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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비전 프로그램 한 코너의 이름을 빌린 제목과 코미디언 정준하가 얼굴을 들이미는 포스터 때문에 <노브레인 레이스>는 막가파 영화처럼 비칠지 모른다. 그러나 제리 주커 감독에 녹록지 않은 배우들이 포진해 있는 이 영화는 반듯한 짜임새를 가지고 제대로 웃기는 코디미영화다. 라스베이거스의 한 호텔 카지노에서 슬롯머신을 당기던 이들 가운데 6명이 호텔 사장이 참석하는 파티에 초대된다. 거기서 사장은 사물 보관함 열쇠 6개를 나눠주며 뉴멕시코의 실버시티역 1번 사물함에 현금 200만달러가 든 가방이 있으니 먼저 가서 가지라고 한다. 초대된 이들 가운데 몇은 그 말을 안 믿고, 몇은 “바보 짓 안 하겠다”며 버티다가 실버시티를 향해 사막길을 달려간다.
원제 ‘Rat Race’는 영한사전에 ‘무의미한(극심한) 경쟁’이라고 번역돼 있다. 그 뜻이 돈에 눈이 멀어 미친 듯 달려가는 이들의 경주에 어울리지만, 정작 경주 결과에 돈을 벌고 잃는 이들은 따로 있다. 돈 많고 할 일 없어 내
‘예스 브레인’ 코미디, <노브레인 레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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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 소설 <해변의 카프카>에서 조각가가 왜 그리 잔혹하게 고양이 연쇄 살해에 나서는지 이유가 불분명하다. 짐작건대, 그는 좀체 길들여지지 않는 고양이의 개인주의를 혐오하거나 고양이의 불온한 눈빛에 불길함을 자극받은 건 아닐까. 하지만 고양이와의 대화법을 체득한 나카다가 마주치는 고양이들과 성심성의껏 나누는 대화를 들어보면, 고양이의 내면은 다정다감하고 사랑스럽다. <캣우먼>은 이렇게 전형화됐다고까지 할 수 있는 고양이의 이미지를 캐릭터로 끌어온다. 자신의 소심함에 쩔쩔매던 여성이 고양이의 혼으로 새 생명을 얻는 순간, 그녀는 규범에 속박받지 않는 ‘고양잇과 여성’이 된다. 길들여지지 않은 본능으로 꿈틀대며 날카로운 공격성을 순간적으로 드러낸다. 욕망은 통제될 필요도, 여지도 없다. 수줍은 미소와 너그러움을 여전히 지니고 있어 이따금 두 본성이 대립되지만, 결국 사랑스러운 존재라는 통일성을 갖는다.
남성 영웅 대열에 홀로 선 할리 베리의 <캣우
섹시하고 독립적인 단독자, <캣우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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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제의 오페라로 더 잘 알려진 <카르멘>은 프랑스인 작가이자 고고학자였던 메리메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사랑에 구속되지 않는 팜므파탈 카르멘, 그리고 그녀에 대한 호세의 집요한 사랑과 파멸은 엑조티즘과 맞물리면서 잘 팔리는 이야기로 자리잡았다. 19세기 메리메의 글에 매혹적 소재였던 스페인의 이 ‘비극과 사랑’은 21세기 영화에서 탐스러운 볼거리로 재림한다. 스페인의 메이저 프로덕션이 심혈을 기울여 제작한 영화 <카르멘>은 19세기 중반 스페인의 거리를 감각적으로 재현해낸다. 붉은 톤의 강렬한 화면은 사랑의 열정뿐만 아니라 대자연과 고대 유적, 투우, 스페인 미인들을 전시한다.
그리고 이 시선의 중심에 집시여인 카르멘(파즈 베가)의 몸이 있다. 영화는 작가 메리메의 분신일 프로스퍼(제이 베네딕트)에게 들려주는 호세(레오나르도 스바라글리아)의 회고담을 통해 카르멘에게 다가간다. 그곳에서 카르멘의 몸은 호세가 욕망하는 대상이지만 결코 소유할 수 없다. 그렇기 때
자아도취에 빠진 카르멘의 스페인, <카르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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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잘 듣고 예쁜 아내.’ 그건 남자들의 실로 오랜 꿈이다. 시대가 바뀌면서 그들의 꿈은 ‘돈도 잘 버는 말 잘 듣고 예쁜 아내’로 업그레이드된다. 그리하여 등장한 ‘슈퍼우먼 콤플렉스’. 더욱 피로한 인생을 살게 된 건 여자들이요 그 콤플렉스의 수혜자는 남자들이다. 이러한 세태 속에서 다른 모든 조건은 기꺼이 발전시키면서도 오직 ‘말 잘 듣는 것’만은 포기하겠다고 선언한 아내들이 있다. 그러자 잘나가는 아내들에게 언제나 딸려오는 부록, 주눅든 남자들이 큰 맘 먹고 비굴한 혁명을 시작한다. 아이라 레빈의 소설을 영화화한 1975년의 <스텝포드 와이프>는 끔찍했지만, 2004년의 그것은 웃긴다. 공포 대신 코미디를 선택한 시도는 미리 말하자면 싱겁기 그지없는 오락영화로 귀결되었다.
성공가도를 달리던 방송사 사장 조안나 에버트(니콜 키드먼)는 단 한번의 억울한 사고로 해고를 당한다. 부사장이자 조안나의 남편이기도 한 월터(매튜 브로데릭)는 미련없이 사표를 던지고 조안나와 아
주눅 든 남자들에게 선사하는 백일몽, <스텝포드 와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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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혜성같이 등장하여 광고계에서 갈고닦은 화려한 비주얼로 영화계의 ‘때깔’을 바꿔놓았던 일군의 감독들 중 선두주자는 단연 토니 스콧이었다. <탑건>이라든가 <악마의 키스> <폭풍의 질주> <트루 로맨스> <크림슨 타이드> 등으로 명성을 날렸던 토니 스콧은 90년대 중후반에 들어오면서는 방향을 잃은 듯했다. 토니 스콧보다 훨씬 스타일리시하고 야심만만한 신진감독들이 속속 등장했고, 90년대 후반에 내놓았던 <더 팬>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 <스파이 게임> 등의 액션스릴러들은 여전히 근사한 화면을 보여주지만 그에 걸맞은 내러티브의 개연성과 깊이를 잃은 채 표류하고 말았다. 한마디로 토니 스콧의 위치는 화려했던 과거에 비해 몹시 어정쩡해졌다. 그러던 차에 그가 <미스틱 리버>의 작가 브라이언 헬겔런드와 손잡고 A. J. 퀸넬의 하드보일드한 소설 <맨 온 파이어>를 영화화한다고
피도 눈물도 없는 무자비한 복수극, <맨 온 파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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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스 센스>(1999) 이후 반전(反轉)은 꽤 오랫동안 영화의 트렌드였다. <디 아더스> 같은 비슷한 주제의식을 가진 스릴러부터 충무로 호러와 멜로드라마에 이르기까지 ‘막판 뒤집기’ 기술은 위세를 떨쳤다. 급기야 “이제 반전없는 호러를 보고 싶다”는 푸념까지 나왔다. 그동안 M. 나이트 샤말란은 무엇을 했던가? 웬만하면 우아한 환멸을 표하며 180도 다른 영화를 내놓을 법도 하건만 그는 <언브레이커블>과 <싸인>을 만들었다. 그리고 다시 <빌리지>에 착수했다. 미친 발명가처럼 나사 하나를 비틀면 전체가 변형되는 기계 장치를 연신 고안했다. 물론 “돈이 되니까”라고 일축할 수도 있겠지만, 명예욕을 지닌 감독으로서 샤말란의 태도는 가히 저돌적이다. “반전 유행은 끝났다. 경찰 불러!”라고 외치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시선 속에 <빌리지>는 꿋꿋이 만들어졌다.(*주- 이하 기사는 스포일러로 간주될 수 있는 정보를 포함합니다).
‘언브레이커블’ 샤말란 스타일, <빌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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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년 내내 여름만 있는 나라에서 산다면 어떤 단어로 희망을 표현할 수 있을까. 늦가을에서 봄을 향해 완만한 상승곡선을 그리는 <꽃피는 봄이 오면>은 정직한 제목 그대로 꽃이 피어나는 순간을 기다리는 영화다. 겨울이 가고 나면 봄이 오겠지. 이를 악물지 않아도, 시간을 앞당기려고 애쓰지 않아도, 그저 기다리기만 한다면. <꽃피는 봄이 오면>은 이처럼 바닥으로 떨어지거나 환희로 솟아오르는 기복없이 한 남자의 세 계절을 연필 스케치처럼 담담하게 담아내려 한다. 절망조차 하지 못하고, 체념만 웅크리고 있는, 지리멸렬한 인생. 그러나 밋밋하고 초라할 뿐이던 그 남자는 긴 겨울을 견디면서 봄을 봄으로 느낄 수 있는 에너지에 조금씩 연료를 더해간다.
홀어머니와 함께 사는 현우(최민식)는 재능은 없어도 자존심은 있는 트럼펫 주자다. 돈을 위해 음악을 하면 안 된다고 믿는 그는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거나 밤무대에 서는 일만은 끝내 피하려고 한다. 그러나 자신이 떠나보낸 옛
한겨울 탄광촌에서 봄을 발견한 남자, <꽃피는 봄이 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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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감독과 배우의 욕망을 그물로 엮어낸다. 그러나 그 그물은 ‘내가 너의 욕망을 읽어주지’라고 말하며 사실은 자신의 욕망에 배우의 욕망을 꿰맞추는 위대한 감독의 손아귀 안에서 완성된다. 그러므로 “배우에겐 고통을”이라는 어느 감독의 말에 덧붙여 이 영화는, 배우와 스탭의 고통을 통해 ‘감독에겐 창작의 환희를!’이라고 외친다. 감독과 배우의 욕망이 엇갈리면서 발생하는 긴장과 갈등의 묘한 숨막힘은 감독의 컷 사인과 함께 사라지고 스크린 위에는 오직 감독의 머릿속에서 정렬된 욕망이 자리잡는다. 이 영화는 <아메리카의 밤>에서 트뤼포가 보여준 영화에 대한 애정과는 달리 감독의 깐깐한 자의식과 욕망을, 심지어 창조라는 이름하에 행해지는 숱한 ‘못할 짓’들을 진지하고 유머러스하게 다룬다. 그 중심에는 여신 같은 감독과 ‘바보 같은’ 남자들이 있다.
감독 잔느(안 파릴로)가 자신의 자의식이 온전히 살아 있는 영화를 찍기 위해 수많은 난관을 뚫고 나가는 과정에서 그녀를 지탱하는 키
<팻 걸>의 제작과정 훔쳐보기, <섹스 이즈 코메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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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3년 출간된 쥘 베른의 소설 가 단숨에 수많은 소년 소녀들을 매혹시켰던 데에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황당무계한 난제를 논리정연한 과학적 이성으로 격파해나가는 필리어스 포그라는 캐릭터가 안겨주는 신선함(마치 추리소설을 읽을 때와도 비슷한 쾌감), 그리고 서구 제국주의가 최고조에 달한 시기에 ‘대영제국’ 신사의 눈을 통해 보는 세계 각국의 다채로운 스펙터클이 안겨주는 엑조틱한 즐거움 말이다.
이번에 <웨딩 싱어>의 감독 프랭크 코라치에 의해 영화화된 버전의 는 필리어스 포그(에서 매혹적인 주인공 토니 윌슨으로 등장했던) 대신 그의 하인 파스포트(성룡!)에게 비중을 두는 변화를 단행했다. 고향 마을을 지키기 위해 머나먼 유럽에서 동분서주하는 재치있는 파스포트가 바로 필리어스 포그의 세계일주 내기를 성사시키는 장본인이며, 위험천만한 여행을 실질적으로 이끌어가는 팀장 역할도 파스포트가 맡는다. 그에 따라 필리어스 포그는 원작에서처럼 냉정한 영국 신사의 전형적인
성룡표 ‘19세기 말 세계 기행문’, <80일간의 세계일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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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사형통의 변론을 위해 여기저기 불려다니다가 아예 상투의 시장바닥에 내동댕이쳐진 말, ‘욕망’. 그것에 대해 내용과 형식의 조화를 이루어 소중하게 그려내는 희귀한 예가 바로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영화이다. <나쁜 교육>은 그 욕망의 관계들을 자신만의 영화적 구조로 완전하게 집도할 수 있음을 증명하는 알모도바르의 신작이다.
촉망받는 영화감독 엔리케(펠레 마르티네즈)는 새 영화를 구상 중이던 어느 날, 누군가의 갑작스런 방문을 받는다. 지금은 앙겔(가엘 가르시아 베르날)이라는 이름으로 배우 생활을 하고 있지만 예전에는 이그나시오로 불렸던 엔리케의 첫사랑. 새 영화에서 배역을 맡고 싶다며 찾아온 앙겔은 엔리케에게 시나리오 한편을 건네준다. 엔리케는 그것을 읽어내려가며 상상과 기억 속으로 빠져든다. 가톨릭 기숙사에서 엔리케와 이그나시오가 보냈던 혹독한 어린 시절, 그곳의 교장이었던 마놀로 신부와의 사건들이 그 안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시나리오에 매혹되어 영화를 만들어가던 중에
끝나지 않을 열정의 천일야화, <나쁜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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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꼭 네 집을 사야 한다.” 지긋지긋한 셋방살이를 마감하지 못하고 이승을 떠나는 아버지가 외아들 필기(차승원)에게 남긴 유언은 다름 아닌 ‘내집 장만’이었다. 버젓한 조선소에서 기사로 일하는 그가 야간엔 대리운전을 하며 ‘투잡스’ 대열에 낀 것도, 슈퍼마켓에서 부득불 10%를 깎아대는 알뜰한 생활을 한 것도 따지고보면 아버지의 유언을 이루기 위해서였다. 마침내 거제도 앞바다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전망 좋은 집을 장만하게 된 필기가 감격에 겨운 눈물을 흘린 것은 당연한 일. 그러나 그 집에는 딱 한 가지 사소하다 할 수 없는 문제가 있었으니, 그건 귀신이 살고 있다는 사실이다. 필기가 아무리 ‘귀신 잡는 해병’ 출신이라지만 소파를 춤추게 하고 식칼을 날려보내며 ‘이 집에서 나가라’고 협박하는 귀신의 존재는 두려움 그 자체다. 피눈물 모아 애써 마련한 집을 귀신에게 빼앗길 위기에 처한 필기는 과연 어떻게 할 것인가.
김상진 감독의 7번째 영화 <귀신이 산다>는 <
김상진표 코미디영화의 새로운 시도, <귀신이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