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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의 역사>는 과거의 폭력성을 감추고 살던 남자가 선의의 폭력을 계기로 다시 그 ‘나쁜’ 폭력의 늪에 빠져드는 이야기, 혹은 폭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폭력을 수행하는 이야기다. <폭력의 역사>가 흥미로운 이유는 이것이 인간의 본질적인 욕망을 들추어내서가 아니라 창조적인 이야기를 통해 미국의 현실에 대해 강력하게 발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의 폭력성을 은폐하고 선량한 가장으로 사는 남자의 삶은 사실, 새 출발도, 회개도 아니라 그저 아메리칸 ‘드림’, 즉 환상 속에서 자신이 저지른 죄를 회피하는 것일 뿐이다. 영화는 톰의 분열된 역사에서 미국의 역사를 보고 있다. 마을 사람들은 외부의 침입으로부터 마을을 안전하게 지켜야 한다는 불안에 사로잡혀 정작 폭력의 근원이 마을의 심장부에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이들의 집단 무지와 환상이 범죄자와 영웅을 동일인으로 만든다. 크로넨버그는 탄탄한 각본과 버릴 것 하나 없는 숏의 배열을 기반으로 한치의 망설임도
미국 현실에 대한 강력한 발언 <폭력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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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 인근인 미국 LA 동쪽, 산베르디날도 카운티와 리버사이드 카운티를 묶어 일컫는 ‘인랜드 엠파이어’에는 상류층 인구 400만이 거주한다. 영화 <인랜드 엠파이어>의 공간적 무대는 이곳이다. 주인공인 금발의 스타 여배우 니키(로라 던)는 할리우드에서 작가로 칭송받는 킹슬리 스튜어트 감독(제레미 아이언스) 작품에 주연으로 캐스팅된다. 엄청난 기대감에 부푼 그녀. 감독으로부터 “이 영화가 실은 (오리지널이 아니라) 폴란드 어떤 영화의 리메이크작”이며 “원작의 두 주연배우가 살해당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인랜드 엠파이어>는 린치의 여느 영화들처럼 범상한 미스터리물인 척 시치미를 떼고 시작해서 꿈, 상상, 무의식과 판타지 등 비현실계를 현실계와 뒤섞으며 내러티브를 해체해간다. 몇 가지 이야기틀로 정리되지만 이야기틀간의 질서는 없다. 관계는 전복되고 위계는 완전히 허물어진다. DV카메라로 핸드헬드 기법을 써서 촬영한 저예산 다큐 스타일의 화면은 현실-극-기억
지적 오락물의 절정 <인랜드 엠파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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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에게 상속되는 건 유산뿐만이 아니다. 가족에 얽힌 저주도 그대로 물린다. 대만 감독 레스티 첸의 장편 데뷔작 <가족상속괴담>은 중국의 무속 신앙을 빌려 20년 넘게 이어지는 가족의 저주를 그린다. 영국에서 유학하던 제임스(제이슨 챙)는 먼 친척으로부터 저택을 상속받게 되자 고향인 대만으로 돌아온다. 혼자 살기엔 너무 크고 낡았지만 그는 고풍스러운 느낌이 좋다며 그곳에서 약혼녀 요(테리 콴)와 함께 살기로 한다. 하지만 집의 가장 위층에선 원인 모를 음산한 느낌이 감돌고 그곳에서 함께 파티를 했던 제임스의 친구들은 밤 12시만 되면 이상하게 다시 제임스의 집으로 모이는 기이한 경험을 하게 된다.
영화는 ‘태아 귀신 모시기’라는 중국 무속 신앙에서 시작된다. 죽은 태아의 시체를 납골당에 모시고, 사람의 피를 그 태아에게 먹이면 가문에 복을 가져다준다는 이 무속은 제임스의 조상들이 가문을 지켜온 방식이다. 하지만 이 신앙은 가문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하기 때문에 경우에
저주를 상속받은 남자 <가족상속괴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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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반 올마이티>는 4년 전 짐 캐리에게 신의 권능을 잠시 부여해 인간사를 멋대로 주무르게 하면서 익살어린 볼거리를 만들어냈던 <브루스 올마이티>의 뒤를 잇는다. 그때 짐 캐리의 경쟁자로 심술궂은 앵커처럼 그려졌던 에반 벡스터(스티브 카렐)가 하원의원으로 당선되면서 주인공도, ‘올마이티’의 권능이 발휘되는 구조도 새판처럼 달라졌다. 세상을 바꾸자, 는 구호로 정계 진출에 성공하자 자신의 신세가 바뀌었다. 교외의 근사한 대저택으로 이사했고, 장갑차 뺨치는 튼실한 새 차도 마련했다. 등원 첫날, 실세 의원 롱(존 굿맨)에게 자신이 상정하는 법안에 힘을 모아달라는 요청을 받는데, 신의 축복 신호 같다. 세상을 어떻게 바꿀지 로드맵은 없지만 상관없는 듯하다.
진짜 신(모건 프리먼)이 예의 화이트룩으로 등장하면서 일찌감치 반전(?)이 시작된다. 맞춰놓지도 않은 새벽 6시14분에 알람이 반복적으로 울리더니, 주문하지도 않은 엄청난 양의 목재와 공구 세트가 배달된다. 출
성실함이 묻어나는 코미디 <에반 올마이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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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 폰 트리에의 미국 3부작 중 2편인 <만덜레이>는 아버지와 함께 ‘도그빌’을 떠난 그레이스가 ‘만덜레이’라는 노예제가 상존하는 농장에 머물게 되면서 전개되는 상황을 다뤘다. 전작과 이어지는 연극적 비주얼, 공평무사한 내레이션, 살짝 우아한 바로크 음악과 엔딩 때 흐르는 데이비드 보위의 <Young American>은 영화에서 일어나는 파탄들에는 무심해 보이는 형식적 골격을 제공한다. 그레이스라는 한명의 이방(혹은 타인종) 여자와 마을 사람 전체와의 대면이라는 서사적 설정 역시 전작의 구도를 잇는다. 그러나 가면 쓴 미국식 합리성의 폭력에 훼손당했던 그레이스의 입장이 이번엔 마을의 질서와 윤리를 만드는 주재자의 위치로 전도된 듯하다. 노예들에게 자율과 독립적인 사고방식을 ‘가르쳐’주기 위해 농장에 머물기로 한 그레이스는 미국식 미덕과 민주주의의 질서에 대한 포교자가 된다. 그러나 타율에 익숙한 자들의 내성은 자율이라는 이질적인 사태에 근본적으로 적응하지 못한
도발적인 미국 3부작 <만덜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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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윤희(조안)는 자신의 창작품을 실재에서 구한다. 절친한 친구가 외국으로 나가버린 사이, 그 친구를 둘러싸고 떠도는 나쁜 소문을 뼈대로 소설을 썼고, 인기를 얻었다. 소문이 진짜인지 아닌지는 나중에 밝혀지지만 창작의 희생양이 된 친구의 실재는 부정할 수 없다. 후속작이 문제다. 편집장은 그럴듯한 글의 마감을 쪼고 있는데 창작의 불을 지펴줄 자극적인 소재가 없다. 마침, 베트남으로 간 친구 서연(차예련)이 보내온 ‘므이의 전설’이 구미를 자극했다. ‘누군가에게 복수를 꿈꾸는 자는 므이 초상화에 저주를 빌면 대신 복수를 해준다, 거기에는 끔찍한 대가가 뒤따른다….’
윤희는 베트남으로 날아가 옛 친구 서연의 집에 머물며 그의 도움을 받아 므이 초상화의 기원을 취재하기 시작한다. 윤희는 므이의 초상화에 대해 알게 되면 될수록 비밀스러운 공간에서 초상화를 그리는 서연에게서 석연치 않은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서연은 윤희가 자기를 먹이삼아 소설을 썼다는 것도 알고 있던 터였다. 서연의
공포의 기원에 대한 안이함 <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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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피해자는 가람고등학교의 성민(이성민)이었다. 손꼽히는 꽃미남인 그는 얼굴에 똥을 뒤집어쓰는 테러를 당한다. 발군의 농구실력을 자랑하는 거창고등학교의 한경(한경), 밴드 보컬로 인기를 끄는 나담고등학교의 예성(김종운)도 같은 수법으로 공격당한다. 각 학교의 꽃미남들이 연이은 테러의 목표물이 되자 기범(김기범)은 자신의 블로그에 모교인 늘파란외국어고등학교의 누군가가 다음 표적이 될 것이라는 추리를 올린다. 학생회장 시원(최시원), 댄스그룹 울트라 주니어의 리더 희철(김희철), 유도부 주장 강인(김영운)이 네 번째 피해자로 지목된 가운데, 이들 사이에 은근한 경쟁심마저 떠오른다. 범인을 추적하는 기범을 뒤쫓듯 울트라 주니어 멤버 동해(이동해)도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풍긴다.
아이돌그룹 슈퍼주니어를 전면에 내세운 <꽃미남 연쇄 테러사건>은 과장된 화법을 따르는 영화다. 미소년을 등장시키며 대기 중에 반짝임과 휘광을 흩뿌리는가 하면, 그 앞에서 고함을 지르다가 기절하는
잠깐의 일탈, 백일몽 <꽃미남 연쇄 테러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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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년 만에 귀환한 <다이하드> 시리즈의 영웅 존 맥클레인(브루스 윌리스) 형사에게 시대는 우호적이지 않다. 액션 영웅 클럽의 상석은 CG와 한몸되어 날아다니는 만화 출신 슈퍼히어로들이 차지했고, 웬만한 스릴러영화의 주인공은 컴퓨터 전문가다. 그의 장기였던 이죽거리는 구변도 애니메이션의 수다쟁이를 당할 수 없고, 그 시절 동지를 찾아본들, 캘리포니아 주지사 집무실의 아놀드 슈워제네거가 보일 뿐이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이 있다. <다이하드4.0>의 영리한 각본은 주인공에게 적대적인 환경을 어물쩍 외면하거나 맥클레인에게 부랴부랴 정보통신 자격증을 따게 만드는 미봉책을 쓰지 않는다. 대신 시대의 변화와 주인공의 무력함을 이야기 핵심으로 대뜸 끌어들여 정면 돌파한다. 천재 해커 토마스 가브리엘(티모시 올리판트)이 이끄는 전문가 집단은, 잘나가는 개인 해커들의 경쟁심을 이용해 국가정보, 통신, 교통, 수도, 전기, 금융 인프라를 총체적으로 파괴하는 ‘파이어
시리즈의 적절한 업그레이드 <다이하드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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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그 남자도 그땐 단지 하고 싶었을 뿐이야.” 29살의 준코가 15살 중학생 시절 담임과 섹스에 탐닉하던 과거를 남자 동창에게 들려준다. 플래시백 속의 담임은 과즙이 뚝뚝 떨어지는 복숭아와 준코를 번갈아 베어문다. 29살의 준코가 그 못지않게 복숭아를 에로틱하게 베어물 때, 다섯 옴니버스가 펼칠 색깔이 예감된다. 마쓰오 스즈키 감독은 <밤의 혀끝>에서 <지금, 만나러 갑니다>의 순정을 ‘무자비하게’ 배반하는 쾌감을 선사한다. 머리카락을 태우고 잠들면 꿈에서 원하는 걸 맘껏 할 수 있다는 신비스러운 향로를 얻게 된 마사코 이야기다. 직장의 연하남 머리카락으로 꿈에서 오르가슴에 오르던 그녀는 아예 꿈에서 깨어나지 않겠다는 비장의 결심을 행동으로 옮긴다. 이 격한 에로스는 쓰카모토 신야의 <비단벌레>로 이어진다. 늙은 남자의 정부가 그 남자의 젊은 부하와 눈이, 아니 몸이 맞는다. <유레루>의 니시카와 미와는 <여신의 발 뒤꿈치>
불균질의 에로스 옴니버스 <그녀의 은밀한 사랑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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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촬영 작가(미쓰이시 겐)의 1인칭 시점과 내레이션이 도쿄 한복판에서 만난 유다(혼다 카주마)를 따라붙는다. 유다는 남성과 여성의 경계에 애매하게 서 있는, 미스터리적 인물이다. 호기심이 애정으로 바뀔 무렵 유다가 캠코더를 가지고 사라졌다. 페이크다큐가 픽션적 장면과 마구 섞이는 건 문득 화자를 찾아온 미치(오카모토 유키코)라는 여자의 방문 이후다. 그녀는 유다가 가져간 캠코더의 테이프를 가져왔고, 거기에는 그녀와 유다의 미스터리한 여행이 담겨 있다. 미스터리는 이 영화 자체의 성격이다. 유다와 미치 사이를 오가는 회상과 16살 소녀들을 둘러싼 끔찍한 사건을 자꾸 혼합하면서 이야기는 매듭짓기를 방기한다. 그게 무엇이냐, 보다는 이러한 것들이 실은 네 주변에 있다, 고 봐주기 원한다. 젊은이들이 마주하거나 만들어가는 세상이 미스터리이니 이를 담는 에피소드가 매번 명쾌할 수 없다.
다큐멘터리적 연출은 픽션을 픽션 아니게 혼동하게 만든다. 페이크다큐의 목적은 믿기 싫고 보기
미스터리한 성(性)과 미스터리한 연출 <비밀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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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끼리의 여행은 간혹 관계의 분기점이 된다. “우리는 지금 최고로 행복해야만 해”라는 강박도 스트레스지만, 미처 몰랐던 상대방의 얼굴을 발견하고 질겁하는 일도 있다. 35살 동갑내기 커플 마리옹(줄리 델피)과 잭(애덤 골드버그)의 유럽 여행도 위기로 비화된다. 베니스에서 뉴욕으로 돌아가기 전, 파리에 들러 마리옹의 가족과 함께 이틀을 보내게 된 잭은 문화적 차이에 충격을 받는다. 게다가 비엔나 소시지같이 줄줄이 출현하는 마리옹의 옛 남자들은, “과연 내가 그녀를 아는 걸까?”라는 회의까지 부른다.
<비포 선셋>의 각본에도 참여한 바 있는 줄리 델피 감독은 <뉴욕에서 온 남자, 파리에서 온 여자>에서 익숙한 지도를 따라 걷는다. “나는 어떤 인간인가”를 사색하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을 소비하는 여자와 남자가 거리를 소요하며 대화로 줄거리를 진전시킨다. 그러나 잭은 <비포 선라이즈>의 제시처럼 꿈꾸지 않고, 마리옹은 <비포 선라이즈> 연작의
수다만발 코미디 <뉴욕에서 온 남자, 파리에서 온 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