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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혼은, 미친 짓이다>의 감독 유하씨는 말에 대한 감수성이 매우 뛰어난 시인이다. 누구도 말에 대한 감수성 없이 시인이 될 수는 없겠지만, 유하씨의 언어감각은 여느 시인에 견주어 특히 민첩하다. 첫 시집 <무림일기>에서부터 최근 시집 <천일馬화>에 이르기까지, 그는 그런 날랜 말놀이의 부력으로 독자들에게 어질어질한 부양감(浮揚感)을 베푼 바 있다. 그의 말놀이가 얼마나 매력적인가 하면, 독자들이 그 말놀이에 정신을 팔다 그의 시가 지닌 메시지의 핵심을 지나쳐버릴 정도다. 그의 몸은 언어와 버성기지 않는다. 그는 조각하듯 언어를 깎아내는 것이 아니라, 이미 깎여져 몸 안에 갈무리된 언어를 아무 때나 꺼내 자유자재로 레고놀이를 수행한다. 그는 공기를 숨쉬듯 언어를 숨쉬며, 마침내 말과 한몸이 되어 통정한다. 말과의 접착도에서 시인 유하씨의 맞수로 내가 얼른 떠올릴 수 있는 사람은 그와 동갑내기인 불세출의 논객 진중권씨 정도다.<결혼은, 미친 짓
아저씨, <결혼은, 미친 짓이다>를 보고 결혼제도를 고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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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인적인 취향 이야기를 좀 하자면 내 기억에 오랫동안 남아 있는 영화들은 태반이 멜로드라마다. 어렸을 적에 흑백 텔레비전으로 본 ‘주말의 명화’는 말할 것도 없고, 영화에 영혼이 사로잡힐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했던 <사운드 오브 뮤직>, 윤심덕의 애사를 통해 자의식과 시대 사이의 갭에 관한 두려움을 예감케 했던 <사의 찬미>, 사랑의 망설임과 두려움에 관한 프랑스영화 <겨울의 심장>(국내 개봉 제목은 잊어버렸다) 같은 것이 쉽게 떠오르는 예다. 이런 영화들은 마음의 민감한 현, 일명 심금을 지잉 울려준 다음 길게는 일주일쯤 넋이 나가게 만들곤 했다.돌이켜보건대 멜로드라마는 나에게 여성으로서의 성장과 사회화 과정에서 성적 정체성을 구성하고 역할 모델을 발견하는 교과서 구실을 담당했던 것 같다. 남성들이 가족과 학교, 군대와 직장생활을 통해서 조직적으로 일관되게 사회화 과정을 겪는 것과 달리, 여성들은 다소 사적이고 개별적인 방식으로 이 과정을
차갑지만 현실적인 멜로드라마 <결혼은, 미친 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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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의 세월은 망각과의 싸움이자 기억과의 싸움이다. 잊고싶을수록 오래 남는 나쁜 기억은 정신을 야위게 만들고, 간직하고 싶은 순간은 덧없이 망각에 잠겨 버린다. 안진우(33) 감독의 데뷔작 <오버 더 레인보우>는 기억과 망각을 씨실과 날실 삼아 짜들어간 미스터리 멜로 드라마다. 방송국 기상 캐스터인 진수(이정재)는 비 뿌리는 저녁 누군가에게 선사할 프리지아 한 다발을 사들고 차를 몰고 가다 트럭에 받히는 교통사고를 당한다. 상처는 크지 않았지만 퇴원 뒤 진수는 몇 가지 이상 징후를 느낀다. 본 게 틀림없다는 영화의 결말이 떠오르지 않고, 장례식까지 갔다는 친구 애인의 죽음도 까맣게 기억에 없다. 사고로 인해 부분기억상실증에 걸린 것이다. 그럼에도 누군가가 햇살 가득 쏟아지는 창가에서 자신을 돌아보는, 역광의 강렬한 기억만은 사라지지 않는다. “중요한 기억이 손상됐을 때 꿈이나 환영을 통해 복구시키려는 무의식의 작용”이라는 게 의사의 설명이다. 진수의 단짝친구이기도
사랑은 무지개너머 아닌 바로 내곁에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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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티나>(2000)는 <하몽 하몽>(1992) <달과 꼭지>(94) 등을 통해 스페인 사람들 특유의 열정과 에로티시즘을 자연스레 표현한 비가스 루나(56) 감독의 신작이다. <하몽 하몽>에서 무절제한 인간들의 분출하는 욕망을 희극적인 리듬에 담아내고, <달과 꼭지>에선 아이들의 욕망과 심리를 따뜻하고 유머스런 시각으로 그렸다. <마르티나>는 열정적인 사랑과 에로티시즘의 표출이라는 면에서는 전작들과 함께 가는 면이 있지만, 열정과 매혹의 비극적인 결말을 끝까지 따라갔다는 점에서 전작들과 분위기가 또 다르다. 스크린을 메우는 지중해의 푸르름은 열정을 부추기고, 격랑은 파국을 예고한다. 한껏 젊은 에너지가 충만해오른 마르티나(레오노르 발팅)는 바닷가 작은 마을에서 카페와 하숙을 치는 부모의 일을 돕는다. 부모는 딸이 사업가 시에라(에두아르드 페르난데스)와 맺어지길 바라지만, 마르티나는 이 마을에 새로 온 젊은 문학 교사
실종된 남편 7년만에 돌아왔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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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는 커녕, 극장에서 영화를 본적도 없었다는 <집으로...>의 김을분(78) 할머니가 오는 26일 서울 강남의 코엑스에서 열릴 제39회 대종상 영화제의 신인여우상 후보에 올랐다. 대종상 영화제 집행위는 9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21개 부문의 후보작 및 후보자들을 발표했다. 후보작 없이 단심제였던 지난해까지와 달리 올해부턴 “선정의 투명성과 객관성을 높이기 위해” 별도의 위원들이 예심과 본심을 나눠 맡는다. 모두 31편이 출품된 이번 영화제에선, 가 작품상, 남우주연상 등 14개 부문에 올라 최다부문 후보작이 됐다.<무사>(10개 부문), <집으로…>(9개 부문) 등 모두 23편의 한국영화가 1개 이상의 후보에 오른 데 비해 적잖은 찬반논쟁을 불러일으켰던 박찬욱 감독의 <복수는 나의 것>은 단 한 부문에도 지명되지 못했다. 또한 올해부터는 외국인에게도 수상자격이 주어져, <파이란>의 장백지(여우주연상), 의 나카무
<집으로...> 김을분 할머니 신인여우상 후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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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2001년 가을-역자) 함께 개봉한 조엘과 에단 코언의 <그 남자는 거기 없었다>와 장 피에르 주네의 <아멜리에>는 두 작품 모두 “인간의 모습을 벗어난 라이브 액션만화”라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두편 모두 어마어마한 폭발력을 보여주진 않으나, 공히 만화의 세계에서 곧장 빠져나온 듯한 작품들이다. 한편은 지독하게 비관적이고 또 한편은 히스테리컬할 정도로 기분 좋지만, 두편의 캐릭터들 모두 찡그릴 줄 아는 고깃덩이인 꼭두각시 인형들과 잘 계산된 특수효과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다는 점에서 또한 공통적이다. 이들은 넘쳐나는 보이스오버 너머로, 향수에 푹 젖고 은둔자처럼 각자의 껍질 안에 잘 숨겨진 채, 잘 재단된 ‘프로젝트 세계’를 창조한다.<아멜리에>(이에 대한 짐 호버먼의 견해는 <씨네21> 327호를 참조할 것-역자)는 사람들이 좀더 편안히 좋아함직한데 비해 코언 형제의 <그 남자는 거기 없었다>는 지독할 정도로 건조하다.
코언 형제의 <그 남자는 거기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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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돌을 맞은 칸국제영화제가 오는 15∼26일 프랑스 남부 휴양도시 칸에서 열린다. 1946년 출범한 이 영화제가 규모와 권위 면에서 세계최고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가령 (영화제는 아니지만) 그 유명한 아카데미상의 영향력이란 것도 할리우드 상업영화에 국한된다. 칸 영화제는 훨씬 야심만만하다. 냉전이 한창이던 50년대부터 이미 헝가리·체코 등 동유럽 필름에도 문을 열어놓았던 칸은 이제 세계 모든 예술필름의 첫 봉인을 따는 영화권력의 ‘칸(지존)’ 노릇을 지키고자 안간힘을 쓰는 듯하다. 칸의 ‘야심’은 매년 검토 대상 필름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는 데서도 확인된다. 칸영화제 사무국에 따르면, 영화제 관계자들은 올해 공식부문에서 상영될 영화 55편(경쟁 22편과 비경쟁 33편)의 선정을 위해 모두 2281편의 영화를 보았다. 이 가운데 939편이 장편영화이고 1342편이 단편영화였다. 이는 지난해의 1798편(장편 854편, 단편 944편)에 비해 27% 늘어난 수치다.200
영화권력의 지존 칸영화제 한계 인정하고 욕심 버리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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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토록 할말이 많았을 줄은, 미처 몰랐다. 한 사람이 두개씩, 세개씩 끝도 없이 쏟아놓던 질문들, 질문들. 열혈 영화광들이 열혈 영화감독들을 만난 자리는 스파크가 일 만큼 열띠었다. 하긴, 그동안 관객이 감독을 접선할 수 있는 기회는 너무 없었다. 고작 영화제에서 영화상영이 끝난 뒤 20분 정도 마련되는 짧은 Q&A 시간, 아니면 대학에서 간헐적으로 열리는 특강이 다였으니.
창간 7주년이 되어 <씨네21>은 ‘진이 빠질 만큼’ 길고도 긴 감독과 관객간의 만남의 자리를 마련했고 장진, 류승완, 김지운, 박찬욱 감독을 섭외했다. 최장 3시간 동안 관객 앞에 자신을 드러내는 자리, 감독들은 어느 때보다 긴장했다. 많은 독자/관객이 찾았고, 때로는 감독의 입이 헤벌어질 만한 사랑 고백을, 때로는 감독의 이마에 진땀이 흐를 만한 집요한 추궁을 서슴없이 했다. ‘도대체 감독은 어떻게 되냐’, ‘시나리오는 도대체 어떻게 쓰냐’, ‘내 나이 때 당신은 뭐했냐’ 등등 젊은 관객이 젊은
젊은 감독, 관객을 만나다 [1] - 장진, 류승완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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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많이 좋아하지 마세요, 아류가 돼요”
이날은 원래 박찬욱 감독과의 대화가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전주영화제에서 <공동경비구역 JSA> 상영행사에 참가하고 올라오던 박찬욱 감독은 6시쯤 차가 너무나 막혀 제 시간에 닿기 힘들 거라는 소식을 전해왔고, <씨네21> 진행자는 부랴부랴 5월2일 순서로 예정돼 있던 장진 감독님을 모셨습니다. 박찬욱 감독을 만나러 참석했던 독자 여러분, 그리고 5월2일 장진감독과의 대화를 기다리던 분들께 죄송하다는 말씀을 다시 한번 드립니다. 이탈리아의 ‘우디네영화제’에 참가했다가 서울에 온 지 불과 2시간 만이라 경황도 없으셨을 텐데 특유의 재치있는 솜씨로 행사를 이끌어준 장진 감독님께는 감사하다는 말씀을 다시 전합니다.
안녕하세요? 장진입니다. (박수) (마이크를 뽑아들고 일어서며, 사회자석에 앉아 있는 남동철 기자에게) 여기 계속 앉아 계실 건가요? (남동철 기자, 웃으며 내려간다. 단상 테이블에 걸터앉는 장진 감독.)
젊은 감독, 관객을 만나다 [2] - 장진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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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은, 카리스마
-장진 감독한테 딴죽 거는 사람들이 하는 말이, 시나리오는 좋은데 영화가 영화적이지 못하고 연극적이다, 라는 거거든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그리고 좋아하는 한국 감독, 외국 감독을 알려주세요.
=연극적이다, 영화적이다, 이런 말을 저는 별로 고민 안 해요. <기막한 사내들> 내놨을 때 모 기자가 ‘동서고금을 통틀어서’ 뭐라고 썼죠? 남 기자님? ‘비영화적’이라고 했는데, 그리 나쁘지 않았어요. 사람들이 제 영화를 보고 관습화되지 않은 것에 반응을 했거든요. 저는 영화 보는 걸 좋아하지 않는데, 영화 보는 걸 좋아했다면 양식 같은 걸 따라했을 텐데, 다행이다 싶었어요, 본 게 없어서. 영화에서 화자의 숨소리가 느껴진다면 연극적인 거고, 어떤 배우의 다이얼로그에서 다른 서브텍스트, 다른 감성이 연상된다면 그건 또 문학적인 거겠죠. 어떤 영화가 연극적이다, 문학적이다, 하는 것은 객관적인 게 아니에요. 만약 영화가 안 좋다면 ‘쟨 영화를 못 만들었어’
젊은 감독, 관객을 만나다 [3] - 장진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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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손으로 브이자를 그리며 일어나) 안녕하세요. 영화배우 류승완입니다. (웃음) ‘나의 인생 나의 영화’라는 걸로 아무 얘기나 하라는데, 학교 다닐 때 보면 듣기 싫은 얘기 자기 혼자 몰입해서 막 떠드는 사람들 짜증나잖아요. 지금 지나다가 그냥 시간이 남아서 들어오신 분도 있고 하실 테니까. 그냥 류승완이라는 사람이 영화를 만들기까지 어떻게 살았나 간단히 말씀드릴게요.
저는 1973년 12월15일 충남 온양에서 태어났구요, (웃음) 다섯살 땐가 여섯살 때, 천안아카데미극장에서 영화를 처음 봤는데, 장철 감독의 <철장>이라는 영화였어요. 일본 도장에서 배신자의 눈알을 뽑는 장면이 인상깊었죠. (웃음) 저는 어려서 주위가 산만한 아이였고, 초등학교 들어갈 무렵에 성룡 영화를 처음 봤는데, 바로 그해에 류승범이 태어났어요. 제 장난감을 부러뜨리는 바람에 류승범이 액션연기 하는 데 제가 많은 도움을 줬죠. (웃음) 저는 지방에 살아선지 특히나 영화에 대한 동경이 있었어요. 학
젊은 감독, 관객을 만나다 [4] - 류승완 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