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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토 프레민저 (Otto Preminger)

1906-12-05

참여작품 평점평균

씨네21--

/

네티즌7.5

기본정보

  • 다른 이름오토 프레밍거;Otto Ludwig Preminger;오토 루드비히 프레밍거;오토 플레밍거
  • 직업감독
  • 생년월일1906-12-05
  • 사망1986-04-23
  • 성별

소개

오토 프레민저는 영국의 작가주의 비평가들이 추앙했던 고전적인 영화 시대의 거장이었다. 그는 완강한 고집으로 스튜디오와 비타협적인 관계를 고수하면서 감독의 카리스마를 확립했고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 개성적인 스타일을 보여줬다. 또한 곧잘 당시 할리우드의 금기에 도전하는 파격적인 소재를 영화로 만들었으며 배우에게서 최상의 연기를 끌어내는 능력으로도 유명했다.

프레민저는 1906년 빈에서 태어난 오스트리아 사람이지만 독일에서 무대연출가 막스 라인하르트의 조연출을 거친 뒤 30년대부터 할리우드에 진출해 많은 영화를 찍었다. 빡빡 밀은 대머리의 외모가 풍기는 완강한 이미지처럼 그에게는 할리우드 데뷔 초기부터 고집불통이라는 낙인이 찍혀 있었다. 프레민저는 20세기폭스사에서 꽤 여러편의 영화를 찍었는데 모두 스튜디오에서 크게 주력하지 않는 B급 영화였다. 프레민저가 만든 B급영화는 그럭저럭 흥행이 괜찮았는데도 사사건건 자기 영화를 비판하는 폭스사의 사장 대릴 재눅에게 맞서 싸우다 해고당했다. 그 이후에는 한동안 독특한 빈 억양으로 대중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주는 악역배우로 생활했다. 프레민저가 다시 감독 의자에 앉아 이름을 떨치게 된 건 <로라 Laura>(1944)가 성공하면서부터. 이 영화는 프레민저가 다시 폭스사에서 B급영화로 만든 필름누아르인데 대부분의 영화안내서에서 별 다섯을 매기는 이 장르의 고전으로 남았다.

스튜디오 간부들과의 싸움에 이골이 난 프레민저는 46년 아예 카를리 프로덕션 컴퍼니라는 제작사를 차리고 독립했다. 그리고 50년대부터 말썽많은 소재를 영화로 만드는 스캔들 메이커로 이름을 떨치면서 예술과 흥행의 조화를 추구했다. 50년대 만든 영화 중 꽤 논란을 빚은 건 프랭크 시내트라가 주연한 <황금 팔을 지닌 사나이 The Man with the Golden Arm>(1955). 마약중독에 빠진 사람들의 얘기를 영화로 만든 것인데 그 당시의 ‘트레인스포팅’이었다. 프레민저는 영화상영권을 박탈하려는 여론의 압력에 끝까지 맞서서 영화를 공개하고 큰 성공을 거뒀다. 마릴린 먼로가 출연한 <돌아오지 않는 강 River of No Return>(1954), <슬픔이여 안녕 Bonjour Tri-stesse>(1958), <살인의 해부 Anatomy of a Murder>(1959), <영광의 탈출 Exodus>(1960)로 이어지는 성공의 뒤안길에서 프레민저는 그저 어떤 소재를 영화로 만들어도 잘 만드는 감독, 테크니션, 선정적인 소재를 곧잘 성공의 기회로 이용하는 흥행사쯤으로 대접받았다. 그러나 60년대 초 창간한 영국의 <무비>에서 작가주의를 주장하면서 프레민저는 작가주의를 대표하는 진짜 거장으로 추앙받았다. 평론가 빅터 퍼킨스와 로빈 우드가 프레민저 복권운동의 으뜸 공신이었는데 이들은 말로 옮길 수 없는 기가 막힌 화면구성으로 영화만이 줄 수 있는 의미와 감정을 끌어내는 데 대가라고 프레민저를 평가했다.

이를테면, 프로스퍼 메리메의 고전을 조르주 비제가 오페라로 만들었고 오스카 해머스타인이 뮤지컬로 각색한 것을 다시 프레민저가 만든 <카르멘 존스 Carmen Jones>(1954)에서 플레밍거는 평범한 줄거리에서 의미있는 영상을 끌어내는 대가다운 재능을 보여준다. 카르멘이 부르는 해머스타인이 작곡한 노래 <모퉁이에 카페가 있다>라는 곡은 그냥 들을 때는 그렇고 그런 곡이다. 그것만으로는 카르멘과 조가 어떤 사고방식의 소유자인지, 카르멘의 성격과 태도에 따라 조가 어떻게 변하는지 알지 못한다. 그러나 프레민저는 카르멘을 연기하는 도로시 댄드리지의 관능적인 연기와 그에 대한 상대방 남자의 반응, 시점의 각도, 화면구성, 커팅 리듬을 통해 카르멘의 삶의 철학과 그를 옥죄는 세상의 규율 같은 것을 능숙하게 표현한다.

프레민저는 <돌아오지 않는 강>에서는 시네마스코프의 사이즈를 잘 활용한 연출로 주목받았고 <살인의 해부>는 법정영화의 진수를 보여주는 꽉 짜인 드라마와 화면 연출, 그리고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 연출로 찬탄을 자아냈다. 그러나 비평의 월계관을 썼든 60년대 이후로 프레민저의 경력은 하강곡선을 그렸다. 그는 40년대 중반과 50년대에 이르는 짧은 기간 동안 전성기를 보냈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는 자신의 영화제목처럼 할리우드에서 ‘영광의 탈출’을 했고 스타일이나 내용면에서 할리우드의 이단아였다. 그러나 할리우드의 고전 스타일을 체화했으면서도 뭔가 다른 독창성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프레민저는 존 포드나 윌리엄 와일러와는 또다른 할리우드의 거장이었다. <b>[씨네21 영화감독사전]</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