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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 스탁의 시작은 담대했다. 지방정부의 부패에 절망하던 청렴한 재정관 스탁이 루이지애나 주지사로 출마한 이유는, 오로지 부패한 권력층에 맞서서 가진 것 하나없는 가난한 사람들을 돕기 위해서였다. 다행히도 그에게는 타고난 카리스마가 있었다. 거침없는 언변으로 모여든 시민들의 마음을 완벽하게 굴복시킬 줄 아는 그에게 사람들은 아낌없이 표를 던졌고, 가진 것 하나없던 시민의 일꾼은 마침내 루이지애나의 주지사로 임명된다. 하지만 시민들과의 약속을 지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기득권층의 세금을 올려서 시민들을 위한 도로와 병원을 지으려던 스탁은 돈과 권력을 가진 상류층의 반대에 부딪히고, 정적을 제거하기 위해 음험한 술수를 쓰기 시작한다.
조금 의아한 기분이 들 법도 하다. 미국 문학의 고전인 로버트 펜 워런의 원작은 이미 1949년에 영화로 만들어져 오스카 작품상을 수상한 바 있고, 원작의 배경인 대공황 시대에 근접해서 만들어진 46년작의 아우라는 지금도 오롯하다. 다만 <쉰
밋밋한 리메이크 <올 더 킹즈 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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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7년. 삭막한 LA의 변두리에서 한 무명 여배우의 시체가 발견된다. 몸이 절반으로 나뉘어지고 입이 귀밑까지 찢어진 채 발견된 그녀의 몸에는 피 한 방울 남아 있지 않았다. 경찰청을 대표하는 스타 복싱선수인 벅키(조시 하트넷)와 리(아론 에크하트)는 악마가 저지른 듯한 ‘블랙 달리아’ 사건에 긴급히 투입되고, 전도유망한 두 젊은이는 부패한 경찰권력이 지나친 수많은 실마리들을 되짚으며 사건을 조사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상할 정도로 사건에 집착하던 리가 살해당하고, 리의 수사 파일을 몰래 조사하던 벅키는 여배우의 죽음과 리의 죽음에 모종의 연관성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드 팔마는 아슬아슬하다. 무시무시한 걸작을 만들어냈다 싶으면 이듬해에는 대학생 졸업영화처럼 야심찬 범작을 만든다. 이건 거의 자연 법칙처럼 끝없이 반복되는 탓에 팬들로서도 어찌할 도리가 없다. 드 팔마가 그의 최고 걸작 중 하나인 <팜므파탈>로부터 6년 만에 만든 이 ‘제임스 엘로이 원작 영화’
잘못된 만남 <블랙 달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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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DC미니’라고 하는 비상한 기계가 완성된다. 필립 K. 딕의 단편에 등장할 법한 이 기계를 이용하면 타인의 꿈으로 들어가는 게 가능하다. 모든 과학의 허영이 그렇듯이, DC미니 역시 사람들의 심리 치료를 돕는다는 명목으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정부로부터 공식적인 사용 허가가 내려지기도 전에 기계는 도난당한다. ‘파프리카’라는 18살의 자아로 변신한 뒤 사람들의 꿈속으로 들어가 정신치료를 돕던 정신의료종합연구소의 아츠코 박사는 천재 도키타와 함께 기계를 찾아나서고, 개발에 참여한 동료 히무로와 사람의 꿈을 장악하려는 연구소 이사장이 도난사건에 연루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하지만 고나가와 형사와 함께 히무로의 꿈속으로 들어간 아츠코와 도키타는 DC미니의 폭주로 인해 악몽 같은 모험에 빠져들고 만다.
이것은 황홀경. 꿈속으로 뛰어든 주인공들의 모험은 넋놓고 따를 수밖에 없는 시청각적 롤러코스터다. 애니메이션은 원래 물리적 경계가 없는 매체지만 <파프리카>는
일본 아니메 미학의 정점 <파프리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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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둘이라고 놀리잖아요.” 아들 짜야는 엄마의 두 번째 결혼식장에서 싸움을 벌이는 이유를 그렇게 말한다. 투야(위난)는 두 번째 결혼 중인데, 가고 싶지 않은 사람에게 팔려가고 있는 것이며 식장은 난리법석이다. 결국 투야는 홀로 숨어들어 눈물을 흘린다. 그리고 영화는 지금껏 눈물을 흘리지 않고 꿋꿋하게 버텨온 투야의 행적으로 되돌아가 다시 시작한다. 우물을 파다가 허리 불구가 된 남편 바터(바터)를 대신해 살림을 책임지는 것은 투야였지만 그녀조차 조금만 더 고된 노동을 했다가는 남편처럼 될 처지다. 투야에게는 친구가 한명 있는데, 바람기 많은 아내 때문에 늘 골치를 썩이는 인근의 젊은 유부남 썬거(썬거)다. 그들 사이에 우정으로 위장된 사랑의 감정이 오가는 것을 알 수 있지만 그럼에도 투야는 집안의 생계를 위해 남편과 자식을 함께 데리고 살아줄 누군가와 결혼하겠다는 마음을 고쳐먹지 않는다. 마침내 원유를 발견해 떼부자가 된 투야의 어릴 적 동창이 조건을 받아들여 투야와 그 식솔
기이하고도 슬픈 이야기 <투야의 결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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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은 마치 이명세 감독이 그려내려는 dreaM과 Magic의 철자 M의 교집합이 만들어낸 것 같은 제목이다. 누구나 자신이 꾸었던 꿈을 정확하게 기억해내기란 힘든 법이고, 그 꿈이란 초현실적인 마술과도 같은 것이기에 그 둘은 마치 서로를 비추는 거울과도 같다. M이라는 철자가 보여주는 정확한 좌우대칭의 형태도 이와 묘하게 들어맞는다. 이명세 감독 스스로도 “영화를 보면서 커다란 혼돈에 빠지는 경험을 할 것”이라며 “그 혼돈에서 깨어났을 때 정말 좋은 꿈을 꿨다는 생각이 들었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것을 보면 <M>은 이명세 감독이 카메라로 써나간 ‘꿈의 해석’쯤 된다 할 것이다. 그것은 또한 최근 한국영화의 전반적인 흐름과 비평 담론 속에서 박광수, 이창동 감독으로 대표되는 사실주의 경향의 대세를 향한 당대 최고의 스타일리스트 이명세 감독의 고집스러운 반격이라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또 하나 주목할 것은 그리 비중이 크지 않은 적이 있었던(?) 김보연 정도를
꿈결 같은 스타일의 향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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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하지 않은 건 모두 환각이다.” 대학에 입학하기 전까지 엄마와 함께 지냈던 마사야(오다기리 조)는 언제나 지속되고 있는 것만이 진짜라고 말한다. 도쿄 중심에 우두커니 서 있는 도쿄타워나, 자신이 무엇을 해도 항상 뒷바라지를 해주는 엄마(기키 기린)나, 액자에 담긴 자신의 졸업장 등. 릴리 프랭키의 소설 <도쿄타워, 엄마와 나, 때때로 아버지>를 영화로 옮긴 <오다기리 죠의 도쿄타워>는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의 차이를 통해 한 남자가 자신의 삶을 반성하는 이야기를 담는다. 마사야의 삶에서 변하는 건 항상 상처를 남기고, 변하지 않는 건 상처를 치유한다. 다른 여자의 품에서, 항상 어딘가를 떠돌아다니는 아빠(고바야시 가오루)는 마사야를 도쿄로 올려 보내지만, 도쿄에 도착한 마사야는 철없는 생활 속에 탕진된다. 엄마가 보내준 학비와 생활비는 술과 도박, 여자에 쓴다. 영화는 마사야가 엄마의 암 소식 이후 정신을 차리고 일을 하며 변하지 않는 것에 대한 소중
한 남자의 눈물 <오다기리 죠의 도쿄타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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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의 이자벨 위페르처럼 <포미니츠>에서 피아노를 치는 두 주인공은 얼음장 아래 정념의 덩어리를 숨기고 있는 여인들이다. 여든살의 독신녀 트라우데 크뤼거(모니카 블라이브트로이)는 여죄수 교도소에서 30년째 피아노를 가르치고 있다. 대가 빌헬름 푸르트뱅글러의 유망한 제자였던 그녀는 2차대전 중 사랑하는 여인이 공산주의자라는 이유로 살해되는 것을 목격한 이후, 감정을 깊은 곳에 묻고 건조하게 살아왔다. 트라우데의 가라앉은 내면을 흔드는 것은 자학적 발작을 일삼는 거친 죄수 제니(한나 헤르츠슈프룽)의 폭풍 같은 연주다. 재능있는 딸을 모차르트로 만들기 위해 몰아붙인 아버지에 대한 반항으로 집을 뛰쳐나왔던 제니는 무책임한 남자친구와 연루된 살인사건으로 수감됐다.
연인의 못다 핀 재능이 전쟁 속에 스러져버린 비극을 목격한 트라우데는 제니를 콩쿠르에 내보내 그녀의 천재성을 살려내고자 한다. 하지만 불신에 찬 젊은 피아니스트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두 여자는 서로
냉정과 열정 사이에서 노래하는 건반 <포미니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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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듣고 그저 평범한 핑크영화를 기대했다면 실망할지도 모르겠다. 제제 다카히사 감독의 <욕망의 거미줄: 시세이2>에는 섹스신이라고 부를 만한 장면이 단 한컷도 나오지 않는다. 그 대신 여자의 몸에 문신하는 남자의 손길과 칼날이 피부를 파고들 때마다 신음을 토해놓는 그녀의 얼굴만이 화면 가득 전시된다. 마사지사인 아메미아(요시이 레이)는 최면 스프레이를 이용해 오랫동안 감시해온 세이즈(유게 도모히사)를 납치한다. 세이즈가 눈을 뜬 곳은 어두컴컴한 방 안. 도망칠 수도 없는 폐쇄된 공간에서 아메미아는 그녀에게 문신을 그리고 싶다고 이야기한다. 피투성이 남녀를 담은 잔인하고 끔찍한 풍속화를 보면서 알 수 없는 욕망을 느낀 여자는 그 제안을 기꺼이 수락하고, 그는 며칠 동안 공들여 그녀의 등에 그림을 새기기 시작한다. 등장인물이라곤 단 두명뿐인 이 영화는 주인공 남녀가 문신과 풍속화를 놓고 벌이는 기묘한 선문답에 오롯이 기대 있다. 사토 히사야스 감독의 <욕망의 거미줄:
인간의 내면에 집중하는 핑크영화 <욕망의 거미줄2: 시세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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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에서 3년을 대충 때운 뒤 쫓겨나다시피 졸업할 무렵 마음은 얼마나 스산한가. 게다가 자신을 불러줄 대학도 없는 청춘이라면 이 겨울은 하염없는 추위로 가득한 것일 게다. 겨울날을 배경으로 하는 <저수지에서 건진 치타>가 보는 이를 유난히 춥게 만드는 까닭 또한 스크린 속 살풍경보다는 주인공들의 심상에 고드름처럼 끼어 있는 서늘한 기운 때문이리라.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별다른 일을 하지 않고 지내는 제휘(임지규)의 마음속 한기는 어둠과 함께한다. 그는 방의 창을 모두 가려놓은 채 어둠 속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그가 세상과 소통하는 방법이라곤 가끔 아파트 단지를 쏘다니는 것과 익명의 존재들로 가득한 인터넷뿐이다. 순간이동 마술에 심취해 있는 그는 자신을 향해 주문을 외우기도 한다. “타.파.피.카.” 그 겨울 어느 날, 제휘는 우연히 장희(윤소시)라는 소녀를 알게 된다. 어딘가 엉뚱하지만 허물없이 그를 대하는 장희 덕에 제휘는 세상 바깥을 향해 한발을 내딛기 시작
스무살의 무게 <저수지에서 건진 치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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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자고 던질 농담을, 죽자고 덤비며 말하는 상황은 민망하다. 이종격투기 챔피언인 폭력 남편(박상욱)에게 링 위에서의 한판을 제안하는 하은(도지원)의 도전기 <펀치레이디>가 그렇다. 남편과는 눈도 못 마주치는 아내에게 하이킥과 길로틴초크를 구사하는 남편을 리얼하게 묘사한 첫 시퀀스. 이를 목격한 딸이 악에 받친 욕설을 퍼붓자 머리를 향해 재떨이를 던진다. 이건 씁쓸한 농담도 아니고 현실의 아픈 반영도 아니다. 여자들의 고된 운명에 대한 영화적 묘사라고 믿는 심각한 오해일 뿐이다. 사태는 점점 심각해진다. 악마 같은 남편과 대결하다 링 위에서 죽는 첫사랑을 본 하은은 얼떨결에 남편에게 대결을 제안한다. 놀이방을 만들기 위해 낡은 도장을 인수한 수현(손현주)은 지도를 부탁하는 하은을 어쩌다보니 받아들인다. 집에서 쫓겨난 딸과 손녀에게 신세지는 하은의 철없는 어머니(김지영)는 알고보니 병을 숨기는 처지다. 21세기 미련상의 강력 후보감 하은이 매서운 여전사로 변신하는 계기는 모두
한참은 잘못 찾은 번지수의 비애 <펀치레이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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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기숙사에 기거하는 청춘군상이 있다. 유럽여행을 떠난 환상 속의 연인 빅터의 귀환을 기다리는 숫처녀 로렌(섀닌 소사몬), 남성호르몬 넘치는 드럭딜러 숀(제임스 반 데어 빅), 숀을 짝사랑하는 게이청년 폴(이안 소머핼더), 로렌의 기숙사 룸메이트이자 생각없는 금발의 코카인쟁이 로라(제시카 비엘). 섹스와 마약으로 청춘을 탐닉하던 이들 훈남훈녀는 서로를 향한 일방통행의 공허한 관계로 얽혀 있지만 ‘세계 종말의 파티’를 기점으로 우르르 허물어지게 된다. 브렛 이스턴 엘리스의 원작을 각색한 <뒤로 가는 연인들>은 로저 애버리의 신작이다. 애버리가 누구냐고? 90년대를 휘어잡았던 ‘비디오 가게 점원출신’ 중 한명인 그는 <펄프 픽션> <트루 로맨스>의 각본을 공동으로 썼으며, 데뷔작 <킬링 조이>(1994)로 한때 “타란티노를 능가할 것”이라는 기대도 받았던, 잊혀진 감독이다.
<뒤로 가는 연인들>은 애버리가 지난 2002년에 만들었
뒤로 가는 재능 <뒤로가는 연인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