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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

Inquietude Anxiety

1998 스위스,스페인,프랑스,포르투갈 12세이상관람가

드라마 상영시간 : 110분

개봉일 : 2005-06-10 누적관객 : 1,127명

감독 : 마뇰 드 올리베이라

출연 : 호세 핀투(아버지) 루이스 미구엘 신트라(아들) more

  • 네티즌8.33

세계 최강의 영화작가 올리베이라, 그가 빚어낸 매혹의 만화경!

Episode 1

첫 번째 이야기는 프리스타 몬테이로의 <불멸>이란 연극을 화면에 옮겨 온다. 연극은 저명한 학자의 삶을 살아온 80살 먹은 아버지와 60살 먹은 아들의 대화를 통해 인생의 성공과 젊음, 노년 그리고 죽음을 이야기 한다. 인생의 성공을 경험한 아버지는 역시 성공한 아들에게 나이가 들면서 추해지는 인간의 모습에 대해 경고하면서 자살할 것을 종용한다. 아버지는 죽음 이후의 불멸의 세계를 아들에게 설득하고 아들은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한다.

Episode 2

두 번째 이야기인 <수지>도 역시 죽음의 문제를 다룬다. 오랫동안 고급 창부로 일해온 수지는 깊은 병에 걸려 수술을 받아야만 한다. 창부가 아닌 한 여성으로 그녀를 사랑하는 남자는 죽음의 그림자를 드리운 수지를 더욱 깊은 연민으로 걱정한다. 그를 위로하러 찾아온 친구가 소녀 피살리나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Episode 3

세 번째 <강의 어머니>는 옛날부터 전해지는 전설 같은 이야기이다. 마을의 전통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는 피살리나라는 소녀는 강의 어머니를 찾아가 자연과 인생에 대해 철학적인 이야기를 듣는다.
금으로 만들어진 손가락을 갖고 있는 피살리나는 언제나 장갑을 쓰고 다니며, 그 사실을 숨기며 살아간다. 그러다가 그 사실이 마을 사람에게 밝혀지고, 천년을 기다린 후에야 다른 사람의 인생을 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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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 노트
영화의 올림푸스(Cinematic Olympos)

마뇰 드 올리베이라는 포르투갈에서 가장 저명하고 왕성한 활동을 하는 감독으로 무성영화를 제작했던 감독 중에 현재까지 작품을 제작하는 유일한 감독이다. 1908년도에 태어나 영화와 함께 한 세기를 살아 온 감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인물이다.
장 뤽 고다르 감독이 경의를 표했던 마뇰 드 올리베이라 감독은 오즈 야스지로나 로베르 브레송과 비슷한 연배이면서 아직도 정력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영화사의 살아있는 신화라고 할만하다. 미국의 영화 평론가인 스튜어트 클라완스는 그를 두고 영화의 올림포스(a Cinematic Olympos)라 부르며 찬사를 보냈다.
부르주아의 아들로 태어나 스포츠와 자동차 레이싱를 즐기며 배우로서 꿈을 키우기도 했던 올리베이라 감독은 발터 루트만의 <베를린: 도시교향악>(1927)을 보고 영화 제작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특히 취미로 시작했던 다큐멘터리 영화는 그의 나중 작품에도 크나큰 영향을 주었다. 그는 1933년, 포르투갈 최초의 유성 영화인 <리스본의 노래>(1933)에 배우로 처음 데뷔를 하였고, 몇몇 단편들을 만들었지만 상영되지는 않았다.

영화는 연극을 포착하는 수단일 뿐이다

마침내 그는 1942년 첫 장편 영화 <아니키 보보>(1942)로 감독 데뷔를 하였는데, <아니키 보보>는 자연주의적인 접근법으로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의 선구자 역할을 하였다. 하지만, 상업적으로는 실패를 하며 차기작품에 대한 계획이 불투명해졌기 때문에, 올리베이라는 집안의 사업을 경영하며 영화계를 떠나게 되었다.
그러는 중에도 그는 영화에 대한 꿈을 버리지 못하고, 48세가 되던 1956년 다큐멘타리 <화가와 도시>로 다시 영화로 돌아왔다. 1963년에 제작한 <봄의 제전>은 세미다큐멘터리라고 할 수 있는데, 리얼리즘에 중점을 두던 예전 영화와 달리 영화는 연극을 포착하는 수단일 뿐이라는 그의 신념을 반영하면서 그의 영화 인생에 전환기를 마련하였다.
같은 해 제작된 <사냥>은 밝은 분위기였던 <봄의 제전>과는 달리 음울한 분위기를 띠었는데, 올리베이라 감독은 이 두 작품을 통해 자신이 생각하는 천국과 지옥을 상징화했다. 이 두 작품으로 그는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되었고, 포르투갈의 젊은 감독들의 영웅이 되었다.

좌절된 사랑의 4부작

그 후 1970년대 초반까지 영화작업을 하지 않던 올리베이라는 1971년, 좌절된 사랑의 4부작이라 불리는 시리즈의 첫 번째인 <과거와 현재>를 제작하였고, 그 두 번째로 1977년 카밀로 카스텔로 브랑코의 대중 소설인 <운명의 사랑>을 각색하여 영화화하였다.
그 세 번째로 73세의 나이에 만든 <프란체스카>(1981)는 작가 브랑코를 주인공으로 삼은 작품으로 유럽영화에 올리베이라 르네상스를 가져왔다고 평가를 받을 만큼 그의 걸작이 되었다. 이 영화는 그 해 칸 영화제에서 놀라운 발견이라는 평가를 얻었으며, 막스 오퓔스를 연상케 하는 장대한 장식과 괴테적 문학세계를 염두에 둔 이야기 구조를 통해 한 여자의 운명을 서사적으로 그려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또한 <프란체스카>는 수많은 국제영화제에 초대를 받았으며, 올리베이라는 초기 토키 영화에서 네오리얼리즘과 모더니즘 영화, 그리고 80년대 영화 사이를 비스듬히 가로지르는 새로운 작가로 주목을 모았다.
그 후 올리베이라는 포르투갈의 과거와 현재의 전쟁을 종횡무진으로 횡단하면서 영화 스펙터클의 새로운 경지를 보여 준 <노 혹은 지배의 공허한 영광>, <신곡>을 거쳐 좌절된 사랑의 4부작의 마지막인 <절망의 날들>에서 작가 브랑코의 삶으로 다시 돌아갔다.

고다르가 고개를 숙인 감독

1993년에 <마담 보바리>를 자유로이 각색하여 만든 3시간 8분에 이르는 <아브라함 계곡>은 마치 브레송의 영화를 연상케 하는 간결함과 세상에 대한 무심함으로 한 여인의 이야기를 아무런 동요 없이 그려나가고 있다. <아브라함 계곡>을 보고 깊은 감명을 받은 고다르는 특별히 올리베이라와의 만남을 요청해 이 두사람의 만남이 이루어지기도 했는데 이 만남의 기록은 <리베라시옹>지에 대서특필되기도 했다.
올리베리아의 작품 중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세계의 시초로의 여행>(1997)과 <편지>(1999)는 각각 마르첼로 마스트로얀니와 그 딸 키아라 마스트로얀니가 주인공으로 나오는데, <세계의 시초로의 여행>에서 그는 자기 연민이 느껴지는 조용한 회상록을 만들었고, <편지>에서는 언뜻 에릭 로메르를 연상케 하는 감정교육의 세계로 들어서기도 했다.
60대에 비로소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하고, 90대를 거쳐 오늘에 이르기까지 점점 왕성해지고 깊어지는 불가사의한 이력의 소유자인 올리베이라 감독은 아방가르드와 리얼리즘 그리고 모더니즘을 어떤 요동도 없이 오가며 기적 같은 작업을 이루어 냈다. 그는 <운명의 사랑>(1978), <프란체스카>(1981)에서 <아브라함 계곡>(1993)을 거쳐 <불안>(1998)에 이르는 영화마다 영화 매체를 다루는 창조력과 삶에 대한 성찰로 세계영화사에 남을 독보적인 탁월함과 풍요로움을 과시해왔다.
<불안>(1998)의 존재론적 정체성이라는 주제는 세 가지 이야기를 연결하고, 그 이야기들은 그의 반영적인 스타일 때문에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빛을 발하는 영상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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