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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시(蟲). 문자대로 해석하면 ‘벌레’인 그것은 <무시시>의 세계에서는 정령에 가까운, 초자연적인 존재다. 인간과 함께 살아왔으되, 특수한 능력을 가진 이들의 눈에만 보이는 무시는 때론 인간의 몸에 침입해 병을 낳거나 기이한 자연현상을 일으키기도 한다. 무시와 인간을 중재하며, 어긋난 흐름을 되잡는 역할을 하는 이가 바로 벌레 선생 ‘무시시’다. 독특한 세계관과 기묘하고 아름다운 이야기로 300여만부의 판매고를 올린 우루시바라 유키의 만화 <충사>는 국내에도 8권까지 출간되며 다수의 팬을 확보하고 있다.
<충사>를 실사영화로 옮긴 <무시시>는 <아키라> <스팀보이> 등 애니메이션 감독으로 명성을 얻은 오토모 가쓰히로의 손에서 탄생했다. 에피소드를 하나씩 펼쳐가는 만화를 한편에 압축하면서 영화는 주인공 깅코(오다기리 조)의 사연에 초점을 맞췄다. 어린 시절 무시에 의해 기억을 잃고 무시시가 된 깅코가 자신의 과거를 깨
원작의 빛을 잃은 벌레들 <무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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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중반의 여성 제이미(마거릿 모로)는 상품에 이름을 지어주는 네이밍 전문가다. 그는 활달한 성격과 귀여운 외모를 가졌지만 연애생활만큼은 절망적이다. 몇번 잠자리를 같이 한 뒤 전화기에 일방적인 이별 메시지를 남긴 채 떠나는 남자들에게 질려버린 제이미는 오랫동안 지속되는 진실한 사랑을 갈구하고 있다. 시낭송회를 찾았다가 자신의 교수이자 시인인 존(내빈 앤드루스)과 연인이 된 제이미는 TV쇼 진행자 믹(브라이언 F. 오번)에게도 호감을 갖게 되면서 삶의 희망적인 변환점을 맞는 듯 보인다. 하지만 우유부단한 존과 헤어지고, 믹과의 관계도 지지부진해지자 그는 다시 우울한 일상으로 돌아온다. 그 나이가 될 때까지 남자로부터 “사랑한다”는 말을 들어보지 못한 제이미는 ‘깊은 사랑’을 맺을 수 있을까.
<이지 섹스, 이지 러브>는 현대(특히 미국)사회에서 사랑을 나눈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주는 영화다. 사랑에 곤란을 겪는 것은 비단 제이미뿐만이 아니다. 남편으로부터 배
사랑 나누기의 어려움 <이지 섹스, 이지 러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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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시간에 걸친 수다보다 기억에 남는 것은, 심금을 울리는 음악에 5분 동안 함께 귀기울였던 순간이 아닐까. 모든 예술을 통틀어 음악을 가장 위대한 예술로 꼽는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블록버스터의 땅 미국에서, 최강의 블록버스터 시즌을 나름의 방식으로 돌파한 인디영화 <원스>는 음악의 힘을 겸허히 인정하고, 이를 영화적으로 표현할 최선의 방법을 모색했다. 평단과 관객으로부터 고른 호응을 얻은 <원스>의 리뷰 중 상당수는 “이런 영화에 대한 첨언은 일종의 배신”이라며 영화 자체에 대한 말을 아낀다. 절대적으로 맞는 말이다. 사랑스러운 영화와 사랑스러운 음악을 있는 그대로 느끼고 싶다면 일단 극장으로 향할 것이요, <원스>가 지닌 매력의 배경이 궁금하다면 114쪽 기획기사를 참고할 일이다.
나이를 먹을 만큼 먹고도 꿈을 잊지 못해 날마다 더블린 번화가에서 거리의 악사를 자처하는 남자(글렌 한사드)는 자신을 버리고 런던으로 떠나간 옛 여자를
리얼리즘 뮤지컬영화 <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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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얼굴이냐, 다중인격이냐. 순진한 그녀와 엽기적인 그녀를 오가는 영화 <두 얼굴의 여친>은 캐릭터의 변형과 상황의 역전으로 이야기를 끌고 가는 코미디다. 화가 나면 뽁뽁이를 터뜨리며 스트레스를 푸는 여자 아니(정려원)는 어느 순간 돌연 발차기와 욕설을 일삼는 하니(정려원)가 되고, 아니에게 반했던 남자 구창(봉태규)의 구걸하던 사랑은 하니의 무지막지함에 산산조각이 난다. 영화는 종잡을 수 없는 여자 아니/하니와 어수룩한 남자 구창의 이야기를 로맨스와 코미디를 섞어 보여준다.
대학 7학년이 되도록 연애 한번 못해본 남자 구창은 그야말로 궁상맞다. 조카의 학원비를 탐내고, 남들이 먹다 남긴 과자를 훔쳐 먹으며, 주운 돈으로 점심을 떼운다. 유일하게 선배 노릇을 하고 있는 동아리 해양소년단엔 신입생 한명 오지 않는다. 하지만 그는 주운 돈으로 사먹은 점심이 인연이 돼 아니와 만난다. 얼마 전 남자친구와 헤어진 아니는 구창과 같은 학교에 다니는 3학년생이다. 실연의 충격으로
상황을 과장하는 코믹 판타지 <두 얼굴의 여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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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내들을 태울 열차가 기다리고 있다. 장대 같은 비가 쏟아지고 각자의 사연을 남겨둔 채 그들이 군용열차에 올라타 훈련소로 향한다. 지금 그들은 아프가니스탄으로 간다. <제9중대>는 구소련이 일으킨 아프가니스탄전쟁 당시인 1988년과 89년 사이를 배경으로 한 무리의 젊은이들이 각자의 꿈이 꺾인 뒤 병사로 다시 태어나는 과정을 보여주는 영화다. <전쟁과 평화>로 유명한 러시아 감독 세르게이 본다르추크의 아들인 표도르 본다르추크가 연출했으며 감독은 영화에 교관 포그레브야크로 출연한다. 실제 아프가니스탄 전장에서 살아남은 생존자의 증언을 뼈대로 구성했다.
영화에서 주인공들은 이제 막 결혼한 신랑, 화가 지망생, 교생 등으로 다른 과거를 갖고 있지만 같은 목적의 병사로 키워져 전장에 나간다. 영화는 그들의 모습을 그리는 과정에서 다소 모호하다. 우선 이 영화는 그들의 전우애에 많은 걸 할애한다. 그러나 139분짜리 전우애를 본다는 게 그리 흥겨운 일은 아니다. 그보
승리했으나 패배한 자들 <제9중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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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 궁한 세 남자가 한방을 도모한다. 도범(강성진)은 교도소 안에서 산달을 맞이하게 된 아내의 보석금을 마련하기 위해, 근영(유해진)은 사기원정결혼으로 날려버린 어머니의 의치치료비를 위해, 그리고 도범의 처남인 종만(유건)은 얼떨결에 그들과 뜻을 모은다. 이들이 목표로 삼은 이는 “하루 판매량 3천 그릇, 월 매출액 7억5천만원”을 벌어들이는 국밥집의 사장 권순분 여사(나문희). 하지만 어렵사리 납치한 권 여사는 납치된 자로서의 두려움과 긴장은커녕 오히려 이 가련한 젊은이들의 식사를 챙기고, 사연을 듣고 다그치기에 바쁘다. 게다가 몸값을 협상해야 할 권 여사의 자식들은 모두 공사다망하다는 이유로 협상을 거부한다. 겉으로는 거동이 굼뜨고 생각이 더뎌 보이는 권 여사의 진가는 이때부터 드러난다. 한평생 국밥을 말아 자식들을 건사했던 권 여사는 자식들에 대한 배신감에 자신의 몸값을 500억원으로 불리고 자식들과 경찰, 언론을 상대로 대규모 납치사기극을 꾸민다.
<권순분여사 납
무자식이 상팔자 <권순분여사 납치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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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듯한 직장을 얻고 싶었던 니노미야(유게 토모히사)는 예리한 심리 분석으로 사람들을 현혹시키는 오쿠시마 아래 들어간다. 오쿠시마의 세미나에 더 많은 사람을 유치하려 애쓰던 중 휴대폰으로 메시지를 주고받던 아사미(요시이 레이)와 만난 그는 그녀를 오쿠시마에게 소개한다. 아사미와 하룻밤을 함께 보낸 오쿠시마는 니노미야에게 그녀를 문신기술자의 거처로 안내하도록 명령한다. 문신기술자가 자신의 등에 밑그림으로 그려놓은 거미 문양을 본 아사미는 니노미야의 만류에도 문신을 새기기로 결정한다. 이 영화를 연출한 사토 히사야스 감독은 핑크 영화 연출로 유명한 감독이다. 85년 데뷔해 TV와 영화에서 활발하게 활동한 그는 건강이 악화돼 90년대 후반부터 촬영현장을 떠났으나 2005년 <란포지옥>의 단편 중 하나인 <우충>을 연출하면서 복귀한다. 복귀 후 작품인 <욕망의 거미줄: 시세이>는 간간히 드러나는 여성의 맨몸 이외에는 눈길을 끌만한 것이 없는 평범한 핑크 영화다
지루한 핑크 영화 <욕망의 거미줄: 시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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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아름다워>에서 2차 세계대전 속의 마술같이 펼쳐진 사랑을 보여주었던 로베르토 베니니가 <호랑이와 눈>에서 이라크 전쟁을 배경으로 또 한번 사랑의 기적을 이야기한다. 시인 아틸리오(로베르토 베니니)는 매일 밤 꿈속에서 비토리아라는 여인과 결혼한다. 그녀의 사랑 고백을 받는 황홀한 순간 잠에서 깨는 그는 현실 속에서 그녀와 만나 사랑을 이루기 위해 분투하지만 좌절당한다. 출판을 위해 이라크로 떠났던 그녀가 폭격을 맞아 혼수상태에 빠졌다는 이야기를 듣고 부리나케 전장으로 달려간 아틸리오는 오직 사랑의 힘으로 불가능한 일들을 해치우며 그녀를 살려낸다. 베니니는 주인공을 시인으로 내세워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인간의 본성과 전쟁의 폭력성을 대비시키며, 극한상황에서도 긍정적인 태도를 잃지 않는 인간 내면의 강인함을 이야기한다. 아름다운 시구들과 유머러스한 대사를 속사포처럼 쏟아내는 비쩍 마른 대머리 아저씨 베니니는 신경증이 사라진 건강한 우디 앨런을 보는 것 같기도
판타스틱 전쟁 러브 스토리 <호랑이와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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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고생 지혜(박하선)는 뉴타운 건설로 곧 폭파될 지역에 한 남자가 침입했다는 뉴스를 접한다. CCTV 화면에 얼굴이 잡힌 이 엉뚱한 사내는 다름 아닌 노(老)작가 최호(하명중)다. 자신이 끔찍이 따르는 할아버지 최호가 폭파 직전의 철거지구에 들어갔음을 알게 된 지혜는 시험 도중 학교를 뛰쳐나간다. 첫사랑을 만나러 간다며 문자메시지까지 보내서 자랑하던 할아버지는 무슨 까닭으로 세상에서 곧 자취를 감출 동네에 흘러든 것일까. 아니, 할아버지가 고이 안고 있던 자그마한 보따리, 그 안에는 도대체 무슨 귀중품이 든 것일까. 최호는 그러나 손녀의 다급하고 애타는 발자국 소리를 듣지 못한다. 사라진 어머니의 체취를 뒤쫓고, 맥박을 느끼기에도 바쁘다. 자식 셋을 키웠으나 홀로 남았던 어머니의 한숨은 얼마나 깊었을까. 늙은 아들이 허물어진 벽을 쓰다듬으며 뒤늦은 후회를 들이마시는 동안 영화는 아직 식지 않은 어머니(한혜숙)의 온기를 과거로부터 조금씩 호출한다.
최인호의 동명 베스트셀러를 원작으
투박한 수제품 같은 느낌 <어머니는 죽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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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작가 투르게네프의 소설 <아시아>의 한 대목이 인용된다. 섹스가 끝나거나 장면이 바뀔 때엔 주인공의 목소리로 12편의 단가가 삽입된다. 대자로 뻗은 남자의 나체는 광합성을 하는 나무의 이미지로 연결되고 벨리댄스를 추는 여자의 몸동작은 에로티시즘으로 이어진다. <샐러드 기념일>로 유명한 작가 다와라 마치의 소설을 영화화한 <사랑에 눈뜨다>는 33살의 여자 작가 카오리가 사랑과 삶에 눈떠가는 과정을 그린다. 9살 연상의 유부남 M과 연애를 하고 연하의 바이올리니스트 K와 섹스를 하는 그녀는 몰랐던 불안과 고민을 배우며 자신의 미래를 생각한다. M과 K가 제시한 불안정한 상황은 그녀의 성장을 돕는 자극이다. 하지만 영화는 카오리의 일상을 과도하게 장식하고 은유한다. 그 과한 추임새가 거북하게 느껴질 정도다. 카오리의 심정을 대변하는 단가와 일상의 이미지를 비약하는 추상적인 이미지는 이야기의 진심과 별개로 영화를 어색한 모양새로 포장한다. “사랑은 지
진심을 잃어버린 이야기 <사랑에 눈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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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기억하는 역사란 배제의 결과물이다. 역사란 기억할 만한, 혹은 기억해야만 하는 과거에 부여된 명칭이고, 수많은 과거‘들’은 역사가 되지 못한 채 누군가 떠올려주길 바라며 우물 깊숙이 고여 있다. 역사를 단지 과거의 주요 사건들의 집합처럼 오해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이다. 역사영화는 그렇게 딱딱하게 굳어버린 역사에 감정을 불어넣는다. 역사영화에서 실제 사건은 단지 그것이 발생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을 어느 누군가가 직접 체험하고 느꼈기 때문에 가치가 있는 것이다. 감정이입된 역사, 그것이야말로 일반적인 역사서술과 구별되는 역사영화의 독자성이다.
로우예의 <여름궁전>은 사건 중심의 역사서술에서 쉽게 간과되는 그 시대의 정서를 되살려내려는 시도처럼 보인다. 천안문 사태로 기억되는 1989년을 얼마 앞두고, 위홍(레이하오)은 조선족 자치지역인 투먼을 떠나 베이징의 대학으로 진학한다. 누구와도 쉽게 친해지지 못하던 위홍은 자유분방한 성격의 리티(후링)와 어울리게 되고
미칠 듯한 사랑 <여름궁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