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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번 일본의 모든 에너지와 우리의 바람, 인류의 미래, 살아남은 모든 생물의 생명을, 너에게 맡길게.” 두려움과 망설임을 뒤로하고 에바에 몸을 실은 신지에게 미사토가 말한다. ‘로봇만화영화란 어쩔 수 없어’라며 어깨를 으쓱할 만한, 실로 낯뜨거운 대사다. 그러나 장담건대, <에반게리온: 서(序)>의 클라이맥스에서 이 대사를 맞닥뜨린 관객 중 누구라도 울컥하지 않을 사람은 없다. 만일 당신이 10여년 전 설레어 ‘복음’을 접했던 그들 중 한명이라면, 인류의 종말을 앞둔 급박한 상황에서도 자신의 존재 이유를 고민하고 고독을 곱씹던 신지의 여린 어깨가 안쓰러웠다면, 말할 것도 없다. 엔트리 플러그 안에서 홀로 분투하는 아이들에게 세상을 구하는 것은 스스로를 구하는 것과 동의어다. 관객에게도 그것은 변함없이 급박한 문제다. 12년 전 TV시리즈 1화부터 6화까지의 재구성 버전이자 극장판 4부작의 1편에 해당하는 <에반게리온: 서(序)>는 여전한 뜨거움으로, 어른
로봇애니메이션의 신화 <에반게리온 :서(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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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 괴물이 뉴욕 맨해튼에 나타나고, 뉴요커 몇명이 아파트에 갇혀 있는 한 여성을 구출하기 위해 맨해튼 중심을 가로지른다. 요즘의 블록버스터치고 줄거리에 힘을 기울이는 영화가 어딨겠냐마는 <클로버필드>의 줄거리는 허무할 정도로 간략하다. 제작진의 의도를 최대한 고려한다면 ‘엄청난 재난에도 굴하지 않는 사랑의 용기’라는 <타이타닉>식의 해석도 가능하겠지만, 영악하기 짝이 없는 <클로버필드>의 진정한 핵심은 ‘빌딩만한 괴수의 출현을 손바닥만한 비디오카메라로 담는다’는 기발함이다. 하지만 이 발상의 전환은 기대 이상의 파괴력을 선사한다. 비디오카메라의 영상은 특유의 역동성과 함께 괴물이 제대로 비쳐지지 않는 데서 비롯되는 공포감마저 만들어낸다(물론 그 쉴새없이 출렁이는 영상 때문에 최고의 ‘구토유발자’로 기록되겠지만). 비디오카메라의 파괴력을 스크린에 옮긴다는 점에서 <클로버필드>는 그 어머니 격인 <블레어 윗치>와 유사하면서도 다르다
맨해튼에 나타난 거대 괴물 <클로버필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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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류소설가 엔젤 데브럴(로몰라 가레이)이 사랑한 건 오직 자기 자신이다. 단 하나의 혈육인 어머니조차 있는 그대로 사랑한 적이 없으면서 운명적인 사랑을 소재로 삼고, 비루한 소도시에서 식료품집 딸로 태어나 영국을 벗어난 적도 없으면서 베니스를 배경으로 택하는 그녀는, 베갯머리에서 읽힌 뒤 바로 잊혀지는, 말하자면 하이틴 로맨스를 쓴다. 책을 읽은 적도 없고 현실에 관심을 기울인 적도 없이 상상의 세계에서만 글을 쓰는 엔젤은 자신의 저택 ‘파라다이스’를 세상의 유행과 전혀 무관한 빅토리아풍으로 꾸미고, 사랑하는 남자에게는 먼저 청혼하여 사랑을 쟁취하며, 온 세계가 자유수호의 대의를 내건 1차대전 와중에도 사랑하는 남편 에스메(마이클 파스빈더)를 앗아간 전쟁을 무조건 반대한다.
그런데 잠깐. 세계를 일주하는 엔젤 부부의 신혼여행을 고전적인 매트촬영으로 묘사하며 갑자기 타임머신에라도 올라탄 듯 시치미를 떼는 이 영화는 다름 아닌 오종의 신작이다. 한때 악취미로 무장한 천재로 불렸던,
미워할 수 없는 천사의 이야기 <엔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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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멕스>의 ‘드라마’는 이야기를, ‘멕스’는 멕시코를 뜻한다. ‘멕시코에서의 드라마’쯤의 제목을 가진 이 영화는 휴양도시 아카풀코에 모인 다섯 남녀의 절박함을 재료로 만든 퀼트다. 먼저, 아름다운 페르난다(디아나 가르시아). 연락두절이던 전 남자친구 차노의 출현에 흔들려, 그가 억지로 범하는 것을 막지 않는다. 차노(에밀리오 발데즈) 역시 달라진 것은 없다. 섹스 뒤 마음이 풀어진 페르난다가 종알거리는 사이 나쁜 손버릇은 그녀의 부유한 살림을 더듬는다. 페르난다의 ‘현재진행형’ 곤잘로(후안 파블로 카스타네다)는 애인이 변심할까 불안하다. 중년의 제이미(페르난도 베세릴)의 삶은 버겁다. 짐가방도 없이 가정과 회사를 떠나기까지 그를 위로한 것은 무감각한 생의 끝을 약속한 권총 한 자루뿐. 어린 창녀 티그릴로(미리아나 모로)가 지갑을 훔치려고 제이미에게 다가가서야 그가 자살하려는 것을 알아챈다.
페르난다와 제이미가 중심인 두 가지 이야기는 주거니받거니 이어진다. 페르
멕시코에서의 드라마 <드라마/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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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장자나 슈니츨러의 예를 들지 않더라도 꿈과 현실을 본질적 차원에서 분간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기네스 팰트로의 남동생 제이크 팰트로가 처음 연출한 장편영화 <굿나잇>이 다루는 세계는 꿈같은 현실 또는 현실 같은 꿈이다. 영화음악감독을 꿈꾸지만 현실에선 CF음악을 만들고 있는 개리(마틴 프리먼)는 자신의 음악적 재능이 모자라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와 오랫동안 함께 살고 있는 여자친구 도라(기네스 팰트로)가 미술가의 길을 포기하고 큐레이터가 된 것과는 대조적으로 그는 CF음악 ‘따위’나 만들어야 하는 자신의 처지를 받아들이지 않으려 한다. 그렇게 심드렁하게 살아가던 어느 날 개리는 꿈 속에서 아름다운 여인 아나(페넬로페 크루즈)를 만난다. 희한하게도 아나는 매일같이 꿈속에 등장할 뿐 아니라 개리에게 절대적인 사랑을 바친다. 이제 개리는 자신의 삶의 중심을 꿈으로 옮기게 되고 현실은 더욱 등한시한다. 게다가 개리는 아나와 똑같이 생긴 멜로디아라는 여성을 현실에서 만나
꿈과 현실의 경계 <굿나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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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질병을 외면하는 것은 죄악입니다.” 에이즈에 대한 말은 이제 지겹다며, 현실을 직시한다고 희망이 생기냐고 반문하는 동포들에게 노브(오언 세이야케)가 말한다. 노브 역시 불과 며칠 전만 해도 아무 데서나 거리의 여자와 관계를 가지면서도 사랑하는 부인이 콘돔 사용을 권하면 무작정 화만 내던 처지였다. 가족 모두와 마을 어른들을 조상의 저주 때문에 잃었다고 배웠던, 저주를 풀기 위해 희생된 소를 다시 살 수 있는 돈을 벌기 위해 도시로 향하다가 노브의 트럭에 올랐고, 이제는 그것이 에이즈라는 병 때문임을 알게 된 어린 소년 무사(주니어 싱고)가 그런 아저씨의 변화를 보며 미소짓는다. 무사는 에이즈 때문에 고아가 된, 남부 아프리카의 1억2천 고아 중 한명이다.
에이즈 퇴치라는 시급한 목표의식 아래 만들어진 <비트 더 드럼>은 천혜의 자연을 앞에 두고도, 이해할 수 없을 만큼 비참한 운명을 감내하는 이들의 구원자로 나선 순수한 소년, 그리고 이들을 한데 묶는 음악의 힘
에이즈 퇴치 <비트 더 드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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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옛적에”로 시작해서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로 끝나는 동화가 지겹지 않아? 왜 공주는 매번 왕자와 결혼해야 하고, 악당은 어둠 속으로 사라져야 해? <엘라의 모험: 해피엔딩의 위기>는, 동화를 차용하되 그 전형성에 딴죽을 거는 애니메이션이다. “봐, 해피엔딩이면 재미없잖아. 그냥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라는 극중 대사는 이 영화가 주장하는 바를 간명하게 보여준다. 하지만 그건 이미 <슈렉> 시리즈에서 여러 차례 우려먹은 내용이 아니던가. <슈렉> 시리즈의 프로듀서였던 존 H. 윌리엄스가 프로듀서 중 하나로 참여했다는 사실만으로, 이 작품에서 뭔가 발칙한 유머를 맛보길 고대한다면 큰 오산이다. 동화나라 마법왕국. 그곳 주민들의 삶은 대마법사가 소유한 저울의 움직임에 따라 결정된다. 선악의 추가 균형을 이루는 동안 신데렐라도, 잠자는 숲속의 공주도, 라푼젤도 언제나 해피엔딩을 맞게 마련. 그러나 대마법사가 휴가를 떠나고 그의 조수인 멍크(정
동화의 전형성에 딴죽 <엘라의 모험: 해피엔딩의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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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충칭의 최고급 빌라에 사는 존(후준)은 가정적인 아내 로즈(유가령)와 어린 아들과 함께 행복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 겉으로는 더없이 행복해 보이는 그들이지만, 사실 존은 빌라 상가의 네일숍에서 일하는 섹시한 샤론(송지아)과 내연의 관계다. 그러던 어느 날, 지하 주차장에 세워둔 로즈의 차가 피처럼 보이는 빨간 페인트 세례를 받으면서 그들의 관계는 조금씩 꼬여간다. 뭔가를 알고 있는 것 같은 경비원 펭듀(리아오판)는 침묵하고 있고, 이후 이상한 일들이 계속 일어나면서 존과 샤론의 사이도 틀어지기 시작한다.
<호기심이 고양이를 죽인다>는 꽤 밀도있게 스릴러의 공식을 따른다. 영화에서 인물들의 비밀은 고스란히 빌라 상가의 사진숍에서 일하는 모모(린유안)의 휴대폰 카메라에 담기는데, 휴대폰으로 세상과 대화하는 관찰자 모모는 영화 속의 말없는 화자다. 그렇게 사건의 열쇠가 모모에게 있을 거라고 짐작하게 될 무렵, 그러니까 그 휴대폰 카메라에 모든 비밀이 담겨져 있다고 생각
새로운 중국영화의 한 단면 <호기심이 고양이를 죽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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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프오르간이 나지막이 울고 체리빛 촛농 같은 걸쭉한 피가 스크린 위에서 아래로 흘러내린다. 가느다란 피의 시내는 고기 가는 기계 틈으로 비어져 나와 지하의 하수로까지, 도중의 모든 것을 어루만지며 스멀스멀 나아간다. 흑백영화로 착각할 만큼 무채색으로 도배된 <스위니 토드: 어느 잔혹한 이발사 이야기>의 화면에서, 피는 눈을 찌르는 유일한 홍조(紅潮)이기도 하다. 임박한 과다출혈을 예고하듯, 곧이어 등장하는 인물들의 낯빛은 희다 못해 푸르다. 퀭한 눈과 얼굴을 집어삼킨 다크 서클, 악몽으로 버둥대다 방금 일어난 머리매무새. 팀 버튼의 전작 <유령신부>의 인형들이 흑마술을 빌려 시한부 생명을 얻는다면 바로 이런 모습이리라. 하긴 복수를 위해 지옥행을 잠시 보류한 주인공 스위니 토드(조니 뎁)는 우리가 그를 처음 만나기 전에 이미 ‘살아 있는 시체’가 된 인간이다.
1979년 초연된 스티븐 손드하임의 동명 뮤지컬을 영화화한 <스위니 토드…>는 ‘뮤지컬
염세적 슬래셔 오페라 <스위니 토드: 어느 잔혹한 이발사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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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두번이면 그러려니 한다. 내가 알아낸 맛집마다 유명세를 타게 되고, 나를 거친 애인마다 인생이 잘 풀리게 된다면? ‘응? 혹시 나 때문에?’라는 질문이 들 법하다. <굿 럭 척>은 그렇게 남들에게‘만’ 행운을 가져다주는 남자가 자기 행운을 찾아가는 이야기다. 핸섬한 치과의사 찰리(데인 쿡)에게 있는 징크스는 이런 것이다. 여자들이 그를 거치기만 하면(또는 섹스하기만 하면) 바로 다음에 운명의 짝을 찾게 된다는 것. 바로 그런 경우가 된 옛 여자친구의 결혼식 피로연에서 찰리는 캠(제시카 알바)이라는 여자를 만나 반한다. 마음을 쉽게 열지 않는 캠과 우여곡절 끝에 사귀게 되었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바로 그 징크스가 그의 벨트를 붙든다. 찰리는 캠이 다른 운명의 짝을 찾게 될까봐 그녀와 섹스를 하지 못한다.
영화 각본에 크레딧을 올린 스티브 글렌이란 인물은 이 이야기의 아이디어 제공자다. 제작 뒷이야기에 따르면 그의 전 애인들 중 무려 다섯명이 그와 헤어진 뒤 3개월 안에
남들에게‘만’ 행운을 가져다주는 남자 <굿 럭 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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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 에스프레소>는 찌질한 남자들의 성장담이다. 언뜻 보기에 <아메리칸 파이>처럼 섹스를 욕망하는 남성들의 이야기인 것 같지만, 사실상 이들에게 섹스는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그들의 가장 큰 결핍은 자신이 얼마나 찌질한지 모른다는 것이다. 실연당한 페드로(알레조 사우라스)는 사라진 여자에게 집착하지만 그게 얼마나 허무한 짓인지 모르고, 원 나이트 스탠드를 즐기는 자이브(에시어 엑센디아)는 자신이 꽤나 즐거운 삶을 살고 있는 줄 안다. 부모를 여의고 할머니와 살고 있는 휴고(디에고 파리스)는 볼품없는 외모와 하찮은 직업에 절망하다 못해 체념해버린다. 영화는 남자들의 연대와 새로운 사랑을 찾는 자잘한 소동을 통해 이들을 성장시킨다. 2년 동안 데이트를 못한 친구를 위해 나이트클럽을 찾아 여자에게 집적대고, 우연히 만난 여자와의 인연을 위헤 가상극을 꾸미는 등 이들의 연대는 예상할 수 있는 수준이어도 귀엽다. 하지만 <러브 에스프레소>는 이성을 통
찌질한 남자들의 성장담 <러브 에스프레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