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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시11분, 8시23분, 17시13분. 지하철 기관사 만수(김강우)는 한치의 시간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근무 속에 산다. 그는 <샘터>라는 월간지가 새로 나오는 날이면 간식과 함께 그 책을 들고 플랫폼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이름 모를 여인의 존재에 조금씩 삶의 활력을 얻어간다. 독문과 강사인 한나(손태영)는 자신의 대학 선배였던 같은 과 교수와 불륜의 관계를 지속하고 있다. 한나의 생일 기념으로 둘은 밤을 함께 보내기로 한다. 그러나 기대를 품게 했던 새로운 인연과 생일선물은, 보란 듯이 물거품이 된다. 눈이 오는 날, 서로 남남인 만수와 한나는 경의선에 오른다. 두 사람은 예정에 없이 종착역인 임진강 역에 내리게 되고, 집으로 돌아갈 길이 끊긴 탓에 인근 모텔에서 함께 밤을 보내기로 한다.
<경의선>은 너무 무거워서 함부로 쏟을 수 없는 상처를 가슴 안에 채우고 사는 사람들을 위로하는 영화다. 감독은 아주 느리고 깊고 세밀하게, 만수와 한나의 한달 전
김강우의 재발견 <경의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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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현 감독의 장편 데뷔작 <상어>는 판타지의 힘을 빌려 기적을 창조하고, 그 기적의 순간으로 누군가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기를 소망하는 작품이다. 영철(구성환)은 자신이 직접 잡은 백상어를 친구 준구(홍기준)에게 자랑하기 위해 대구로 향한다. 하지만 도박에 빠져 있는 준구는 영철의 전화가 귀찮기만 하다. 준구가 약속을 반복적으로 미루는 동안, 영철은 이제 막 감옥에서 출소한 유수(홍승일), 그리고 공원 주변을 하염없이 서성이는 미친 여자 은숙(김미야)과 조우하게 된다. 유수는 가족들이 기별도 없이 이사한 통에 정처없이 떠돌아야 하고, 은숙은 집단 강간을 당한 이후 정신을 놓아버린 상태다. 은숙은 영철이 친구를 위해 가져온 백상어가 썩어가면서 풍기는 악취를 자신이 사산한 아기의 냄새라고 착각하고, 영철와 유수의 뒤를 졸졸 따라다닌다. 은숙을 피해 대구의 골목길에서 숨바꼭질을 하던 영철은 그녀에게 썩은 백상어를 건네주고 또다시 준구를 찾아 길을 나선다. <상어>는
기적의 판타지 <상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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펑펑 울었다. 더 중요한 것은 실컷 울고 나서 뒤늦게 속은 기분이 들거나 울었다는 사실이 부끄럽지 않았다는 것이다. 니콜라스 케이지가 주연했던 ‘당신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 더 잘 어울리는 제목이 될 것 같은 <내일의 기억>은 강력하게 감정이입을 하게 만드는 최루 드라마다. 그러나 이 영화는 최루물로서 감정을 착취하지 않는다. 품위를 갖추면서도 관객의 눈물을 쏙 빼게 만드는 드라마를 만드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광고회사 직원인 사에키(와타나베 겐)는 성실한 일처리로 회사의 신임을 받는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건망증 증세가 깊어지면서 고민에 빠진다. 아내 에미코(히구치 가나코)의 강권으로 병원에 간 사에키는 알츠하이머병 환자라는 진단을 받자 큰 충격을 받는다. 그는 결국 딸의 결혼식을 치른 뒤 사직하고 본격적인 투병 생활에 들어간다.
알츠하이머병 환자의 눈물겨운 투병을 다룬 이야기는 예상대로 흘러간다. 코믹하게 느껴질 정도로 가벼운 증세에서 시작해 점점 병세가 심해
감정이입을 하게 만드는 최루 드라마 <내일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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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보니 이런 날도 온다. <스파이더맨 3>의 도입부에서 피터 파커/스파이더 맨(토비 맥과이어)의 인생은 만사형통 운수대통이다. 이제 영웅의 업무를 완전히 파악한 스파이더 맨은 뉴욕을 안전한 도시로 만들었다. 활강하는 기교에도 노련미가 흐른다. 맨해튼 노점에서 캐릭터 상품이 팔릴 만큼 시민들의 총애도 받고 있다. 2편 결말부에서 “널 구해줄 사람도 있어야 하지 않겠니?”라고 속삭여준 메리 제인(커스틴 던스트)과의 사랑도 달콤하기 그지없다. 피자 배달하다 해고되는가 하면, 쫄쫄이 입고 엘리베이터 탔다가 민망해지는 2편의 전반부와 정반대다. 잘나가는 피터 파커의 모습이라니 흐뭇하지만, 자전거 타는 곰처럼 어색하다. 부정적인 당신은 중얼거릴지도 모른다. “아아, 남은 것은 내리막뿐이겠군.” 과연 피터 파커가 3편에서 겪는 환란은 양도 종류도 전편들과 비교불가다.
<스파이더 맨>(2002)은 개봉 주말 흥행(전미) 1억달러를 처음 넘어선 대박 블록버스터이기도 했지만
액션의 총망라 <스파이더맨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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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적인 골동품 딜러 프랑수아(다니엘 오테유)는 자신의 생일날 저녁 충격에 휩싸인다. 생일파티에 모인 친구들이 그를 진정으로 좋아해본 적이 한번도 없다고 고백한 것이다. 수긍할 수 없노라 펄펄 뛰는 프랑수아에게 사업 파트너인 카트린(줄리 가예)이 내기를 건다. 열흘 안에 진정한 친구를 데려올 것. 내기에서 지는 순간 프랑수아가 경매에서 구입한 값비싼 그리스 화병은 카트린의 수중에 들어갈 것이다. 승리를 장담한 프랑수아는 리스트를 만들어 옛 친구들을 찾아가지만 반응은 냉랭하다. 비탄에 빠진 프랑수아는 붙임성이 좋은 택시 운전사 브루노(대니 분)를 우연히 만나고, 그로부터 열흘 만에 친구 만드는 법을 배우기 시작한다. 그리고 르콩트의 즐거운 결론. 모든 사람과 친구인 사람은 친구가 한 사람도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더이상 심각한 영화는 만들지 않겠다”던 르콩트의 선언을 기억하는 관객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확실히 <마이 베스트 프렌드>는 가볍고 친밀한 프랑스 대중코미디의
친밀한 프랑스 대중코미디 <마이 베스트 프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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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양일의 첫 번째 한국영화 <수>가 지나간 지금, <달은 어디에 떠 있는가>를 다시 본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하드보일드’라는 한마디에 축약당한 최양일의 세계를 재확인하는 의미일 수도, 혹은 최양일의 최고 걸작 중 한편을 본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재일한국인 강충남은 택시 기사다. 인생의 분명한 목적 따위는 없는 듯도 하지만, 엄마가 운영하는 술집에서 코니라는 필리핀계 호스티스를 만나면서 뭔가 목적을 찾은 것 같기도 하다. 여하튼 코니의 집에 다짜고짜 쳐들어가 동거를 시작한 충남. 하지만 인생이 뭐 그리 쉽게 달라지던가. 충남의 동창인 사장 세이이치가 사기를 당하는 바람에 택시회사는 야쿠자의 손에 넘어가고, 심드렁한 사랑에 지쳐버린 코니는 충남의 곁을 떠나 다른 술집으로 옮겨버린다. 하지만 달은 항상 거기에 떠 있다.
재일동포 작가 양석일의 소설 <택시 광조곡>을 원작으로 한 <달은 어디에 떠 있는가>는 유쾌한 희비극이다. 최양
최양일의 걸작 <달은 어디에 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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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들과 등을 돌리고 살아온 노인 이대근은 아내의 제삿날을 맞아 온 가족을 불러모은다. 하지만 아들 내외는 팍팍한 가정형편 탓에 아버지에게 건강식품이나 팔려는 작태를 선보이고, 기독교도 딸은 어머니 제사상 앞에서도 절은 할 수 없다며 고집을 부린다. 버틴다. 게다가 가장 아끼고 사랑했던 막내아들은 코빼기도 비치지 않는다. 오랜만에 만난 자식들의 천태만상에 가슴을 치던 이대근은 심부름센터 직원이 찾아올 막내아들을 기다리며 제사상을 차리는데, 어느새 자정을 알리는 종이 울린다. 그런데 이 가족 뭔가 이상하다. 대체 이대근의 이 댁이 간직한 비밀은 무엇일까.
<이대근, 이댁은>은 평범한 내러티브를 가진 일상적인 소극이 아니다. 영화의 대부분은 갑갑한 한옥 세트 속에서 허술한 시트콤처럼 진행되지만, 후반부 클라이맥스에서 모든 비밀을 폭로하는 반전이 공개된다. 스포일러 때문에 에둘러 말할 수밖에 없지만 <이대근, 이댁은>이 형식적인 서커스를 벌이고 있다는 사실만은 분
반전-관절염 가족 <이대근, 이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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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을 장편으로 만드는 방법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감독 숀 엘리스는 단편의 앞뒤에 새로운 이야기들을 덧붙이면 볼 만한 장편영화가 나올 거라 믿었던 것 같다. 그는 슈퍼마켓 근무의 지루함을 몽상으로 극복하려는 소년의 이야기를 담은 18분짜리 단편에 84분 이야기를 더해 102분짜리 장편으로 늘리는 모험을 해냈다. 귀차니즘의 메커니즘이라고나 할까. 미술대학생 벤(숀 비거스태프)은 여자친구와 헤어진 뒤 불면증에 시달린다. 그건 좋게 말하자면 하루에 8시간이 더 추가되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슈퍼마켓 야간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벤은 지루함을 견디기 위해 시간을 멈추는 상상을 시작하고, 여자 손님들의 나체를 스케치하는 환상을 즐기다가 아르바이트 동료인 샤론(에밀리아 폭스)에게 빠져든다.
단편이 통째로 포함된 처음 절반은 꿈같은 이미지와 재기발랄한 슬랩스틱의 연속에 기분이 나른해진다. 그러나 나머지 이야기는 잘해봐야 꿈과 사랑을 쟁취하는 전형적인 십대 틴에이저영화의 뒷물이며, 미셸 공드리
꿈같은 이미지의 연속 <캐쉬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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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의 희곡은 방탄조끼를 입은 원작이 아닐까? 위대한 이야기꾼이 점지한 짝짓기와 플롯의 비급(秘(만들어야함?及))만 지키면, 나머지는 어떻게 주무르건 지루한 영화가 나오기는 불가능해 보인다. <쉬즈 더 맨>은 <내가 싫어하는 열 가지 이유> <O> 등에 이어 현대 틴에이저를 위해 셰익스피어를 앙증맞게 개작한 영화. 재해석까지는 과욕이고 변용의 잔재미가 최선인 기획이다. 청춘영화 속 동아리들이 십중팔구 그렇지만, <쉬즈 더 맨>의 콘월고교 여학생 축구부도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폐지된다. 학교의 조치와 표리부동한 남자친구에게 격분한 축구선수 바이올라(아만다 바인스)는 본때를 보여주기 위해 쌍둥이 오빠 세바스찬(제임스 커크)으로 변장해 이웃 일리아고교로 전학한다. 그리고 축구부 주장인 룸메이트 듀크(채닝 테이텀)에게 축구를 배우는 대신 연애를 돕기로 한다. 바이올라는 어느새 듀크에게 반하지만 그녀가 남자 모습인 탓에 사랑의 줄긋기는 뒤죽박죽이
유쾌한 하이틴 로맨스 <쉬즈 더 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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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진이라는 고유명사는 종종 ‘장진스럽다’는 형용사의 용례를 통해서 설명돼왔다. 그러나 통념과 달리 장진 감독은 ‘장진스러움’에 머물지 않고 최근 몇년간 멜로(<아는 여자>), 스릴러(<박수칠 때 떠나라>), 액션(<거룩한 계보>) 등 다양한 장르에 도전하며 영화적 외연을 넓혀왔다. 신작 <아들>에서 그가 마주한 것은 정통 드라마다.
강도살인죄로 복역 중인 무기수 강식(차승원)은 1박2일 동안 가족을 방문할 수 있는 귀휴 대상자로 선발되어 고향 집에 간다. 그러나 어머니(김지영)는 치매로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고, 아들 준석(류덕환)은 15년 만에 만나는 아버지가 낯설어 겉돈다. 얼어붙은 아들의 마음을 어떻게 녹일 수 있을까.
확실히 <아들>은 장진 감독이 새 영역에 스스로를 밀어넣은 작품이란 느낌을 준다. 그러나 이 영화를 보면서, 장진 감독이 새 모습을 보였는지, 이전의 ‘장진스러운’ 특성은 얼마나 남아 있는지 따지는 것은 별
장진, 스스로 새 영역으로 밀어 넣은 작품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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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는 머리는 좋은데 산만해서….” 한국의 부모들이 유난히 즐겨 쓰는 이 표현은, 동구 아빠 허진규(정진영)씨 입장에서는 앞뒤가 바뀐 말이다. 열한살 소년 동구(최우혁)는 지능이 평균에 못 미치지만 집중력과 끈기는 대단하다. 동구가 열정을 퍼붓는 상대는 학교와 주전자, 그리고 반에서 따돌림당하는 짝꿍 준태(윤찬)다. 동구는 해돋이를 손꼽아 기다려 학교로 달려가고, 점심시간 주전자에 물을 채워 친구들의 컵에 따를 때면 환희로 빛난다. 예민한 준태는 자존심 없어 보이는 동구가 밉다. 그래도 동구는 체육시간에 운동장 한 바퀴 대신 두 바퀴를 돈다. 한 바퀴는 달리지 못하는 짝의 몫이다. 학습 지진아를 배려할 의욕이 없는 선생님은 특수학교 전학을 강권하지만 아빠는 적응이 더딘 아들이 기왕 좋아하는 학교에서 졸업하길 원한다. 악운은 떼지어 오는 법. 집주인은 이사를 종용하고 동구는 교실에 설치된 정수기한테 물 반장 역할을 빼앗긴다. 주전자가 남아 있는 곳은 선수가 모자란 야구부뿐. 동
최고의 번트 <날아라 허동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