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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나 알고 싶었다"<이 세상에서>로 황금곰상 받은 마이클 윈터보텀 인터뷰마이클 윈터보텀은 종종 ‘우리’라는 주어를 사용했다. 그에게 영화는 혼자 만드는 무엇이 아니었다. 대여섯명의 스탭이 미니버스를 타고 움직이며 만들어낸, 파키스탄에서 런던에 이르는 길의 영화, <이 세상에서>는 특히나 그에게 ‘함께’한 그 무엇이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파키스탄으로 이미 실제로 ‘이주’를 한 ‘자말’(실제 이름과 극중 이름이 같다), 그리고 ‘에니얏’과 함께 육로로 런던까지 갔던 길. 거의 다큐에 가까운 픽션인 이 영화에서 윈터보텀은 아름다운 길이 아닌, 아이를 사람을 다치게 하고 죽이는 길을 고발한다. 그래도 그 길을 가야만 하게 아이의 등을 떠미는 현실을 고발한다.전작 <웰컴 투 사라예보>와 이 작품을 비교한다면.→ 근본적으로는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현재 세계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를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웰컴 투 사라
2월15일 폐막한 제53회 베를린국제영화제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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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관심을 갖는 사물이 비슷하다"<어댑테이션>으로 심사위원 대상 받은 스파이크 존즈(감독), 찰리 카우프만(시나리오) 인터뷰야윈 몸과 금발머리에 잘 어울리는 예쁜 정장 차림을 하고 온 스파이크 존즈 감독, 그리고 니콜라스 케이지가 소화하기엔 훨씬 ‘터프’한 외모를 가진 시나리오 작가 찰리 카우프만, 여기에 니콜라스 케이지까지 가세한 <어댑테이션> 기자회견장은, 영화 <어댑테이션>만큼이나 재미있었다. 바로 자신이 쓴 이야기면서도 찰리 카우프만은 자신이 주인공 캐릭터인 이 영화의 작업이 “너무 복잡했다”며 연신 “모른다”는 말을 반복했는데, 그 모습은 영락없는 <어댑테이션>의 ‘찰리’였다. <어댑테이션>은 작가 찰리가 원작을 시나리오로 각색하는 과정을 다차원적으로 그린 복잡하고도 흥미로운 영화. 스파이크 존즈는, 수줍어하는 듯하면서도 곧잘 기자들을 향해 농담을 날리는 기지를 발휘했다. 영화 속 마약에 대한 질문에 가격을 대며 미
2월15일 폐막한 제53회 베를린국제영화제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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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과 死의 외침과 속삭임<무간도> <8마일> <디 아워스>를 보는 세 가지 시선이 영화, 죽입니다, 라고 부르짖는 영화광고들 사이에서, 웅크린 채 조용히 읊조리는 영화들이 있다. 크기와 자극과 속도를 웅변하지 않고, 잠깐 멈춰 귀기울이면 당신과 속깊은 얘기를 나눌 수 있을 거라고 수줍게 손 내미는 영화들이 아직 있다. 아마도 지난 주말은 그런 영화를 기다리는 사람들에겐 최상의 주말이었을 것이다. 늙음과 상실에 관한 비가 <디 아워스>, 비열한 거리의 음악과 지친 삶에서 길어올린 생의 찬가 , 사라진 시대, 사라진 영웅의 뒷모습을 응시하는 만가 <무간도>가 함께 찾아온 까닭이다.여기 세 영화에 대한 세 사람의 에세이를 싣는다. 흥에 겨운 찬사가 아닌 이런 나지막한 독백이 이 영화들에 보내는 우리의 진심어린 박수를 대신하고도 남으리라고 믿는다. - 편집자생이여,김혜리 vermeer@hani.co.kr이 모든 괴로움을 또다시버지니아,
세편의 영화,세편의 에세이 - <디 아워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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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는 쓰고 로라는 읽고 클래리사는 책을 만든다. 처음 내가 쓴 글줄들은 일기였던가, 편지였던가. 그러나 어쩌면 회색노트를 나누어 썼을지도 모르는 첫 ‘독자’는 잊지 않는다. 때로 우리는 사랑의 시작을 날짜와 시간까지 공기와 냄새까지 기억한다. 안녕, 나야. 다가오며 인사하는 그애를 둘러싼 하얀 빛의 부챗살이 충충한 학교 복도를 사라지게 했다. 머릿속이 말갛게 비었을 때에도 멍하니 세수를 하고 창을 여는 나의 입술이 멋대로 그의 이름을 소리내어 나를 놀라게 했다. 희열, 고통, 뭐라 부르건 난생처음 의심을 허락지 않는 감정이 날카로운 칼처럼 명치를 뚫고 등 뒤로 빠져나갔다. 난 평생 너의 시선으로 내 삶을 검열하며 살게 되겠지. 시시때때로 네 비웃음의 환청에 소스라치면서. 그러나 흐른 시간이 세월이라 할 만한 두께가 되었을 때, 다시 만난 친구는 우리가 원한 것들이 아직 하나도 이루어지지 않았는데 얼굴을 풀어헤치고 웃고 있었다. 덩달아 미소지으며 나는 겁이 났다
세편의 영화,세편의 에세이 - <디 아워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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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하루 중 저녁이 가장 아름다운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디 아워스>의 하루해가 저물 무렵 댈러웨이 부인과 로라는 살기로 한다. 버지니아와 리처드는 죽기로 한다(“사제이자 예언자인 시인은 나머지 우리가 삶을 더 귀중하게 생각하도록 만들기 위해 죽어야 한다”고 버지니아는 스스로 예언한다). 현대에 와서 죽음은 어느 시대보다 석연치 않고 불길한 것이 되었다. 죽은 자들은 패배하여 도주한 것일까. 하지만 버지니아는 “삶에서 도망침으로써 평안에 도달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리고 코트 주머니에 돌멩이를 채워넣고 호수로 걸어들어갔다. 그러니까 자살은 삶의 회피일 수 없다. 샐리 포터 감독의 <올란도>에서 버지니아의 분신 올란도였던 틸다 스윈튼은 한 다큐멘터리에서 의구심을 털어놓았다. 현대사회는 진정한 열정은 용인하지 않으면서 지독히 센티멘털한 기묘한 곳이라고. 사랑은 그 안에 거하는 감정이 아니라 동사여야 한다고 틸다 스윈튼은 말했다. 정말 사
세편의 영화,세편의 에세이 - <디 아워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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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정글에는성기완/ 대중음악평론가 creole@hitel.net힙합 카우보이가 산다<8마일>, 어느 경계선의 이름 또는 세상의 법칙을 읊는 랩----------어디서 어떻게 깃든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에미넴의 형형한 푸른 눈에는 적의가 품어져 있다. 그 눈은 그가 8마일 저쪽의 다운타운 출신이 아니라 8마일 이쪽의 슬럼가 출신임을 말해준다. 그는 결코 쉽게 꺾이지 않을 것이다. 그의 눈이 그렇게 말한다. 나는 꺾이지 않아. 그렇다고 해서 그 눈이 공격적인 것은 아니다. 단지 자신을 남들로부터 오랫동안 지켜온 사람의 눈이다. 그의 눈은 그가 부끄러움 없는 시인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그는 결백하다. 적어도 그렇게 믿는다. 그가 부끄러움 없고 떳떳한 것은 누구의 도움도 없이 그 쓰레기 더미 속에서 자기 자신을 지켜왔기 때문이다. 그는 두눈 똑바로 뜨고 정신 바짝 차리고 살아온 것이다. 그의 눈이 그렇게 말한다.----------백인 힙합 스타에 대한 수많은 냉소와 소문에도 불구
세편의 영화,세편의 에세이 - <8 마일>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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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것 가지고는 조금 부족하다. 간과하고 있는 것들도 있고 구조도 조금 덜 힙합적이다. 한마디로 이 영화는 할리우드영화다. 아닌 것 같지만 그렇다. 아마도 에미넴 자신은 이런 말을 싫어하겠지만, 영화 속의 그는 힙합 카우보이이다. 카우보이는 법도 질서도 없는 서부의 척박한 땅에서 자기 자신을 지킨다. 외롭게 투쟁하는 그는 결국 악의 유혹을 떨쳐버리고 정의의 씨앗을 심는다. 에미넴 역시 아무도 그를 지켜주지 않는 게토의 정글에서 외롭게 자기 자신을 지키며 살아간다. 여자친구는 힙합 제작자와 놀아나고 엄마는 아들의 동창놈과 놀아나며 여기저기 폭력이 난무하지만 주인공은 그 모든 손쉬운 유혹들로부터 자기 자신을, 우정을, 힙합의 기본 정신을 지킨다. 그래서 그는 역시 정의의 씨앗을 심는다. 이 영화는 힙합 서부영화다. 서부영화의 코드들이 힙합이라는 하위문화 코드의 옷을 입고 있다. 카우보이영화는 늘 정의의 사나이인 카우보이와 ‘악의 축’의 대표자와의 결투에서 끝난다.
세편의 영화,세편의 에세이 - <8 마일>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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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틀은 사실상 이런 차원에서 이해해야 한다. 그러나 <8마일>은 배틀이 이처럼 힙합의 기원을 암시하도록 해주는 중요한 요소임에도 불구하고 그 ‘대결적’ 요소만을 상업적으로 지나치게 견인해내고 있다.----------어쨌든 이 영화는 삶은 대결이라는 발상에서 출발한다. 맞다. 삶은 대결이다. 8마일 저쪽이든 이쪽이든 미국사회는 정글이다. 힙합은 사랑을 노래하지 않는다. 대신 이 정글에서의 삶의 법칙에 대해 발설한다. 하드코어 힙합신을 호령하는 수많은 하드코어 래퍼들의 혀가 수많은 자기 이야기들을 들려주지만, 그 기본적인 발상을 한마디로 표현하라면 ‘세상은 정글’이라는 개념이다. 힙합의 내용은 늘 ‘8마일’ 저쪽과 이쪽을 가르지만 정작 힙합의 주제는 ‘8마일 저쪽과 이쪽’에서 함께 통용되는 삶의 법칙들이다. 그것이 힙합의 재미난 점이다. 힙합에서는 사실상 주류와 비주류가 없다. 세상을 정글로 파악하는 순간 ‘여기/저기’는 구분되지 않는다. 서로 먹고 먹히는
세편의 영화,세편의 에세이 - <8 마일>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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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시대,김봉석/ 영화평론가 lotusid@hanmail.net비장한 위로<무간도>와 내 영혼의 홍콩누아르, 80년대에 바친다----------<무간도>의 시사가 있다는 말에 극장으로 향했다. 양조위와 유덕화가 나온다는 것 이외에는 아무런 정보도 없었다. 아, 홍콩에서 <영웅>을 누르고 1위를 차지했다는 정도는 있었다. 자리에 앉아 <무간도> 예고편을 먼저 보여줄 때까지 사전 지식이란 그것뿐이었다. 별다른 기대나 호기심도 없었다. 홍콩영화에 대한 설렘은 이미 오래 전에 사라졌다. 왕가위, 서극, 주성치 같은 이름이 결부되지 않는 한 별 관심도 없다. 익숙한 습관처럼 홍콩영화를 보기는 하지만, 볼 때마다 홍콩영화는 늪에서 허우적거리는 느낌이 든다. 씁쓸하다.----------담담하게 <무간도>를 봤다. 경찰학교에 입학한 젊은 날의 유건명과 진영인이 등장한다. 양조위와 유덕화가 아니다. 이제 그들도, 젊은 날의 모습에 대역을 투입
세편의 영화,세편의 에세이 - <무간도>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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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홍콩누아르의 유산을 고스란히 간직한 <무간도>를 보면서, 추억에 빠져들었다. 엣날의 홍콩누아르 한편이 겹치고 있었다. 임영동의 <용호풍운>. 개봉 당시에는 <미스터 갱>이라는 희한한 제목이었다. 87년에 만들어진 <용호풍운>을 처음 만난 것은 불법 비디오를 통해서였다. <영웅본색>으로 홍콩영화가 한창 뜨고 있을 때, <용호풍운>을 만났다. 여기서도 주윤발과 이수현이 나온다. 그런데 <첩혈쌍웅>과 반대다. 이수현은 범죄자이고, 주윤발은 경찰 스파이다. 범죄조직에 침투한 주윤발은 이수현과 친구가 된다. 혹시 <용호풍운>을 본 적이 없다면, 쿠엔틴 타란티노의 <저수지의 개들>을 떠올리면 된다. <저수지의 개들>의 인간관계와 기본적인 플롯은 <용호풍운>과 동일하다. 표절이라고? 물론이다. 타란티노는 <용호풍운>과 스탠리 큐브릭의 <
세편의 영화,세편의 에세이 - <무간도>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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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홍콩누아르를 보러갔다----------<영웅본색>을 처음 본 것은, 동네 3류 극장이 아니라 불법 비디오였다. 아직 극장에서 개봉하기 전이었고, 습관처럼 빌린 비디오의 하나였다. 이소룡과 성룡, 미스터 부 등 홍콩영화가 나올 때마다 즐겨 봤지만 총으로 싸우는 액션영화에 대한 기대는 별로 없었다. 주윤발이 누구인지도 잘 몰랐고, 오우삼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전혀 아니었다. 오우삼의 <영웅본색>은 기존의 어떤 홍콩영화와도 달랐다. 그건 나만의 생각이 아니었다. 한국의 ‘컬트영화’는 홍콩 누아르에서 시작했다는 평가대로, <영웅본색>은 3류 극장에서 재발견되면서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주윤발의 검은 코트와 질겅질겅 성냥개비를 씹고 다니는 사람이 도처에서 목격되었다. 나 역시 기억한다. 대학 주변의 재개봉관에서 <영웅본색>을 다시 보던 잊을 수 없는 기억을. 조그만 소극장을 가득 메운 관객은 누구나 소마에게 공감했다. 아니 여성이라면 장국영
세편의 영화,세편의 에세이 - <무간도>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