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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사랑 상대에게 부담없는 이성친구임을 자처하는 것은 스스로 십자가를 지는 일이다. 고속도로변 “만남의 광장”만큼이나 부담없는 친구인 탓에, 다른 사랑으로 기뻐하고 아파하는 그의 모습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봐야 하기 때문이다. 친구와 연인 사이의 망망대해를 표류하는 동안 고백은 자꾸 연기되고 아픔의 무게만 늘어난다. 영화 <무지개 여신>은 그런 아픔을 ‘뒤늦게’ 쫓아가는 추억담이다. 항상 같이 있으면서도 알아채지 못했던, 모든 걸 알고 있는 듯했지만 알 수 없었던 친구의 아픔이다.
아오이(우에노 주리)에게 토모야(이치하라 하야토)는 야속한 이성친구다. 토모야는 아오이를 통해서 짝사랑하는 여자에게 마음을 전하고 러브레터를 대신 써달라고 부탁하지만, 사실 아오이는 토모야를 향한 사랑을 에둘러 감추고 있다. 하지만 눈치없는 토모야는 언제나 그녀를 좋은 친구로만 여길 뿐이다. 대학 졸업 뒤 유학을 결심한 아오이는 내심 토모야가 잡아주길 기대하지만, 이때도 역시 토모야는 그녀를
아픔을 뒤늦게 쫓아가는 추억담 <무지개 여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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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특별한 손님>은 <여자, 정혜>로 데뷔하여 크게 호평을 얻은 바 있는 이윤기 감독의 세 번째 장편영화다. 자아를 회복하는 여자주인공이라는 점에서 <여자, 정혜>와 유사한 테마를 갖추고 있지만, 이번 영화는 조금 더 이질적이며 다층적인 요소들이 개입하면서 진전된 방식으로 자유로워졌다.
<아주 특별한 손님>은 일본의 다이라 아즈코가 쓴 단편소설 <멋진 하루>를 원작으로 하고 있다. 길거리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여자(한효주)가 있다(그녀의 이름은 보경이지만, 우리가 그 이름을 알게 되는 것은 영화의 끝에 가서다). 어떤 남자 둘이 다가와 그녀에게 “명은이”가 아니냐고 집요하게 묻는다. 그녀는 아니라고 말하면서도 그 남자들을 강하게 뿌리치지 않는다. 급기야 남자들은 여자에게 한 가지 부탁을 하게 된다. 자신들이 살고 있는 마을에서 한 아저씨가 지금 죽어가는데 오래전 집을 나가 도시로 간 그의 딸이 당신과 너무 닮아 착각한 것이
<여자, 정혜>의 능동적 버전 <아주 특별한 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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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대 스페인, 내전은 끝났지만 아직도 일부 지역엔 게릴라가 남아 파시스트 독재자 프랑코 정부에 맞서 투쟁을 계속하고 있다. 어린 소녀 오필리아(이바나 바케로)는 만삭인 엄마와 함께 그런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새아버지 비달 대위(세르기 로페즈)의 캠프에 도착한다. 엄격하고 냉혹한 비달에게 시달리던 오필리아는 어느 밤 요정의 인도를 받아 신비한 미로의 중심에 이르러 기괴한 모습의 생명체 판(더그 존스)을 만난다. 판은 오필리아가 지상에서 시들어버린 지하 세계 공주의 환생이고, 세개의 마법 열쇠를 손에 넣는다면, 왕국으로 돌아올 수 있다고 말한다. 그날부터 오필리아는 밤이 되면 마법 열쇠를 얻기 위해 함정을 통과하는 모험을 거듭한다.
어릴 적부터 미로에 매혹되었던 감독 기예르모 델 토로는 <악마의 등뼈> 이후 다시 돌아간 스페인 내전에서 깊은 땅밑에 숨겨진 미로를 발견했다. 거대한 두꺼비와 눈동자없는 ‘창백한 남자’가 오필리아를 시험하는 그 미로는 위협적이면서도 코믹
어린 소녀의 전투 <판의 미로: 오필리아와 세개의 열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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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7년 말 로마의 한 아파트, 어느 신혼부부가 부동산 중개업자의 안내를 받고 있다. 새를 키울 만한 정원이 있고, 적당히 널찍한 침실과 부엌이 있으며, 거실에는 따사로운 햇살이 스며드는 곳. 얼핏 평온한 삶의 안식처처럼 보이나 실은 극좌파 무장세력 ‘붉은 여단’의 아지트가 될 공간이다. 신혼부부로 위장한 남녀는 급진적 혁명노선을 함께 걷는 동지이며, 이들 외에도 두 남자가 더 숨어들어 위험한 미션을 수행한다. 새해가 밝아오고 온 거리가 축제 분위기에 휩싸일 때조차 이들에겐 사치스러운 감정을 나눌 여유가 없다. ‘노동자가 지배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거사(巨事)를 눈앞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아파트가 본격적인 아지트 역할을 시작한 것은 1978년 3월16일, 붉은 여단 멤버들이 전 총리이자 기독민주당 당수 알도 모로(로베르토 헬리츠카)를 납치하는 데 성공하면서부터다. 이날은 알도 모로가 공산당과 우파 여당 5당을 연합한, 연립내각이 승인되는 날이다. 알도 모로. 시민들에게는
흔들리는 레지스탕스의 서글픈 초상 <굿모닝, 나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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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정말, 사랑하는, 사랑하는, 사람들,/ 사랑하는 사람들은,/ 너, 나 사랑해?/ 묻질 않어/ 그냥, 그래,/ 그냥 살어/ 그냥 서로를 사는 게야.”(황지우, <늙어가는 아내에게>)
진정한 사랑은 상대방의 허물, 상처, 짐까지 모두 끌어안는 것이라고 하지만 그건 말처럼 쉽지 않다. 특히나 자신이 짊어져야 할 부담의 무게가 큰 사람이라면 더욱 힘들 터. <사랑할 때 이야기하는 것들>의 두 주인공 인구(한석규)와 혜란(김지수)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각각 약사와 의상 디자이너로 일하는 그들의 삶은 겉으로 보기에 별 문제없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무거운 짐에 짓눌려 살아간다. 인구는 정신분열증과 정신지체를 앓고 있는 형 인섭(이한위)의 존재 때문에 사귀던 여성과 헤어진 경험이 있고, 혜란은 아버지가 ‘물려준’ 빚 수억원을 갚아야 하는 형편이다 보니 남자를 사귀는 일은 분수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인구와 혜란이 때로는 자연스럽게, 때로는 비현실적인 우연으로
리얼한 사랑 이야기 <사랑할 때 이야기하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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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영청 떠 있는 보름달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눈이 휘둥그레져 되묻는다. “그러니까 저기에 사람이 가 있다는겨?” 호롱불로 밤과 어울리던 오지의 시골 마을에 처음 전기가 들어오고 처음 텔레비전을 구경하던 날, 사람들은 암스트롱이 달을 거니는 믿기 어려운 장면과 마주친다. 좌중의 놀라움은 젊은 처자의 천연덕스런 질문으로 정리된다. “그럼 달도 미국땅이 된 겨?”
전깃불을 과학의 최대 수혜처럼 감지덕지할 때, 누군가는 우주선을 띄우는 놀라운 불균형의 시대, 1969년. 예컨대 박정희가 세 번째 대통령 임기를 누리려고 헌법을 멋대로 뜯어고치려 할 때, 대학생들은 별이 쏟아지는 밤에 미팅하랴, 계몽과 봉사 정신으로 농촌을 누비랴, 삼선 개헌 반대 데모를 벌이랴 분주하다. 권력은 젊은 반역자들을 간첩단 같은 조직 사건으로 엮어 시대를 훈육하곤 했다. 이런 혼돈과 불균형이 인간의 미세한 운명에 평지풍파를 일으킨다 한들, 그러니까 사랑의 아름다운 여백을 순식간에 지워버린다 한들 믿지 않을 수
이병헌과 수애의 기기묘묘한 눈빛 <그 해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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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의 통로는 시선이다. 아들의 여자와 불륜에 빠지는 작가 다니엘 볼탄스키(다니엘 오테유)의 욕망이 흘러가는 궤적을 보여주는 이 영화는 다니엘의 시선으로부터 시작된다. 폴란드계 프랑스인인 작가 다니엘은 20여년간 세르쥬 노박이라는 필명으로 글을 쓰면서 자신의 사생활을 드러내지 않았다. 자신의 작품세계를 주제로 열린 강연회에 몰래 참석한 그는 도서관에 모인 다양한 사람들을 관찰한다. 인물들을 훑어보던 그의 시선이 한곳에 머물고 그가 바라보던 여인과 눈이 마주친다. 다니엘은 외도하던 그 여인과 눈이 마주친 순간을 ‘두려움과 전율을 느꼈다’라고 기록한다. 훔쳐보던 주체가 훔쳐보는 대상으로 전환되면서 두려움과 전율이라는 양가적인 반응이 생겨난 것이다. <세르쥬 노박의 겨울여행>은 팜므 파탈이 등장하는 누아르영화이면서 작가의 존재론을 묻는 예술가 영화의 성격이 혼합되어 있다. <세르쥬 노박의 겨울여행>의 영어 제목은 ‘기묘한 범죄’(Strange Crime)이고, 불어
에로틱한 분위기의 철학적인 질문들 <세르쥬 노박의 겨울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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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담에서 가장 흔하게 사용되는 소재는 삼각관계다. 연적의 등장은 관계의 편안함에 긴장감을 부여하고 그것은 다시 관객이 느끼는 어떤 정서, 슬픔이나 분노, 괴로움, 즐거움 등에 강렬하게 호소한다. <연애의 기술> 역시 삼각관계에서 출발한다. 하비에(에르네스토 알테리오)와 사랑에 빠진 파울라(나탈리아 베르베케)는 자신의 애인이자 하비에의 친구인 페드로(귈레르모 톨레도)에게 이별을 고하지만 둘의 관계를 모르는 페드로는 떠나려는 파울라를 붙잡는다. 노래와 춤을 삽입해 뮤지컬을 차용한 형식 외엔 그닥 색다를 것 없는 도입부를 넘어서면 <연애의 기술>은 한층 놀라운 경지로 나아간다. 상심한 페드로를 위로하려던 하비에의 여자친구 소냐(파즈 베가)가 페드로와 잠자리를 함께하면서 이들의 관계가 이중으로 꼬여가기 때문이다.
금기를 깬 연인들이 비극으로 치닫는 데 비해 <연애의 기술>의 결말은, 그 과정에서 질투로 인한 다소의 폭력 행위를 수반하긴 하지만 오히려 해
금기를 깬 연인들의 ‘체인징 파트너’ <연애의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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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에 관해 재능과 열정을 지닌 두 청춘이 있다. 한명은 슬럼가에서 흑인들과 어울리며 사는 백인 비보이 타일러(채닝 테이텀)다. 알코올중독자 아버지, 새엄마와 함께 사는 집은 가난하고, 그는 취미로 춤을 출 뿐 그것을 미래로 정해보진 않았다. 또 한명은 예술학교에서 발레를 전공한 노라(제나 듀언)다. 가정의 경제적 어려움은 없지만 춤을 반대하는 엄마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것이 크나큰 절망의 요소다. 가난한 프리스타일 댄서 남자와 부유한 (이른바) FM댄서 여자가 만나서 한 무대를 준비하게 되었다.
<스텝 업>은 춤을 소재로 한 하이틴물이 갖춰야 할 필요한 것들은 다 갖췄다. 선남선녀, 강렬한 비트의 트렌디 뮤직, 젊음과 생명력이 넘치는 육체의 움직임, 로맨스, 스포트라이트가 비추는 무대, 꿈 그리고 그것의 성취. 당신이 무엇을 상상하든 <스텝 업>은 그것들을 다 보여줄 것이며 또 그 이상으로 무리하게 나아가지도 않을 것이다. 하나 <스텝 업>은 센스없
웬만한 무대가 아쉽지 않다 <스텝 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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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잣집 애완쥐 로디(휴 잭맨)는 아쉬운 게 없다. 주인이 휴가를 떠난 뒤, 대형 평면TV를 독차지하고, 온갖 장난감들에 둘러싸여 호화로운 생활을 만끽하던 그에게 시궁창쥐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시궁창쥐의 계략으로 변기에 빠지고 하수구를 통해 쥐들만의 지하세계 래트로폴리스에 도착한 로디는 우아한 일상으로 돌아오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터프한 암컷쥐 리타(케이트 윈슬럿)를 만나고, 리타와 두꺼비 토드(이안 매켈런) 일당의 대결에 휘말리고, 그 뒤에 도사리고 있는 더욱 큰 음모를 막으면서 로디는 자신이 미처 깨닫지도 못했던 결핍이 무엇인지를 알게 된다. 일련의 소동극 끝에 그는 함께 살아가는 것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플러쉬>는 기본적으로 따뜻한 성장극으로 정리될 수 있는 영화지만, 3D애니메이션이 지녀야 할 가장 중요한 미덕은 볼거리. 관객은 리타의 배 ‘제미 도저’호를 따라 하수구 곳곳을 누비며 수상액션의 주인공이 된다. <월래스와 그로밋> 등을 제작
지나치게 무난한 소동극 <플러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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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석방된 한 남자가 고향으로 향한다. 그는 술을 마시면 칼도 피도 두려워하지 않는 주먹을 지닌 태식(김래원). 태식이 괴롭혔던 민석은 경찰이 되었고, 태식의 부하였던 양기(김정태)와 창무(한정수)는 시의원이자 지하조직을 움직이는 조판수 회장(김병옥)의 심복이 되었다. 양기와 창무는 태식의 귀향 소식에 긴장하지만 태식은 해바라기 식당 아줌마 덕자(김해숙)를 찾아가 조용하게 살려고 한다. 태식은 술도 마시지 않고 싸움도 하지 않고, 카센터에 일자리를 구한다. 덕자는 태식과 피가 섞이지 않은 사이지만 태식을 친아들처럼 맞아들인다. 하지만 덕자와 덕자의 딸 희주(허이재)와 함께 평범한 행복을 찾던 태식에게 폭력조직의 그림자가 드리운다.
<해바라기>는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난다 홍반장>의 각본과 연출을 맡았으며, <투사부일체>의 각본을 쓴 강석범 감독의 두 번째 연출작이다. 피가 섞이지 않은 사람들이 가족애를 발견하는 드라마와
드라마보다는 액션에 치우쳐진 영화 <해바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