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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마이 다다시

1912-00-00

기본정보

  • 직업감독
  • 생년월일1912-00-00

소개

대표작 <푸른 산맥> <우리 다시 만날 때까지>

전쟁 후 좌익의 독립영화 제작운동을 촉발시킨 이마이는 한때 공산당에 몸담았던 인물로서 그의 영화들에는 좌파적 이데올로기가 반영돼 있다.

그의 초기 작품들은 소위 “전쟁 협력” 영화들로 불리기도 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몇 작품은 기술적 성숙도와 고도의 성격 묘사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이마이가 진정으로 명성을 얻기 시작한 것은 영화 <푸른 산맥 靑しい山脈>(1949)과 <우리 다시 만날 때까지 また逢う日まで>(1950)가 상업적으로 대성공을 거두면서부터다. <푸른 산맥>은 전쟁 이후 혁명이 진행되는 시기의 흥분을 반영한 작품으로 경쾌하고 유머러스한 스타일로 유명하고, <우리 다시 만날 때까지>는 전쟁시의 비극적 사랑에 대한 로맨틱하고 감상적인 접근으로 하나의 전설이 되었다. 특히 이 작품에서 젊은 연인이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키스를 나누는 장면은 그 이후에도 계속 인용될 정도로 유명하다.

이마이는 하층 계급에 대한 관심을 지속적으로 드러냈다. <사는 동안 どっこい生きてる> (1951)에서는 일일 노동자의 삶을, <쌀 米> (1957)에서는 농부, <순애 이야기 純愛物語> (1957)에선 원폭 후유증으로 죽는 소녀와 불량소년의 순애보를, <등대 あれが港の僚だ> (1961)에서는 어부들의 문제와 일본과 한국간의 문제를 다루기도 했다.

이외에도 이마이는 다양한 사회 문제들에 대해 관심을 기울였는데, 가난한 시골 마을에서의 진보적 교육운동을 다룬 <메아리가 있는 학교 山びこ學校>(1952), 혼혈아 문제를 다룬 <기쿠와 이사무 キクとイサム>(1959), 노인에 관한 영화인 <할머니 にっぽんのお婆ちゃん> (1962) 등이 있다. 이러한 영화들은 모두 솔직하고 다소 꾸밈없는 이마이의 좌익적 시각을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높이 평가받는 이마이의 능력은 관객의 센티멘털리즘을 자극하는 감성적이고 인간적인 영화 스타일일 것이다. 베를린영화제는 1963년 이마이의 이례적 시대극 <무사도잔혹이야기 武士道殘酷物語>에 금곰상을 수여함으로써 그에게 경의를 표했다.

70년대에도 사회파의 태도를 누그러뜨리지 않고 <아, 소리없는 친구 あ, 聲なき友>(1972)에서 비참한 전쟁체험을, <고바야시 다키지 小林多喜二>(1974)에서는 전쟁 전의 정치운동을 그렸다. 유작도 도쿄 대공습의 비극을 그린 <전쟁과 청춘 戰爭と靑春>(1991)이다. / 영화감독사전, 19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