중 세상을 떠났다. 린은 그리 많은 영화를 만들지는 않았지만 존 포드와 견줄 만한 영화의 장인이었으며 그가 연출했던 정교하고 섬세하고 박력있는 화면은 영화가 영광스러웠던 시대, 스크린으로 보는 영화의 감동을 그리워하게 만드는 시대의 위대한 유산이다. <b>[씨네21 영화감독사전]</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