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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타자와 ‘사랑’을 통해 교감한다고 생각한다. 그 앞에서는 국경도 인종도 사라진다는 이 단어는, 사실 무수한 오해로 겹겹이 쌓여 있다. 주체가 타자를 온 힘을 다해 사랑했다고 생각하는 그 순간, 타자는 너의 사랑은 나에게 사랑이 아니라고 말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하지만 때로는 서로가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동일한 테두리 안에서 공명하고 있다고 믿고 싶어하기도 한다. 페르난도 메이렐레스의 <콘스탄트 가드너>는 바로 그렇게 다른 곳을 바라보던 연인이 세상을 떠난 뒤에야 그녀가 바라보던 곳이 어딘지 알기 위해 먼 길을 떠난 한 남자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이 영화는 케냐 주재 영국 대사관인 저스틴(레이프 파인즈)이 젊고 아름다운 아내 테사(레이첼 바이스)를 공항에서 배웅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부부는 더없이 애정어린 눈빛으로 작별 인사를 나누며 이틀 뒤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한다. 그러나 저스틴에게 돌아온 것은 아름다운 아내의 따뜻한 육신이 아니라 잔인하
사랑을 지키기 위한 외로운 싸움, <콘스탄트 가드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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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케스트라에서 쫓겨난 피아니스트 겐타(다마야마 데쓰지)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며 술에 취해 정신을 잃는다. 눈을 뜬 겐타는 자신이 천국의 책방에 와 있음을 깨닫게 된다. 책방 주인은 그가 천국에 온 사람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아르바이트를 하기 위해 잠시 불려온 것이라고 말한다. ‘아직 죽지 않은’ 겐타는 혼란한 가운데, ‘이미 죽은’ 사람들에게 책을 읽어준다. 그리고 죽기 전 촉망받는 피아니스트였던 쇼코(다케우치 유코)를 만나 그녀의 미완성 악보를 보게 된다.
영화는 두축으로 진행된다. 두축에는 죽어서 천국에 온 쇼코와 지상에 사는 쇼코의 조카 카나코를 동시에 연기하는 ‘다케우치 유코’(<지금, 만나러 갑니다>의 그녀)가 있다. 비극적인 사고로 꿈을 이루지 못한 채 천국에 온 쇼코 그리고 그 비극을 뒤늦게 애도하고 치유하려는 카나코. 마치 한 사람인 것 같은 이 두 여성 주변에도 상처 입은 두 남자가 존재한다. 실력을 인정받지 못하고 좌절한 채 천국에 잠시 들른 겐타와 사
뽀얗게 도배된 천국과 불꽃놀이의 허무한 흔적, <천국의 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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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아파본 적 있나요?’ 코미디 배우 스티브 마틴이 2000년에 쓴 동명소설을 영화화한 <쇼핑걸>은 사랑 때문에 마음 아파하는 세 사람을 그린 영화다. 베버리힐스에 자리한 삭스백화점 장갑 매장에서 일하는 숍걸(Shopgirl) 미라벨(클레어 데인즈), 그녀는 그림으로 성공하기를 바라는 화가 지망생이다. 하지만 그녀의 현실은 따분하기만 하다. 장갑 매장을 찾는 손님은 하루에 한두명이 고작이고, 아직 다 갚지 못한 학비 대출금은 끝날 기미도 안 보인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에게 두명의 남자가 찾아온다. 한명은 앰프에 페인트로 로고를 그리는 폰트 디자이너 제레미(제이슨 슈월츠먼)고, 다른 남자는 50대의 백만장자 레이 포터(스티브 마틴)다. 동전 세탁방에서 처음 만난 제레미와 미라벨은 서로에게 마음을 열고 데이트를 시작하지만, 미라벨에게 제레미는 영 마뜩지 않은 상대다. 걸핏하면 돈 좀 꿔달라고 말하기 일쑤고, 아이맥스 영화관까지 가서는 입장료가 비싸다며 밖에서 구경하자
사랑에 아파본 적 있나요? <쇼핑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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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살에 열병을 앓고 여덟살에 지능이 멈추어버린 엄기봉씨는 올해로 마흔세살이 되었다. 정신지체 1급 장애인인 그가 KBS <인간극장>의 주인공이 된 것은, 여든을 넘긴 노모를 지극정성으로 모시며 살기 때문이다. 시골 마을에서 날품팔이를 해 번 돈을 들고, 어머니를 위한 음식을 들고 마을을 한걸음에 내달리는 기봉씨의 이야기는 <인간극장>으로 화제를 낳은 데 이어 책(<맨발의 기봉이>)과 영화로 만들어졌다.
남해 근처 다랭이 마을에 사는 기봉(신현준)은 팔순의 노모(김수미)를 극진하게 모시는 효자다. 정신연령이 여덟살에 멈춘 그는 이제 마흔살로, 엄마에게 줄 음식을 들고 맨발로 마을을 뛰어다니곤 한다. 엄마가 이가 약해져 음식을 잘 못 씹는다는 얘기를 들은 기봉은 틀니를 해드리기로 마음먹는다. 마을 이장 재선을 노리는 백 이장(임하룡)은 마을의 스타를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기봉이를 하프 마라톤 대회에 내보내기로 한다. 기봉의 코치를 자청한 그는 기봉에게
과욕을 부리지 않은 감동, <맨발의 기봉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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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 조강은 노란 우비를 입고 다니는 전학생 아리를 좋아하게 된다. 자기 몸을 만지면 저주를 받는다고 믿는 아리는 함께 비를 맞았던 조강이 홍역을 앓은 다음부터 학교에 나오지 않는다. 10년 뒤, 서울로 이사온 조강(조승우)은 갑자기 나타난 아리(강혜정)를 만나기 위해 고향으로 간다. 두 아이는 아리가 살고 있는 암자에서 여름방학을 보내며 연인처럼 가까워지지만, 아리는 또다시 사라지고 만다. 다시 8년이 흐른다. 포기하지 않고 아리를 찾던 조강은 느닷없이 나타난 아리에게서 다음날 미국으로 떠난다는 소식을 듣는다.
<도마뱀>은 아무것도 돌아보지 않고 그저 사랑하기만 하는 순수한 연인의 이야기다. 조강은 등굣길에 눈이 마주친 아리를 곧바로 좋아하게 되어 이십년이 지나도록 그 마음을 버리지 않고, 함께 보낸 시간이 반년도 되지 않을 아리를 위해 무엇이라도 한다. 아리도 마찬가지다. 외계인이기 때문에 언젠가 지구를 떠나야 한다고 거짓말하는 아리는 조강에게 상처를 주지 않고자
아름다운 사랑의 교본, <도마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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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엔체 노르부는 1999년 월드컵 중계를 보고 싶어하는 티베트 승려들의 해프닝을 그린 영화 <컵>을 만들었던 승려 출신 감독이다. 소박한 일상으로 불교의 가르침을 전했던 그는 다국적 스탭들과 함께 고국으로 돌아가 부탄에서 촬영된 첫 번째 장편영화를 완성했다. 두 가지 이야기가 교차하는 <나그네와 마술사>는 수천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을 불교의 가르침과 현대화를 시도하는 부탄의 변화가 무리없이 한데 녹아 있는 영화다.
시골 마을에 공무원으로 부임한 돈덥(티세왕 댄덥)은 미국으로 이민 간 친구가 자기를 초청해주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마침내 기다리던 편지가 도착하자 돈덥은 짐을 꾸려 미국 대사관이 있는 도시로 나가려고 하지만, 버스를 놓치는 바람에 하염없이 지나는 자동차를 기다리는 신세가 된다. 나그네가 많은 이 길 위에서 돈덥은 아름다운 소녀 소남(소남 라모)과 젊은 승려(소남 킹) 등을 길동무로 맞는다. 승려는 지루한 여정을 달래고자, 고향을 떠나고 싶어하다가 신
영상으로 대신하는 부처의 설법, <나그네와 마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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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떠난 부인을 잊지 못하고 그녀의 유령과 동거하고 있는 외로운 노인, 먹는 것이 유일한 낙처럼 느껴지지만 짝사랑에 어쩔 줄 몰라하며 밤잠을 설레는 뚱뚱한 경비원, 인터넷 채팅을 통해 만난 동성 연인의 변심에 가슴 아파하는 한 소녀, <내 곁에 있어줘>는 이렇게 세대별(노인, 청년, 소녀)로 구분된 허구적 이야기에 14살 이후 시력과 청력을 잃었지만 삶과 인간에 대한 순수한 열정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테레사 첸’의 실화가 더해진 작품이다.
하지만 <내 곁에 있어줘>의 독자성은 무심한 듯 진행되다 하나의 지점으로 수렴되는 다층적 내러티브에 있는 것이 아니라, 허구적 이야기에 실화를 결합함으로써 허구와 실화 어느 하나만으로는 불가능했을 영화의 힘을 보여준다는 점에 있다. 즉 영화가 주는 감정적 울림은 전적으로 테레사 첸의 실화 덕분이긴 하지만, 그녀가 껴안을 수 있는 허구적 인물들의 상처가 충분히 구축되지 않았다면 영화적 공감은 실패하고 말았을 것이다.
참으로 아름다운 감동, <내 곁에 있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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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때때로 빈곤함과 약함을 순박함과 선함과 동일시한다. 다시 말하면 비자발적으로 경제적 빈곤층과 사회적 약자가 된 이들이 마치 원래부터 부나 명예에 대한 욕심이 없어서 자신의 삶의 방식을 선택했다는 식으로 미화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카메라를 숨겨놓고 ‘친절한 시민’을 찾거나 교통법규를 엄수하는 선량한 준법자를 찾는 프로그램들은 종종 그러한 이데올로기를 밑바탕에 깔아놓는 경우가 많다. 이처럼 사회적 약자에게 선량한 심성까지 강요하는 태도 뒤에는 그들을 체제에 순응하도록 훈육하고, 없는 자들의 빈곤을 그들이 가진 도덕성에 의한 선택으로 돌리고 ‘칭찬’함으로써 가진 자들의 피해의식을 최소화하려는 의도가 숨어 있다. 따라서 이런 태도는 순간의 감동을 선사하면서 사회의 구조적 모순에 대해 눈을 감도록 만든다.
니키 카로 감독의 <노스 컨츄리>는 그런 맹목에 대한 공격에서부터 시작한다. 법정에 앉은 조시 에임스(샤를리즈 테론)는 아버지가 다른 두명의 아이를 가진 싱글맘이라
사회의 구조적 모순에 대한 공격, <노스 컨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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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생결단>은 <바이 준>과 <후아유>를 만들었던 최호 감독의 세 번째 장편영화다. 우선 선택한 소재의 성격만 보면 두편의 전작과 많이 다르다. 젊은 날의 사랑과 상처에 쏟았던 관심은 부산의 뒷골목을 헤매는 범죄자와 형사의 피냄새 나는 동업으로 초점을 옮겼다. 여기에 두 남자의 교감 혹은 우정이 있을 리 없다. 단지 살기 위해서, 쟁취하기 위해서 서로를 취하는 거짓 계약과 그 끝만 있다. 그렇게 같이 위태롭게 발딛고 서 있는 이곳은 마약의 세계다.
환락과 범죄가 지배하는 부산의 유흥가 뒷골목. 그곳에 이상도(류승범)가 산다. 유년 시절 마약제조자 삼촌의 심부름을 하다가 도리어 마약업자가 되고 만 그는 약삭빠르면서도 야비하다. 자기는 결코 약의 유혹에 빠지지 않을 뿐 아니라, 위험에 처하면 언제든 친구라도 팔아먹을 준비가 되어 있는 자다. 상도를 쫓아 나타나는 부산 강력계 경장 도진광(황정민). 사건 해결을 위해서라면 법과 법 아닌 것 사이의 구분
스타일과 리얼함 그 사이, <사생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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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4월8일, 커트 코베인이 죽었다. 자살인지 타살인지는 아직도 해석이 분분하지만 유서로 알려진 편지에는 “서서히 소멸되는 것보다 순식간에 타오르는 것이 낫다”는 말이 적혀 있었다. 구스 반 산트 감독의 2005년작 <라스트 데이즈>는 유서를 쓰고 마침내 죽은 모습으로 발견된 커트 코베인의 죽기 전 며칠을 그린 영화다. 전기영화를 기대해서는 안 된다. <라스트 데이즈>는 설명에 인색하고 묘사에 너그럽기 때문이다. 이미 그러했던 구스 반 산트의 전작 <엘리펀트>는 어쩌면 <라스트 데이즈>를 위한 예행연습이었는지도 모른다.
<라스트 데이즈>의 시작은 숲을 방황하는 한 남자에게서다. 극도로 외로워 보이는 이 남자, 블레이크(마이클 피트)는 성공한 뮤지션이다. 숲속의 거대한 저택은 부유함에서 오는 안락함보다는 공포에 가까운 공허를 느끼게 한다. 그를 찾는 사람들이 끝없이 전화를 하거나 저택의 문을 두들기고, 집 안에는 그의 친
커트 코베인과 관객 사이의 비밀스런 소통, <라스트 데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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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3인 한수(온주완)는 학교가 자랑하는 수영선수지만 수영이 싫다며 수영부를 나온다. 유일한 식구인 엄마는 자살기도를 했다가 식물인간이 된다. 한수는 엄청난 병원비, 수영부 선생과 친구들의 복귀 요구, 카드빚 독촉에 둘러싸여 홍역을 치른다. 한수는 옆집으로 이사온 여학교 음악 선생님 인희(김호정)에게 격정적으로 빠져든다. 그리고 한수는 엄마의 유서에서 아버지의 존재를 처음 느끼고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 속 한가운데서 어떻게 피터팬은 어른이 되는가에 대한 저마다의 공식을 신인 조창호 감독은 예리하면서도 서정적인 영상으로 잡아낸다. 바닷가 소도시의 일상과 인물의 내면을 함께 잡아내는 솜씨가 뛰어나다. 온주완을 비롯해 김호정 그리고 병실에서 만난 대학생 누나 역의 옥지영, 의식불명의 엄마 역의 손희순의 연기는 대담하면서도 현실적이다. 한 장면도 평범함과 상투성과의 싸움에서 지지 않으려는 젊은 감독의 패기가 읽힌다. 프랑스 도빌영화제 심사위원
피터팬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 <피터팬의 공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