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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 사토시 감독(<퍼펙트 블루> <파프리카>)은 원래 ‘어른을 위한’ 애니메이션을 만든다. 객관과 주관을 넘나들며 일반적인 서사를 자유롭게 농락하는 전개가 특징이지만, 그 속엔 어딘가 현실의 중력을 농축시킨 순간이 존재했다. 그의 애니메이션은 사람의 어두운 욕망을 외면하지 않고, 사회의 단면을 슬쩍 묻어넣어 서늘함을 환기한다. <크리스마스에 기적을 만날 확률>(원제: <도쿄대부>)은 그의 인장 같은 판타지적 유희를 덜어내고 대신 도시의 현실에 대한 농밀한 시선을 코믹한 소동극으로 연결한 편안한 소품이다. 12월의 도쿄, 술주정뱅이 아저씨와 소녀적인 감성을 지닌 중년 게이, 터프한 가출소녀가 쓰레기장에 버려진 아기를 줍는다. 이 이상한 유사가족은 아기의 친부모를 찾기 위해 실낱 같은 단서만 갖고 도시를 헤매고, 예상치 못한 계기로 야쿠자의 결혼식장, 게이 호스트바 등으로 자꾸만 휩쓸린다. 유쾌한 코미디에 도시의 낮은 곳에 처한 다양한 군상이
위트 있는 동화 <크리스마스에 기적을 만날 확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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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예민한 감성을 가진 폴(로맹 뒤리스)은 파리에서 작은 시골 마을로 이주한 뒤 동거해온 안나(조아나 프레이스)와의 관계에 한계를 느낀다. 사랑을 할 때면 상대의 반응에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게 되고, 때때로 치졸한 질투심마저 솟아오르는 탓에 폴은 차라리 사랑을 포기하는 쪽이 낫겠다고 결심한다. 결국 파리로 돌아온 그는 고독과 고통 속에서 칩거하게 되고, 동생 조나단(루이 가렐)과 아버지(기 마르샹)는 폴을 걱정한다.
<파리에서>는 줄거리를 요약하는 게 별 의미없는 영화다. 폴을 집 밖으로 끌어내기 위해 시내를 돌아다니다가 3명의 여성과 섹스를 하게 되는 조나단의 이야기나 큰아들을 위해 음식을 챙기거나 다가오는 크리스마스를 준비하는 아버지의 이야기, 그리고 17살 때 자살한 누이 클레르의 이야기 등은 말로 뱉어놓으면 사소한 잡담에 가깝다. 그러나 크리스마스를 이틀 앞둔 12월23일 하루를 중심으로 현재와 과거를 자유롭게 오가며 이야기를 풀어내는 <파리에서>
사소한 삶의 진실 발견 <파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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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이시(니키 블론스키)의 꿈은 몸집만큼 장대했다. 그녀의 꿈은 지역 방송국 프로그램 <코니 콜린스 쇼>에 출연해 댄서 링크(잭 에프론)와 함께 춤추며 사랑하는 것. 엄마 에드나(존 트래볼타)의 생각은 다르다. 십수년간 집 밖으로 나가본 적이 없는 에드나는 “우리처럼 뚱뚱한 사람이 TV에 나가면 웃음거리가 될 뿐”이라며 극구 만류한다. 그러나 트레이시는 공개 오디션을 통해 고정 출연자로 발탁되고, 방송국 매니저 벨마(미셸 파이퍼)의 방해공작에도 불구하고 승승장구한다.
때는 바야흐로 1962년. 방송국의 인종분리정책에 항거하는 시위가 벌어지자 의협심으로 뭉친 트레이시 역시 피켓을 들고 거리로 나섰다가 경찰 폭행 혐의를 뒤집어쓴 채 도주하는 신세가 된다. 영화사상 가장 구역질나는 컬트 감독 존 워터스의 가장 정상적인 동명 영화(와 그걸 토대로 한 브로드웨이 뮤지컬)를 리메이크한 <헤어스프레이>는 소수자에게 바치는 장르의 헌사다. 노동계급 뚱보 소녀는 스타가 되고
춤과 안무의 무한 스프레이 <헤어스프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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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문을 통과하면 또 다른 패러다임이 시작되지만 그건 이전 시대의 종말이다. 의문의 죽음과 초자연적인 사건에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영화 <링 게이트>는 묵시록적인 메시지를 전제로 한다. 11개의 문이 정해져 있고, 시간이 그 문을 하나씩 통과할 때마다 세계는 종말의 끝으로 나아간다는 식이다. 7살 때 부모님을 잃은 소녀 새라(라우라 멘넬)는 이상한 환영에 시달린다. 남들에겐 보이지 않는 사람이 보이고 죽은 엄마의 모습도 유령이 되어 나타난다. 학교에선 그녀를 괴물이라 놀린다. 새라는 유일한 친구 라덴(크리스티 윌), 친절하게 다가와 준 세스만 믿고 생활하지만, 그녀를 놀리던 친구들이 하나씩 의문의 죽임을 당하면서 혼란에 빠진다. 영화는 새라가 자신과 주변의 의문을 하나씩 조사하는 과정을 보여주며 그녀의 운명이 지닌 무게, 세상이 처한 위기를 암시한다. 하지만 그 과정 자체가 진부하고 허술하다. 새라가 왜 도서관의 책을 뒤지고, 세스에게 자신의 비밀을 털어놓는지도 전혀
스릴러라 하기엔 엉성한 영화 <링 게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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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어느 시골마을, 이 곳엔 남자들의 욕망을 먹고사는 전설의 유령 사이렌이 살고 있다. 경마장에서 만난 렉터, 죠스, 프레디, 제이슨, 처키가 현금수송차량을 털고 이 마을에 들어온다. 은신처를 찾던 그들은 생필품을 배달해온 여자 유미(아오이 소라)에게 돈다발을 들켜버린다. 일당은 그녀에게 눈독을 들이지만, 다음날 유미와 하룻밤을 보낸 죠스가 비명횡사한 채 발견되자 그들은 서로를 의심하며 총부리를 겨눈다. 제이슨의 설득으로 그들은 의심을 거두지만 욕망은 끝이 없다. 결국 죽어나가는 건 남자들이고 남는 건 여자뿐이다.
<에로틱 고스트: 사이렌>은 일본의 인기 핑크소설을 원작으로 한 핑크무비다. 플롯의 연결이 희미하고, 에로영화다운 장면도 부족하지만, 핑크무비답게 신인 영화감독의 실험적인 연출은 종종 눈에 띈다. 1인칭 슈팅게임 같은 앵글을 시도하는가 하면 루이스 브뉘엘의 <안달루시아의 개>를 참조한 눈동자 처형이 등장하며 <저수지의 개들>을 패러디
에로틱 교훈극 <에로틱 고스트 - 사이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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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그런 방법 따윈 없었다. 알쏭달쏭한 제목의 여운과 달리, 영화는 로맨틱코미디의 정석을 안전하게 밟아간다. 루이스(알랭 샤바)는 43살 싱글남이다. 자신이 쿨하게 살고 있다는 루이스의 생각과 달리 엄마와 5명의 여자형제들은 넌덜머리를 낸다. “언제까지 내가 네 빨래며 다림질을 해줘야 하니? 이건 네 아내가 할 일이야!” 그런 이유라면 차라리 가사 도우미를 구해주는 편이 나을 것 같은데, 어쨌든 기 센 여자들의 득달같은 강요에 지친 루이스는 친구의 여동생인 고가구 아티스트 엠마(샬롯 갱스부르)를 약혼녀 대행으로 고용한 다음 결혼식 당일 파혼을 선언한다는 작전을 세운다. 싱글맘을 꿈꾸는 똑똑하고 차분한 엠마는 충실히 자기 역할을 하며 초과수당을 정확하게 챙겨간다. 그런데 엠마의 매력에 빠진 루이스의 어머니가 둘의 파혼에 혼절하면서, 둘은 작전을 수정해 ‘알고보니 엠마가 개념없는 꽃뱀이었다’는 스토리로 이런저런 소동극을 벌이게 된다. 일을 확실하게 하기 위해 동거까지 하며 티격태격하던
매끈한 연애영화 <결혼하고도 싱글로 남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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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뜨기 청년 브라이언이 금발의 미모에 흠잡히지 않을 만한 지적 수준까지 갖춘 앨리스와 첫 데이트를 한다. 싸구려 레스토랑에 앉아 한껏 폼을 잡고 혀를 꼬아 “람브로쉬코 비앙코…” 어쩌고하며 와인의 이름을 댄 뒤, “이거 몇년산이죠?”라고 물었을 때 퉁명한 웨이터는 “1985년산인데요”라고 말한다. 당황한 브라이언이 “아니요, 올해가 몇년인지는 저도 알아요. 와인이 몇년산이냐고요?”라고 반문하자, 다시 웨이터의 대답, “그러게 1985년이라니까”. 재치있는 농담이 일러주는 바, 브라이언은 1985년 영국의 젊은이다.
이제 막 신입생이 된 브라이언(제임스 맥어보이)은 유년 시절부터 퀴즈광이며 상식의 왕이다. 그는 브리스톨 대학 퀴즈 동아리에 가입해 나머지 세명의 동창들과 대학별 퀴즈 대항전에 나가려고 한다. 그 와중에 같은 동아리의 앨리스(앨리스 이브)를 만나 사랑에 빠지지만, 그를 정작 이해하고 보살펴주는 것은 수수한 차림의 인권운동가인 다른 여학생 레베카(레베카 홀)다. 레베카는
유쾌한 문화 소동극으로 시대 반영 <스타트 포 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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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 미아가 되어 내일을 찾는 사람들. <상하이의 밤>에는 여러 쌍의 인물들이 등장한다. 일로는 성공했지만 사랑에 허전함을 느끼는 헤어메이크업 아티스트 미즈시마(모토키 마사히로)와 그의 여자 어시스턴트, 상하이에서 택시를 운전하며 살고 있는 여자 린시(조미)와 그녀가 짝사랑하는 친구 동동, 미즈시마의 일을 도와주는 여자 스탭과 중국인 남자 통역사, 미즈시마의 상하이 일을 담당하고 있는 남자 야마오카 타로(다케나카 나오토)와 그가 우연히 만난 중국 여자 경찰 등. 영화는 미즈시마가 린시의 택시에 부딪치며 벌어지는 두 남녀의 에피소드를 기본으로 다른 쌍의 이야기들을 더해간다. 중국과 일본, 친구와 애인, 일과 사랑 등 서로 다른 마음을 가지고 있던 이들은 우연한 만남으로 서로에게 다가가고, 영화는 마술 같은 상하이의 야경을 배경으로 인물들의 고독을 털어놓는다.
일본과 중국의 합작영화인 <상하이의 밤>은 답답하게 갇힌 현대인의 일상을 중국에 간 일본인, 일본인을
상하이 야경으로도 버거운 과한 에피소드 <상하이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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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연자가 비흡연자보다, 미혼자가 기혼자보다, 가족을 먼저 잃은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먼저 죽는다. 닉(케빈 베이컨)은 그게 질서라고 믿는, 혼돈으로 가득 찬 이 세상에 그런 질서가 존재한다는 사실에 문득 경이를 표하던 보험회사 중역이었다. 어느 날 그의 자랑이던 장남이 갱단 신고식의 제물로 희생되고 닉은 아들을 가슴에 묻는 대신 (진짜) 복수의 칼을 든다. 물론 그런 식으로 그가 바라는 세상의 질서가 되찾아질 리 없다. 초보 갱에게도 가족은 존재하는 법. 장래가 불안정하다는 이유로 아들이 프로 하키 선수가 되는 것도 꺼리던 소심한 가장과 할렘 갱단의 죽음 따위 신문에도 나지 않는 현실에 분개하던 조폭 두목은 서로의 가족에게 사형선고(death sentence)를 내리고, 말 그대로 죽도록 싸운다.
<올드보이>가 복수극이라면 <브레이브 원>은 응징극이다. 복수극의 플롯이 만화적이라면 응징극의 플롯은 철학적이고 사회적인 화두를 던져준다. 둘의 공통점은 비
세상이 그처럼 간단치 않다 <데스센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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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만장자 귀족 필립(피에르 둘렛)은 애완견 타라를 잃은 뒤 사람을 애완인으로 데리고 있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갖게 된다. 그래서 경제적으로 곤란한 상황에 있던 메리(안드레아 에드먼슨)는 그 제안을 따른다. 메리는 이제 ‘지지’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알몸으로 지낼뿐더러 정말 애완견처럼 철창으로 된 집에서 지낸다. 그러면서 메리는 점점 지능을 잃고 황폐해져 간다. 필립은 젊고 품질 좋은 새 애완인을 사람들에게 과시하려 하고 결국 GSM(Global Slave Market)이라는 인간노예 시장에 지지를 전시하게 된다.
정말 완전히 벌거벗은 애완인을 줄에 매달아 진지하게 거래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디스토피아적인 SF영화의 한 장면 같기도 하고, 눈밭을 정말 개처럼 뛰어다니는 애완인을 보고 있으면 기괴한 코미디영화를 보는 것 같기도 하다. <아메리칸 핌프>(1999), <바이커 보이즈>(2003) 등에서 스틸 작가로 일했고 지금도 스틸 작가를 겸하고 있는
인신매매를 고발하는 우화 <더 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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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집을 샀다가 영업에 실패해 빚을 떠안았다. 당장 7만5천달러를 갚지 못하면 봉변을 당한다. 이혼 뒤 외롭다. 어린 아들과는 이따금씩 학교로 데려다주는 차 안에서만 토막 대화를 한다. 17년간 재직했는데도 대형 로펌의 임원이 되지 못했다. 그저 다른 변호사들이 맡기 싫어하는 지저분한 사건만 처리할 뿐이다.
그런데 어느 날. 같은 회사의 절친한 동료 변호사가 죽는다. 죽음 주변을 떠돌던 그는 동료가 뭔가를 폭로하려다 변을 당했음을 직감한다. 스스로의 하루하루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 전전긍긍하는데, 거대한 음모를 파헤치는 일에 뛰어들어야 할까. 겉으로 보기엔 화려한 대형 로펌의 변호사. 그러나 곤궁과 권태에 찌든 마이클 클레이튼의 삶은 이제 총체적 난국에 부딪혔다.
<마이클 클레이튼>은 변호사가 주인공인 스릴러의 전형적 스토리 라인을 가졌다. 우연한 계기로 거대 집단의 음모와 악행을 알게 된 개인이 정의를 위해 외로이 맞서는 이야기. 그러나 이 영화를 전형적인 법정스릴
올 최고의 라스트신 <마이클 클레이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