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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스 피알라 (Maurice Pialat)

1925-08-31

참여작품 평점평균

씨네21--

/

네티즌5.4

기본정보

  • 원어명Maurice Pialat
  • 직업감독
  • 생년월일1925-08-31
  • 사망2003-01-11
  • 성별

소개

대표작 <사랑이야기>, <사탄의 태양 아래서>

모리스 피알라는 이 대량복제 시대에, 유별나게 수공업적인 방식으로 영화를 만드는 감독이다. 그는 70살을 넘긴 지금까지 겨우 10여편의 영화만을 찍었다. 그러나 그가 만든 영화는 단 한편도 범작이 없고 모두 프랑스영화의 위대한 유산으로 남아 있다.

25년 프랑스 퓌 드 돔므에서 태어난 피알라는 원래 화가였다. 45년에서 47년까지 살롱에서 개인전을 열었고 장래가 촉망받는 화가였는데 어느 날 갑자기 자기가 그린 그림을 모두 불태우고 영화계에 투신했다. 55년부터 무대 조감독과 배우로 일한 다음, 60년부터 텔레비전 방송에서 일하면서 5편의 16mm영화를 만들었다. 첫 장편영화는 <벌거벗은 어린 시절 L’Enfance nue>(1967). 10살 소년 프랑수아가 엄마에게 버림받고 양부모 밑에서 자라면서 비행소년이 된다는 내용이다. <벌거벗은 어린 시절>은 주인공인 프랑수아에게만 초점을 맞추지 않고 프랑수아의 탈선행각에 충격을 받는 프랑수아 주변의 어른들 반응을 보여주는 데도 시간을 많이 할애했는데 피알라의 스타일은 그 이후로도 한결같았다. 피알라는 항상 얘기를 끌고 갈 때 한쪽에는 등장인물의 심리를, 다른 한쪽에는 당대의 프랑스사회에 대한 기록영화식 접근을 배치해놓았다.

<우리는 함께 늙지 않을 것이다 Nous ne Vieillirons pas Ensemble>(1972)는 결혼생활에 파국을 맞는 남녀의 쓰디쓴 이별담이고 <벌린 입 La Gueule Ouverte>(1974)은 암으로 죽은 여인과 그녀의 남편과 아들에 관한 얘기. 이 두편의 영화에서 피알라는 마치 감정이라곤 하나도 없는 냉정한 외과의사 같은 태도로 프랑스 보통사람들의 일상을 해부한다.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청춘을 반납하고 고통 속에 시달리는 십대들의 삶을 다룬 <먼저 대학입시에 통과하라 Passe ton bac d’abord>(1979)는 십대 영화에 흔히 끼어들게 마련인 상투적인 감상이나 향수가 없다. 에밀 졸라의 소설 연작 <루공 마카르 총서>를 떠올리게 할 만큼 피알라의 태도는 엄정하기 그지없는 자연주의자의 태도다.

15살 소녀 수잔의 일상과 사랑을 담은 <사랑이야기 A Nos Amours>(1983)는 마치 필요없는 배경을 끊임없이 지워가며 전체를 완성하는 화가처럼 담백하게 소녀의 심리를 따라가며 공허한 소녀의 내면과 그에 못지 않게 공허한 프랑스사회의 풍경을 담아낸다. 가부장은 휘청거리고 윤리는 실종되고 가족들간의 유대는 사라져버린 뒤 새로운 대안을 마련하지 못한 프랑스 중산층 가정의 위기의 순간을 정확히 담아낸 이 영화는 스튜디오가 아닌 현장에서 촬영했고 당대 프랑스사회를 배경으로 하며 아주 ‘친밀한’ 분위기를 지녔다는 점에서 누벨바그영화와 비슷하다. 즉흥연출에 의지했고 자연광 조명을 많이 썼으며 들고 찍기 촬영술도 곧잘 보인다. 피알라는 현장의 분위기에 따라 인물의 감정과 분위기는 언제든지 새로 만들 수 있다는 연출관의 소유자였다.

제라르 드 파르디외와 소피 마르소가 출연한 <경찰 Police>(1985)은 튀니지의 마약상을 쫓던 경찰이 파리의 아랍인 거주지역에 들어가면서 겪는 악몽 같은 현실을 그린 것인데 영화만큼이나 마르소가 피알라의 틀을 거부하는 연출에 반발해 촬영이 삐걱거렸던 일화로 유명하다. 신과의 갈등이라는 묵직한 주제에 도전한 <사탄의 태양 아래서 Sous le Soleil de Satan>(1987)는 조르주 베르나노스의 <어느 시골 사제의 일기>와 <무셰트>에서 줄거리를 따온 것이다. 이 영화의 기획은 로베르 브레송 감독이 이미 걸작으로 만든 소재에 도전한 야심적인 것이었다. 일찍이 앙드레 바쟁이 브레송의 <어느 시골 사제의 일기>를 두고 문학작품의 완벽한 영화화라고 격찬했던 작품을 다시 만들었으나 피알라의 접근은 브레송과는 다르다. 브레송처럼 주인공의 내면적인 심리적 독백을 쫓지 않고 피알라는 말 그대로 악마적인 현실의 풍경을 가감없이 제시한다. <사탄의 태양 아래> 이후 피알라는 91년 <반 고호 Van Gogh>를 발표했다. 인상파 대가인 반 고흐가 죽기 직전 3개월 동안 보낸 삶을 다룬 이 영화에서 피알라는 ‘귀를 자른 화가’ ‘권총자살한 화가’와 같은 고흐를 둘러싼 외적인 스캔들에는 관심이 없다. 그는 천재의 신화 따위는 제쳐두고 한 예술가의 창작 비밀을 탐구하면서 세상 속에 안주하지 못하는 예술가와 세상의 불화를 집요하게 쫓는다. 카메라의 도구로 인상파 화가의 화폭과 경쟁하려는 화면 스타일도 볼거리다.

피알라의 독야청청이 언제나 박수를 받았던 건 아니다. 피알라 스스로 일부러 힘든 길을 택해 갔다. 피알라 스스로 “내 방식은 너무 힘들다”고 불평했지만 어느 경계에도 묶이지 않은 그의 영화는 사실 그런 수공업적 악전고투 끝에라야만 나올 수 있는 것이었다. 그는 어느 대담에서 “리얼리즘은 이제 낡아빠졌다”라고 말했는데 개인의 심리묘사와 전체를 볼 줄 아는 사실주의자의 안목을 결합할 수 있는 것은 피알라만의 독특한 재능이다. <반 고호> 이후 4년 만에 내놓은 <르 가르슈 Le Gar >(1995)는 해체되는 가정과 한 남자의 분열증적 내면을 지극히 사적인 시선으로 담아낸 수작.<b>[씨네 21 영화감독사전]</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