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든 영웅담, 모든 로맨스의 응축그러나 반지의 상징이라면 진 쿠퍼가 지은 상징사전을 펼쳐놓고 반지가 속해 있는 ‘ㅂ’자를 찾으면 그만일지도 모른다. 하여 이번엔 반지를 우리의 손에서 빼보자. 거기엔 사우론이라는 불타는 눈길뿐 아니라 지구상에 떠돌아다니는 모든 영웅담과 사랑이야기를 농축한 어떤 대서사의 원형이 몸을 숨기고 있다. 예를 들면 죽어가는 프로도를 안고 검은 기사의 무리에게 쫓기며 미친 듯이 질주하는 엘프 아웬의 모습에는 죽어가는 아들을 안고 말을 달리던 마왕의 전설이 겹쳐지고, 원정대의 결성과 내분은 원탁의 기사들에 버금가지 않는가? 혹 갈라드리엘의 유혹에 몸부림치는 전사들은 후세에는 사이렌의 유혹을 받는 오디세이의 전사들이 되었고, 영원히 혼자서 사느니 당신과 함께 죽음을 택하겠다며 엘프의 지위를 버리는 아웬은 ‘베를린 요정의 시’를 쓴 것은 아니던가?그러나 무엇보다도 <반지의 제왕>을 떠받치고 있는 기둥은 바로 서양의 오랜 영웅 신화일 것이다. 하루에 6번씩
신화론으로 본 <반지의 제왕 : 반지 원정대> (2)
-
최근, 올해 제작할 영화의 제작비를 뽑았다. 제작실장이 준 예산서를 보니 순수 제작비가 37억원이었다. 뭐라? 37억원? 특수효과 현란한 SF물도 아닌, 삿갓 쓰고 도포 입고 짚신 신었던 사람들 이야기가 이 많은 돈을 필요로 하는감?문제는 오픈세트를 짓는 것과 ‘보이지 않는’ 컴퓨터그래픽 작업에만 13억원 정도가 책정되어 있었던 것이다. 물론 연기자들의 개런티 상승과, 스탭들의 인건비 인상도 큰 몫을 하긴 했다.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고 책상에 앉아 제작비 예산서를 노려보았다. 100년 전을 살았던, 누구보다 먼저 ‘새로운’ 것에 경도됐던 사람들을 따뜻하고, 유머러스하게 그리고자 하는 이 이야기를 제대로 구현하는 데 규모나 형식에 대해 얼마만큼 투자해야 맞는 것일까? 그 정답은?잠시 혼란스러워졌다. 순수 제작비 60억원이네, 100억원 육박이네 하면서 불과 몇년 전만 해도 제작투자 계약서에 손이 떨리고, 심장이 뛰어 사인도 제대로 못했을 천문학적 숫자에 대해, 이제 어느덧 그 정도쯤
제작비 거품의 시대
-
‘바밤바’나 ‘아맛나’라는 아이스크림 이름을 기억하는가. 그들에게도 호시절이 있었는데 이제 배스킨라빈스나 하겐다즈에 밀려 누구도 거들떠도 안 보는 아이스크림을 우리집 앞 슈퍼에서는 판다. 엊그제는 그 앞을 지나다가 ‘바밤바’나 한개 사갈까 하고 안으로 들어갔더니 돈을 계산하는 탁자 위에 웬 하얀상자 하나가 거꾸로 뒤집어진 채 놓여 있는데 상자가 살살 움직이고 있었다. 이상해서 저 상자가 왜 혼자 움직여요? 했더니 아저씨가 상자를 들어올리는데 내 주먹보다 더 작은 새끼 고양이 한 마리가 실뭉치처럼 엎어져 있었다. 얼마나 작은지 그만 내 입에서 아이구, 안타까운 탄식이 새어나왔다. 지금껏 그보다 더 작은 고양이는 보질 못했다. 다리에 아직 근력도 안 붙어 잘 걷지를 못해 비칠비칠거렸다. 태어난 지 한달이 아직 안 되었단다. 그런데도 틈만 나면 가버리는데 너무 작으니까 찾기가 힘들어 어디에 있는지 얼른 알아보려고 상자를 덮어놓은 거라 했다. 세상의 어린 것들만큼 기성세대에게 거울 역할을
꼭 안아주고 싶은, 두 친구들아
-
우체통 앞에서 이어폰으로 라디오를 들으면서 편지를 하나씩 우체통에 넣고 있던 여자가 갑자기 라디오에서 들려오는 음악소리에 놀라 환호성을 지르며 뛰어간다. 그리곤 한 전자상점에 몇명의 젊은이가 들이닥쳐서는 가게 안의 라디오 볼륨을 높이고는 들려오는 음악소리에 환호성을 지르며 상점 안을 미친 듯 뛰어다니며 외친다. “라디오에서 우리 노래가 나와! 우리 노래가!”미국의 국민배우(?) 톰 행크스의 감독 데뷔작 <댓 씽 유 두>는 그리 뛰어난 작품은 아니다. 그러나 그리 큰 탈없이 쉽게 편히 볼 수 있는 정도다. 흔히 영화보다 영화 속 음악이 더 각인되는 경우가 있는데, <댓 씽 유 두> 또한 그런 영화 중 하나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싱글스>의 어떤 평처럼 영화보는 것보다는 포스터를 보며 영화음악을 듣는 게 더 낫다는 식의 악평을 들을 만한 영화는 결코 아니다.내가 이 영화를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는 예전의 꿈을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다. 음악을 즐겨들었거
민동현의 오! 컬트 <댓 씽 유 두>
-
-
누군가 강준만씨를 어떻게 생각하느냐 물을 때 나는 주저없이 ‘근대화의 기수’라 말한다. 그는 ‘조선일보 문제’를 비롯해 지난 50여년 동안 한국사회의 작동원리가 되다시피해온 이런저런 전근대적인 습속들을 샅샅이 ‘발견’해냄으로써 한국인들이 비로소 근대적인 정신을 마련해가는 계기를 만들었다.강준만씨는 참 오지랖 넓은 사람이다. 그는 한국사회의 거의 모든 지점에 끊임없이 의견을 낸다. 그의 의견은 철저하게 제도 시스템의 테두리를 전제로 한다. 그러나 세상을 바꾸려는 노력에는 여러 차원이 있고 늘 제도 시스템의 테두리가 충분한 건 아니다. 제도 시스템을 벗어나거나 벗어날 수 있는 지점에서 강준만씨의 의견은 종종 무리한 훈수가 되기도 한다. 특히 좌파적 활동과 관련한 그의 의견이 그렇다.근래 그가 좌파에 거듭하는 주문은 이른바 도덕적 순결주의에서 벗어나 시장과 언론 같은 오늘의 제도 시스템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라는 것이다. 얼핏 유익해 보이는 그의 의견은 실은 이치에 닿지 않는 무리한 훈수일
강준만
-
“제 가슴이 그렇게 힘이 있는 줄은 몰랐어요.” <몬스터즈 볼>로 오스카를 넘보고 있고 007 신작에도 배역을 따낸 할 베리가, 돌아보건대 “<스워드피쉬>에서 옷을 벗은 이후로 커리어가 점점 잘 나가고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할 베리는 <스워드피쉬>에서 반라의 누드를 선보였는데, 휴 잭맨을 아지트로 끌어들인 다음날 아침, 상체를 벗은 채 식탁에 앉아 책을 읽는 장면이 그것이었다. “알았다면 더 일찍 벗는 건데 그랬어요. 저는 노출은 잘못된 거라고 배웠거든요. 하지만 이젠 그게 편안해요. 토플리스 장면은 절 한명의 여자가 되게 했고, 또 한명의 아티스트가 되게 했어요”라고 그녀는 말했다.
알았다면 더 일찍 벗을걸
-
“<록키5>는 제 큰 실수였습니다.” 실베스터 스탤론이 <록키5>는 만들지 말았어야 했다고 말했다. “아무런 영감도 메시지도 없는 영화”라면서. 하지만 그는 굽힐 수 없는 의지로, <록키6>를 만들기를 희망하고 있다. “나는 한번 더 하기를 원합니다. 이제는 내가 너무 나이가 많다고 사람들이 여길지라도 말이에요.” 스탤론은 현재 MGM사에 <록키6>의 아이디어를 제안했으나 ‘히트작을 만든다는 보장’이 없어 제작 약속은 받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스탤론은 1976년 <록키> 출연 이후 2, 3, 4편에서 내리 각본·주연·연출을 맡았고, 1990년작인 <록키5>에서는 시나리오와 주연만 맡았다.
“<록키5>보다 잘 만들거걸랑요”
-
“저기요, 윗도리를 입으세요. 저도 팬티를 입고 있을 거거든요.” <프리퀀시>에서 무선통신으로 돌아가신 아버지와 교신을 나누는 아들 역을 맡아 인상적인 연기를 보였던 짐 카비젤이, 신작 <엔젤 아이즈> 촬영 중 상대역 제니퍼 로페즈에게 의외의 요구를 해 화제다. 짐 카비젤이 완전한 노출을 꺼린 이유는 종교적 소신 때문. 가톨릭 신앙과 아내에 대한 신의 때문에 직접적 섹스신을 피한 것이다. “아내에 대한 헌신과 사랑에 어긋나니까요. 또 종교적으로도요. 다른 이들이 다 제 생각에 동의하리라고는 생각 안 해요. 하지만 신의 말씀이 없었다면, 지금 여기서 제가 이 일을 하고 있지 못했을 거예요.”
아내를 위해, 옷은 입은채로!
-
“하루하루 내가 무얼 하나 곰곰이 생각해보니/ 거진 엇비슷한 의식주로 나는 만족하더군/ 은근히 자라난 나의 손톱을 보니/ 난 뭔가 달라져 가고/ 여위어가는 너의 모습을 보니/ 너도 뭔가…/ 꿈을 꾸고 사랑하고 즐거웠던 수많은 날들이/ 항상 아득하게 기억에 남아 멍한 웃음을 짓게 하네.(후략)”(이병우 작사·작곡 <출발>, 어떤날의 <어떤날 2집> 중에서)누군가의 소개로 만났다고만 하기엔, 그와 그녀는 너무 어울리는 한쌍이다. 기타리스트 이병우씨와 환상의 소녀 마리. 거칠고 연약한 일상의 결을 기타의 떨림에 실어나르는 이병우와 어른이 돼버린 한 소년의 성장기, 그립고도 아릿한 기억의 동화를 들려주는 애니메이션 <마리이야기>는, 어쩌면 필연적인 만남이라 할 만큼 닮은 어떤 빛깔을 공유한다. 무감한 일상 속에 잊고 싶지 않았던, 그러나 망각 속에 묻어둔 꿈, 소중한 추억, 혹은 잃어버린 무언가에 대한 은은한 그리움.이를테면 은근히 자라나는 손톱, 어딘지
<마리이야기> 음악, 이병우
-
오는 2월5일 CJ엔터테인먼트는 영화계에선 처음으로 코스닥에 등록된다. 명필름이 그뒤를 이을 전망이고 강제규필름, 스타맥스 등 규모가 큰 영화사들이 다들 코스닥 등록을 준비하고 있는 지금 상황에서 CJ의 첫발은 의미심장해보인다. 영화업이 제조업이나 정보기술(IT)산업 못지않게 수익성과 안정성을 보장받는 분야라는 것을 시장에서 인정받은 셈이다. CJ엔터테인먼트 이강복 대표는 최근 몇달간 정신없이 바빴다는 말로 인사를 대신한다. 코스닥 등록, 튜브엔터테인먼트, 영화사 봄과의 제휴, NABI픽처스에 대한 투자, 2002년 라인업 결정 등 2002년 영화시장에 상당한 비중을 차지할 일들이 잇따랐기 때문이다. 이런 일들이 순조롭게 마무리되고 있기 때문일까? 그의 표정은 무척 밝다. 하긴 튜브와 제휴한 뒤 내놓은 첫 작품 <나쁜 남자>부터 흥행을 하고 있으니 출발이 좋은 2002년이다. CGV라는 막강한 멀티플렉스 체인을 등에 업은 국내 양대 메이저배급사 중 하나, CJ에 올해는 무
영화계 최초 코스닥 등록되는 CJ엔터테인먼트 이강복 대표
-
삼성벤처투자 강제규필름 등 4자 연대, 공동배급망 A라인 설립해한국영화 배급시장이 격변기를 맞고 있다. 지난 2월22일 삼성벤처투자, KTB엔터테인먼트, 에그필름, 강제규필름 등 4자 연대는 공동배급을 위해 A라인이라는 공동배급망을 만든다고 밝혔다. 발표에 따르면 A라인은 올해 한국영화 10여편을 포함, 총 20여편의 영화를 배급할 계획이다.KTB가 투자한 <아 유 레디?> <H> <해적, 디스코왕이 되다> <망치>, 강제규필름의 <오버 더 레인보우> <몽정기> <페이스> <화성으로 간 사나이> <연인> <블루>, 에그필름의 <철없는 아내, 파란만장한 남편, 그리고 태권소녀> <클래식>(가제), 삼성벤처투자의 <원더풀 데이즈> 등 한국영화와 <돈 세이 어 워드> <조이 라이드> <언페이서블> 등 뉴리젠시의 외화들이
배급시장 폭풍전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