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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조금 다르게 보기고다르에 대한 생각들, 아무리 그를 부추기고 위대하다 말을 해도 그의 영화를 보면서, 그에 대해 읽으면서, 그에 대한 비평가들의 말을 들으면서, 의아스러울 것이며, 모호할 것이다. 그래서 대체로 두 가지의 결과지어지는 태도들: 그래도 다들 중요하다 말하니까 졸립고 건조하더라도 눈을 부릅뜨고 뇌를 신경줄이 끊어져라 긴장하면서 쳐다본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은근히 가슴속에는 울화도 있다. 울화, 혹, 내가 잘못되었더라도 고집스럽게 말하고 싶은 것. 이거 전부 사기가 아닌가 예술은 느껴지는 것일 텐데 언제부터 이렇게 머리로 하는 것이 되었는가 부질없어짐. 은근한 기분나쁨.이런 생각은 사실 전혀 틀린 것이 아니다. 우리는 지나치게 고다르를 높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의 영화는 정말로 단순하며, 거칠고, 생경하고, 산만하며, 장난 같다. 총을 맞고 뛰어가는 그 벨몽도의 우스꽝스런 모습이라니…(<네 멋대로 해라>) 푸른 눈의 우수, 알랭 들롱의 전혀 그답지 않
영화제 열리는 장 뤽 고다르,그 여백의 영화세계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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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싸움, 끝나지 않을 싸움고다르야말로 영화를 재발명한다. 현실에의 눈, 극들 사이의 가공된 긴장과 포장 대신에, 투박한 실제를 집어넣는 것. 샹젤리제는 아름답지 않다. 거기에 있을 뿐이다. 고다르는 카메라한테서 삶을 해석하고 만들어내는 눈을 제거하고 그에게 대신 현실의 이완된 느슨함, 느닷없음, 모호함, 거칠음을 포착하는 눈을 제공한다. 그래서, 바로 이 점에서 모든 것이 고다르로부터 달라진다고 말을 하는 것이다. 이것은 따라서 위대한 작품이 아니다. 감독을 위대하다고 할 때의 그 위대함은 고다르와는 전연 상관없다. 그는 영화라는 도구의 두 번째 발명가이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여기서 시작한다. 그는 작품이 없다. 우리가 흔히 다른 것들에 붙이는 이름으로서의 작품이란 그에게는 없다. 그는 그런 영화를 만드는 것이 아니다. 영화가 이야기이고, 의미이며, 텍스트라면, 그는 그 경계 바깥에 있다. 완전히 바깥 말이다. 그는 그 영화를 하는 것이 아니다. 그가 하는 것은 ‘영화’라는 도
영화제 열리는 장 뤽 고다르,그 여백의 영화세계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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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멋대로 해라 A Bout de Souffle1960년 ┃ 90분 ┃ 출연 장 폴 벨몽도, 진 세버그1962년의 어느 인터뷰에서 고다르는 자신의 장편 데뷔작 <네 멋대로 해라>가 애초에 자기가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영화가 되었다며 이렇게 말한 바 있다. “나는 리처드 콰인의 <푸쉬 오버>(1954)와 같은 리얼리즘적인 영화를 만들었다고 생각했으나 그렇게 되지 않았다.” 프랑수아 트뤼포가 제공해준 이야기를 가지고 고다르가 만들어보고자 했던 것은 다분히 (고전적) 할리우드적인 의미에서의 리얼리즘적인 갱스터영화였던 것이다. 그러나 고다르 자신의 개인적인 기질이나 제작환경 등은 그걸 허용하지 않았다. 결국 그가 만들어낸 영화는 대략의 스토리라인만 전통적인 장르영화에 속한 것일 뿐 그것을 이야기하는 방식에서는 철저히 전통을 거스르는 것이었다. 전체적인 분위기나 영화를 구성하는 방식에서 아나키스트적이었던 이 영화는 개봉 당시 쏟아졌던 비판들을 돌파하고서 영화사의 새로운
영화제 열리는 장 뤽 고다르,그 여백의 영화세계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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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빌 Alphaville, une Strange Aventure de Lemmy Caution1965년 ┃ 100분 ┃ 출연 에디 콩스탕틴, 안나 카리나로베르토 로셀리니, 피에르 파올로 파졸리니 등이 참여한 옴니버스영화 <로고팍>(1962)에 포함된 고다르의 영화는 20분짜리 <신세계>였다. 이것은 근처에서 일어난 원자폭탄 폭발의 여파로 인해 갑자기 완전히 바뀌어진 세계가 된 파리에 온 한 남자의 이야기를 다룬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미래세계를 다룬 고다르식의 SF영화였던 셈인데, 이 장르에 대한 고다르의 탐사는 3년쯤 뒤 <알파빌>에서 완전한 형태로 이루어지게 된다. 원제가 <알파빌, 레미 코숑의 이상한 모험>인 이 영화는 비밀 정보원 레미 코숑이 알파 60이라는 컴퓨터가 지배하는 낯선 도시 알파빌에서 벌이는 말 그대로 이상한 모험을 다룬다. SF영화의 세계에 탐정영화와 로맨스영화의 틀을 겹쳐놓은 <알파빌>은 분명 독재사회
영화제 열리는 장 뤽 고다르,그 여백의 영화세계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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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Le Week-end1967년 ┃ 105분 ┃ 출연 미레유 다르크, 장 얀파리에 살고 있는 탐욕적인 부부 롤랑과 코린은 시골에 있는 코린의 부모를 만나기 위해 주말에 자동차를 끌고 나간다. 그런데 이들을 맞는 것은 끔찍한 교통 정체와 그것보다 훨씬 더 나쁜 혁명가들이다. 영화 속의 인물인 롤랑이 이 영화를 만든 감독의 자신들에 대한 악의를 알아챈 듯 "불쾌한 영화 같으니라구. 우리가 만나는 건 죄다 미친 사람들이잖아”라고 말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우주에서 길을 잃은 영화>와 <쓰레기더미에서 발견한 영화>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주말>은 이 주인공들 같은 인물, 즉 탐욕스럽고 불쾌하기 짝이 없는 부르주아들에 대한 가차없는 비판으로서 만들어진 영화다. 이 명백히 정치적인 영화에는 분석 같은 것도 없다. 고다르는 부조리한 유머와 섬뜩한 폭력을 융합해 부르주아들과 소비사회를 무참하게 공격한다. 한편 <주말>은 고다르 특유의 실험정신이 돋
영화제 열리는 장 뤽 고다르,그 여백의 영화세계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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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처마 밑에서 짤랑이는 풍경 소리, 자줏빛 꽃 화분을 든 손에서 힘없이 걸음을 옮기는 발로 미끄러지는 카메라. 낮은 담 옆을 걸으며 집안을 들여다보는 소년의 눈에 툇마루의 고무신이 들어온다. 고무신의 주인인 소녀가 자줏빛 꽃잎을 띄운 목욕물에 몸을 담그고, 화사한 예복으로 갈아입으며 내키지 않는 혼례를 준비하는 동안, 소년은 안타깝게 입술을 깨물 뿐. 혼례 행렬과 가마 안의 소녀, 그뒤를 쫓는 소년의 모습이 교차되는 영상 위로, “못된 못된 나를 잊어주기를” 하는 연인들의 애잔한 이별사가 흐른다. 결국 신방 앞에 놓인 소녀의 고무신이 비에 젖지 않도록 연잎을 덮어주고 돌아설 수밖에 없었던 소년의 사랑 이야기, 이승환의 뮤직비디오 <당부>다.99년에 발표된 이승환의 <당부>는 지난 4∼5년 사이 국내 뮤직비디오의 주류로 자리잡은 ‘드라마타이즈(dramatize) 뮤직비디오’의 한 정점으로 기억될 법한 작품. 중국 전통 음악풍의 선율에 어울리는 시대극의 고풍스
뮤직비디오계의 스타감독 차은택의 모든 것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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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호장룡>의 장첸이 김현주, 이범수와 주연한 <벌써 1년>은 복서인 두 남자와 그들의 매니저 역인 김현주의 삼각관계를 축으로 한다. 이범수가 경기에서 비참하게 패하고 사라진 자리에 새로 들어온 복서 장첸과 그를 보면서 이범수의 그림자를 지우지 못하는 김현주. 로드웍을 하고, 함께 지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서로 다가갈 듯 다가가지 못하는 두 남녀의 미묘한 심리전은 미완으로 남았지만, 곧 발매될 브라운 아이즈의 2집 <점점>의 뮤직비디오로 이어질 예정이다. 왁스의 <화장을 고치고>는 우발적으로 사람을 죽인 신은경과 그 대신 감옥에 간 김영호의 기다림을 담은 뮤직비디오. “내가 만든 뮤직비디오를 쫙 늘어놓고 보면, 정말 보편적인 스토리다. 어디선가 본 듯한 이미지”라는 그의 말대로, 다수의 ‘드라마타이즈 뮤직비디오’는 어디선가 읽거나 들은 듯한 내러티브를 갖고 있다.“박명천 같은 감독은 지금도 늘 새로운 것을 좋아하고, 대중을 놓고 타협하려고
뮤직비디오계의 스타감독 차은택의 모든 것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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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은택이 꼽은 `나의 뮤비 베스트7`,그리고 뒷이야기<당부> 이승환 ┃ 1999년혼례를 앞둔 소녀와 그 소녀를 연모하는 소년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이야기. “시놉시스를 쓰곤 광고로 치면 ‘유레카!’란 느낌이었는데, 여기저기 보여주니까 반응이 시큰둥했다. 목욕하는 여인, 풀을 뜯고 있는 소년, 어디에 연꽃이 하나 올려져 있다, 뭐 그런 이미지들이 글로는 다 한두줄이니까. 사흘을 꼬박 새우면서 촬영 막판, 새벽이 됐을 때는 제발 끝나게 해달라고 빌 만큼 힘들게 찍었다. 어떻게 찍으면 어떤 그림이 나온다는 것도 모르던 때, 잘 나왔다면 우연이다.”<그대는 모릅니다> 이승환 ┃ 1999년진심을 몰라주는 연인처럼 무심한 표정을 한 쇼윈도 안의 마네킹을 바라보는 그녀. 부랑자처럼 피폐한 심신으로 배회하다가 결국 그 마네킹을 끌고 텅 빈 놀이공원의 불빛 아래 둘만의 파티를 벌인다. 물 속을 유영하는 듯한 이미지가 현실과 교차되면서, 환상 속에서 사랑을 이루는 인물의 심리
뮤직비디오계의 스타감독 차은택의 모든 것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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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은택을 키운 광고 5대우자동차 라노스-안정환 편 ┃ 1999년달리는 안정환과 달리는 라노스의 이미지를 교차편집한 영상으로 ‘젊은 차’의 컨셉을 부각시킨 광고. 도시 속을 달리고, 축구공을 드리블하는 안정환의 움직임과 자유롭게 회전하는 앵글에 담긴 라노스의 질주가 역동적인 에너지를 드러내고 있다.야후! 쇼핑-DDR편, 드럼편 ┃ 2000년인터넷 야후!쇼핑몰에 접속해 DDR을 주문하더니 신명나는 댄스 파티를 벌이는 할아버지와 할머니. 드럼편에서는 다듬이질을 하던 할머니가 피로한 듯 어깨를 주무르자 할아버지가 드럼을 주문해 어깨를 풀게 한다. 나이에 대한 고정관념을 경쾌하게 비튼 발상이 돋보이는 광고.SONY 핸디캠-운동회편, 수족관편 ┃ 2001년거실에서 엄마와 미리 달리기를 연습할 만큼 들뜬 아들의 첫 운동회날, ‘평생 간직할 만한 기억’을 핸디캠에 담는 아빠. 수족관 안의 노란 열대어와 바깥의 흰 고양이를 차례로 카메라에 담는 남자. 각각 언제든 중요한 순간을 함께할 수 있는
뮤직비디오계의 스타감독 차은택의 모든 것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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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세대의 배신을 넘어, 지하전영은 전진한다˝˝정성일, 지아장커에게 중국 영화의 현재를 묻다같은 이야기를 두번 하는 것은 지루한 일이지만, 같은 영화를 두번 보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왜냐하면 영화는 두 번째 볼 때 발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올해 5월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온 지아장커의 세 번째 영화 <임소요>를 보는 순간 이 영화가 올해 내가 본 영화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영화 중 하나가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그때의 나의 흥분은 <씨네21> 355호 77쪽에 실려 있다). 이 영화는 데이비드 크로넨버그의 <스파이더>, 아키 카우리스마키의 <과거가 없는 남자>, 엘리아 슐레이만의 <신의 간섭>, 마뇰 드 올리베이라의 <불확실성의 원리>,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그녀에게>, 아팟차퉁 위라세타쿤의 <친애하는 당신>과 함께 올해의 영화라고 부를 만하다. 칸은 그동안 소문이 나돌았던 첸카이거의 &
정성일,지아장커를 만나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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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일: 오늘은 먼저 당신의 세 번째 영화 <임소요>(任逍遙: Unknown Pleasures)에 관해서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이야기는 2년 전으로 거슬러올라갑니다. 당신은 내게 두 번째 영화 <플랫폼>을 만들고 난 직후에 준비했었던 영화는 (두보의 시구를 옮긴) <눈 속을 걸으며 매화를 찾아서>(雪中探梅)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만난 영화는 <임소요>입니다. 제목만 바뀐 것입니까, 아니면 새로운 영화를 만든 것입니까지아장커: 완전히 다른 영화입니다. 저도 <임소요>를 찍을 줄은 생각도 못했습니다. 그러니까 <플랫폼> 직후 디지털 다큐멘터리 <공공장소>를 두 번째 전주영화제 디지털 ‘삼인삼색’ 프로젝트의 하나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전주에서 돌아온 뒤로 계속 ‘디지털 삼인삼색’에서 찍었던 따퉁(大同)이란 도시를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거기로 다시 돌아가서 이 영화를 찍었습니다. 아마도 디지털
정성일,지아장커를 만나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