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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때문이지. 이태준이야 성북동에서 존경받던 유진데, 넉넉한 재산까지 두고 뭐하러 월북을 하겠어…. 고등학교 때 살던 삼선교집 들어가는 골목 입구에 있던 책가게 아저씨는 이 책을 건네주면서 내게 그랬었다.극심한 협심증 때문에 말이 너무 느리고 또 숨을 쉴 때마다 악취가 배어나오던 그 ‘소설가 이태준 친구’ 아저씨는 사전-참고서류의 책방 주인과는 다른 세월의 무게를, 다소 음울하게 풍기고 있어서 어린 나의 호기심을 자극했지만, ‘월북’ 시인의 책 ‘실물’을 받아들었더니 덜컥 겁이 났다.이 책을 내가 그때 읽기나 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아니 정지용 시작품을 ‘제대로’ 읽은 것은 시인이 되고 정지용 시집 원판을 제록스한 것들이 나돌던 82년 무렵쯤일 게다.하지만 나는 책의 매력에 곧장 빠져들었다. 책장은 나달나달하고 활자는 엉성했지만 장정이 우아하고 돈없던 시절 종이가 귀하고 글이 귀하던,그래서 모든 것에 정성이 밴 책이란 시인이 될 생각이 전혀 없던 그때도 시간 자체를 아늑하고 소
건설출판사 간 <정지용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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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와 역사의 건널목>안정효 지음들녁 펴냄1만2천원
‘할리우드 키드’ 안정효씨가 <전설의 시대>에 이어 들려주는 20세기 영화와 문학, 역사에 대한 ‘네버엔딩 스토리’ 두 번째 책. 지은이가 서문에서 밝혔듯 “역사와 설화가 중첩된 시대를 정리하고 문학과 역사가 만나서 이루어진 역사소설을 원작으로 삼은 영화작품”들을 훑어간다. 트로이 전쟁과 오디세우스 등 모험활극에서 알렉산드르 뒤마의 소설, 영국의 오락 사극에 이르는 다양한 이야기가 꼬리를 물고 풀려나온다.
<신화와 역사의 건널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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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는 매일 새벽에 통행금지가 풀리고 영업이 끝나면 거의가 청진동 등의 해장국집을 거쳐 남산식물원 근방의 커피점에 모이는 게 단골 고고족과 여러 밴드들의 일과여서 새벽이면 이곳이 여러 밴드들의 집합소가 되어 서로들 만나 얘기도 나누고 쩔기도 하고 모두들 한가족같이 친하게 지냈다. 그 당시의 이태원은 히피 천국이였고 언덕 따라 양쪽에 쭉 늘어선 작은 클럽에선 여러 무명의 그룹들이 경쟁하듯 매일 밤 라이브 뮤직을 연주했다.” ‘재미음악인’ 심형섭(미국명: Tommy Shim)이 그의 홈페이지에 쓴 자서전(http://www.tomshim.com/ftstep.htm)에 나오는 이야기다.그는 지금 시애틀에 거주하고 있다. 이유는 앞의 문장에서 “쩔기도 하고…”라는 표현에서 짐작할 수 있듯 1976년 초 “연주하던 업소에 악기를 그대로 둔 채” 미국으로 쫓기듯 떠나갔기 때문. 그리고 1970년대 초 고고클럽 씬에서 ‘헤비 사이키델릭 록의 전설’로만 알고 있던 ‘그룹사운드’ 피닉스(Phoen
휘닉스의 <밤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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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작이다. 모자를 벗어라! 이만하면 가히 전 인류적 스케일의 주제다. 그러면서도 고도의 만화적 테크닉이 발휘되어 재미가 있다. 초현실주의 시인 필립 수포의 자동기술을 방불케 하는 거대진폭의 상상력이다. 더구나 이 영화는 무한탐욕의 폭식성을 자랑하는 일본의, 나아가 세계의 자본주의적 신경증을 밑으로부터 정신분석해내고 있기까지 하다. 영화는 탐욕과 집착에 관한 생태학적, 동화적 보고서이다. 800만 정령들이 노는 거대한 목욕탕. 먹을 것, 놀 것, 여자, 금, 모든 쾌락이 있는 그곳에는 틀림없이 일제 전범의 혼도 놀고 있을 것이고 그것을 통해 미야자키는 일종의 역사적 속죄를 수행한다. 그래서 전 인류적 스케일에 도달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 시선은 줄곧 열살짜리 깡마른 소녀의 것이라니! 미야자키 하야오는 위대하다.음악은 그의 단짝 히사이시 조가 맡았다.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를 소개할 때 이미 그에 관해 이야기했었다. 영화적으로 볼 때에는 <바람계곡…>보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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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30주년을 맞이한 ‘자그레브애니메이션페스티벌’은 4대 애니메이션페스티벌(자그레브, 안시, 히로시마, 오타와) 중에서도 가장 역사가 오랜 행사다. 하지만 예전 유고슬라비아라는 공산권 국가에서 개최된데다가 분리독립과정에서 벌어진 내전 등으로 인해 실제로 참가한 한국 사람은 거의 없다보니 ‘히로시마’나 ‘안시’에 비해 국내에는 많이 알려지지 못했다.필자는 회사에서의 출장방침으로 운좋게 이 페스티벌을 참관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이 유럽의 변방에 도착한 뒤 가장 큰 인상으로 다가온 것은 체제기간 중에 보았던 중세시대의 고풍스러우면서도 거대한 건축물이나 우아한 공원 같은 모습이 아닌, 오는 길에 탄 국적항공인 크로아티아항공기의 기내에서 상영된 <교수 발타자르>(Balthazar)라는 애니메이션이었다. 세계 최대의 애니메이션 생산국 중 하나인 일본에서조차 항공기에서 상영된 자국애니메이션은 미야자키 하야오의 <붉은 돼지> 정도이고 디즈니와 같은 메이저의 작품도 항
연륜의 촌철살인, <발타자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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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내 앞에는 <몬스터>라 이름붙인 18권의 기록이 있다. 이 괴물은 지난 몇년 동안 나와 친구들의 심장을 움켜쥐고 긴장의 땀과 공포의 피를 짜내고 또 짜냈다. 도저히 견딜 수 없다며, 완결될 때까지는 절대 쫓아다니지 않겠다며 포기를 선언한 자들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에게도 기회가 왔다. 드디어 그 괴물이 하얀 침대에 누워 잠이 든 것이다. 이제 좁은 책꽂이에 쌓아온 그 기록을 꺼내 처음부터 읽어가자. 한 장면 한 장면을 되새기고, 칸과 칸 사이의 복선을 들추어내고, 조각조각 흩어져 있던 비밀의 퍼즐을 맞추어가자.나는 <몬스터>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이름과 약력을 정리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추리 장르의 핵심은 인간이다. 누가 죽느냐, 누가 죽였는가가 중심이다. 거기에 어떻게 죽였는가가 덧붙여지는 것이다. 양심에 따라 소년을 살려낸 대가로 악의 한가운데로 떨어진 천재 외과의 덴마를 중심으로 수십명의 이름이 등장한다. 그리고 그 몇배가 되는 시체들을 만나야 한다.
우라사와 나오키의 <몬스터> 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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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만화 사상 최고 인기의 히로인 토미에의 전설이 부활한다. 불행하게 죽은 뒤 끊임없이 재생하여 남자들을 유혹해 자신을 다시 죽이게 만든다는 공포의 주인공 토미에는 만화가 이토 준지가 1980년대에 데뷔하며 만든 캐릭터. 초기작에서는 다소 불안정한 데생으로 그려졌던 토미에가 최근 발간된 <토미에 어게인>에서는 현대적이고 세련된 터치의 이미지로 새로운 사건들을 만들어낸다. 이토 준지는 계속 색다른 아이디어로 토미에를 이끌어가려 하지만, 내용에서는 진부하고 구태의연한 면모가 많이 보인다. 해변의 동굴에서 참살된 신체로 나타나 소년을 유혹해 파멸에 이르게 하는 ‘소년’, 죽은 뒤 계속 번식하는 토미에의 살을 양조장 가마에 넣었다가 거기에서 빚은 술로 끔찍한 환상에 빠지게 되는 ‘살로 빚은 술’ 등의 에피소드들로 구성되어 있다.신나는 만화교실 부천만화정보센터가 여름방학을 맞아 제5회 ‘신나는 만화교실’을 연다. 어린이반과 청소년반을 각 30명씩 선착순 모집하며, 7월20일부터 8
<토미에 어게인>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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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일본을 방문했다. 제일 재미있었던 게 아키하바라다. 우리나라의 용산 같은 곳으로, 남들은 주로 전자제품을 사지만 내 목표는 중고 게임 소프트웨어상점이었다. 우선은 가격이 저렴한 게 유혹적이었지만, 국내에서는 구하기 힘든 게임을 살 수 있다는 것도 중요했다. 인터넷에서 미리 정보를 수집해 상점 리스트를 뽑고 교통편도 알아봤다.개인의 산발적 거래가 대다수인 한국과는 달리 일본 중고 게임 시장은 상당히 체계화되어 있다. 가게마다 판매가격은 물론 매입가격까지 명시되어 있어서 터무니없이 후려치는 용산의 이른바 ‘용팔이’들과는 대조적이다. 가격은 기본적으로 수요 공급의 원칙에 따라 움직인다. 어떤 게임은 나온 지 몇년이나 지났는데 오히려 출시가격보다도 높게 팔리고 있고, 또 어떤 것은 불과 한달도 안 되었는데 벌써 반값 이하로 떨어져 있기도 한다. 중고시장 가격은 게임의 인기도를 보여주는 일종의 척도로 사용될 수도 있다. 같은 게임이라도 보존상태에 따라 가격이 달라지기 때문에 안심하고
일본 중고 게임 상점 탐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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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시원한 바다가 생각나는 뜨거운 계절의 한가운데, 7월이다. 마음은 벌써 물장구를 치고 있지만 어디 그렇게 훌쩍 떠나기가 쉬운가? 멀리 갈 것 없이 <워터보이즈> 홈페이지에 들러 잠시 더위를 식혀보자. <쉘 위 댄스> <으랏차차 스모부>의 수중발레 버전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영화는 남자고등학생들이 수중발레쇼를 하기까지 좌충우돌하는 이야기다. 모니터 한가득 펼쳐지는 시원한 바닷빛 푸르름은 여름맞이 홈페이지로 그만이다. 메뉴를 선택할 때마다 화면에 바닷물이 출렁이듯 차오르게 디자인된 플래시가 멋지다.About Movie 코너에는 간단한 시놉시스와 코미디의 귀재 야구치 시노부 감독에 관해 나와 있고, Character 코너에는 주요 배우 8명의 역할 설명과 함께 프로필도 제공한다. 경쾌한 음악이 함께 나오는 메이킹필름과 트레일러는 전체 장면 중 수영장 장면이 거의 90%를 차지한다. 배우들이 연기를 하는 게 아니라 물놀이하는 것처럼 보인다면 당장 바
<워터보이즈>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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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하는 모든 것은 이성적이다. 존재에는 과거가, 역사가 필요하다. 이는 시간보다는 논리적 인과관계를 의미한다. 존재란 무수히 많은 과거의 집적물로서만 존재한다. 존재하는 것은 이성적이지 않을 수도 있다. 설명할 수 없는 존재는 분명 존재한다. 그래도 설명은 필요하다. 꼭 이성적일 필요는 없다. 존재에는 이유가 있다. 하나의 존재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서사구조가 있어야 한다.소설가는 존재의 서사구조를 재구성하는 직업이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어느 날 지하철을 탔다. 건너편 자리에 어떻게 저렇게 닮을 수가 있을까 신기할 정도인 모녀가 앉아 있었다. 하루키는 DNA의 위력에 감탄하면서 실례가 되지 않을 정도로만 두 여자를 훔쳐봤다. 그런데 어느 역에서 한명이 아무 인사도 없이 내려버렸다. 그 둘은 전혀 관계없는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소설가 무라카미는 존재를 설명하기 위해 서사구조를 만들어냈다.이십년 전, 어느 일본 여인이 밀림에서 여행중 일행과 떨어졌다. 품에는 아기를 안은 채 헤매다 지치
영화와 게임의 상관관계, <레지던트 이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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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우(34)씨는 ‘잘 나가는’ 시나리오 작가다. 흥행성적만 놓고보면 누구도 따라올 수 없다. <주유소 습격사건> <신라의 달밤> <선물>이 그가 쓴 시나리오였고 앞으로 개봉할 <라이터를 켜라>와 <광복절 특사>도 박정우씨의 펜에서 나온 작품이다. 시나리오 작가에 대한 대접이 형편없다고 소문난 충무로지만 그의 경우는 좀 다르다. <신라의 달밤> 각본료로 3천만원을 받았으니 다른 작가보다 월등히 비싼 작가라고 할 수 없지만 그는 이 영화의 흥행지분 10%로 3억4천만원을 챙겼다. 그는 지금도 각본료로 3천만원을 받지만 대신 흥행지분을 요구한다. <라이터를 켜라>는 20%, <광복절 특사>는 10%의 흥행지분을 갖고 있다. 그는 자기가 돈 번 얘기를 꼭 써달라고 말한다. 시나리오 작가에 대한 대우가 좋아져야 된다고 백번 떠드는 것보다 돈 많이 번 모델이 생기는 게 작가들에게 훨씬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감독 데뷔 준비중인 <주유소 습격사건> <라이터를 켜라> 작가 박정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