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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 있습니다.
남들이 나를 불행한 여자라고 부르지만 않으면, 난 감쪽같이 다시 행복해질 수도 있을 거야.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에 가기만 하면, 그럴 수만 있다면…. 신애(전도연)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리고 교통사고로 죽어버린 남편의 고향 밀양으로, 아들 준(선정엽)을 데리고 이사한다. 밀양 오는 길에 고장난 차를 고쳐주러 온 카센터 사장 종찬(송강호)에게 신애는 문득 묻는다. “밀양의 뜻이 뭔 줄 아세요? 비밀의 햇볕이래요.” 그녀의 인생은 의미에 목말라 있다. 그리고 종찬은 이 속모를 여자를 그날부터 졸졸 따른다. 늘 네댓 걸음 뒤에서, 부르면 다가서고 밀쳐내면 물러나면서.
사실 남편이 신애를 떠난 건 죽음이 처음이 아니었다. 남편은 다른 사람을 사랑했었다. <밀양>은 시작이 시작이 아니고, 끝이 끝이 아닌 영화다. 영화가 시작하기 전부터 신애는 먼 길을 걸어왔고 영화가 끝나도 신애에게 끝난 일은 없다. 2시간20여분의 러닝타임은 툭 베어낸 생의 고약한 한 토
타인과 끝내 나눌 수 없는 고통 <밀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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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린 자식도 많아 여섯 식구. 아빠는 도박에 빠져 있고, 엄마는 끊이지 않는 부부싸움을 견디다 못해 가출했다. 남겨진 네 남매. 술 마시고 돌아오던 길에 교통사고를 당한 아빠는 허구한 날 방구석에 드러누워, 첫째 윤숙이(김유나)가 구두를 닦고 신문을 팔며 생계를 꾸린다. 하루하루가 힘든 고통의 연속이지만 언젠가 행복이 찾아올 거란 믿음을 놓지 않는 아이들. 80년대 연속극에서나 볼 법한 눈물의 가족 이야기는 1964년 출간된 에세이 <저 하늘에도 슬픔이>가 원작이다. 13살 아이 이윤복의 일기를 당시 학교 선생님들이 모아 출간하면서 화제가 된 작품. 1965년에는 김수용 감독이 같은 제목의 영화를 연출했었다. 4명의 신인 아역배우들이 네 남매로 출연하며 TV드라마 <아들과 딸> <신돈> 등으로 익숙한 윤철형이 아빠 역을 연기했다.
아이들의 힘찬 눈물 <저 하늘에도 슬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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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을 참기 위해 코를 쥐어짜는 요타로(쓰마부키 사토시)와 카오루(나가사와 마사미). 동명의 노래를 모티브로 한 영화 <눈물이 주룩주룩>은 만나고 싶어도 만날 수 없고, 울고 싶어도 울 수 없는 두 남녀의 사랑 이야기다. 오키나와섬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살아가는 요타로에겐 배다른 여동생이 있다. 어릴 때 엄마(고이즈미 교코)가 새아빠와 함께 데려온 카오루. 가족이란 울타리 안에서 정을 쌓아가던 둘은 새아빠의 가출과 엄마의 죽음으로 슬픔을 극복하며 살아가는 법을 배운다. 하지만 시간은 흘러 둘은 이성간의 감정에 예민해지고, 어릴 적 이유도 모른 채 남매는 결혼할 수 없다고 단정했던 감정이 아슬아슬하게 다시 솟아난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눈물을 노린 장면들이 과도해서 오히려 몰입하기 힘들며, 작은 디테일로 빛날 수 있었던 요소들도 너무 자주 등장해 그 효과를 잃는다. <지금, 만나러 갑니다>의 도이 노부히로 감독은 자신의 감정을 숨기고 살아가야 하는 인물을
두 남녀의 사랑 이야기 <눈물이 주룩주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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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묻는다. “훌륭한 소년이 될 거예요?” 아직 소년에 가까운 청년이 씩씩하게 답한다. “예.” <마이 제너레이션>으로 데뷔하여 주목을 모은 노동석의 두 번째 장편영화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는 그 문답으로 끝난다. 현실의 절망을 헤매던 청춘군상이 현실과 그 재현됨의 자기 반영적 경계 사이에서 멈춘 영화가 <마이 제너레이션>이었다면(영화의 마지막에 재경은 병석에게 말한다. “카메라 끄면 말할게”),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는 그들의 현실이 아직 밝은 미래와 접속하지 못한 상태에서 그러나 징조는 보이는 그 길 위에서 호기로운 대답과 함께 멈추는 영화다.
기수(김병석)와 종대(유아인)는 형제처럼 친한 동네 형, 아우다. 드러머인 기수는 음악의 꿈이 있지만 그는 지금 취객을 상대로 대리운전을 하며 어렵게 산다. 기수의 삶이 험난하다면 종대의 삶은 위태롭다. 종대의 어머니는 왜곡된 신앙으로 살고 종대는 폭력계의 거물 김 사장(최재성) 밑으로
삶은 아직 불명료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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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이리 멘젤 감독은 리비도의 유머로 많은 걸 풀어낸다. 두 가지 사랑이 있다. 종교적 이유로 토요일에 출근하지 않았다고 폐철처리장으로 끌려온 요리사 파벨과 체코를 뜨려고 하다가 국경에서 붙잡혀 감옥으로 온 뒤 폐철처리장에서 노역하는 이트카가 눈이 맞았다. 폐철을 녹여 쓸모있는 무언가로 재탄생시키는 이곳에서 파벨과 이트카는 ‘쓸모있는’ 인간으로 재탄생해야 한다. 이들을 지도하는 당 간부는 유독 아이를 사랑한다. 그의 집에는 아이들이 들끓는데 어딘가 이상하다.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아버지의 사랑에 호응해야 하는 아이들의 눈망울에 괴로움이 역력하다. 그는 모종의 장소에서 벌거벗은 여자아이를 손수 목욕시켜주는 행사를 정기적으로 치르는데 그 도착적 천연덕스러움이 징그럽다.
강압적, 일방적 리비도가 풍요로운 사랑이 될 수 없는 것처럼 스탈린식 공산주의는 이상향이 될 수 없다는 직접적 비유다. 1968년 ‘프라하의 봄’ 당시 촬영된 이 영화는 옛 소련의 무력 진압으로 체코가 다시 철의
정치적 압제에 항거 <줄 위의 종달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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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 영화(personal film), 포스트 누벨바그를 대표하는 필립 가렐의 영화를 가리켜 우리는 이렇게 부른다. 함께 포스트 누벨바그를 이끌었던 장 외스타슈가 단 세편의 장편영화를 끝으로 세상을 떠난 뒤에, 그의 빈자리까지 채우며 고군분투하는 이가 바로 필립 가렐이다. 가렐은 자신의 사적 경험과 기억을 통해서 삶의 본질을 포착하지만, 그 삶을 낭만화된 추억으로 포장하지 않는다. 그의 시선은 언제나 건조하다 못해 냉정하다. <와일드 이노선스>는 필립 가렐의 필모그래피에서 가장 빛나는 작품은 아니라 하더라도, 사적 영화로 불리는 가렐 영화의 특성과 특유의 건조함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가렐은 이 영화를 시작하면서 자신의 연인이었던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니코를 떠올렸을 것이다. 마약 중독으로 세상을 떠난 니코에 대한 사랑과 기억에, 영화감독으로서의 자신의 삶과 현대영화에 대한 성찰적 시선의 무게가 더해지는 순간, <와일드 이노선스>는 필립 가렐 특유의 서
<파우스트>의 가렐식 번역 <와일드 이노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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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영화의 정체성은 그 영화에서 묘사된 것보다 묘사되지 않은 것에 의해 더 잘 규정된다. <마리 앙투아네트>가 그렇다. 이 영화는 프랑스 대혁명의 희생양 혹은 한 원인으로 빠짐없이 거론되는 마리 앙투아네트를 주인공으로 삼고도 혁명에 아무런 관심을 두지 않는다. 왕실과 왕실 사람들의 사생활에만 카메라를 들이대는 이 두 시간 남짓한 작품에서 왕실 밖 사람들이 등장하는 것은 110분의 러닝타임이 지나고 나서이다. 그리고 루이 16세와 앙투아네트가 파리로 가는 마차 안에서 급작스레 막을 내린다. 앙투아네트와 관련한 가장 극적인 사건일 단두대는 그림자조차 비치지 않는다. 이 영화에서 프랑스 대혁명은 영화 속 스캔들의 대상인 뒤바리 부인이나 페르젠 백작보다도 비중이 적다.
마리 앙투아네트를 그리는 영화라고 반드시 프랑스 대혁명을 묘사해야만 하는 의무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인물과 관련해서 거의 자동연상되는 결정적 사건들을 누락시키고 다른 이야기를 늘어놓았다면, 거기엔
10대 소녀의 감성 <마리 앙투아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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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의 어느 날>이라니, 사뭇 목가적인 제목이다. 문제의 9월이, 2001년 9월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면 얘기가 달라진다. 뉴욕 무역센터가 테러로 무너지기 엿새 전 프랑스. 전직 첩보원 이렌느(줄리엣 비노쉬)는 시골에서 거위를 치는 소녀 올란도를 방문한다. 올란도는 10년 전 이렌느의 동료 엘리엇(닉 놀테)이 미국으로 소환될 때 방치한 딸. 미국에서 재혼해 의붓아들 데이빗도 얻은 엘리엇은, 뭔가에 쫓기는 투로, 아들과 딸을 은밀히 만나게 해달라고 이렌느에게 부탁했다. 그러나 상봉 장소는 예상보다 붐빈다. 잔인하고 정서 불안한 CIA 요원 파운드(존 터투로)가 들이닥치고 엘리엇이 지닌 ‘정보’에 목을 맨 국제적 투자사도 그를 찾느라 혈안이다. 급기야 재회 장소는 베니스로 바뀌고 여행길의 올란도와 데이빗은 남매 이상으로 친밀해진다.
각본가 출신 신인감독 산티아고 아미고레나는 “9·11을 예견하고 그 정보로 이윤을 취한 사람들이 있다”는 가설을 수용해 특이한 스릴러를 썼
긴장 속의 찰나적 평화 <9월의 어느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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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이야기> <천년여우 여우비> 등으로 장편 개봉 애니메이션의 가능성을 점쳤던 이성강 감독의 첫 번째 장편실사영화. <살결>은 그러한 호명에 대해 절반의 긍정과 절반의 부정으로 대답한다. 갑작스런 사고로 한 여인이 세상을 떠나는 광경을 목격한 민우(김윤태)는 옛사랑 재희(김주령)와 우연히 재회한다. 아홉번의 섹스를 제안한 재희와 민우가 육체적 관계를 더해감에 따라 옛 감정 또한 되살아난다. 한편 새로 자취방을 구한 민우는 그 공간에서 알 수 없는 소녀의 영혼을 느끼고, 그 소녀는 민우 이전에 그 방에 살면서 옷을 만들었던 종이(최보영)였음이 밝혀진다. 종이 역시 그 방에서 특별한 사랑을 키웠고, 민우는 재희와 섹스하면서 종이를 느낀다.
한때 포르노로 오해받았을 만큼 많은 ‘살결’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이 영화에서, 미야자키 하야오를 연상시키던 이성강 감독의 전작 애니메이션을 떠올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영혼과 교감하며 마
이성강 감독이 만든 성인판 동화 <살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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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블 코믹스의 원작을 스크린으로 모신 할리우드영화의 그 방식 그대로 <용호문>의 입구에 만화의 인장을 분명히 새긴다. 현란하게 채색된 만화의 순간 맛보기가 끝나면 이를 닮은 SF적 무협 세계가 펼쳐진다. 홍콩의 마천루를 응용한 인공적 공간의 강호는 악의 자장 안으로 슬슬 끌려들어가는 참이다. 전설의 무림고수가 창립한 용호문의 두 기둥 왕소룡(견자단)과 왕소호(사정봉)가 이별하게 된 사정이 위기를 재촉한다. 왕소룡이 용호문을 떠나 배신 아닌 배신의 길을 거듭하는 사이 거대한 범죄조직 나찰문의 보스 화운사신은 용호문의 제거를 시도한다. 왕소룡과 왕소호가 사랑다툼 벌이는 연인처럼 방황을 거듭할 때 용호문에 간신히 입문한 석흑룡(여문락)이 지원군으로 나서나 화운사신을 상대하기에는 역부족이다.
견자단과 사정봉의 육신은 <옹박> 같은 ‘리얼액션’을 만들어가기에는 너무 깔끔하다. 이건 그들의 부족함이라기보다 만화의 과장된 상상력을 특수효과로 최대한 옮기려는 욕심 사이에
SF적 무협 세계 <용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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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다르와 트뤼포의 유전자를 살짝 섞어 프로이트적으로 재배치한 듯한 영화라면 짐작이 수월할까. 나치 치하 체코의 작은 기차역에 앳된 수습 역무원이 출근한다. 이 주인공은 성적 해방(아니면 그저 성적 신세계의 입문)이 꼭 필요한 젊은이 밀로스다. 오죽했으면 조루에 대한 공포로 양 손목에 면도칼을 댔을까. 이 주인공에게 사부가 되어주는 이는 성적 해방을 정치적 해방으로 승화시킨 쿨한 역무원 선배다. 성적 해방이 레지스탕스로 화하는 에너지가 되기는 밀로스도 마찬가지인데 이들의 굳건한 동지는 구김없는 아름다움을 뽐내는 여성들이다. 밀로스만큼이나 앳된 그의 여자친구도, 밀로스에게 에로스의 언어를 처음 선사하는 레지스탕스 여전사도, 성스런 독일어 문장을 엉덩짝에 꽝꽝 찍어대 권위에 찌들린 남성들을 조롱하는 역무원 여자동료도 믿어 의심치 않은 이중의미의 성(性과 聖)스러움을 지녔다.
에로틱하고 정치적인 정신분석이 펼쳐지는 기차역 에피소드와 인물 풍경은 한편으론 쿤데라의 소설투 같다. 애증이 교
고다르와 트뤼포, 프로이트 <가까이서 본 기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