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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트 디즈니 (Walt Disney)

1901-12-05

참여작품 평점평균

씨네21--

/

네티즌6.8

기본정보

  • 생년월일1901-12-05
  • 사망1966-12-15
  • 성별

소개

대표작 <환타지아><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
1930년대 중반 월트 디즈니가 장편 길이의 애니메이션을 만들겠다고 발표했을 때, 아무도 그 계획이 성공하리라고는 믿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에게 그런 영화를 한 시간 넘도록 보고 있을 사람은 아무도 없으며, 장편 애니메이션은 오히려 사람들의 눈을 해칠 뿐이라고, 하나같이 진심 어린 충고를 했다. 그러나, 그의 고집으로 만들어진 첫 장편 애니메이션<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1937)는 예술적으로나 상업적으로 크게 성공을 거두면서 디즈니의 영화 인생에 커다란 획을 긋는 계기가 되었다. 무엇보다 오늘까지 이어져 내려오는 '어른과 아이들이 함께 즐기는 가족영화'로서 디즈니영화의 기본 컨셉이 자리잡혀 간 것은 이 때부터였다고 할 수 있다.
<백설공주...>의 일화에서 알 수 있듯이 애니메이션 분야에서 디즈니의 작업이란 늘 시대와 고정관념을 앞서가는 것으로서, 애니메이션 역사에 있어서 '최초의'라는 수식어를 달고 있는 거의 모든 작품의 크레딧에 그의 이름을 새기게 했다. 디즈니 최고의 효자 미키마우스를 주연으로 한 세 번째 작품<증기선 윌리Steamboat Willie>(1928)는 사운드트랙과 영상이 일치된 최초의 애니메이션이고, <꽃과 나무 Flowers and Trees>(1932)에서는 컬러를 사용했으며, <환타지아>(1940)은 애니메이션에 처음으로 뮤지컬을 도입해 클래식 음악과 애니메이션의 접합을 시도해서 예술적인 가치를 높였다. 특별히 이 작품은 애니메이션으로서는 이례적으로 극영화화 경쟁해서 그 해 뉴욕 비평가협회 작품상을 수여했을 뿐 아니라, 후에 AFI가 선정한 최고의 미국영화 100편에 포함되기도 했다.
한편, 디즈니는 전반적으로 보수적인 작품 경향과 특별히 사상적 편향을 보였던 2차 세계대전 전후의 몇 편의 작품과 그의 행보로 인해 극우파 감독으로 불리기도 한다. <공군 전력을 통한 승리 Victory Through Air Power>(1943)로 그는 애니메이션이 갖고 있는 선전영화로서의 가능성을 검증했고, '선린 정책'의 일환으로 정부가 제작비를 댄 남미 순회 상영작 <살루도스 아미고스 Saludos Amigos>(1943)나 <세 명의 기사 The Three Caballeros>(1945)등을 만들기도 했다.
평생 32개의 아카데미상을 거머쥔 가공할 기록을 갖고 있는 월트 디즈니는 사실 영화감독보다는 제작자와 사업가로서 더 성공한 인물이다. 그는 10대 초반에 캔자스 시티 예술학교에 입학하여 만화와 인연을 맺고, 애니메이션 광고를 찍으면서 경력을 쌓았다. 애니메이션 분야에서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른 1950년대 이후에는 실사영화의 제작에도 뛰어들었으며, TV시리즈용 애니메이션을 꾸준히 제작했는가 하면, 1955년에는 캘리포니아 남부에 테마공원 디즈니랜드를 개장하면서 자신의 '왕국'을 확장했다. 1966년 암으로 사망하기까지 그는 플로리다에 제2의 디즈니랜드를 건설할 계획을 추진중이었는데, 이 사업은 그의 평생 동업자이자 형제인 로이 디즈니에 의해 1971년 월트 디즈니 월드의 개장으로 마무리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씨네21 영화감독사전>(2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