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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려 34년 만에 극장 개봉하는 <공포분자>는 에드워드 양 감독의‘타이베이 3부작’ 중 <타이페이 스토리>(1985)와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1991)의 중간에 위치한 작품이다. 등장인물 4명이 릴레이하듯 서사를 끌고 가는 구조인데 형식주의자로서 그의 완벽한 면모를 확인할 수 있다. 사진 찍기가 취미인 소년은 경찰 수사를 피해 달아나다가 다리를 다친 소녀를 우연히 카메라에 담고, 사진 속 그녀에게 점점 매료된다. 이립중(이립군)과 주울분(무건인)은 결혼 생활에 지쳐 권태기에 빠진 부부다. 의사인 이립중은 동료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까닭에 과장 승진 기회를 얻는다. 결혼 생활에 회의를 느낀 주울분은 소설을 쓰지만 마음처럼 쉽지 않다. 불량 학생과 어울리는게 못마땅한 소녀의 엄마는 소녀를 집에 가두고, 소녀는 무료한 생활이 지겨워 전화번호부를 뒤져 무작위로 장난 전화를 건다. 그때 소설을 쓰던 주울분이 소녀의 전화를 받는다.
줄거리만 보면 연관
'공포분자' 무려 34년 만에 극장 개봉하는 에드워드 양 감독의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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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네이도가 마을을 덮치면서 혼자 살아남은 소녀 대니(블루 헌트)가 사건 당일을 떠올리며 이야기를 한다. 그러자 멀버리 정신병원의 닥터 레예스(알리시 브라가)는 “트라우마가 가짜 기억을 만들 수 있다" 고 말한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토네이도가 마을을 집어삼킬 때 숨어있던 대니의 뺨으로 눈송이가 떨어져 녹아내리던 감각은 또렷하다. 하지만 토네이도가 불 때 눈이 내릴 수는 없는 법. 그때의 사고로 아버지를 잃고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대니가 기억하는 과거는 진짜일까, 닥터 레예스의 말대로 가짜 기억에 불과한 걸까.
어린 뮤턴트들을 수용하는 멀버리 병원에 가장 마지막으로 입원한 대니는 자신이 돌연변이인 ‘뮤턴트’라는 사실을 알지만, 정확히 어떤 초능력을 가졌는지는 모른다. 먼저 입원한 레인(메이지 윌리엄스)은 늑대인간으로 변하고 샘(찰리 히턴)은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어디든 뚫고 지나간다. 입원 첫날부터 대니에게 까칠하게 대하는 일리야나(애니아 테일러조이)는 오른팔을 검푸른 검으로 만들어
'뉴 뮤턴트' 개성 강한 뮤턴트들의 서사시인 <엑스맨> 시리즈의 스핀오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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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시카(줄스 윌콕스)는 2차선 도로에서 느리게 운전하며 진로를 방해하는 앞차를 추월한다. 그 이후로 자꾸만 마주치는 차와 운전자. 서글서글하게 웃으며 스토킹하는 남자를 따돌리려고 애쓰지만, 생각처럼 쉽지 않다. 결국 제시카를 붙잡은 남자는 그녀의 약점을 파고들며 교묘하게 괴롭힌다. 어두운 밤, 아무도 없는 길 위에서 끝없이 쫓기는 제시카의 긴박한 심리가 잘 묘사된다. 문제는 붙잡힌 이후다. 모든 것이 예상대로 흘러가기 때문에 어느 순간부터 그 어떤 긴장감도, 신선함도 느껴지지 않는다. 제시카를 폭행하는 장면의 묘사가 지나치게 디테일하고, 추격전을 펼치는 후반부는 공간 활용조차 어색해서 영화에 몰입하기가 힘들다. 스릴러영화로서의 서스펜스는 사라지고 제시카에 대한 폭력 신만 남은 작품이다.
'아무도 없다' 제시카의 긴박한 심리가 잘 묘사되었지만 폭력적인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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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막내인 샘(소니 코프스 판 우테렌)은 모두가 떠나고 외롭게 혼자 남겨질 미래를 걱정한다. 결국 그는 외로움을 견디는 훈련을 시작하는데, 어느 순간 이 훈련에 누군가가 함께한다. 바로 휴가지에서 마주친 테스(조세핀 아렌센)다. 마냥 밝은 아이처럼 보이는 테스는 자신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궁금해한다. 그러나 테스는 어머니의 메모를 보고 아버지의 정체를 알아챈다. 아동문학가 안나 왈츠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테스와 보낸 여름>은 두 소년, 소녀의 성장을 밝고 따뜻하게 묘사한다.
인물 뒤로 펼쳐지는 휴양지의 청량한 색감을 잘 담아낸 작품이며, 다소 거친 편집도 요동치는 두 사람의 감정과 묘하게 잘 어울린다. 고민에 휩싸여 있다가도 아무 일 없다는 듯 곧바로 바다에 뛰어드는 두 사람의 순간들이 이 영화를 반짝이게 만든다.
'테스와 보낸 여름' 아동문학가 안나 왈츠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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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사(다이앤 키튼)는 암 투병 중이다. 그는 연고가 없는 터라 조용히 혼자 생을 마감할 생각으로 실버타운에 입주한다. 그러나 지나치게 활발한 동료 셰릴(재키 위버)의 격려로, 학창 시절의 추억을 되살려 8명의 동료들과 함께 치어리딩 클럽을 결성한다. 그러나 대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한 멤버가 다리를 다치고, 그로 인해 치어리딩 클럽의 도전에 제동이 걸린다. 다이앤 키튼 주연의 영화 <치어리딩 클럽>은 죽음을 앞둔 상황일지라도 도전에 한계란 없음을 시사하는 작품이다. 할머니들의 어설픈 움직임도 사랑스럽게 보이게끔 하는 매력을 지녔다. 하이틴 무비 서사를 그대로 따르는 터라 지루한 감이 있다. 하지만 그 중심에 노년 여성을 세우는 설정만으로 얼마나 극이 새롭게 느껴질 수 있는지 여실히 증명한다.
'치어리딩 클럽' 죽음을 앞둔 상황일지라도 도전에 한계란 없음을 시사하는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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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의 한적한 농촌 마을에서 뺑소니 사건이 일어난다. 그로 인해 7살 보미(이진주)가 의식불명 상태에 빠지고, 아빠 두원(이희준)은 분노한다. 현장엔 보미의 할머니 문희(나문희)가 유일한 목격자로 함께 있었는데, 문희는 몇년 전부터 치매를 앓고 있는 상태라 사건 해결과 관련한 단서를 기억하지 못한다. 두원은 사태의 책임을 문희에게 돌리는 한편 동네에서 호형호제하는 사이인 강 형사(최원영)의 도움을 받으며 범인을 찾아보려 하지만 쉽지 않다. 그러다 문희가 아무 의미 없이 말하는 줄 알았던 것들이 사실은 사건 당일의 진실을 말하는 것이었다는 걸 깨달은 두원은 문희와 함께 범인을 찾아나서고, 그 과정에서 서로의 진심을 확인하게 된다
<오! 문희>는 농촌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코믹 수사극이라는 장르의 공식을 충실히 따른다. 그런 의미에서 완성도 있는 기획영화로 평가 받을 수 있겠지만, 세부적인 지점에서 이 장르에 대한 기본적인 예상을 벗어나지는 못한다. 치매 노인에 대한 전
'오! 문희' 정세교 감독의 장편 영화 데뷔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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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너 왜 마스크 안 썼어? 아침에 네 얼굴 보면 불편하다고 했지.”톱스타 미리가 몸집이 큰 메이크업 아티스트 예지를 향해 날카롭게 쏘아붙인다. 예지는 그저 그 자리에 있었을 뿐인데 미리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그의 외모를 언급하고 지적하면서 온갖 멸시의 눈빛을 보낸다. 편의점에서 과자를 사거나, 아파트 입구에서 넘어지는 등 예지의 사소한 행동은 모두 살과 외모로 연결되는 손가락질의 대상이다.
그런 예지 앞으로 어느 날 몇통의 샴푸와 USB 하나가 담긴 택배 꾸러미가 배달된다. USB의 동영상을 통해 예지는 깜짝 놀랄 만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샴푸통에 담긴 액체, 일명 ‘성형수’에 20분간 얼굴을 담그면 살이 찰흙처럼 말랑해져서 불필요한 살은 떼어내고 셀프 성형할 수 있다는 것. 주저하는 예지에게 영상 속 여성은 속삭인다. “20분이 너무 길다고요? 지금까지 당신이 외모로 고통받은 시간에 비하면 찰나입니다.” 과연 예지가 성형수의 마력을 거부할 수 있을까.
성형수에 얼굴
'기기괴괴 성형수' 외모에 집착하는 외모 지상주의 사회에 문제를 제기하는 수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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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일라스 가는 길>은 어머니와의 여행을 기록한 전작 <무스탕 가는 길>에 이은 정형민 감독의 두 번째 여행기다. 두 사람의 여정은 러시아의 바이칼 호수에서 고비 사막으로, 그리고 티베트의 카일라스산으로 이어진다. 오지에서, 그리고 이동하는 길 위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들의 안부를 묻고 감사 인사를 잊지 않는 어머니를 지켜보는 감독의 시선은 지극히 따뜻하면서도 평온하다. 매 순간 먼저 떠난 이들에 대한 기도를 잊지 않는 어머니와 그 뒤로 고요하게 펼쳐지는 광활한 풍경들. 84살의 어머니와 아들이 떠난 길고 추운 순례의 여정이 마냥 고되게만 느껴지지 않는 이유다. 중간중간 삽입된 어머니의 일기는 다큐멘터리의 분위기를 밝게 유지하는 데 제 몫을 한다. 씩씩하게 걷는 할머니의 엔딩 신만으로도 이들의 걸음이 어디로 이어질지 궁금하게 만든다.
'카일라스 가는 길' 어머니와의 여행을 기록한 전작에 이은 정형민 감독의 두 번째 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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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감독을 꿈꾸던 현수(김희찬)는 영화 동아리방에서 우연히 만난 미주(정이서)에게 자신이 만드는 영화의 주인공 역할을 제안한다. 남자주인공을 하겠다는 사람이 없는 탓에, 현수는 직접 미주의 상대역으로 등장한다. 그러나 미주는 오랜 시간 시나리오 작업만 붙들고 있는 현수가 답답해지고, “뭐라도 하고 있는 거야?”라는 미주의 질문에 현수는 역정을 내며 돌아선다. <7월7일>이 묘사한 청춘의 현실은, 어설픈 영화의 만듦새 속에서도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현수처럼 꿈을 좇아도, 미주처럼 현실과 타협해도 하루하루가 녹록지 않은 이들의 모습이 남의 일 같지 않아서다. 여기에 김희찬, 정이서 두 배우의 연기는 극에 현실감을 더한다. 다툼 끝에 서로를 이해해보려는 찰나, 두 사람에게 닥친 위기는 다소 뜬금없이 등장해 영화의 몰입을 방해한다.
'7월7일' 청춘의 현실을 어설프지만 현실적으로 그러낸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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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사건을 소재로 한 경쾌한 하이스트 무비. 해리 제임스 바버(트래비스 피멜)는 여자친구 몰리 머피(레이첼 테일러)에게 8년 전 캘리포니아에 있는 은행을 턴 이후 FBI의 추격을 받고 있다고 고백한다. 영화는 1972년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블랙머니를 훔치는 계획에 합류한 해리의 시점으로 돌아간다. 은행 강탈 작전을 주도하는 해리의 삼촌 엔조 로텔라(윌리엄 피츠너)를 비롯한 이들은 닉슨 대통령의 재선을 위해 동원되는 온갖 더러운 비자금을 훔치는 것은 죄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아메리칸 잡>은 날카로운 정치 풍자보다는 70년대 컨트리음악과 배우 스티브 매퀸의 <블리트>(1968)를 비롯한 고전에 대한 애정을 표출하는데 더 집중한다. 60~70년대 대중문화를 사랑하는 관객이라면 흐뭇하게 미소 지으며 볼 수 있다.
'아메리칸 잡' 실제 사건을 소재로 한 경쾌한 하이스트 무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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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제21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제23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미리 소개된 영화 <이십일세기 소녀>는 80년대 후반, 90년대생으로 이뤄진 일본 여성감독 15인의 옴니버스 단편 모음집이다. 이 영화에 열네 번째로 등장하는 단편 <뿔뿔이 흩어진 꽃에게>를 연출한 야마토 유키 감독이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8분 내외의 픽션 14편과 엔딩 크레딧을 장식하는 애니메이션 한편이 117분을 가득 채우며, <리틀 포레스트> 시리즈의 하시모토 아이, <너의 새는 노래할 수 있어>의 이시바시 시즈카, <아사코>의 가라타 에리카 등 최근 일본 영화를 대표하는 여성배우들의 다른 면면을 만날 수 있어 반갑다.
15편 중 <소녀가 소녀에게>(2017)로 장편 데뷔를 한 에다 유카 감독의 <사랑의 증발>, 히가시 가나에 감독의 <아웃 오브 패션> 정도가 인상적이다. <사랑의 증발>은 연애에 대한 환상을
'이십일세기 소녀' 80년대 후반, 90년대생으로 이뤄진 일본 여성감독 15인의 옴니버스 단편 모음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