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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의 이정재 “정우성 가장 멋있게 그린 감독으로 남고파”
한겨레제휴기사 cine21-digital1@cine21.com | 2022-05-25

[한겨레]
[오승훈의 이 칸 저 칸] 이정재·정우성 인터뷰 - 칸 초창작 ‘헌트’에서 감독과 배우로 호흡, ‘태양은 없다’ 이후 23년 만에 공동작업, 20년 넘도록 서로 존대하는 특별한 우정, 정우성 “친구 잘 둬서 저도 월드스타 대접”



21일 오전(현지시각) 프랑스 칸국제영화제 행사장인 ‘테라스 드 페스티발’에서 <헌트>의 이정재 감독(오른쪽)과 배우 정우성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제공

남다른 우정이 빚어낸 남다른 성취.


배우 이정재의 첫 연출 데뷔작 <헌트>는 이정재와 정우성이라는 ‘지음’의 관계가 만들어낸 아름다운 결과물이었다. 21일 오전(이하 현지시각) 프랑스 칸국제영화제 행사장인 ‘테라스 드 페스티발’에서 만난 두 사람은 국내외 120여개 매체 인터뷰 일정을 소화하는 강행군 속에서도 23년 만에 이뤄진 공동 작업물이 칸에서 공개된 것에 대해, 감격과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차분하고 유쾌한 이정재 감독은 “배우 정우성을 가장 멋있게 그려낸 감독으로 남고 싶다”고 절친 정우성에 대한 애정을 피력했고, 정우성은 “‘둘만 좋아서 즐기면 안 된다’는 마음으로 현장에서 일부러 말수를 줄였다”며 오랜 우정에 대한 예의를 잊지 않았다. 감독과 배우 이전에 서로를 더 챙기는 벗의 마음이 <헌트>를 지탱시킨 한 요인처럼 보였다. ‘청담동 부부’라는 별명처럼 두 사람은 진정 ‘부창부수’였다.


75회 칸국제영화제의 화제작은 이 감독의 <헌트>였다. <헌트>는 조직 내 숨어든 스파이를 색출하기 위해 서로를 의심하는 안기부 요원 박평호(이정재)와 김정도(정우성)가 ‘대한민국 1호 암살 작전’이라는 거대한 사건과 직면하며 펼쳐지는 첩보 액션물로, 올해 칸영화제 미드나잇 스크리닝 부문에 초청돼 지난 19일 자정 처음 공개됐다. 시사회 뒤 뤼미에르 극장의 2000여명이 넘는 관객들은 7분 동안이나 기립박수를 이어가며 월드스타 이정재의 감독 데뷔를 축하했다.



21일 오전(현지시각) 프랑스 칸국제영화제 행사장인 ‘테라스 드 페스티발’에서 <헌트>의 이정재 감독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제공

이 감독은 첫 연출작으로 칸에 입성한 것에 대해 “영화 <하녀> 때 오고 12년 만이다. ‘칸 정말 멋있구나’ 하고 생각했다. 한번 더 오면 좋겠다는 작은 생각을 했다. 같이 온 분들이 ‘깐느병 걸리면 안 된다’고 하더라.(웃음) 제 작은 꿈이기도 했는데 칸영화제에 초청받게 돼 너무 기쁘다”고 했다.


<헌트>는 이정재·정우성이 <태양은 없다>(1999) 이후 23년 만에 한 작품에서 만난 영화라는 점으로도 화제가 됐다. 이 감독은 처음부터 정우성을 염두에 뒀다고 했다. “우성씨한테 처음부터 시나리오를 보여줬다. 처음에는 거절하셨다. 이후 큰 틀에서 많이 수정했다. 최종으로 다시 한번 바꾼 버전을 제일 마음에 들어하셔서 하게 됐다.” 원래 연출할 생각이 없었다는 그는 자신이 직접 참여한 시나리오 수정 과정에서 이 작품을 연출할 사람은 자신밖에 없다는 생각에 메가폰을 잡았다고 했다.


친한 이와 함께 일하면 사이가 멀어지기도 하는데, 두 사람은 어땠을까? “감독으로서 보니까 너무나도 멋진, 최고의 배우다. 친구고 동료고 그러다 보니 욕심이 생기더라. ‘정우성이란 배우는 이정재가 제일 잘 찍었어. 그 배우는 이정재가 가장 멋지게 찍었어.’ 이 소리를 꼭 듣고 싶었다. 상황적인 것에서도 정우성씨가 제일 잘하는, 멋있게 보일 수 있는 것까지 넣었다. 콘티 회의할 때도 정우성이 최고 멋있어야 한다고, 그 얘길 너무 많이 강조해 스태프들에게 물어보면 ‘이정재가 그 소릴 입에 달고 살았다’고 하실 거다.(웃음)”


영화의 메시지에 대해서 그는 “<헌트>는 잘못된 신념으로 서로 대립하는 두 사람의 이야기”라며 “박평호와 김정도는 잘못된 선동으로 자신들의 의식이 굳어져 대화로 풀 수 있는 문제들을 대립하면서 분쟁을 겪는다. 나중에 이를 깨달은 그들이 옳은 길을 가려는 내용의 결말을 갖고 있다”고 했다.



21일 오전(현지시각) 프랑스 칸국제영화제 행사장인 ‘테라스 드 페스티발’에서 <헌트>의 배우 정우성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제공

1980년대 초를 배경으로 선택한 이유는 역사적 해석의 의도라기보다 두 주인공이 대립하는 스파이물을 만들기 위한 방편이었다고 했다. “판권을 구매했을 때 이미 80년대가 배경이었다. 주변에서 제작비가 많이 든다며 현재로 바꾸라는 조언도 했는데 잘못된 신념으로 인해 대립한다는 주제를 드러내기에 80년대 배경이 적합하다고 판단했다.”


이 감독은 그 어떤 이념보다도 휴머니즘이 더 중요하다는 점을 두 인물을 통해 얘기하고 싶었다고 했다. “박평호는 불쌍한 캐릭터다. 김정도도 그렇고. 충성했던 무리에서 주장하던 그 이념이 옳지 않은 신념이라는 것을 알고 환상이 깨진 인물들이다. 그런 믿음이 깨졌을 때 굉장히 충격이 크지 않을까. 잘못된 일들을 되돌리고 싶어 한 두 인물의 마음이 잘 드러나도록 중점적으로 연출했다.”


황정민, 주지훈, 김남길, 조우진 등 화려한 카메오 출연과 관련해선 “우성씨와 제가 함께 작업을 한다는 것에 축하를 하고 싶다며 먼저 연락이 왔다. 너무 감사하고 감격스러웠다. 근데 이분들이 중간중간 나오면 이야기의 흐름이 깨질까봐 한꺼번에 나오는 장면으로 시나리오를 수정해 촬영했다”고 했다.


주연 배우로 출연한 정우성은 “칸의 환대는 다 친구 덕분”이라며 “친구를 잘 둬서, 저도 덩달아 ‘월드스타’ 대접을 받고 있다”는 말로 말문을 열었다. 이어 “지금이 여러 의미가 함께 내포되어 있는 심정”이라며 “정말 값지다. 값지고 값진 순간이라, 좀 더 차분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영화 <헌트> 스틸컷.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제공

서로에 대한 존칭을 여전히 고집하고 있는 두 사람. 정우성은 이 감독에게 존댓말을 빼먹지 않았다. “<헌트> 완성본은 칸에서 처음 봤다. 감독님이 칸영화제 때 선물처럼 뜯어보라고 그러신 건지, 안 보여주셨다. 뤼미에르 극장에 함께 들어가기 전에 ‘자기가 잘 봐야 하는데’ 그 얘기를 하시더라.”(웃음)


준비 과정을 지켜본 친구로서 같이 고민하고 같이 책임지려는 속 깊은 면모도 엿보였다. “저는 <헌트>가 완성되기까지 이 감독님 옆에서 처음부터 지켜봐왔다. 감독님이 주변 얘기 속에서 계속 고민하고 수정해나가는 그러한 시간 속에서, ‘이 정도면 우리가 같이 한 바구니에 담겨 깨지더라도 후회 없는 최선이겠구나. 준비가 된 거 같다’는 생각이 들어 함께하게 됐다.” 감독 이정재는 친구 정우성에 어떤 모습으로 다가왔을까? “타고난 성향과 성품이 섬세하다. 판단해서 되돌아보고 더 나은 게 있지 않을까 고민하는 스타일이다. 그렇다고 독선적이진 않다. 주변에 늘 묻거나 확인하더라. 작품 준비하고 후반 작업하는 과정에서 그 성품으로 임했다. 원래 감독의 일이 고독한 것인데 집념으로 이겨냈다.”



21일 오전(현지시각) 프랑스 칸국제영화제 행사장인 ‘테라스 드 페스티발’에서 <헌트>의 이정재 감독(오른쪽)과 배우 정우성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제공

“<헌트>가 칸에 와서 좋은 게 아니라 칸이 <헌트>가 와서 좋은 거 아니겠냐”며 이 감독의 <헌트>에 대한 애정을 드러낸 정우성은 “<놈놈놈>(<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때는 손님으로 온 느낌이었는데 이번에는 영화제에 초대된 수많은 주인공 중 한명이 된 것 같아 기뻤다”고 했다. 근접 폭발 등 위험한 액션 장면에 대해서는 “절대적으로 기술팀을 믿고 촬영했다”며 “너무 몸을 사리면 제대로 된 그림이 안 나오기 때문에 만약의 사고에 대비해 스스로를 지켜야겠다는 마음으로 촬영에 임했다”고 했다.


정우성도 자신의 첫 장편 연출작 <보호자> 작업을 마치고 개봉을 준비 중이다. “<보호자>가 개봉하면 그 작품으로 칸에 다시 와야 하지 않냐”는 질문에 정우성은 “칭찬이면서도 부담감을 주는 말씀이다. 먼저 개봉부터 하고 싶다. 너무 오래 기다렸다”며 밝게 웃었다.


한겨레 오승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