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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라이의 지상과제는 ‘어떻게 살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죽을 것인가’이다. 그것도 그냥 죽는 게 아니라 아름답게 죽어야 한다. 잠깐 피었다 우수수 져버리는 벚꽃은 오랫동안 사무라이의 죽음의 미학을 상징해온 꽃이다. ‘꽃보다도 더’라는 원제의 <하나>(はなよりもなほ)는 벚꽃에 덧씌워진 이런 죽음의 미의식에 의문을 던진다. 사무라이의 존재의의가 없어진 역사의 격변기를 배경으로 한 유쾌한 사극 <하나>는 벚꽃의 미를 다른 각도에서 조명함으로써 현대 일본에 여전히 도사린 미시마 유키오적 비장미를 전복하려 한다.
에도막부 말기, 지방 검술사범의 아들 소자 에몬(오카다 준이치)은 아버지의 원수를 찾아 에도에 상경한다. 달동네에서 근근이 연명하며 원수를 찾아다닌 지도 벌써 3년째. 하지만 어쩐지 그는 복수에 별로 적극적이지 않다. 이웃은 “자네처럼 심약한 사람은 복수가 어울리지 않아”라고 충고하고, 소자 자신도 복수보다 아름다운 과부 오사에(미야자와 리에)와 그 아
따뜻한 소극(笑劇)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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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 2057년. 태양이 죽어간다. 인류의 마지막 희망은 핵탄두로 태양을 재점화하는 것. 8명의 다국적 승무원이 우주선 이카루스 2호에 탄두를 싣고 태양으로 나아간다. 가히 ‘하드 SF’적 상상력으로 시작하지만 <선샤인>은 그리 섬세한 장르영화가 아니다. 대니 보일과 알렉스 갤런드 콤비는 <미션 투 마스>의 브라이언 드 팔마처럼 NASA의 기술자문을 얻는 대신 자신들의 환상을 위한 우주항모를 건설했다. 인공 중력실은 존재하지도 않는다. 대신 이카루스 2호를 채운 것은 식물로 가득한 산소방과 가상현실 체험실, 거대한 유리창이 달린 태양 관측실의 스타일리시한 외양이다. 하긴 누가 인류의 존망을 건 항모의 이름에 태양빛으로 날개가 녹아 추락해버린 남자의 이름을 붙이겠는가.
망자의 이름을 달고 항해를 계속하던 우주선은 7년 전 같은 임무를 지니고 떠났다가 실종된 이카루스 1호와 마주친다. 대원들은 랑데부를 위해 궤도를 수정하던 중 치명적인 실수를 일으킨다. 좋은 장
뉴에이지 태양교 <선샤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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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서린 윈터(힐러리 스왱크)는 종교적인 기적의 허상을 파헤치는 과학자. 한때는 그녀도 신의 부름에 영혼을 불사르는 목자였으나 선교활동 중 어린 딸과 남편이 광신도들에게 살해당하자 종교를 버리고 과학을 신앙으로 모시게 된 것이다. 어느 날 루이지애나주 시골 마을 헤이븐에서 더그 블랙웰(<원초적 본능2>의 데이비드 모리세이)이라는 근사한 사내가 무시무시한 초자연적 현상을 조사해달라며 찾아온다. 헤이븐의 강물은 핏물처럼 검붉게 물들고 개구리가 하늘에서 떨어져 내리고 소들이 알 수 없는 이유로 죽어간다. 이 모든 것은 성서의 출애굽기에서 신이 유대인을 억압하는 이집트에 내렸던 10가지 재앙과 똑 닮아 있다. 독실한 기독교도인 마을 주민들은 12살짜리 금발소녀 로렌(안나소피아 롭)이 사탄의 원흉이라고 믿지만, 캐서린은 모든 재앙에는 과학적인 이유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재앙은 계속된다. 이가 들끓기 시작하고 독종(毒腫)이 사람들을 쓰러뜨리자 캐서린의 믿음도 흔들리기 시작한다.
아귀가 잘 안 맞는 오컬트 액션영화 <리핑 10개의 재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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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없는 섹스, 섹스없는 사랑 혹은 ‘섹스 위드 러브’, 이 세개의 길 중에 당신은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그리고 그 선택의 대가를 담담히 치를 준비가 되어 있는가? 이를테면 사랑없는 섹스에 따르는 공허감이나 섹스없는 사랑에 따르는 지루함 혹은 ‘섹스 위드 러브’에 따르는 책임감 따위의 것들을 감당할 수 있는가의 문제. 물론 대부분 ‘섹스 위드 러브’를 가장 이상적인 길로 여기지만, 그 어떤 길을 선택하든 짜릿한 포만감 뒤에는 피로와 고통이 존재하게 마련이다. <섹스 위드 러브>는 너무도 지리멸렬한 일상이 되어버린 동시에 여전히 온몸과 마음의 촉수를 건드리는 사랑과 섹스에 대한 이야기다.
영화의 중심은 네 커플의 일상에 맞춰져 있다. 이들은 초등학교 자녀들의 성교육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자신들의 성생활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기 시작한다. 이들 각각의 모습은 사랑과 섹스에 관한 전형적인 표본들이다. 사랑하는 배우자를 두고도 끊임없이 다른 사람과 성관계를 맺거나 상대방과 원활
사랑과 섹스에 대한 이야기 <섹스 위드 러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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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의 내레이션이 들린다. “바보같이 행복하고 안전한 일본, 공허하고 지루한 일본, 졸리지만 잠 안 오는 일본.” 주인공 신(오다기리 조)은 대학 캠퍼스 잔디밭을 괴성을 지르며 가로지른다. 그의 얼굴은 질식사 직전이다. 우리에겐 <자살클럽>(2001)과 <기묘한 서커스>(2005)로 알려진 소노 시온 감독의 <헤저드>가 도입부에서 설정한 상황이다.
그의 작품들이 대항하고자 하는 적은 ‘적이 없는’ 일본의 현실, 무겁게 내리누르는 ‘안정과 규격’인 듯하다. 하지만 ‘生의 자각’을 위해 이번에 그가 사용한 방법은 공포나 엽기와는 거리가 멀다. 순진하고 유약한 전형적인 일본 젊은이가 다소 독특한(‘헤저드’한) 훈련과정을 거쳐 야심과 뚝심을 갖춘 청년으로 귀환한다는 성장영화의 현대 버전이라고 할까. 일본에서의 삶에 질려 무작정 뉴욕에 도착한 신은 리(제이 웨스트), 다케다(후카미 모토키)와 한패가 되어 갱 놀음을 한다. 다양한 범죄 행위가 청춘의 치기어
성장영화의 현대 버전 <헤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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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일반적으로 영화나 드라마가 장애인을 다루는 방식은 두 가지였다. 그들의 처지를 동정하면서 사회를 비판하거나 인간승리의 드라마로 만들어내거나. <파란자전거>는 장애인을 소재로 내세우면서도 두 가지 방법을 모두 피하려 한 영화다. 물론, 이 영화 또한 장애인에 대한 세상의 불편한 ‘시선’을 줄곧 지적하지만 좀더 관심을 기울이는 쪽은 가족을 중심으로 한 장애인의 주변 인물들이다. 또 뭔가 극적인 사건을 통해서가 아니라 잔잔한 일상 속에서 장애인의 문제를 직시하려 한다는 점도 장애인에 대한 새로운 접근으로 보인다.
한손에 의수를 끼고 살아야 하는 장애인 동규(양진우)는 스물여덟을 맞은 지금, 여러 위기에 동시에 직면해 있다. 여자친구인 유리(박효주)의 부모는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동규를 사위로 맞이하는 것을 꺼리고, 동규의 일터인 동물원은 폐쇄 위기에 놓여 있다. 게다가 어릴 적부터 그를 독려해줬던 아버지(오광록)마저 병원에 누워 있는 형편이다. “내가 좋아하는 건 하
장애인의 주변인물 이야기 <파란 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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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에서 ‘아이’들은 언제나 성장의 아이콘이다. 아이들은 자신이 주인공일 때에는 스스로 무럭무럭 자라고, 미성숙한 어른들이 주인공일 때에는 그들이 성장하는 계기로 작용한다. 그래서 아이들의 순수함은 이중적으로 기능한다. 순진한 아이는 세상의 비열함과 직면하면서 순진함에서 벗어나고 폭력적인 현실을 인식하면서 어른이 된다. 그러나 비열한 세상과 이미 하나가 되어버린 어른들은 어린이의 순수함과 대면하면서 본래의 자아를 되찾는다. 그러니까 전자는 순수함이 깨어지는 과정을 통해 성장하고, 후자는 순수함과 재회함으로써 성장하게 되는 것이다. 오래간만에 만나는 박광수 감독의 신작 <눈부신 날에>는 후자에 속하는 이야기다. 이 작품은 밑바닥 인생을 살아가던 한 남자가 존재조차 알지 못했던 딸을 만나 어디서부터 어긋나버렸는지 알 수도 없는 삶을 제대로 살기 시작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야바위판의 바람잡이 우종대(박신양)는 깡패나 조폭이라는 이름을 붙이기도 애매한, 폼 안 나는 날
‘가족’이란 무엇인가 <눈부신 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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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뮈 따윈 몰라>는 카뮈의 소설과 프랑수아 트뤼포의 영화들을 밑그림으로 해서 일본 젊은이들의 초상을 그려낸다. 일본 대학생들이 영화를 찍는 과정을 담은 이 영화에서 <이방인>은 영화 속 영화로 변주되고, <Day for Night> <아델 H의 이야기>는 영화를 찍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에 응용된다. 영화는 월요일에서 시작되어 그 다음주 화요일까지 9일 동안 일어난 일을 다루고 있다. 영화제작은 당연히 험난한 과정을 겪으며 진행되고 학생들은 지쳐간다.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주연배우가 출연하지 못하게 되는 사건이 생기고 조감독은 다른 배우를 섭외하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다행히도 물망에 올린 다른 배우를 캐스팅할 수 있어 이 문제는 해결되지만 또 다른 문제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 터져나온다.
영화를 만들기 위해 모인 이들 청춘남녀에게 고민거리는 두 가지밖에 없다. 영화 혹은 연애는 그들이 당면한 현실이자 고뇌이자 이상이다. 따라서 &l
영화를 만드는 일본의 청춘들 <카뮈 따윈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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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프롤로그를 제외하면, <극락도 살인사건>을 여는 첫 번째 컷은 멀리서 바라본 극락도의 전경이다. 검은 파도를 겹겹이 두른 그 모습은 고집스럽게 입을 다문 누군가처럼 비밀스럽다.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소년탐정 김전일>(의 첫 번째 에피소드인 <오페라 극장 살인사건>) 등 밀실연쇄살인 추리물의 대표작들 역시 모두 등장인물이 외딴섬에 도착하면서 시작한다. 스무명을 넘지 않는 등장인물이 하나씩 의문의 죽음을 맞이하고, 시체 수에 비례하듯 남은 이들의 갈등과 광기는 증폭되며, 인간의 추악한 욕망 혹은 본성이 드러난다. 이 과정에서 섬이라는 물질적 공간은 심리적 공간이자 주제를 은유하는 공간으로 확장·변주된다. 제한된 공간 속 익숙한 얼굴들 중 누군가가 범인이라는 공포가, 눈앞에 펼쳐진 지옥에서 빠져나갈 수 없다는 절박한 고립감이, 섬이라는 공간을 택함으로써 가능해지는 것이다. 그 제목이 자신이 속한 장르와 심지어 줄거리의 일부까지 명시하
순수한 장르적 쾌감 <극락도 살인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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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국의 이지스>는 젊은 일본인 사관생도의 내레이션으로 시작한다. 그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제우스의 방패에서 그 명칭이 유래했고 군함에 사용되는 최첨단 방어시스템인 ‘이지스’를 들먹이며 전쟁이라는 극한상황에서 과연 방어가 자신을 지키는 방안이 될 수 있을지 회의한다. 무엇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선제공격을 할 수 없게 된 자국의 군대를 일깨우는 그의 목소리에선 가느다란 안타까움이 묻어난다. 이렇듯 이 영화는 가장 인간적인 캐릭터인 센고쿠 상사(사나다 히로유키)를 주인공으로 내세우며 반전 메시지를 담으려 하지만 ‘공격이 최상의 방어’라는 주장을 그럴듯하게 제시하는 한편 첫머리에 제시되는 사관생도의 주장을 순수하고 애국적인 것으로 포장한다는 점에서 진정 평화를 지향하는지 의심케 한다.
사건이 발발하는 곳은 이지스 시스템을 구축한 일본 군함 이소카제함. 군사 훈련을 위해 바다로 출격한 이소카제함에 함대훈련소에서 나왔다는 미조구찌 대위(나카이 기이치)와 야마자키 소위가
강한 일본에 대한 열망 <망국의 이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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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10월. 일본 자위대 소속의 제3 특별실험 부대가 비밀 실험 중 전국시대에 착륙한다. 이처럼 현재의 인물이 과거로 이동해 기존의 역사를 훼손하자 일본 곳곳에 정체불명의 허수공간인 ‘홀’이 나타나 인류의 목숨을 위협한다. 이에 특별실험 부대를 구출하는 한편 손상된 역사를 바로잡기 위해 마토바 잇사(가가 다케시)가 이끄는 로메오 부대가 꾸려지고 한때 마토바의 휘하에 있었던 카지마 유스케(에구치 요스케), 비밀 실험에 책임을 느끼는 칸자키 레이(스즈키 교코), 전국시대 사무라이 이누마 시치베(기타무라 가즈키) 등이 여기에 합류한다. 당시와 태양의 자기장이 같아져 시간 여행이 가능해진 2005년, 로메오 부대는 1954년으로 옮겨가 마토바와 만나지만 오다 노부나가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는 그는 더욱 강한 일본을 건설할 야심으로 도움의 손길을 거절한다. 미래로 가는 길이 다시 열리는 시간은 74시간27분 뒤. 현재로 돌아오기 위해선 이 시간 내에 마토바의 계략을 저지한 다음 도착한 곳
일본 자위대의 시간여행 <전국자위대 15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