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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11장에 등장하는 바벨탑 이야기는 인간의 무분별한 개발욕구를 비판하기 위해 인용되기도 하지만, 하늘을 찌를 듯 오만불손한 건축물을 짓는 인간에게 야훼가 내린 벌 때문에도 자주 언급되곤 한다. <창세기>에 따르면 야훼는 “당장 땅에 내려가서 사람들이 쓰는 말을 뒤섞어놓아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창세기 11장7절) 했고, 결국 바벨탑 건설은 무산됐다. 이때의 벌 때문에 애초 하나의 언어와 단어를 사용하던 인류가 서로 다른 언어를 쓰게 됐다는 성서의 이야기는 과학적으로 믿기 어렵지만, 이 ‘세계화’ 시대에도 서로 다른 언어와 문화 때문에 사람들이 전면적으로 소통하지 못한다는 상황만큼은 부정할 수 없다.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의 세 번째 영화 <바벨>이 다루는 대상도 서로의 진의를 도무지 전달하지 못하는 이 세계 속에 더불어 사는 사람들이다. 지구의 4개 지역에서 벌어지는 총체적 소통의 위기는 북아프리카 모로코의 사막에서 본격적으로
글로벌 시대 속 사람들의 ‘마음의 감옥’ <바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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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종>은 사랑과 이념을 저울에 올려놓고 이들의 무게를 가늠하는 영화다. 처음에는 화해의 가능성이 있었고 지금이라면 양립할 수도 있을 두 가치는 짙어가는 냉전의 안개 속에서 시기하고 반목한다. 그리고 마침내는 서로를 향해 한 발짝도 다가서지 못한 채 영원히 안녕을 고하고 만다. 이념을 선택한 남자는 어두운 방에서 피아노를 치며 옛 시간을 그리워하겠지만 그를 사랑하나 그의 이념을 체화하지는 못한 여자는 눈부신 햇살 아래 아이들과 뛰놀며 또 다른 미래를 꿈꿀 것이다.
이국적인 향취가 물씬 풍기는 이곳은 베이루트. 미국인 화가 샐리 타일러(샤론 스톤)는 오랜 결혼 생활과 안온한 일상이 지루하다. 지인들의 소개로 영국 정보부 출신의 <런던타임스> 기자 레오 카우필드(루퍼트 에버렛)와 마주한 샐리는 그에게 강렬하게 이끌리고 결국 이혼도 불사한 채 그와 결합한다. 하지만 이토록 불완전한 세상에 완벽한 사랑이란 없는 법. 행복하기 그지없던 어느 날 레오는 아무런 설명 없
샤론 스톤의 안타까운 고군분투 <실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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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고편과 포스터에 현혹되지 말 것. <비밀의 숲 테라비시아>는 스펙터클을 앞세운 판타지영화가 아니다. <반지의 제왕>의 웨타 스튜디오가 참여했음을 대대적으로 부각시킨 홍보 문구가 무색하게, <비밀의 숲…>에 등장하는 CG 분량은 절대적으로 적을 뿐 아니라 그나마도 움직이는 나무 거인과 다람쥐 괴물 정도다. 섣불리 ‘할리우드 판타지’를 기대했다가는 배신감을 느끼며 돌아서기 십상이다. 뉴베리상을 수상한 캐서린 패터슨의 동화를 영화화한 <비밀의 숲…>은 <해리 포터> <나니아 연대기>가 아닌 <스탠 바이 미> <마이걸> 옆에 나란히 놓일 성장드라마다. 애니메이션 <러그래츠> 시리즈의 제작자로 이름을 알린 가보 크수포가 메가폰을 잡았다.
12살 소년 제시(조시 허처슨)의 하루는 고난의 연속이다. 경제난에 허덕이는 부모님은 집안일을 시키는 것 외에는 관심이 없고, 학교의 아이들은 허름한 차림
가슴을 울리는 성장드라마 <비밀의 숲 테라비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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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베스터 스탤론은 자신의 출세작 <록키>(1976) 이후 꼭 30년 만에, 시리즈 마지막 편인 <록키5>(1990)로부터는 무려 16년이 지나서 <록키 발보아>로 돌아왔다. <록키>를 기억하는 관객이라면 그의 귀환을 바라보는 심정이 복잡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록키 발보아>는 정확히 <록키>에 대응되는 후일담이다. 그래서 시리즈 2편부터 5편까지를 몰라도 아무 문제가 없지만 1편에 대한 추억이 없다면 내러티브의 여백을 메우기 어렵다.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를 간직한 시선과 단지 늙어버린 현재의 모습만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차이가 있게 마련이다.
전세계 헤비급 챔피언 록키 발보아(실베스터 스탤론)는 아직도 필라델피아인들의 기억 속에 생생히 살아 있는 영웅이다. 은퇴 뒤 아내 이름을 딴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있는 그는 가게를 찾는 손님들에게 현역 시절 자신의 무용담을 들려주면서 살아가고 있다. 일년 전 암으로 사망한
실베스터 스탤론 노익장 과시용 <록키 발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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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비도 없지만 ‘가오’ 때문에 고급 승용차를 몰고 다니는 필제(임창정). 철거 전문 깡패인 그는 어수룩한 똘마니를 데리고 재개발 대상지인 청송마을에 도착한다. 필제는 보스에게 사흘 안에 모조리 쓸어버리겠다고 호언하지만 처음부터 뜻대로, 맘대로 되는 일이 하나없다. 약 오르고, 독 오른 마을 사람들이 덤벼드는 통에 필제는 외려 도망다니기 바쁘다. 어찌 하다보니 임무는 뒷전. 필제는 지구를 수호하겠다는 엉뚱한 꼬맹이들에게 시달리게 되고, 게다가 사내인지 계집인지 모를 복서 명란(하지원)의 수발을 들어야 하는 등 원치 않게 마을 반장 노릇을 하게 된다.
예상하듯이, <1번가의 기적>은 진흙탕 세상에 휩쓸려 살아온 한 남자가 오지나 다름없는 마을에 발을 딛게 되면서 순한 양으로 교화한다는 줄거리다. 굳이 표현하자면 필제는 철거촌으로 떠난 <선생 김봉두>라고 해야 할까. 아이들을 전학시키기 위해 갖은 애를 쓰지만 결국 참선생 칭찬을 들었던 봉두처럼, 청송마을에 당도
성선설에 기초한 교훈 코미디극 <1번가의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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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치병이라는 소재는 마음 놓고 엉엉 울 수 있는 기회를 관객에게 제공하지만 대개는 좋은 소리를 듣지 못한다. 소재의 진부함을 사려깊게 요리해 보편적인 삶의 문제로 승화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런 작품이 자주 찾아오는 건 아니다. <태양의 노래>가 선택한 불치병은 색소성건피증(XP)이라는 특이한 병이다. 태양빛을 쬐면 치명적인 신경질환을 앓게 되는 16살의 카오루(유이)는 또래 학생들이 재잘재잘 떠들며 학교를 향할 때 커튼을 닫고 잠을 청한다. 소꿉친구 미사키와 부모의 극진한 배려로 외로움은 덜하지만, 식구들과 둘러앉은 저녁 식탁에서 혼자 아침 식사로 하루를 시작하는 카오루에겐 타인과 함께하는 순간조차도 묘하게 고립감을 자아낸다. 그녀가 애타게 바깥을 갈망하는 순간은 매일 새벽 서핑보드를 들고 집 앞을 지나가는 이름 모를 소년을 훔쳐볼 때다. 밤이 깊어지면 쓸쓸한 거리에 나와 직접 쓴 곡으로 혼자만의 거리 콘서트를 계속하던 어느 날, 그녀의 노래가 짝사랑하는 코지(쓰카모토 다카
인기 가수 유이를 내세운 청춘영화 <태양의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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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사람들이 갖는 흔한 편견으로 ‘록은 간지나고 뽕짝은 촌스럽다’. 물론 진정한 음악은 장르에 상관없이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다. <복면달호>는 록가수를 최고로 알던 젊은이가 트로트 가수로 이름을 날리는 이야기 속에 저 같은 주제를 담고자 한다. 봉달호(차태현)는 지방 나이트클럽에서 3류 트로트 가수의 무대 반주를 하는 밴드 리더다. 서울의 음반기획사 사장(임채무)이 앨범을 내준다기에 무작정 상경. 좋아라 했는데 사장은 달호를 트로트 가수를 시키려고 한다. 달호는 “뽕 필(feel)”이 있단 이유로 ‘봉필’이란 예명까지 얻어 활동을 시작한다.
사실 <복면달호>는 <복수혈전>을 제작, 연출, 주연까지 겸했던 이경규가 15년 만에 만든 영화란 점 하나만으로 지저분한 취재 경쟁의 대상이 되어왔다. 이번에는 그가 제작자로만 역할했음에도, 편견을 쉽게 바꾸지 않는 대중의 속성상 <복면달호>가 제2의 <복수혈전>이 되진 않으려나 예의 주
좋은 노래 한곡이 영화를 살리다 <복면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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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2월19일 오전 9시. 미 해병대는 2만2천명의 일본군이 주둔한 이오지마섬에 상륙한다. 5일이면 함락이 가능하다는 윗대가리들의 호언은 틀렸다. 3월26일에야 미군은 이오지마를 함락할 수 있었고, 2만여명이 부상당하고 6천여명이 전사했다. <아버지의 깃발>의 상륙 작전이 압도적인 스펙터클이라는 걸 부정할 수는 없다. 톰 스턴의 카메라가 ‘유황섬’(硫黃島)의 언덕으로부터 해변을 굽어보는 순간, ILM이 새겨넣은 수백척의 군함과 수만명의 군인은 신이 만든 디오라마처럼 역설적으로 아름답다. 하지만 잔혹한 스펙터클의 감흥이 영화를 지배하던 <라이언 일병 구하기>와는 달리,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서둘러 스펙터클을 끝낸 뒤 한장의 사진 속으로 관객을 데려간다. 수리바치산 정상에 6명의 해병이 성조기를 꽂는 순간. 사진작가 조 로젠탈의 플래시가 작렬한다. 미 정부는 사진 속의 군인 중 전사하지 않은 3명을 본국으로 불러들여 전쟁기금 마련을 위한 홍보활동에 참여시킨다.
이오지마 연작, 그 첫 번째 마스터피스 <아버지의 깃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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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리 타임즈>는 세 가지 에피스드로 구성된 옴니버스영화다. ‘연애몽’, ‘자유몽’, ‘청춘몽’은 허우샤오시엔 자신의 이전 작품들인 <펑구이에서 온 소년> <해상화> <밀레니엄 맘보>와 각각 조응하며 발전된 것이기도 하지만, 전작들과 굳이 비교하지 않더라도 사랑에 대해 각 에피소드들이 내뿜는 자신만의 빛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운 작품이다. <쓰리 타임즈>는 ‘최호적시광’(最好的時光)이라는 또 다른 제목을 지니고 있는데, 이에 가장 근접해 있는 작품이 ‘연애몽’이다. 1966년 어느 날 군 입대를 위해 떠나는 날 첸(장첸)은 당구장에서 일하는 하루코에게 사랑의 편지를 건넨다. 그 편지를 받아든 하루코는 이내 그것을 봉인해버리고, 첸의 고백도 관객에게 전달되지 못한 채 그 속에 가둬지고 만다. 허우샤오시엔은 첸의 고백을 편지 주인인 하루코가 아닌 그녀를 대신해 당구장에서 일하게 된 메이(서기)를 통해서 들려줌으로써 그 사랑의 진짜 임자가
사랑의 세가지 맛 <쓰리 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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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탁기의 진동음이 음산하게 울리는 가운데, 아름다운 여성이 넋나간 얼굴을 하고 알 수 없는 노래를 읊조린다. “거기 털 많은 창녀야, 너랑 하도 심하게 해서 내 거시기가 너무 아파.” 노래가 끝나기가 무섭게 그녀의 발 아래로 왈칵 양수가 쏟아진다. 헐떡이는 숨소리는 세탁기 소음에 묻히고, 곁에서 다림질을 하던 여자는 무심하게 다가와 바닥을 훔칠 뿐이다. <천국의 나날들>의 오프닝은 이 영화가 결코 제목에 부합하는 순간을 보여주지 않으리란 걸 예고한다. 헝가리영화인 <천국의 나날들>은 2002년 로카르노국제영화제 은표범상 수상을 비롯, 유럽의 각종 영화제의 이목을 끈 작품이다. 이 영화를 통해 서른살의 코냐 먼드루샤 감독은 동구권영화의 대표적인 기대주로 자리잡았다.
방금 감옥에서 나온 피터(토마스 폴가)는 누이 마리카(카타 웨버)가 운영하는 세탁소를 찾는다. 그곳에서 피터는 막 아이를 낳으려는 마야(오르소냐 토스)를 발견한다. 마리카가 태어난 아기를 3천유로에
음울한 살풍경 <천국의 나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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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정의 귀여운 아이들을 정말로 위험에 빠뜨리는 자는 누구일까? 신상이 언론에 공개된 미성년 성범죄자일까? 아니면 그의 집 앞에서 밤마다 고성방가하는 전직 경찰일까 그도 아니면 그 ‘위험인물’이 공공장소에 나타나자마자 대피하듯이 아이들을 서둘러 안고 흩어지는 주부들일까? 토드 필드의 <리틀 칠드런>은 이러한 자성적인 질문을 통해 미국 백인 중산층들의 위선과 부조리를 파헤친 웰메이드 작품이다. 우아하고 차분한 미국 소도시의 밝은 풍경과 지적 톤의 내러티브가 조화를 이룬다. 애보기를 하루 일과로 하는 여성 주부와 남성(!) 주부 사이의 사랑 이야기가 기본 흐름이지만, 특유의 유머러스하고 로맨틱한 에피소드는 마을 주민들의 파시즘 분위기, 험악한 공격 성향과 매끄럽게 결합한다.
성범죄 전과자를 조심하라는 삼엄한 마을의 공기는 새라(케이트 윈슬럿)가 다른 주부들과 어울리는 소소한 일상 안에서 잘게 쪼개져서 재현된다. 공원에서 새라와 함께 아이를 돌보는 주부들은 삶의 딜레마를
보수적인 ‘불륜’ 로맨스 <리틀 칠드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