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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여전히 ‘N번방’을 알지 못한다…다큐 ‘사이버 지옥’
한겨레제휴기사 cine21-digital1@cine21.com | 2022-05-23

[한겨레]
다큐 <사이버 지옥> 리뷰 : 넷플릭스 18일 공개 뒤 화제 ‘N번방’ 추적자 24명 인터뷰



2020년 3월25일 조주빈이 서울 종로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기 전 포토라인에 섰다. 공동취재단

우리는 때로 ‘낯익다’는 이유만으로 무언가를 ‘안다’고 착각한다. 포털 메인,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티브이, 온라인 커뮤니티 등을 가리지 않고 어떤 이슈가 화제에 오르면, 서서히 피로감이 쌓인다. 수많은 사회 문제가 그렇게 우리를 스쳐 지나간다.


‘텔레그램 N(엔)번방 성착취 사건’에 대해 한국사회가 가장 들끓었던 시기는 2년 전이다. 2020년 3월17일 ‘박사’ 조주빈이 경찰에 붙잡히기 전후다. 많은 사람에게 이 사건을 대표하는 이미지는 같은 해 3월25일 조씨가 검찰에 넘겨지기 전 서울 종로경찰서 앞 포토라인에서 목 보호대를 찬 상태로 언론사 카메라에 찍 힌 모습이 아닐까. 구글이 제공하는 빅데이터 분석 서비스 ‘구글 트렌드’에서 ‘N번방’ 검색어를 넣어보면, 지난 3년여 동안 이 시기(2020년 3월22~28일) N번방에 대한 관심도가 최대치로 치솟았다가 곧 가라앉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정말 N번방 사건에 대해 충분히 알고 있을까? 혹시 N번방 사건을 ‘가십’으로 다루며 조회수만 노리는 ‘클릭베이트’(Clickbait, 클릭과 미끼의 합성어) 뉴스의 파도 속에서 피로감만 쌓이진 않았던가? 2019년 7월부터 N번방을 취재한 대학생 기자단 ‘추적단 불꽃’은 조씨 검거 당시를 이렇게 평가했다. “‘음란물’, ‘일탈’ 같은 자극적인 어휘로 ‘제목 장사’를 하는 매체도 있었다. (…) 조주빈이 정확히 어떤 범죄를 저질렀는지 세상은 몰랐다.”(책 <우리가 우리를 우리라고 부를 때> 중에서) 보도가 과열되고 피해자를 탓하는 2차 가해성 여론까지 조성되자, 언론시민단체가 긴급 비판 논평을 낸 것도 이 시기다.


넷플릭스가 지난 18일 공개한 다큐멘터리 <사이버 지옥: N번방을 무너뜨려라>는, N번방 사건을 둘러싼 여러 노이즈(잡음)를 걷어내고, 사건의 ‘실체’를 복기하는 데 충실한 기록물이다. 사건의 실체를 다룬다고 해서, 범죄 내용을 자극적으로 전시하는 ‘범죄 포르노’ 형식을 취한 건 아니다. 가톨릭 사제들이 저지른 아동 성범죄 사건을 다룬 영화 <스포트라이트>처럼, 사건을 파헤치는 저널리스트들을 주요 인물로 내세워 극적 연출을 시도한다. ‘추적단 불꽃’의 ‘불’(필명)과 ‘단’(필명), <한겨레> 김완·오연서 기자, <에스비에스>(SBS) 정재원 피디, <제이비비씨>(JTBC) 김광일 피디, 장은조 작가 등이 등장한다.



구글 트렌드 ‘N번방’ 키워드 검색 갈무리

사회의 무지와 방관이 성범죄를 키운다


다큐의 전반부는 각자의 자리에서 따로 N번방의 실체를 쫓던 추적자들이 점차 연결되어 사건의 조각들이 하나씩 제 자리를 찾아가는 모습을 담았다. 2019년부터 사건을 취재·보도한 추적단 불꽃과 <한겨레> 기자들이 겪은 일은, 사회 다수의 ‘무지’와 ‘방관’을 먹고 자라는 사이버 성범죄의 특성을 잘 보여준다.


“사실 인터넷과 아동·청소년 음란물 이런 것들은 십수 년 된 문제였기 때문에, 저도 (처음엔) 관성적으로 생각한 거죠. ‘이게 뉴스가 될 수 있는 것인가.’” 김완 기자의 말이다. 기성 언론의 “관성적”인 뉴스 가치 판단 아래, 초기 텔레그램 성착취 문제는 “매일 사회면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음 직한 7장짜리 사건 기사”에 불과해 보였다.


관성을 따른 취재·보도였지만, 기자 개인에게 후폭풍이 컸다. 성착취방 참가자들이 기자 개인과 가족의 신상을 털며 온라인 괴롭힘을 가했다. 작은 기사 한 건이라도, 사회의 방관 상태에 균열을 내는 ‘불씨’임을 알았기 때문이었을까. 보도에 나선 기자·피디를 공격해, 추가적인 취재·보도를 하기 어렵게 압박하기. 성착취방 참가자들이 꾸준히 행동에 옮긴 일이다. 조주빈은 나중에 방송사 피디들이 취재에 나섰을 때 “방송이 나갈 경우 ‘노예’(성착취 피해자) 중 한 사람을 방송사 옥상에서 투신시킬 것”이라는 협박도 했다. 첫 보도부터 실명 대신 필명을 쓴 ‘불’과 ‘단’은, 다큐에서도 얼굴을 공개하지 않았다.


기자들은 신변을 위협하는 온라인 괴롭힘 속에서도 취재·보도를 멈추지 않았다. 실제 N번방에 잠입해보니, 과거 성범죄들과 다른 사이버 성범죄의 특수성이 도드라졌기 때문이다. 피해자들은 이름, 주소 등 신상이 공개된 채 시시때때로 온·오프라인을 넘나드는 학대에 시달리고 있었다. 범죄자들은 가상화폐 거래로 금전적 이득을 챙겼다. 하루빨리 막아야 했다. <한겨레>는 2019년 11월 ‘텔레그램에 퍼지는 성착취’를 심층·연속 보도했지만, 당시에는 별다른 사회적 반향을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추적단 불꽃은 강원지방경찰청 사이버수사대와 함께 일부 참가자를 붙잡는 데 성공했지만, 성착취방은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기사를 보고 찾아왔다”는 N번방 참가자들이 늘었다.


그래도 불씨는 계속 퍼져나갔다. 트위터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에 대한 관심을 환기하는 누리꾼들의 콘텐츠가 꾸준히 게시됐다. 2020년 1월10일부터 ‘국회 국민동의 청원’ 제도가 새로 시작되자, 곧바로 ‘텔레그램에서 발생하는 디지털성범죄 해결에 관한 청원’이 올라왔다. 게시 30일이 지나기 전에 10만명이 참여해 ‘1호’ 청원이 성립됐다. <궁금한 이야기 와이(Y)>(SBS, 1월17일 방송),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JTBC, 2월20일 방송) 등 공중파 프로그램들이 사건을 조명했다.



다큐 예고편의 한 장면. 유튜브 갈무리

“피해자 삶 흔들리게 하는 건, 단 한 번의 클릭”


당연한 말이지만, 범죄자들을 잡는 데는 품이 든다. 경찰 인력과 자원이 필요하다. 경찰 조직의 관심이 필요하다. 사건을 조명하는 언론사가 늘고, 시민들의 관심이 커지자, 경찰도 발 빠르게 조직적 대응에 나섰다. 다큐의 중반부는 경찰들이 N번방 주요 용의자들을 쫓아서 끝내 붙잡는 이야기를 담았다. 사건이 공론화되자 ‘갓갓’ 문형욱은 휴대전화, 와이파이 공유기 등을 폐기하는 등 적극적인 증거 인멸에 나섰지만, 소용없었다. 해외 사업자가 운영하는 ‘텔레그램’ 플랫폼을 맹신하며 “절대 잡히지 않는다”고 믿었던 범죄자들이 차례차례 붙잡혔다.


다큐 후반부에 이르면, 이러한 조직적 성범죄를 방치하여 키운 한국사회 문화 전반을 되돌아보게 된다. ‘텔레그램 성착취 피해자 변호인단’의 조은호 변호사는 다큐에서 “피해자의 삶을 흔들리게 하는 건 그냥 한 번의 클릭이면 된다”고 말한다. “디지털 성폭력이라는 범죄 자체가 한두 사람의 행위만으로 커지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사소하다고 생각하는 행위들이 모이고 모여서 걷잡을 수 없는 피해를 만들어내는 범죄거든요.“(조 변호사)



다큐 예고편의 한 장면. 유튜브 갈무리

다큐에는 피해자들이 단 한 컷도 직접 등장하지 않는다. 다큐를 연출한 최진성 감독은 넷플릭스가 19일 공개한 인터뷰에서 “피해자들을 직접 인터뷰하는 것은 처음부터 배제됐다. 이들에 대한 또 다른 가해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이라고 밝혔다. “피해자들에게 피해가 안 가는 연출”을 위해, 피해 재연 일부는 애니메이션으로 묘사했다. 그럼에도, ‘피해 생존자’들은 다큐에서 가장 큰 존재감을 지닌다. 다큐에 출연한 기자·피디·작가·경찰들이 사건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추적할 수 있었던 건, 피해자들이 살아준 덕분, 용기를 내준 덕분이라서다. 피해자들은 다른 누군가가 자신과 같은 ‘사이버 지옥’에 갇히지 않기를, 피해가 반복되지 않기를 누구보다 바랐다. 다큐는 N번방이라는 사이버 지옥도를 재현하는 동시에, 이를 무너뜨리는 추적자들 간 연대를 함께 조명한다.


최진성 감독은 넷플릭스 인터뷰에서 “한국 관객들이라면 N번방 사건에 대해 누구나 조금씩은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작품을 보고 나면 우리가 알고 있던 사건의 실체라는 게 빙산의 일각이라고 느끼게 되실 거 같다”고 말했다. 피해자들과 연대하기를 원하는 당신이라면, 나의 앎이 “빙산의 일각”이라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부터 시도하면 어떨까. 다큐는 친절한 가이드가 되어줄 것이다.


한겨레 김효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