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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9월, 명필름이 제작하는 김응수 감독의 <욕망>의 배우 오디션 본선장. 응모자 400명 가운데 10명을 1차로 추린 결과 3명이 방송국 탤런트 출신이고 나머지 7명이 연극배우였다. 최종 선발된 4명의 주연배우는 탤런트 이수아씨 1명을 제외하곤, 이동규·안태건씨 등 나머지 3명이 모두 대학로(연극배우) 출신이었다. 다른 연극배우 2명은, 같은 명필름의 영화 <버스정류장>의 조연으로 캐스팅됐다.명필름 심보경 이사의 말. “연극배우들의 연기가 깊이가 있었다. 방송국 출신의 연기는 어딘지 가벼워보였다. 또 `새로운 얼굴`이라는 기준에도 방송국 출신은 잘 맞지 않았다.”개인 인맥을 통해 충무로로 진출하던 연극배우들이 어느 순간 충무로 정상에 깃발을 꼽고 `대학로의 충무로 점령'을 선포해버렸다. 90년대 중반부터 지난해 초까지 최민식, 설경구, 송강호, 유오성씨가 그랬다. 이보다 조금 늦게 신하균, 임원희, 정재영씨 등 이른바 `장진 사단`의 연극 배우들이 장진
대학로, 영화배우 양성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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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남자>등 24편 황금곰상 놓고 겨뤄김기덕 감독의 <나쁜 남자>가 경쟁부문에 진출한 제52회 베를린국제영화제가 오는 6일부터 17일까지 열린다. 총 400여편을 상영하는 이 영화제에서 <나쁜 남자>와 황금곰상을 놓고 겨루게 될 장편 경쟁작은 23편. 예년에 비해 명망가 감독의 영화가 많지 않다. 또 2~3년전부터 아카데미영화제 작품상 후보로 거론되는 할리우드 영화를 여러편 경쟁부문에 데려오기 시작한 이 영화제의 한 특성이 올해도 이어지고 있다.우선 지명도 높은 감독의 영화로는 올해 69살인 그리스 태생 코스타 가브라스의 <아멘>, 이스라엘의 대표주자 아모스 콜렉의 <브리짓>, 프랑스 베르트랑 타베르니에의 <안전통행권>, 일본 애니메이션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의 만화영화 <센타이치로의 행방불명>, 스웨덴 출신으로 할리우드에서 활동중인 라쎄 할스트롬의 <쉬핑 뉴스> 정도가 눈에 띈다. 지역적으로 보
베를린영화제 6일 `팡파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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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방송 2에프엠 <김광한의 골든팝스>(매일 오전 11시) 설문조사 결과, <타이타닉> 주제곡 `마이 허트 윌 고 온`이 청취자가 가장 좋아하는 곡으로 선정됐다. 2위는 영화 자체보다 삽입곡으로 더 유명해진 <코요테 어글리>의 `캔트 파이트 더 문라이트`가 뽑혔다. 고전 영화음악에 대한 청취자의 사랑도 여전해 <시네마 천국> <러브 스토리> 등도 10위권 안에 들었다.또 가장 좋아하는 한국영화로는 <엽기적인 그녀><친구><약속><쉬리> 순으로 나타났다. 외국 영화는 <타이타닉> <인생은 아름다워> <시네마천국><러브레터>였다. 네티즌이 좋아하는 최고의 한국 남녀 배우는 1위에 장도건과 전지현, 2위에는 안성기-심은하가 뽑혔다. 외국배우는 톰크루즈와 줄리아 로버츠로 나타났다.이번 설문조사는 지난 1월14일~31일 네티즌 3만1200명이 참여했으며,
네티즌이 가장 좋아하는 영화음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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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지를 안은 사막. <박하사탕>으로 여운이 긴 파문을 일으키며 세상의 수면 위로 떠오른 배우 설경구를 두고, 이창동 감독은 그렇게 말한 바 있다. 겉으로 보면 아무 감정이 없는 사람처럼 건조한데, “지층 밑에 큰 호수가 흐르는 것처럼” 숨겨진 감성이 굉장히 풍부하다는 얘기다.
이름도 없이 그저 ‘우리들’ 중 하나였던 <꽃잎>부터 누가 봐도 설경구의 영화인 <공공의 적>까지 흘러온 그의 행보를 짚어보면, 그가 품은 연기의 수원(水源)은 깊이나 폭을 한마디로 가늠키 어렵다. 때로는 <처녀들의 저녁식사>나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의 봉수처럼 지극히 평범한 일상으로 찰랑이고, 때로는 <송어>의 민수처럼 돌연한 광기로 넘치며, 때로는 <단적비연수>의 적처럼 잡을 수 없는 간절한 욕망의 늪으로 질척거린다. 무엇보다, 한국사회가 떠안긴 화농으로 영혼이 썩어버린 <박하사탕>의 영호를 어떻게 설경구 없이
설경구를 보는 세개의 시선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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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눈동자가, 우리를 사막으로 몰고가네
이런 상상을 해본다. 한국사람 모두가 하얀 종이 한장씩 펴들고 앉아 사람 얼굴을 그리는 거다. 자화상이라고 해도 좋겠다. 그려진 얼굴들을 울트라 슈퍼 컴퓨터에 불러들여 평균을 내보자. 작업의 목적은 성형수술용 골상학 연구가 아니라, 얼굴들이 드러내는 인간 감정의 집단적 초상을 얻는 데 있다. 만약 이 일을 1980년대에 했다면 그 결과는 배우 안성기의 얼굴에, 그리고 지금 해본다면 배우 설경구의 얼굴에 가깝지 않을까.
영화 <공공의 적>을 보았을 때 두 가지 소회가 진하게 들었다. 하나는 ‘한국 영화산업의 파워 1위’로 인정받는 강우석 감독이 재능과 윤리면에서도 1등이 되고 싶어한다는 것, 다른 하나는 설경구가 <박하사탕>에 이어 <공공의 적>을 통해 시대의 얼굴로 등극하고 있다는 경탄이었다.
얼굴은 흔히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시대에 관해 많은 것을 진술한다. 기원전 2500년경에 만들어진 ‘가부좌의
설경구를 보는 세개의 시선 [2] - 김소희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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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시민에서 '공공의 영웅'으로
<박하사탕>의 후속작 <단적비연수>는 설경구 스스로 “천국과 지옥을 오갔다”고 할 만큼 상반되는 평가를 가져다주었다. 그런데 영화는 낯설었지만 설경구는 낯익다. 여기서 그가 맡은 ‘적’은 왕위계승자라는 지위와 부족 안에 전해 내려오는 오랜 주술마저 위반하면서 이룰 수 없는 사랑에 헌신한다. 운명과 세계에 근본적으로 불화하고 완전한 파멸을 향해 내달리는 복합적인 인물이라는 점에서 이 영화가 설경구에게 기대한 역할은 <박하사탕>의 그것과 숨결을 공유한다. 이것은 특정 스타가 확보하고 있는 인격적 이미지(star personality)를 이어가려는 캐스팅 전략의 산물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2000, 감독 박흥식)의 김봉수는 설경구가 연기한 캐릭터 중에 이색적인 인물이다. 말이 느릿느릿해졌고 눈은 순하게 내리깔았으며 말할 때 입술을 앙다물기보다는 조금 앞으로 내민 듯한 것이
설경구를 보는 세개의 시선 [3] - 김소희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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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그를 축복하고 저주했다 <박하사탕>
솔직히, 나는 설경구를 썩 잘 알진 못한다. 지난 6년간 영화 담당 기자였건만 어찌어찌 하다보니 그와는 단 한 차례도 정식 인터뷰를 하지 못했다. 그러나 여러 차례 인터뷰를 하고도 별 인상조차 남기지 못하는 배우들도 숱한 반면, 설경구는 알아갈수록 호감이 더해가는 사람이다. <씨네21> 기자가 <박하사탕>과 관련해 두 번째 인터뷰를 했을 때 기사 첫줄이 “아직도 궁금한 것 있으세요”란 그의 말이었지만, 내겐 열 차례쯤 인터뷰를 하고도 남을 만큼 그에게 묻고 싶은 것들이 많다.
어차피 설경구와 김영호(<박하사탕> 주인공)가 오래도록 서로에게 양화(陽畵)와 음화(陰畵)가 되리란 걸 부정할 순 없다. 설경구에 대한 개인적 인상기에서 <박하사탕> 얘기가 빠질 수도 없다. 그는 <박하사탕> 촬영 초반에 결말부터 찍어야 하는 상황 때문에 이해도 못한 채 연기를 시작했다가 점차 과거로
설경구를 보는 세개의 시선 [4] - 이동진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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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4월- “이창동 감독하고는 무조건 할거예요”
<파이란>으로 깊은 감동을 받아 최민식과 인터뷰를 했다. 인터뷰 직후 ‘우발적으로’ 술잔을 나누던 자리에 송강호와 설경구가 합류했다. 내게 설경구와 최민식이 함께한 그 자리는 절묘했다. <박하사탕>과 <파이란>은 각각 지난해와 지지난해에 내가 본 가장 훌륭한 영화였고, 두 영화에서의 설경구와 최민식은 각각 그해 최고 연기를 보여줬기 때문이다. 설경구는 취한 상태로 휴대폰을 꺼내 이창동 감독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 통화는 마치 연인들의 것인 양 서로에 대한 신뢰와 애정이 흘러 넘쳤다. 이창동 감독도 대종상을 받을 때 거의 아내에게 할 법한 애정표현을 배우들에게 퍼붓는 수상 소감으로 화제가 되지 않았는가. 하긴, <박하사탕>을 통해 서로의 작업에 대해 (‘知音’이란 말을 낳은) 백아와 종자기의 사이가 되어버린 두 사람이니, 그럴 법도 했다.
전화를 끊고 나서 유심히 쳐다보는 내게 그
설경구를 보는 세개의 시선 [5] - 이동진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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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와 사진을 찍었다, 야호!
자랄 때 나는 스타에 열광하지 않았다. 성장과정에 문제가 있었다는 증거다. 떡볶이와 맛탕이 영혼의 양식이던 중학교 시절, 다른 친구들이 어니언스나 윤형주, 송창식에 뿅 가 있을 때, 나는 별것도 아닌 내 영유년의 상처에 시선을 고정시키고는 피학적 나르시시즘에 빠져 있었다. 그러나 거른 끼니는 죽지 않는 이상 어떻게든 때우는 법이다.
삼십대 중반에 영화잡지사 기자라는 명함으로 영화와 때늦은 인연을 맺고, 사십대 초반에 영화잡지사 편집장이라는, 자질에 비해 엄청 때깔나는 자리를 차지하게 되면서, 뒤늦게 ‘열광’이 가져다주는 치유효과를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그 열광은, 처음에는 아마 산전수전에 찌들어온 아줌마답게 얄궂고 얄팍한 호기심의 형태였던 것 같다. 그들은 실존에 덧씌워진 아우라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존재와 아우라의 충돌이 빚어내는 분열을 어떻게 견디고 있을까, 그들은 나보다 얼마나 더 행복할까.
그래서 후배들의 일거리를
설경구를 보는 세개의 시선 [6] - 최보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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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제작비 80억원, 기획기간 2년, 촬영 8개월, 촬영횟수 120회, 사용된 필름 18만자…. 역대 개봉작 중 가장 많은 물량이 투입된 영화라지만, 이런 수치들이 라는 영화를 속속들이 설명하진 못한다. 영화의 모양을 빚고 색깔을 입히고 숨을 불어넣는 역할은 역시 ‘사람들’ 몫이니까. 그중에서 이렇게 영화의 ‘크기’가 강조될수록 운신의 폭이 좁아지는 파트 중 하나가 연기일 것이다. 일찌감치 이 작품에 출연을 결정했던 장동건은 이 영화와 함께 많은 일을 겪었다. 전국 로케에, 일본과 중국 나들이까지 했다. 원없이 총도 쏴봤고, 와중에 병원 응급실에 실려갔다. 프리프로덕션이 길어지면서 뒤늦게 만난 <친구>로 배우로서의 자신감을 얻었는가 하면, 블록버스터에서 배우는 얼마나 드러나고 숨어야 하는지를 가늠하느라 시름에 잠기기도 했다. 외롭던 순간들, 더불어 정겹던 시간들.
2001년 1월30일부터 9월2일까지, 카메라가 돌아가던 8개월 동안의 일들을, 장동건의 시점에서 되돌아본다.
<2009 로스트 메모리즈> [1] - 장동건의 제작기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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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NG를 내다니
[일본어 대사]
누가 그런 얘길 했다. 장동건은 손에서 시나리오를 놓지 않기로 유명하다고. 칭찬인가, 아닌가. 사실 난 시나리오를 손에 들고 있는 경우가 많다. 신인 시절에는 대본에다가 시선 방향까지 적어놨다. 그게 습관이 된 게 아닌지. <…로스트 메모리즈>는 컷 수가 굉장히 많기 때문에 컷을 기억하기 위해서 시나리오를 가지고 있었고 일본어 대사 때문에도 들고 있었다. 우리 영화는 1/3이 일본어 대사로 진행된다. 난 사실 드라마이건 영화이건 NG를 많이 내는 편이 아니다. 연기가 마음에 안 들어서 다르게 표현해본다든가 한 적은 많이 있었지만. 그런데 <…로스트 메모리즈>에서는 엄청난 NG를 냈다. 일본어 대사 때문에. 외우는 것도 문제였지만, 연기할 때도 느낌이 잘 안 살았다.
시나리오를 읽을 때 가장 걱정이 되었던 장면들도 아버지에 대해 더럽고 비열한 변절자라고 하는 것, JBI에서 국장한테 대드는 것, 그리고 전무이사실 장면 등
<2009 로스트 메모리즈> [2] - 장동건의 제작기 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