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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간 숟가락으로 땅굴을 파서 탈옥한 사내가 있다. 장대비가 쏟아지고 번개가 치는 하늘을 향해 포효하는 진흙투성이의 남자 차승원, 그의 벌린 입에 빗물이 가득 고인다. <쇼생크 탈출>의 팀 로빈스 못지않게 폼을 잡지만, 그 순간 함께 탈옥한 사내가 한마디 한다. “지랄을 해라. 지랄을.” <광복절 특사>는 두 탈옥수, 차승원과 설경구의 이야기다. 알려진 대로 천신만고 끝에 감옥에서 나온 두 남자는 광복절 특별사면 대상자 명단에서 자기 이름을 발견한다. 그들은 감옥으로 돌아가야 하지만 설경구의 바람난 애인 송윤아의 결혼식도 막아야 한다. 그들의 탈옥사실을 감추려는 교도소에서 없어진 죄수를 대신해 교도관들이 감방에 갇혀 있는 동안, 과연 설경구와 차승원은 감옥으로 무사귀환할 것인가이야기 설정에서 드러나듯 <광복절특사>는 물구나무선 탈옥영화다. 탈출이 아니라 감옥으로의 귀환이 절박하다는 사실로부터 시작되는 코미디, 김상진 감독의 영화에서 이처럼 뒤집힌 상황
코미디 감각의 전환기 맞은 김상진 감독(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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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13일 첫 기자시사회를 연 <광복절특사> 제작진은 이튿날 프라자호텔 18층에 방 하나를 빌려놓고 감독, 배우 인터뷰를 릴레이로 진행했다. 김상진 감독에게 이번 영화가 전작들과 많이 달라진 이유를 들어봤다.Q 원안은 한맥영화사 김형준 사장의 것이었고, 작가도 처음엔 박정우 작가가 아니었는데 <광복절특사>는 어떻게 시작된 영화인가.→ 아이디어는 내가 데뷔하기 전에 있던 것이다. 한맥영화사 김형준 사장이 무슨 영화 하고 싶냐고 묻기에 <빠삐용>이나 <아리조나 유괴사건> 같은 영화, 교도소가 나오는 영화를 하고 싶다고 했더니 자기에게 좋은 아이템이 있다고 했다. 탈옥하는 이야기는 많으니까 감옥으로 다시 들어가야 되는 이야기를 해보면 좋지 않겠냐고.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했지만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 감이 안 잡혔고 당시 상황에선 무조건 못 만드는 영화였다. 교도소에서 촬영 협조를 할 리 만무했고 그렇다고 세트를 지을 만한 능력도 없었으니까. 그
코미디 감각의 전환기 맞은 김상진 감독(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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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서 펼쳐진 영화의 성찬에 동참할 시간을 미처 내지 못해 갈증이 났다면, 짧지만 꽤 실속있는 또 하나의 영화제로 목을 축이는 건 어떨까. 오는 11월29일부터 12월2일까지 서울 삼성동 메가박스 코엑스에서는 유럽영화의 단출한 잔치가 열린다. “영화보다 더 재미있는 영화제”라는 초대장을 내민 ‘제3회 서울유럽영화-메가필름페스티벌’이다. 지난 2000년, 최신 유럽 화제작을 소개하면서 할리우드 중심의 시장구조에서 국내 관객에게 다채로운 영화체험을 제공하겠다는 야심찬 의도로 기획된 이 영화제는 올해 3회를 맞아 14개국 28편의 영화와 함께 다시 축제를 준비하고 있다. 개막작은 <오픈 유어 아이즈> <디 아더스>의 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를 통해 낯을 익힌 스페인산 스릴러로, 타인의 행운까지 훔칠 만큼 운을 타고난 이들의 목숨을 건 기이한 도박을 그린 <인택토>. 개막의 축포가 좀 약하게 느껴진다면 장 뤽 고다르,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등 거장들의 옴니버스
제3회 서울유럽영화-메가필름페스티벌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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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택토 Intacto개막작/ 후안 카를로스 프레스나딜로/ 스페인/ 2001년/ 108분행운이란 누구를 골라 어떻게 내려지는 것일까 덧붙여 무엇만이 그 예정된 ‘선물’을 진정으로 값지게 할 수 있는 것인가 <인택토>는 행운을 소유한 인물들이 벌이는 불운한 내기를 그린다. 여기서의 내기란, 나무들이 빽빽하게 들어찬 숲 속에서 눈을 가리고 무작정 앞으로 달려나가는 사람 중 누가 부딪혀 쓰러지지 않은 채 마지막까지 살아남는가와 같은 무모한 믿음이다. 반복되면서 배가되는 그 무모함의 내기 속에서 끝내 대답은 묵시록적인 사랑의 계율로 되돌아온다. 각자 믿을 수 없을 만큼의 행운을 지닌 인물들, 말하자면 손끝을 스치기만 해도 남의 행운을 앗아올 수 있는 페데리코와 그를 지배할 만큼의 또 다른 행운을 소유한 샘, 그리고 추락한 비행기의 단 한명의 생존자 산츠, 가족을 모두 잃은 교통사고에도 혼자 살아 남을 수 있었던 경찰관 사라. 이들이 한자리에서 만나 서로의 행운에 기대어 그 진가
제3회 서울유럽영화-메가필름페스티벌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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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교의 병실 La Chambre Des Officiers핫 브레이커즈/ 프랑수아 뒤페이롱/ 프랑스/ 2001년/ 135분1차대전 초반, 엔지니어 출신인 젊은 장교 아드리앙은 폭격으로 얼굴의 절반이 날아가다시피하는 부상을 입는다. 말을 할 수도, 먹을 수도 없는 끔찍한 고통 속에 파리의 장교들의 병실로 옮겨진 아드리앙. 하지만 육체적인 통증보다 더욱 끔찍한 것은 괴물같이 흉측한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들이다. 위안이라곤 어머니처럼 돌봐주는 간호사 아나이스와 자신처럼 얼굴에 전쟁의 흉포한 낙인이 찍힌 동료 장교들, 그리고 부상 전에 하룻밤의 사랑을 나눈 여인 클레망스에 대한 환상뿐. 가족들에게조차 쉽게 받아들여지지 못하는 그들이지만, 그래도 삶은 계속된다. 단편영화로 세자르영화상을 수상하며 90년대부터 장편영화를 만들어온 프랑수아 뒤페이롱은 프랑스의 차세대 감독. 전쟁에 대한 직접적인 묘사는 별로 없지만, 기괴하게 일그러진 육체, 외부와 유리된 채 노란톤의 병실 공간에서 심신의 상처를
제3회 서울유럽영화-메가필름페스티벌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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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광수, 여균동, 임순례, 박찬욱, 박진표, 정재은. 세대도, 영화 색깔도 다른 이 여섯 감독이 함께 영화를 만든다. 10~20분 분량으로 각자 찍어 옴니버스 형식으로 한데 묶는 이 프로젝트의 공통주제는 뜻밖에도 ‘차별’이다. 국가인권위원회(위원장 김창국, 이하 인권위)가 인권운동의 일환으로 추진하는 프로젝트이다. 메세지 강한 영화가 환영받지 못하고 정치도 인기 없는 요즘에 보기드문 기획이다. 그 취지의 훌륭함에 공감해 참여했지만, 이 연출력있는 감독들은 메세지만 직설적으로 실어나르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저마다 소재에 맞는 형식을 찾고, 그 안에 함의 깊은 역설과 영화적 재미를 담고자 애쓰고 있다.이 프로젝트의 시작은 1991년 겨울로 거슬러 올라간다.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이하 민가협)에는 비디오테이프 한개가 전달됐다. <망각에 반대하며>(CONTRE L’OUBLI)라는 딱지를 단 국제 앰네스티 30주년을 기념 영상물이었다. 장 뤽 고다르, 알랭 레네, 샹탈 애커먼,
여섯감독의 인권영화 프로젝트(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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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네거리를 뇌성마비 중증장애인이 ‘횡단’한다. ‘대륙횡단’이라는 말이 과장이 아니다. 이쪽에서 저쪽으로, 예를 들어 동화면세점쪽에서 교보문고쪽으로 건너기 위해서 그는 얼마나 많은 위험에 노출될지 모른다. 그가 지하도를 이용한다는 생각은 버려라. 리프트라곤 하나도 없는 지하도로 건너는 것은 아예 불가능해, 그는 그냥 차 쌩쌩 다니는 지상도로를 목발에 의지해 걸어 건넌다. <대륙횡단>의 마지막 에피소드 <대륙횡단>의 장면이다.여균동 감독의 <대륙횡단>은 장애인을 테마로 한 인권영화다. “어렸을 때 소아마비에 걸렸다가 우연히 나았다”는 여균동 감독은, 자신의 경험에다가 언젠가 광화문 네거리를 술에 취해 그냥 지상으로 건너던 선배의 이미지가 떠올라 어렵지 않게 이 주제를 선택했다고 한다. 하지만 막상 이런 이야기를 하겠다고 했을 때 ‘윤리적’인 문제에 봉착했다. “처음엔 아무런 장치없이 실제로 횡단을 하게 하려고 했다. 그런데 장애인에 관한 영상물을 찍
여섯감독의 인권영화 프로젝트(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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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해자가 누구인지 분명한 억압이 그렇지 않은 억압보다 낫다고 말하면 무리일까.70년대 지식인과 학생을 감옥으로 보낸 건 박정희 정권이었고,노동자들을 최저생활로 내몬 건 재벌이었다.고문당한 피의자에게는 고문경관이 있고,매맞는 아내에게는 폭력적인 남편이 있다.그러나 네팔에서 한국으로 일하러 왔다가 행려병자로 몰려 6년이 넘도록 정신병원에 사실상 ‘감금’돼 있어야 했던 찬드라 꾸마리 구릉에게,가해자가 누구인지 딱 꼬집어 말하기가 힘들다.그녀의 억울한 사연이 밝혀진 뒤에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아는 이 없고 말도 안 통하는 외지의 정신병원에서 강제투약을 받으며 지낸 그 세월이 어떠했을까.박찬욱 감독이 연출하는 <믿거나 말거나,찬드라의 경우>(가제)는 92년 36살의 나이로 한국에 왔던 네팔 여인 찬드라의 실제 사건을 다룬 실화다.박 감독은 지난 9월 이 사건을 다루겠다고 마음먹은 뒤 찬드라의 공장 동료,경찰,정신병원 의사 등 사건 관련자들을 만났다. “경찰은 찬드라를 당연히 한국
여섯감독의 인권영화 프로젝트(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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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범죄 사범의 인터넷 신상공개 제도를 두고 얼마 전까지 찬반논란이 격렬했고 지금도 불씨가 살아 있다. 성범죄 사범도 인간인데 한번 형사처벌 받은 걸 다시 공개하는 건 일사부재리나 사생활보호의 원칙에 위배된다는 말이 가능한 반면, 한국 사회에 유달리 성범죄가 많고 가부장적 질서가 그런 현실을 자꾸 감추려 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찬반이 맞선다. 절차와 방식의 민주성을 중시하느냐, 문제의 해결을 중시하느냐는 태도의 차이로 인해 평행선을 달릴 수도 있다. 겁많은 남자 같으면 입닫고 있는 게 상책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예민한 사안이기도 하다.<고양이를 부탁해>의 정재은 감독 같으면 어느 쪽일까. <그 남자의 사정(事情)>은 신상이 공개된 채로 사는 성범죄 사범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렇다면 정 감독이 신상공개 제도에 대해 비판은 아니어도 최소한 회의를 가진 쪽일 것이라고 유추해볼 수 있다. “인권 하면 인간의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는 소수자들을 떠올린다. 그러면서 범죄인
여섯감독의 인권영화 프로젝트(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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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공화국, 쇼킹 코리아’에서 벌어지는 해프닝은 낯뜨겁다. 한달에 70만원이 넘는 수강료를 내야 함에도, 서울 강남의 유아 대상 영어학원은 불야성이다. 지방에서 올라와 대기 순번을 기다리며 학원 근처 숙박집을 전전하는 부모들도 있다. 코흘리개 아이의 영어 연수를 위해 집을 팔아치우는 부모 또한 부지기수다. 심지어 영어의 ‘L’과 ‘R’발음을 분별해서 발음하지 못한다면서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를 수술대 위에 눕히기까지 한다. 이른바 ‘설소대(舌小帶) 성형술’이다. 혀가 짧아 정확한 발음이 어려운 언어 장애자들을 위해 혀 아래 설소대를 자르는 이 희귀 수술은, 국내에선 ‘아메리칸’ 구강구조를 물려주지 못한 부유층의 눈물겨운 자식 사랑으로 변질된 지 오래다. 과도한 애정은, 그러나 ‘탈’을 일으키는 법. 부모의 왜곡된 욕심에 휘둘린 아이들은 탈모증에 시달리고, 실어증을 앓고, 정신과를 들락거린다. 박진표 감독의 <오디션>은 “영어 못하면 죽는다”는 코리안 생존법칙 아래 빚어진
여섯감독의 인권영화 프로젝트(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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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보다 임순례 감독의 캐릭터들은 서로 친연성(親緣性)이 있어 보인다. 출구없이 방황하는 <세친구>의 아이들과 출구 찾아 방랑하는 밴드 <와이키키 브라더스>의 청년들은 꼭 닮았다. 어디에다 자신의 처지를 하소연할 데 없이 고개 숙인 채 음지와 골방을 찾아 묵묵히 떠도는 이들. 유대라고 불러도 좋을 이들의 유사성은 실상 사회에 의해 일찌감치 발언 기회를 빼앗겨버렸다는 공통점에서 기인한다. 그의 영화가 굳이 사회에 대한 불만을 직접적으로 털어놓진 않지만.<무제>의 여고생은 어떨까 처한 상황은 앞선 이들 못지않다. 상업고등학교 졸업반인 열여덟살 그녀. 취직이 코앞에 닥쳤지만, 취업은 그림의 떡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무엇보다 그녀는 못생겼다. 면접관의 평가 항목에는 슬그머니 빠져 있지만, 가장 높은 점수가 배당된 외모라는 항목을 그녀는 만족시키지 못한다. 그래서 번번이 미역국을 먹는다. <무제>는 사회가 던져놓은 외모지상주의라는 그물에 포획되어
여섯감독의 인권영화 프로젝트(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