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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80년대 초반 홍콩 뉴웨이브에서 핵심적인 인물이었고, 당신 소유의 제작사 필름 워크숍(電影工作室)을 세우기도 했다. 그 당시 홍콩의 분위기는 어땠는가?
=1984년 이전의 홍콩에선 영화 만드는 일은 그리 존경받지 못했다. 그 시절엔 극장 상영 프로그램을 채우기 위해 충분한 양의 영화를 생산하는 일만이 중요했다. 액션영화 몇편, 코미디영화 몇편. 이런 식이었다. 나는 전영공작실이 이전에 수백번이나 봤을 영화를 새롭게 통찰해 제작하는 회사가 되기를 바랬다. 갱영화를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본다거나, 무협영화를 통해 정치적 희생양을 다시 생각하는 것처럼 말이다. 지금 돌이켜보니 정말 로맨틱한 발상이었다.
-당신이 액션을 구성하는 방식은, 특히 최근의 방식은 정말 흥미롭다. 아주 짧은 순간에 불과하지만 한치도 어긋남이 없고 아름답기까지 하다.
=그런 장면들을 찍기 위해선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 무작정 들어가 카메라를 돌릴 수는 없다. <순류역류>를 예로 들어보자. 이
서극과 <촉산전> [4] - 서극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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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감독을 꿈꾸던 홍콩 젊은이들은 일자리를 구하고 경력을 쌓기 위해 TV방송사로 몰려들었다. 골든하베스트 등 몇몇 대형 스튜디오가 장악하고 있던 당시 홍콩영화계는 막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신선한 재능을 받아들일 여유나 의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 중에는 1979년, 지루한 공기를 깨뜨리며 홍콩 뉴웨이브의 시작을 선언할 허안화와 엄호, 우인태 등이 포함돼 있었고, 누구보다도 서극이 있었다.
서극은 오우삼처럼 한 장르를 끝까지 밀고나간 적도 없고 허안화처럼 진지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뉴웨이브의 부산물처럼 취급받을 때가 많았다. 그러나 감독으로서 그의 능력과는 별개로, 자신의 영화사 전영공작실을 통해 그가 수립한 시스템은 동세대 영화인들에게 좀처럼 만나기 힘든 기회를 줬다. 지금까지 그와 함께한 이름들은 그대로 홍콩영화의 전성기며, 지금 새로운 출구를 찾고 있는 홍콩영화의 몸부림이다. 서극이 좀더 젊고 영화적으로 세련된 관객을 극장으로 끌어들이는 선구자였다고 평한 영화서적 &
서극과 <촉산전> [5] - 서극의 영화친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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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상수만큼 작품마다 자기만의 선명한 미학적 서명을 새기는 감독은 정말 드물다. 그건 그의 작품 중에서 엉뚱한 유머가 가장 풍부한 <생활의 발견>에서도 변함없다. 영화라는 형식의 한계와 그는 여전히 싸우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홍상수는 조금씩 움직인다. <생활의 발견>에서 그 움직임은 더 분명해졌다. 그의 움직임은 패턴화할 수 있는 변모의 길 중 하나가 아니다.
그는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생활의 발견>을 보고, 홍상수의 길을 되짚어본 두 평자의 글을 싣는다. 논쟁을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두 평자의 의견은 결국 상반된 방향으로 간다. 심영섭은 홍상수에게 작가주의적 강박의 혐의를 벗겨내고 그의 영화가 더욱 깊어졌다고 말한다. 반면 김소희는 그가 사회적 역사적 맥락으로부터 더 멀어짐으로써 더욱 사소화되었다고 본다.
<생활의 발견>에서 홍상수는 더 유머러스해졌지만, 동시에 훨씬 더 큰 쟁점을 낳았다.
솔직히 고백하면 이제 <
심영섭의 <생활의 발견>론 : `오인된 홍상수`를 벗어던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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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홍상수 감독의 지난 작품에 대한 공공연한 비판자였다. 이것을 과거형으로 기술하는 것은 이제부터 찬반 호오의 경계선 저쪽으로 이동하게 되었다는 식의 표명이라기보다는 그동안 홍상수의 영화세계에 대해 나 자신으로부터의 일방적인 오인이 있었던 게 아닌지 반추해보기 위한 것이다. 만약 나에게 오인이 있었다면(그건 거의 틀림없어 보인다), 오인된 세계를 구성한 핵심 정보는 홍상수의 데뷔작인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1996)로부터 왔다.
돌이켜보건대 그때는 80년대의 격렬한 정치투쟁이 사실상 막을 내리고 전장의 포연처럼 거리에 먼지만 자욱하던 시절로 기억된다. 홍상수의 영화가 펼쳐지는 것은 바로 이 풍경 속에서다. ‘돼지’를 쫓아 격렬하게 편 갈라 싸우던 사람들이 다들 자기만의 공간으로 되돌아가고, 갈 바를 잃은 돼지가 이리저리 헤매다 우물에 빠진다. 소란이 사라지고 난 먼지 속에서 가만가만 나타난 홍상수가 우물 안을 무연히 들여다본다. 거기에 아직 남아 있는 몇겹의 동그
김소희의 <생활의 발견>론 : 더욱 홍상수답게, 더욱 사소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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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에 도전하는 산악인의 이야기를 영화로 찍는 일은, 그 자체가 험난한 산을 오르는 과정이었다. 고영민 감독의 . 이 영화는 작년 제27회 독립단편영화제에서 최우수상의 영광을 누렸으나, 완성되기까지 2년의 제작기간은 눈밭을 헤치고 얼음비탈에 미끄러지는 춥고 굴곡진 길이었다. 영화 속 등반이 세계 최고봉인 에베레스트보다 1m 더 높은 ‘가상의’ 목표를 향하는 반면, 영화 만들기는 현실 여건의 장애물들과 부대끼며 이룬 싸움과 타협의 결과인 것이다. 감독이 “무전여행 같았다”고 말하는 그 배고픈 여정의 대차대조표까지 들추며 지나온 길을 낱낱이 복기하는 것은 잔인한 일이 될지도 모르나, 이 땅에서 단편영화를 만드는 이들이 넘고있는 봉우리의 굴곡진 지형도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있다. 편집자콧물 방울이 턱까지 흐르기도 전에 얼어붙을 것 같은 혹한의 설산. 매서운 바람 속을 뚫고 위태로운 발걸음을 옮기는 등반대원 앞에, 먼저 출발한 동료가 고지를 눈앞에 두고 싸늘하게 쓰러
고영민 감독의 고군분투 영화찍기로 본 독립영화의 경제학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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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관계로 땜빵”하기고영민 감독은 한국으로 돌아와 끙끙 앓았다. 어렵게 마련한 제작비의 태반을 날린 데다 스탭들 고생은 고생대로 시켰다는 자책이 컸던 것. 수중에 남은 돈도 별로 없어 모든 걸 포기하려는데, 주변의 누군가가 그랬다. “훔쳐서라도 찍으라”고. 여기서 주저앉으면 이 작품이 평생 가슴에 응어리로 남아 홧병날 거라고. 그래서 1200만원의 빚을 내고 팀을 거의 새로 짜다시피하여 떠난 것이 2001년 4월의 재촬영이다.그러나 두번째 로케이션에서도 뜻대로 다 찍지 못했고, 빠듯한 예산으로 후반작업할 것을 뻔히 앞둔 마음은 착잡했다. 물질적으로 더이상 솟아날 구멍을 찾을 수 없던 이때, 그에게 희망이 되어준 것은 ‘사람’의 힘이다. 배우나 스탭들도 개런티 없이 뭉쳐 고생한 사람들이지만, 영화아카데미 후배·동기들에게 부탁해 학교 편집실을 이용하거나 작업비용을 깎는 식으로 다시 한번 도움을 받았다. 그야말로 돈이 비는 구멍을 인간관계로 땜빵했던 것. 부산영화제 상영날 아침에나마
고영민 감독의 고군분투 영화찍기로 본 독립영화의 경제학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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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고영민 감독은 두번에 걸쳐 혜택을 받은 영진위의 지원기금이 없었다면 영화를 완성할 수 없었을 거라면서도, 몇 가지 아쉬움을 지적한다. 첫번째는 지원금이 그리 넉넉지 못하다는 것. 그가 제작지원을 받은 1999년 당시 영화진흥위원회의 독립영화 지원책은 한해에 20∼30편을 선정해 500만∼600만원의 지원금을 균일하게 나누어주는 식이었다. 그러나 ‘돈 걱정 안 하고 영화 찍는 데 몰입하려면’ 적어도 제작비의 70% 이상은 확보해주는 전적인 지원정책이 실질적으로 도움이 된다는 게 지원금으로 영화를 찍어본 그의 의견. 2001년부터는 영화의 규모에 따른 차등지원을 실행하고 있으나, 아직 제작비의 50%선에 그치고, 총 2000만원 이하로 제한되고 있다. 영진위에서는 매해 제도를 보완중이며 구체적인 2002년도 사업계획 내역은 아직 밝히지 않았으나 지난해와 비슷한 방향으로 집행될 가능성이 높다는 게 관계자의 얘기다.제작지원작 선정절차 및 심사기준의 투명성도 짚고 넘어갈 문제다. 의 경우
독립영화 지원, 어떻게 이루어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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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의 독립/단편 영화계에서는 새로운 마케팅 마인드를 가지고 PPL이나 현물지원 등 다양한 방식으로 제작지원을 유치하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의 고영민 감독은 극중에서 사용되는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SK글로벌에서 현물지원 받았으며, 브랜드 로고를 노출하는 방식으로 LG화재에서 제작비 300만원을 지원받았다. 영화 속 소품으로 노트를 사용하면서 문구회사 바른손에서 300만원을 받은 민동현 감독의 <외계의 19호 계획> 역시 PPL을 활용한 예.김지현 감독의 <뽀삐>는 아예 ‘지원영화’를 표방하고 나섰다. CJ-CGV 사전지원금 2500만원에 영진위 지원금 750만원, 그리고 기업들의 협찬으로 촬영진행비를 충당하고 있는 것. 강아지를 등장시킨 영화이기 때문에 개 사료업체 ‘퓨리나’에서 사료를, 그리고 영화제목과 같은 제지업체 유한킴벌리에서 화장지를 각각 500만원어치씩 현물협찬 받았다. 장소를 빌려주는 카페에는 화장지로 사례를 대신하고, 동물병원이나 애견샵의 촬영비는
다른 단편.독립 영화들 어떻게 찍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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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골 감독, 파괴된 인간들을 메마르게 그려내다
송강호, 신하균, 배두나라는 연기파 배우 3인방이 출연하며 <공동경비구역 JSA>의 흥행감독 박찬욱이 연출하는 신작이라는 점에서 일찌감치 영화계의 관심이 집중됐던 <복수는 나의 것>이 3월15일 첫시사회를 가졌다. 전작과 전혀 다른 스타일로 만들었다는 <복수는 나의 것>은 과연 어떤 영화로 태어났을까? 영화의 면면을 뜯어보고 감독의 말을 들어본다. <복수는 나의 것>은 3월29일 개봉한다.
“전 착한 사람입니다.” 박찬욱 감독의 신작 <복수는 나의 것>은 말 못하는 청년(신하균)의 대사로 시작한다. 누나의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해 그는 유괴를 결심한다.
“나름대로 착하게 살았다고 생각합니다. 왜 내게 이런 일이….” 납치된 딸이 싸늘한 시체로 발견되자 아버지(송강호)는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한다. <복수는 나의 것>은 착한 두 사내가 소용돌이치는 불운에 휩
<복수는 나의 것>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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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에 대해 ‘누아르’라고 안 하고 ‘하드보일드’라는 수식어를 쓴 이유는.
=한국에서는 필름누아르라는 말이 오용되고 있다. 롱코트를 휘날리면서 쌍권총을 쏘고, 느린 화면으로 멋을 부리는 걸 떠올린다. 실제 누아르영화도 그 정도는 아니지만 스타일을 강조한다. 그럴 생각이 없었다. 누아르의 근원을 찾아간다는 뜻에서도 하드보일드라는 말을 썼다. 스타일보다 리얼리즘을 강조하고, 건조하면서 비장한 분위기라고 할까. 하지만 장르를 정하고 그 개념에 맞춰 만든 건 아니다. 우리끼리는 ‘코믹에로, 액션호러’라고 부르기도 한다.
-코믹한 요소가 있더라도 쉽게 웃기가 힘들다. 영화의 흐름도 관객을 풀어주는 대목 없이 계속 긴장하게 만든다.
=해고된 노동자가 칼로 자기 배를 그으며 자해할 때, 피나는 모습을 보고 스스로 놀란다. 이런 거. 난폭함, 심각함이 조크와 만났을 때 자아내는 웃음. 내가 좋아하는 부조리한 유머이지만 실제로 관객이 그렇게 웃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웃을 분위기를 마
<복수는 나의 것> [2] - 박찬욱 감독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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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한 놈이다, 이런 괴상한 영화를 주저없이 택하다니!”
감독의 고민과 미학적 의도가 중심이 되는 영화 제작기에 익숙해 있던 우리는 박찬욱 감독이 여기 쓴 <복수는 나의 것> 제작기에 통쾌하게 한방 먹었다.
영화는 감독의 예술이라는 교과서적 문구를 뒤로 젖혀놓고 그는 영화 촬영현장의 진정한 마술이 어디 있는지 보여준다. 처음 감독을 만나 출연 약속을 하는 순간 두나의 어머니가 느꼈을 감상에서, 얻어터지는 연기를 하면서 이를 악무는 배우의 독기에서, 오랫동안 집을 비운 아빠를 기다리는 어린 딸의 마음에서, 감독이 되겠노라 온갖 불합리한 요구를 묵묵히 참아야 하는 연출부 막내의 성실성에서, 엉성한 현장 분위기를 잡아보겠다며 연기지도를 하는 류승완 감독의 자세에서, 서로를 위로하기 위해 마니또를 제안하는 애정에서, 기계장치에 불과한 카메라는, 셀룰로이드에 불과한 필름은 사람의 말을 배우고 혼을 얻고 육신의 몸짓을 따라한다.
영화가 마술인 것은 그래서인지 모른다. &
<복수는 나의 것> [3] - 제작기 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