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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식가족의 딜레마

The Omnivorous Family

2014 한국 전체 관람가

다큐멘터리, 가족 상영시간 : 106분

개봉일 : 2015-05-07 누적관객 : 5,275명

감독 : 황윤

출연 : 황윤(본인) more

  • 씨네216.17
  • 네티즌8.00
사랑할까, 먹을까!

구제역이 전국을 휩쓸던 어느 겨울 날, 육아에 바쁘던 영화감독 윤은 살아있는 돼지를 평소에 한번도 본 적이 없었음을 깨닫고 돼지를 찾아 길을 나선다. 산골마을농장에서 돼지들의 일상을 지켜보면서 이제껏 몰랐던 돼지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데… 그런 윤에게 딜레마가 생긴다. 돼지들과 정이 들며 그들의 영리하고 사랑스러운 모습을 알게 되는 한편 농장의 이면을 알게 될수록, 그 동안 좋아했던 돈가스를 더 이상 마음 편히 먹을 수 없게 된 것. 육식파 남편 영준과 어린 아들 도영은 식단결정을 더욱 복잡하게 한다. 마트에서 반찬거리를 살 때마다, 저녁에 무엇을 먹을까 식당을 고를 때마다 갈등에 빠지게 된 윤.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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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별점 (6명참여)

  • 6
    황진미고발이 아니라, 삶이 연루된 고백이자 성찰이기에 값지다
  • 6
    송경원질문을 그저 질문으로 남기지 않고 실천해보는 추진력
  • 6
    박평식알고나 먹자구요
  • 7
    이용철심각한듯 유머 넘치는 다큐멘터리
  • 6
    정지혜자연과의 공생이 모두의 영생
  • 6
    이예지현대인의 삼시세끼, 그 이면의 진실
제작 노트
YUN’S PRODUCTION NOTE

#우주, 인간, 돼지

우주, 지구, 별, 블랙홀에 관심이 많은 네 살 아들의 최근 화두는 죽음이다.

도영: 뼈와 해골이 뭐야?
나: 동물이 죽으면 뼈가 되고 해골이 돼.
도영: 그 다음엔 어떻게 돼?
나: 응, 흙이 돼.
도영: 그 다음엔 어떻게 돼?
나: 풀이 되고 꽃이 돼.
도영: 엄마도 죽어?
나: 응. 엄마도 마찬가지야. 엄마도 언젠간 죽어. 엄마는 나무가 되고 싶어.

도영이는 심지어 ‘별은 죽으면 뭐가 되냐’고 묻기도 한다. 대답을 찾기 위해 난 별의 생애에 대한 지식도 찾게 된다. 도영이 덕분에 난 철학자도 되었다가 물리학자도 된다. 세상만물이 죽어서 흙으로 가야 마땅하거늘 소, 돼지, 닭은 (죽어서 흙이 될) 사람이란 동물의 세치 혀를 위해 공장에서 고통받다가 도살장에서 생을 마감한다. 이것은 사람의 욕심일 수는 있어도 우주의 법칙일리는 없다.

작년에 구제역으로 수백만 마리 소, 돼지가 살처분될 때 <발굴의 금지>라는 미술전이 열렸었다. 미술 작가들이 자발적으로 기획한 전시였다. 갤러리 한 쪽에 고기를 덜 먹겠다는 다짐을 하는 설치미술이 있었다. 그 중 한 다짐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육식을 하지 않기로 결심합니다. 아니, 완전히 육식을 금하겠다는 말은 못하겠습니다. 내 몸이 썩어 풀을 자라게 하고 그 풀을 짐승이 먹어 살찐 만큼만 육식을 하겠습니다.’

#몰개성화에 저항하기

<작별>을 만들 때, 전시장에 진열된 ‘동물원 동물들’을 촬영하며 더 좁혀지지 않는 거리감에 답답해할 때 새끼호랑이 크레인을 만났었다. 크레인의 성장과정을 카메라에 담으면서 나는 비로소 ‘동물원에서 태어나 산다는 것’의 실체를 구체적으로 느낄 수 있었고, 크레인을 통해 비로소 나는 ‘동물원 동물들’이라는 몰개성화로부터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렇기에 크레인을 만나지 못했다면, <작별>이라는 영화는 세상에 없었거나 아니면 아주 추상적인 영화가 되었을 것이다.

<어느 날 그 길에서>를 만들 때 나는 로드킬을 당한 야생동물들을 단순히 ‘희생자 집단’으로 그리고 싶지 않았다. 그들 각자에게도 삶이 있고 일상이 있고 가족이 있고 사연이 있었음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런 간절한 바람을 갖고 현장에 다닐 때, 팔팔이가 내게 왔다. 팔팔이는 그 어떤 소설보다 드라마틱한 사연을 통해 대지의 거주자인 그들에게 인간의 길이 어떤 것인지를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팔팔이는 마치 인간의 ‘야생동물 몰개성화’에 저항하고자 나타난 메신저와도 같았다.
이번 영화에서 나는 또 한번 몰개성화 관습에 맞서고자 한다. ‘농장동물’이라는 이름으로, ‘식용동물’이라는 이름으로, 혹은 ‘가축’이라는 이름으로, 개성을 잃고 객체화되는 그들. ‘돼지’라는 이름으로 폄하되거나 휘발되어버리는 그들의 삶.

출산 장면을 촬영하는 것은 여러 부담이 따르는 일이라 포기해야 하나보다 생각할 때, 뜻밖에도 원 선생님이 어느 어미돼지의 출산장면 촬영을 허락하셨고 그렇게 나는 십순이와 돈수를 만났다. 그리고 그렇게 나는, 돼지들의 삶에 조금씩 다가가게 되었다. 십순이의 일상과 돈수의 성장 과정을 지켜 보면서 나는, 내가 전에 갖고 있던 돼지에 대한 편견이 깨져감을 느꼈다. 그리고 내가 그랬듯, 관객들 또한 이 영화를 보면서 돼지에 대한 편견을 넘어설 수 있기를 바란다. 돼지는 더럽고 미련한 동물도 아니고, 그저 우리 술안주가 되어도 좋은 존재가 아니라며 각기 다른 이름과 성격과 삶의 이야기를 가진 존재들임을 알 수 있기를 희망하는 것이다.

그래서 십순이를 만난 것은 내게 또 한번의 행운이자 또 한번의 숙제이다. 난 십순이를 만난 책임이 있다. 돈수에게 이름을 붙인 책임이 있다.

#월화수목금토일 ‘육식동물’로 길들여지기

도영이의 이번 주 어린이집 식단을 대체하자니 정말 머리가 지끈지끈이다. 지난 월요일엔 소고기 야채죽, 찐달걀, 우유가 나왔고, 화요일엔 치킨 볼조림, 잔치국수가 나왔고, 수요일엔 크림스프, 계란파국, 메추리알, 심지어 인스턴트 요구르트 ‘짜요짜요’에 이어 오후간식으로 고기 들어간 물만두까지. 목요일엔 돈안심, 비엔나소시지 야채볶음, 버터와 우유가 왕창 들어간 우리밀핫케익. 내일 금요일의 점심 식단은 어묵국, 애호박무침, 김달걀말이이다. 대부분의 엄마들에겐 훌륭한 식단이겠지만 내게는 최악의 식단이었다.

거의 매일. 대체 식단으로 두부를 이렇게 저렇게 요리해서 보냈다. 내일은 달걀말이 대신 또 뭘 싸줘야 하나 한숨이 나온다. 뭘 보내야 할지… 또 두부부침? 대체할만한 다양한 요리를 개발하지 못한 나 자신을 반성한다. 그러나, 이렇게 매일, 아무 이유없이, 아무런 영양학적 근거없이, 매끼니 동물을 먹어야 하는 이유가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 육류를 많이 먹을수록 건강에 좋지 않다는 것이 이미 세계 학계에서 오래 전 증명된 바 있는데, 우리는 왜 아직도 동물성 단백질 신화에 사로잡혀 있을까. ‘인간은 잡식동물’이라는 오래된 통념을 핑계 삼아, 사람들은 마치 육식동물처럼 많은 고기를 소비한다.

아이들에게 ‘오늘 낮에 동물을 먹었나요?’라고 물으면 ‘아니요’라고 대답하지만, ‘고기를 먹었나요?’라고 물어보면, ‘네’라고 대답한다. 아이들은 고기가 동물이라는 것도 모른 채, 또한 그들이 어떻게 사육되고 도살되어 자신의 밥상에 올려지는지 모른채 육식에 길들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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