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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일곤 감독의 전작 <꽃섬>의 여인은 꽃섬이 “모든 슬픔과 불행이 사라지는 곳”이라고 말했다. <거미숲>의 여인은 거미숲이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는 영혼이 갇혀 있는 곳”이라고 일러준다. 우리의 영혼이 가장 나중 지닌 것. 그것이 돌아가 거하는 장소를 송일곤 감독은 여전히 찾아 헤맨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땅히 그 섬과 그 숲을, 실제의 장소가 아닌 머릿속에 존재하는 메타포라고 여길 수 있다. 그러나 살인 미스터리를 표방한 <거미숲>에서 거미숲은 엄연히 끔찍한 범죄의 현장이기도 하다. 꽃섬은 세 여인의 순례길 끝의 신기루 같은 공간이었으나, <거미숲>은 처음부터 끝까지 숲을 벗어나려는 또는 숲으로 돌아가려는 몸부림이며 그래서 영화는 내내 ‘숲속에’ 있다(이하 기사는 스포일러로 간주될 수 있는 정보를 포함합니다).
“15분 안에 객석의 주의를 사로잡고 싶었다”는 송일곤 감독은 관객의 얼굴에 페인트를 끼얹듯 <거미숲>을 시작한다. 한
구원을 묻는 살인 미스터리, <거미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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갱두목에게 배신을 당한 뒤, 그의 돈을 가로채다 경찰에 체포된 루비(장 르노)는 결코 입을 열지 않는다. 수차례 감옥을 들락거리며 감옥 동료들을 쉴새없는 수다로 괴롭히는 퀀틴(제라르 드파르디외)에게 침묵이란 없다. 루비를 통해 갱단의 비밀을 밝히려는 경찰은 퀀틴의 수다로 루비의 침묵을 깨려 한다. 그러나 루비는 묵묵히 듣기만 하고 퀀틴은 생애 처음으로 진정한 친구를 만났다고 믿는다. 루비를 향한 퀀틴의 애정 공세는 나날이 심해지고 이와 함께 루비의 탈옥 계획도 진행된다. 루비의 계획이 성공하려는 찰나 갑자기 나타난 퀀틴으로 상황은 엉뚱하게 흘러가고 예상치 못한 둘의 탈주극이 시작된다.
프랑스의 간판 배우 장 르노와 제라르 드파르디외, 그리고 코믹 도주극의 전문가 프란시스 베버가 뭉쳤다. 프란시스 베버의 전작 <은행털이와 아빠와 나> 시리즈에서와 마찬가지로 영화는 우연하게 벌어지는 상황들의 코믹함과 범죄자들간의 인간적인 교감이라는 두 줄기가 맞물리며 진행된다. 게다가 지나
자유 대신 친구를 찾아가는 따스한 버디영화, <셧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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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맨과 배트맨이, 원더우먼과 캣우먼이, 뤼팽과 홈스가 한 작품 속에서 대결한다면 누가 이길까? 팬들이 원하는 바대로 원작을 비틀거나 전혀 다른 식으로 내용을 전개시키는 팬픽(fan fiction)은, 대중의 욕망이 직접적으로 투사되는 인터랙티브한 소통의 가장 명징한 예로서 자유분방한 패러디와 카니발적 특징을 자주 보여준다. 그렇다면 80년대 슬래셔 공포영화의 쌍두마차인 <나이트메어> 시리즈의 프레디 크루거와 시리즈의 제이슨이 함께 등장하는 팬픽의 경우는 과연 어떨까? 꿈과 현실의 경계를 지워버렸던, 슬래셔 자체의 장르적 특징보다는 바로 그 환상적인 면모 때문에 암묵적인 공포를 확산시켰던 프레디, 그리고 공포영화 속 익숙한 주인공으로 ‘소외된 이의 분노’를 체현하는 존재인 하키 마스크맨 제이슨. 꿈의 지배자와 현실의 지배자가 한 공간에 존재할 때 공포는 배가 될 것이라는, 단순한 양의 합산에 의거한 상상으로 팬픽을 써내려간다면?
유감스럽게도 로니 우(<백발마녀전&
이 세상으로의 귀환을 꿈꾸는 살인마들, <프레디 vs 제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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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림트와 카라바조의 그림으로 유명해진 유디트라는 여인이 있다. 구약성서 외경에는 이스라엘의 과부였던 그녀가 침략자인 신바빌론의 홀로페르네스 장군을 유혹하여 목을 벤 사건이 기록되어 있다. 르네상스 이후 수많은 화가들이 ‘영웅’ 유디트를 화폭에 담았다. 그중에는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라는 바로크 시대의 여류화가도 있다. 천재적인 재능에도 불구하고 아버지 친구에게 강간을 당하고 원치 않은 결혼을 하는 등 그녀는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그래서인지 그녀의 유디트는 ‘영웅’보다는 역동적이고 사실적인 ‘살아 있는 여성’의 이미지가 강하다. ‘나쁜 남자’에 대한 복수와 증오가 선연히 드러난다. <프리즈미>는 아르테미시아의 불행했던 삶과 유디트의 이야기를 겹쳐놓은 듯한 복수극이다.
눈오는 밤 불량배들에게 여주인공 치히로는 윤간을 당한다. 그녀가 고향을 떠나 도쿄로 와서 직장생활을 한 지도 5년이 흘렀다. 남자친구인 노가미와 결혼을 앞둔 치히로. 출근을 서두르던 아침, 5년 전 그녀에
섹스와 폭력으로 가득 찬 냉장고, <프리즈 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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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코끼리 한 마리를 거실에 둔 채로 살아간다. 밖으로 내보낼 방도가 없으니 그냥 참고 지낼 수밖에 없었고, 그렇게 지내다보니 어느샌가 코끼리의 존재에 익숙해졌다. ‘거실의 코끼리.’ 내부의 커다란 문제를 의미하는 서양의 우화다. 너무 거대한 내부의 문제들은, 손쓸 새도 없이 우리 삶의 무감각한 일부분이 되어버린다. 가끔은 코끼리가 몸을 움직여 집을 흔들기도 한다. 99년 미국의 컬럼바인 고등학교. 2명의 고등학생이 12명의 급우와 1명의 선생을 총살하고 자살했다. 코끼리가 움직인 순간이었다. 구스 반 산트는 바로 그 순간으로 숨어든다. 알코올 중독자 아버지를 가진 존, 급우들의 사진을 찍는 일라이, 축구선수 네이던과 여자친구, 왕따 알렉스와 친구 에릭, 몸에 대한 콤플렉스에 시달리는 미셸, ‘먹고 토하는’ 다이어트 중독증 치어리더들. 카메라는 아이들의 행보를 교차시키며 학교의 지형도를 관객에게 인지시키듯이 복도를 헤매고 다닌다. <엘리펀트>는 멋지게 조율된 관전기다.
‘미국 고등학교’라는 코끼리의 관전기, <엘리펀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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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어라. 세상이 너와 함께 웃을 것이다. 울어라. 너 혼자 울 것이다.” <올드보이>의 유명한 경구는 이제, 자신이 개그맨 출신이라는 편견을 버리고 <도마 안중근> 그 자체를 감상해달라는 ‘감독’ 서세원에게 보내는 관객의 대답이 된다. <조폭마누라>의 빅히트만으로 가능성 있는 제작자로 불릴 만했던 서세원. 그러나 그는 지금 세상과 함께 웃는 것이 아닌 외롭게 진지해지는 길을 택했다. 심각한 표정으로 눈물을 강요하는 <도마 안중근>을 보면서 함께 울어줄 관객은 한명도 없을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1907년 독립군 기지에서 일본군이 우리 민족에게 학살을 자행하는 장면으로 시작한 영화는 단도직입적으로 이토 히로부미(윤주상) 암살에 성공한 안중근(유오성)이 일본 형사(정성모)에게 취조를 받는 장면으로 뛰어든다. 이후 보여지는 도마 안중근의 과거(삼흥학교 설립, 의병운동 참가, 단지동맹 결성, 그리고 1909년 하얼빈 거사)는 대략 이 시점에서
홍콩누아르의 주인공으로 부활한 안중근 의사, <도마 안중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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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컴 투 아메리카, 올모스트!”
이제 막 공항에 도착한 코르코지아 출신 빅토르 나보스키(톰 행크스)는 지독히도 운이 없는 남자다. 비행기를 타고 날아오는 동안 쿠데타가 일어나 그의 고국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졸지에 국적을 잃은 그는 미국에 들어가지도 고국으로 돌아가지도 못한 채 공항 터미널 환승 라운지에서 출입관리국의 처분을 기다려야 한다. 혼란에 휩싸인 고국의 소식에 황망해하다가 공항에서 내준 식권까지 잃어버린 그는 대기석에서 잠을 청해보지만, 이번엔 의자 사이로 엉덩이가 빠져버려 옴짝달싹 못하게 된다. 이 우스꽝스럽고 가련한 남자가 관객을 웃기고 울릴 <터미널>의 ‘히어로’다. 못 미더워도 어쩔 수 없다.
나보스키의 단순명쾌한 캐릭터는 공항 사람들의 의혹과 오해 속에서 크고 작은 소동을 빚는다. 그는 공항을 벗어나선 안 된다는 규칙을 양순하게 지키면서, 언어별 여행 가이드 책자를 대조해 영어를 배우고, 카트를 회수하는 노동의 대가로 푼돈을 챙기는 등 나름의 생존방
휴머니즘의 엔터테인먼트, <터미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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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유소에서 일하는 마사키(오노 마사히코)는 동네 야구팀의 멤버이다. 하지만 그는 보통 후보선수, 가끔 삼진아웃이고, 피나는 노력 끝에 날린 홈런조차 득점으로 인정되지 못한다. 한편, 그는 주유소에서 손님 야쿠자와 가벼운 싸움을 하고, 이를 빌미로 야쿠자는 마사키와 그 친구들을 협박하기 시작한다. 급기야 돕겠다고 나선 친구 이구치(이구치 다카히토)가 폭행을 당하고, 그는 복수를 감행하기로 결심한다. 마사키는 카즈오(이이즈카 미노루)와 함께 권총을 입수하기 위해 오키나와로 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자금을 횡령한 죄로 죽음의 위기에 처한 야쿠자 우에하라(비트 다케시)와 타마키를 만난다. 그들의 흉포함을 견디며 가까스로 무기를 구한 그들은 도쿄로 돌아오지만 습격은 실패로 끝난다. 그리고 마사키는 다시 유조차를 몰고 야쿠자 사무실로 향한다.
스크린은 잠시 까맣게 되지만, 곧 첫 장면이 반복된다. 마사키가 야구장 간이 화장실에서 나오며, 영화는 부감숏으로 먼지가 뿌옇게 이는 야구장을 보여준다.
다케시 영화의 원형, 〈3-4X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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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세상에서 제일 게으르고 거만한 고양이가 있다. 먹기 좋아하고 움직이기 싫어하는 탓에 몸은 눈사람처럼 비대하고 눈은 반쯤 감겨 있다. 주인 무릎에 안겨 재롱 떨 줄도 모른다. 그런 애완동물은 그의 눈에 “왕재수 아부덩어리”로 비칠 뿐이다. “가서 쥐 잡아!”라는 주인의 명령 따위는 “네가 잡아!”로 응수하면 그만이다. 스누피와 쌍벽을 이루는 ‘자의식 만땅’의 애완 동물 가필드가 카툰 박스에서 걸어나와 스크린에 재림했다. 그것도 실사로!
26년 전 카툰 캐릭터로 태어나 TV애니메이션으로 수차례 만들어졌지만, 극장용 실사영화로 만들어진 것은 이번이 처음. 극장판 <가필드>는 ‘귀차니즘’을 온몸으로 웅변하는 가필드의 캐릭터, TV 보고 남 괴롭히고 라자니아에 집착하는 그의 일상을 소개하면서, 이야기의 큰 줄기로 가필드 집에 입양된 강아지 오디의 실종 사건을 꾸려넣었다. 아름다운 수의사 리즈, 위선적인 TV쇼 진행자 해피가 얽혀드는 ‘오디 찾아 삼만리’ 사건을 통해 가필드
세상에서 제일 게으르고 거만한 고양이, <가필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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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4년, 2차대전에서의 패망을 예감한 나치는 흑마술을 이용하여 전세를 역전시키려 한다. 연합군은 초자연 현상의 권위자인 브룸 박사와 함께 악마 의식이 진행 중인 스코틀랜드의 외딴 곳을 급습하고, 끔찍한 지옥의 문이 열리는 순간, 가까스로 세상이 멸망할 뻔한 위기를 막는 데 성공한다. 브룸 박사는 지옥문이 열렸던 그 잠깐 동안 인간 세계에 도착하게 된 악마 소년, 즉 헬보이(론 펄먼)를 발견하고 그를 자신의 아들처럼 키운다. 60년 뒤, 대외비공개조직인 ‘초자연현상 조사 처리국’의 주요 요원으로 활동 중인 헬보이는 강렬한 붉은색 피부와 정수리에 달린 뿔, 기다란 꼬리 등 악마의 자식임을 확연히 알 수 있는 외모에 콤플렉스를 느끼고 있다. 어느 날 맨해튼 박물관에 끔찍한 괴물 사마엘이 등장하고 헬보이는 격렬한 사투 끝에 사마엘을 처치한다(혹은 처치한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브룸 박사는 이 사건의 배후에 헬보이를 불러냈던 나치의 협력자, 즉 러시아 흑마술사 라스푸틴과 그의 충실한 수
스스로 뿔을 꺾은 악마 소년의 외침, <헬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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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여성감독 카트린 브레이야의 스크린은, 이를테면, 포르노적 복음서다. 단단하게 발기한 남성의 성기를 거침없이 들이대고, 여성의 몸을 유린하고서야 ‘복음’을 외친다. 여성의 섹슈얼리티는 이러이러한 방식으로 구원, 아니 해방될 수 있다고. 마치 물에 기름을 들이붓고 불을 질러서 물의 순수성을 증명하려는 듯 그의 영화는 양립불가능의 재료로 뭉쳐진 세계처럼 보인다. 우리를 처음 도발했던 <로망스>(1999)와 제한상영관 공식 1호 상영작이 된 <지옥의 해부>(2004)만 놓고보면 그렇다. 게다가 <로망스>는 대단히 교훈적으로, <지옥의 해부>는 지나치게 관념적으로 성큼성큼 다가왔기에 그의 복음은 가짜처럼 보일 지경이다. 그렇다면 그의 필모그래피 중간쯤에 있는 <팻 걸>이야말로 그와 그의 복음을 이해하기에 적당하다. 바캉스 떠난 10대 소녀의 첫 경험 체험기를 통해 그의 정신적, 육체적 기원이 온전히 드러나는데, 이건 <로망스&
아담하고 흉포한 성지침서, <팻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