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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만큼 순수하면서 그만큼 교활한 것도 없다. 사랑처럼 아무런 대가를 요구하지 않으면서, 그만큼 여러 가지 조건들을 세밀하게 따지는 것도 없다. 왜냐하면 사랑은 한 사람의 실존을 완전히 뒤흔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완전하게 몰입해야 하고, 동시에 적절한 대상을 선별해서 빠져들어야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사랑이 ‘교환’ 혹은 ‘흥정’과 같은 경제적인 용어들과 가장 멀리 있어야 한다고 믿지만, 실제로는 자신과 타인의 사랑을 끊임없이 저울질한다. 이구동성으로 경제적 조건, 훌륭한 집안, 지적 능력이 사랑의 조건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하지만, 그렇다고 그것들을 모두 제외하고 순수하게 육체적 매력에 끌리는 것이 사랑이라고 하지도 않는다. 베르트랑 블리에의 새 영화 <사랑도 흥정이 되나요?>는 이런 사랑을 둘러싼 ‘지독한, 그러나 너무나 정상적인 혼란’에 대해 이야기한다.
평범한 직장인 프랑수아(베르나르 캄팡)는 바에서 창녀인 다니엘라(모니카 벨루치)를 만난다. 복권에 당
지독한, 그러나 너무나 정상적인 혼란, <사랑도 흥정이 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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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스텔은 현대사회가 만들어낸 공간의 돌연변이다. 주거와 사무가 공존하기에 오피스텔에서는 근무와 휴식의 시간이 뚜렷이 구분되지 않는다. <네번째 층- 어느날 갑자기 두번째 이야기>는 오피스텔의 혼재된 시공간을 통해 자본주의가 잉태한 비극과 공포를 이야기한다. 아이를 기르는 일과 직장생활 사이에서 매일 갈등하는 싱글맘 민영의 일상은 철거를 막고 아이를 지키려 몸부림치는 또 다른 어머니와 공감대를 형성한다. 따라서 가난한 사람들을 짓밟고 우뚝 솟은 오피스텔에 입주한 민영에게 과거의 초라한 공간이 악몽과 환영으로 나타나는 현상은 자연스러운 교감으로 느껴진다.
민영(김서형)은 직장과 가까운 오피스텔 504호에 딸 주희(김유정)와 함께 이사한다. 설계사무소에 일하는 민영이 출근하면 여섯살 된 딸 주희는 언제나 홀로 남겨진다. 주희는 현관문이 저절로 열리는 것을 목격하고 이상한 소리를 듣는다. 민영은 밤마다 악몽을 꾸고, 벽을 긁는 소리가 신경을 긁는다. 입주자가 절반도 되지 않
공포영화의 착실한 문법, <네번째 층- 어느날 갑자기 두번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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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자의 꿈을 꾸는 거지와 거지의 꿈을 꾸는 왕자 가운데 누가 더 행복한가. 마크 트웨인의 동화 <왕자와 거지>의 상상 속에 가필드를 뛰놀게 하면 어떨까. 캘리포니아에서 동거인 존(존 브레킨 마이어)을 몸종 부리듯 하는 가필드에겐 사실 그런 꿈이 허무맹랑하다. 집에서 왕노릇 하지, 하루에 세끼 라자니아 간식 먹지, 칠면조 요리는 ‘행운의 뼈’만 존에게 주고 다 먹을 수 있는데다가, 테드 뉴전트의 <Cat Scratch Fever> 같은 헤비메탈을 마음껏 들을 수 있는데 왕이 무슨 대수랴. 단 가필드의 약점이 있다면 질투 대마왕이라는 거다. 존이 런던으로 출장 간 애인 리즈(제니퍼 러브 휴이트)에 몸달아하면서 가필드는 질투에 불타 죽기 직전이다.
한편 런던 근교 요크의 칼라일 성(하워드 성)에서 다지스 경(빌리 코놀리)을 제치고 유산을 상속하게 된 동물의 왕 프린스는 다지스의 음모에 휘말려 런던의 시궁창 속에 빠졌다가 존에게 구조되고, 존의 트렁크에 몰래 들어갔
트렌디하게 재해석한 <왕자와 거지>, <가필드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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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설어서 무서운 상황이 있다면 익숙해서 무서운 상황도 있다. 이를테면 영화 <가발>의 오프닝. 카메라가 자동차 운전자 시점에서 컴컴한 국도를 달린다. 따로 조명을 쓰지 않은 현실적 질감. 으스스한 어둠과 허연 헤드라이트 불빛의 기분 나쁜 대비. 밤의 고속도로를 달려본 이라면 ‘어둠 속에서 뭔가 튀어나올 것 같아서’ 소름끼쳤던 기억을 떠올릴 것이다. 그 순간 공포가 스크린에서 현실화된다. 내 눈 앞으로 섬뜩한 머리채 같은 것이 날아와 자동차 앞유리에 확 부딪힌다.
익숙해서 더 무섭게 느껴지는 상황을 <유실물>은 효과적으로 이용한다.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괴담과 지하철이라는 일상적 공간을 통해서다. 이유도 없이 사고가 잦은 터널, 선로에서 헛것을 봤다는 기관사, “너.도. 그걸 본 거야”라는 말, “옛날에 터널을 파는데 뭔가에 홀린 것 같아서 도저히 팔 수가 없었다”는 소문. 불길한 말들이 지하철을 떠돈다. 나도 들어본 말들이다. 불길한 물건도 돌아다닌다. 나도
익숙해서 무서운 공포, <유실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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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는 삶의 모든 것을 공유하는 친구들이었을 테지만, 세월이 흐르고 각자의 터전이 생기면 삶의 길은 흩어지게 마련이다. 우정도 사랑처럼 변한다는 것을 인정해야 할 때가 있는 법이다. <섹스&시티>에서 가장 비현실적이었던 것은 매일같이 연애하고 섹스하는 그녀들의 일상이 아니라, 그녀들 사이의 관계였다. 가족과 연인에게 안착하지 못하는 여인들이 매일 아침 만나 자신의 사생활을 남김없이 털어내며 ‘그래도 우리에겐 서로가 있어’라고 끈끈한 연대감을 자랑할 때, 우리는 그것도 일종의 환상임을 부정하고 싶어한다. 혹은 그러한 극도의 친밀감은 그녀들이 싱글일 때 가능했던 것임을 너무 쉽게 지나친다. 하지만 여인들이 자신의 안정된 짝을 만난 순간에는 드라마도 끝나지 않았던가.
올리비아(제니퍼 애니스톤), 제인(프랜시스 맥도먼드), 크리스틴(캐서린 키너), 프래니(조앤 쿠색)는 오랫동안 추억을 나눈 친구들이다. 그러나 현재 그녀들은 각기 다른 인생의 행로를 가고 있다. 제인은
우정으로 채워지지 않는 삶의 쓸쓸한 공허감, <돈많은 친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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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예찬론자인 임어당은 <생활의 발견>에서 ‘파이프는 철학자의 입술보다도 지혜를 만들어낸다’는 영국 소설가 대커리의 말을 인용한 적이 있고, 오스카 와일드는 ‘완벽한 기쁨의 완벽한 형태’라고 담배를 찬미했으며, 장 콕토는 담배를 꺼내어 라이터로 불을 붙이는 의식과 연기가 주는 마력에 대해 과장했다. 그런데 그건 말보로맨 웨인 맥라렌이 1992년 폐암으로 죽기 전 얘기이며, 미국의 메이저 담배회사들이 흡연피해자에게 수백억원에 이르는 소송에 줄줄이 패하기 전의 그야말로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얘기다. 그러니 왜 새삼 커피와 담배인가. 웰빙을 권하는 시대에 카페인과 니코틴을 권한다니 웬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란 말인가. 시류를 거꾸로 흘러가는 짐 자무시 영화는 11개 단편의 묶음 속에서 커피와 담배는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끈이라는 통찰을 던진다. 별 의미도 이유도 없이 만나는 사람들을 맺어주는 게 커피와 담배다. 영화 속에 출몰하는 수많은 사람들은 그저 담배와 커피를 함께하며
짐 자무시의 <생활의 발견>, <커피와 담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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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 오락의 결정판.” 2004년 2월, <괴물>을 준비하던 봉준호 감독이 <괴물>을 설명한 말이다. 그로부터 2년 남짓, <괴물>은 봉준호 감독의 예고에 걸맞은 영화로 태어났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영웅담을 답습하는 대신 한국적 상황과 인물들의 고군분투를 따라가는 봉준호 감독은 그의 이전 영화들이 갖고 있던 유머감각을 잃지 않고도 괴물영화의 장르적 장점을 ‘지금, 여기’로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다. 크기로 압도하는 괴물도, 과학자나 슈퍼히어로도 등장하지 않지만, 대신 공감을 얻는 <괴물>이 등장한 것이다.
한가로운 오후의 한강 둔치에 괴물이 등장한다. 아버지 희봉(변희봉)과 한강 둔치 매점을 운영하는 강두(송강호)는 딸 현서(고아성)가 눈앞에서 괴물에게 잡혀가는 모습을 목격한다. 결정적인 순간에 활시위를 당기지 못하는 양궁선수인 남주(배두나)와 말 많은 대졸백수 남일(박해일)은 조카가 죽었다는 말을 듣고 슬퍼한다. 현서의 죽음에 슬퍼
삶과 현실의 방점, <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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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없는 밤의 고속도로 톨게이트. 매표원인 지연은 밤마다 피가 흥건히 묻은 티켓을 내고 사라지는 검은 차량 때문에 두려움을 느낀다. 그가 일하고 있는 톨게이트에는 이상한 도시전설이 하나 있다. 12년 전 2월29일에 뒤집힌 호송차 속에서 불타 죽은 여자 살인마의 원혼이 출몰하고, 4년마다 돌아오는 2월29일에는 꼭 사람이 죽어나간다는 것이다. 지연이 톨게이트에 떠도는 소문과 밤마다 출몰하는 검은 자동차에 두려움을 느끼던 중, 근처 톨게이트에서는 매표원들이 끔찍하게 난도질당한 시체로 발견된다. 게다가 검은 자동차에 탄 사람이 살인마라고 확신한 지연의 주위에는 지연과 똑같이 생긴 여자가 출몰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돌아온 2월29일에 지연의 동료인 종숙이 살해당하고, 지연은 두명의 형사와 함께 검은 자동차를 기다린다. 이 모든 이야기는 과연 사실일까.
영화는 유일한의 원작 소설 <톨게이트>와 마찬가지로 하얀색으로 도배된 정신병원에 감금된 지연의 진술로 이야기를 풀어낸다.
영상으로 재구성한 원작의 낭독회, <2월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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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포켓몬스터> 극장판 개봉? 아직까지 포켓몬이 인기란 말인가? 그렇다, 아직까지 <포켓몬스터>(이하 <포켓몬>)의 인기는 국내에서도 건재하다. <포켓몬>에서 <포켓몬스터 AG>(Advanced Generation)로 한 차례 바뀌고, 공중파에서 케이블TV로 국내의 방영 매체도 바뀌면서 <포켓몬>의 열기는 수그러진 듯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게임, 케이블TV와 암흑의 루트를 통해 여전히 <포켓몬>에 열광하는 젊은이들의 수는 성인들의 생각보다 훨씬 많다.
<포켓몬>의 9번째 극장판 <포켓몬 레인저와 바다의 왕자 마나피>는 현재 일본에서 방영 중인 <포켓몬 AG>를 기본 설정으로 하는 작품이다. 주인공인 지우와 포켓몬 일행이 포켓몬 레인저인 잭 워커를 만나고, 잭과 함께 수중 몬스터 마나피의 알을 아크셔 신전까지 안전하게 배달하는 여정을 그리고 있다. 한국과 일본의
<포켓몬>의 9번째 극장판, <포켓몬 레인저와 바다의 왕자 마나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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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의 시대가 지나가고 피의 시대가 도래했다. 21세기 후반, HGV라는 바이러스가 유출되어 감염자들은 돌연변이가 된다. 인간 세상은 감염자들의 강한 전투력에 두려움을 느끼며 이들을 말살시키려는 계획을 세운다. 돌연변이들 역시 저항을 시작하지만, HGV를 발견했던 과학자 덱서스에 의해 돌연변이를 몰살할 무기가 개발된다. 임신 중 바이러스 감염으로 아이를 잃어야 했던 바이올렛(밀라 요보비치)은 여전사가 되어 덱서스의 비밀무기를 탈취하는 데 성공한다. 그러나 그녀는 그 무기 속에서 아이(카메론 브라이트)를 목격한 뒤 덱서스의 잔혹한 야심을 눈치채게 된다.
<이퀼리브리엄>의 커트 위머 감독과 <제5원소> <레지던트 이블>의 밀라 요보비치가 만났다. <울트라바이올렛>은 파국적인 미래사회를 배경으로 여전사의 활약을 보여주는 무수히 많은 영화들 중 한편이라고 할 수 있다. 기존의 영화들에서 악과 선은 더러운 욕망에 사로잡힌 권력자 대 그 권력에 대
미래를 고민하지 않는 ‘미래영화’, <울트라바이올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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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렌은 노래로 뱃사람을 홀리는, 몸의 절반은 새이고 나머지 반은 여자 형상인 신화 속 요정이다. 아르고 원정대를 이끄는 이아손 왕자는 세이렌의 노래가 울려퍼지는 카프리 섬을 지날 때 노랫소리가 들리지 않도록 오르페우스에게 리라를 연주하게 했다. 일정한 음역을 유지하는 경보신호음 ‘사이렌’이라는 명칭은 여기서 유래한다. PS2 전용 호러어드벤처 게임을 원작으로 한 J호러 <사이렌>은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 ‘소리’가 공포의 요체이다.
유키(이치가와 유이)와 그녀의 아버지는 병약한 히데오의 요양을 위해 외딴섬 야미지마로 간다. 일본이 아닌 듯한 이국적 정취를 풍기는 섬에는 알 수 없는 음습한 기운이 감돈다. 유키 가족이 거주할 먼지 쌓인 집에는 흉측한 다족류 벌레가 튀어나오고 묘한 분위기의 이웃집 여자는 사이렌이 울리면 절대 밖으로 나가지 말라고 경고한다. 어느 날 밤, 촬영차 숲에 들어간 아버지는 미처 사이렌 소리를 피하지 못하고 그 뒤로 이상하게 변해간다. 외딴집에
‘소리’라는 공포에 대한 새로운 감각, <사이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