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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쥐시토프 키에슬로프스키 (Krzysztof Kieslowski)

1941-06-27

참여작품 평점평균

씨네217

/

네티즌7.5

기본정보

  • 다른 이름K. Kieslowski; Krzysztof Kieœlowski;크지쉬토프 키에슬로프스키
  • 직업감독
  • 생년월일1941-06-27
  • 사망1996-03-13
  • 성별

소개

대표작 <베르니카의 이중생활> <레드>

크쥐시토프 키에슬로프스키는 ‘타르코프스키를 잇는 최후의 영화예술가’라는 극찬을 들었던 폴란드 감독이다. 텔레비전 영화 <십계 Dekalog> 중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가 <살인에 관한 짧은 필름 A Short Film about Killung>(1988) <사랑에 관한 짧은 필름 A Short Film about Love>(1988)이라는 극장용 영화로 재편집돼 88년에 개봉된 이래 유럽 영화계는 이 폴란드 감독의 동태를 주시했다. 90년대 이후 <베로니카의 이중생활 La Double Vie De V onique>(1991) <세가지 색> 삼부작이 연이어 발표되면서 키에슬로프스키는 영화로 철학을 표현할 수 있는 현대 서구의 유일한 영화예술가의 지위를 누렸다.

68년 우츠 국립영화학교를 졸업하고 <사진 From the City of Ludz>(1969)이란 기록영화로 데뷔한 후 영화감독 키에슬로프스키는 68년 3월의 학생봉기, 70년 12월의 자유화 운동, 76년의 노동자 시위사태, 80년 레흐 바웬사가 이끄는 연대노조 운동, 그리고 81년 야루젤루스키 정권의 계엄령 선포에 이르기까지 격동의 시대를 살았다. 폴란드사회가 그렇게 혼란을 겪는 동안 폴란드영화는 부흥기를 맞았다. 70년대 중반 아그네츠카 홀란드, 안토니 크라우즈, 리자드 부가예스키, 마르셀 로진스키 등의 감독이 이른바 ‘도덕적 불안의 영화’로 정의되는 폴란드영화의 르네상스를 이끌었다. 50년대 말에서 60년대 초, 안제이 바이다 감독 등이 이끌었던 ‘폴란드 유파’가 폴란드영화의 현대적인 어법을 발굴해냈다면, ‘도덕적 불안의 영화’ 세대는 긍정적인 전망이 보이지 않는 폴란드 현실을 불안하게 짚어냈다. 키에슬로프스키는 물론 ‘도덕적 불안의 영화’ 경향을 띤 감독 중 한사람이었다. 이 시기에 만든 가장 뛰어난 작품은 <노동자들 ’71>로 71년 슈체친에서 일어난 노동자 파업사태를 찍은 것이다.

키에슬로프스키의 첫 극영화는 <어느 당원의 이력서 Personel>(1975). 50분짜리 중편이며 원래 텔레비전 방영용으로 만든 작품인데, 독일 만하임영화제 대상을 받았다. 지하 폴란드 공산당원이 징계문제로 당 조사위원회에 호출되어 심문받는 과정을 기록영화 형식으로 담았고 50분 동안 심문관과 피심문자의 얼굴 클로즈업만으로 계속 이어가면서도 긴장감을 늦추지 않는 놀라운 작품이다. 키에슬로프스키의 본격적인 장편 극영화 데뷔작 <상처 Spokoj>(1976)는 모스크바영화제 대상을 받았다. 이 작품으로 키에슬로프스키는 ‘도덕적 불안의 영화’ 세대의 리더로 국내외에서 확실한 주목을 받았다. 현실을 혼란한 마음으로 통찰하던 이 폴란드 감독은 곧 유럽영화계의 자본과 줄이 닿았고 그 계기가 된 것은 바르샤바 텔레비전에서 방영된 <십계> 연작이다. 84년에 <결말없음 Dlugi Dzien>이란 영화를 만들면서 같이 각본을 쓴 변호사 출신의 크쥐시토프 피시비츠의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만든 <십계> 연작은 큰 성공을 거뒀다. <십계>가 극장판으로 개봉되는 과정에서 서유럽의 자본이 들어왔고, 이런 공동작업 시스템은 <베로니카의 이중생활> <세가지 색> 연작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피시비츠의 조력을 받으면서 키에슬로프스키는 전 유럽을 대표하는 감독으로 부상했다.

<베로니카의 이중생활>은 동구와 서구의 베로니카란 이름을 지닌 두 여성의 삶을 평행으로 이어붙여 개인의 정체성과 동구와 유럽의 현실, 그리고 삶을 재현하는 영화매체의 본질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놀라운 표현의 깊이를 담은 작품이었다. 그러나 <베로니카의 이중생활>의 섬세하고 화려한 형식미에 매혹당했던 사람들은 <세가지 색> 연작에서 키에슬로프스키의 운명론적인 도식이 너무 지루하게 남용되고 있다고 불평했다. 키에슬로프스키는 본질적으로 비관적인 운명론자다. 자유, 평등, 박애라는 근대적 이상을 모티브로 한 <세가지 색>은 인간의 본성이 그런 이상들과 충돌하는 게 아닌가라는 우울한 진단으로 가득 차 있다.

<세가지 색> 연작의 첫번째 편인 <블루 Blue> (1993)는 자유를 상징하는 블루를 화면의 기조로 깔고 죽은 남편에 대한 기억 때문에 방황하는 여성의 이야기로, 자유를 얻기 위해 사랑의 감정을 버리려고 노력하다가 마침내 사랑을 택한다는 내용이며 <화이트 White>(1994)는 평등을 상징하는 흰색의 의미대로 사랑하기 위해 평등해지려고 노력하는 동구와 서구의 남녀의 이야기다. 그러나 이 영화는 더 많은 소유를 전제로 한 터에 평등에 기초한 사랑이 가능한 것인가라는 것을 오히려 의심쩍게 묻는다. 박애를 상징하는 빨간색을 모티브로 한 <세가지 색>의 완결편 <레드 Red>(1994)는 더 많은 소유가 답이 아니라면 더 많은 사랑이 진정한 해답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물음을 탐색하지만 우연의 운명에서 자유롭지 않은 인간의 조건을 차갑게 바라볼 뿐이다.

<세가지 색> 연작에서 키에슬로프스키는 자유와 평등과 박애가 여러 경로로 굴절되는 것을 살피고 그것을 보여주는 유려한 형식미를 보여줬다. 그의 영화에는 기록영화적인 명징함과 수수께끼 같은 운명과 인간의 심리를 보여주는 화려한 스타일이 공존했다. 키에슬로프스키는 미묘하고도 복합적인 삶의 편린들에 아주 조심스럽게 다가가, 불가해한 우연으로 점철된 삶을 끈질기게 바라본다. 그는 존재에 대한 철학적 성찰에서 당대의 역사적 전망까지 포괄하는 사색을 영화로 추구한 드문 영화 감독이었다. / 영화감독사전,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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