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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릇, 대결하는 상대와는 닮는 법이다. 싸우면 싸울수록 둘은 점점 더 비슷해져 거의 차이를 알아볼 수없게 된다. 하지만 그래도 (오히려 그 때문에) 대립은 격화된다. 영화 <무간도>는 배신과 음모가 도사린 누아르의 음울한 세계를 이렇게 설명한다. 바로 18층 지옥의 최저층부인 ‘무간’(無間), 즉 문자 그대로 양자간의 차이가 전혀 없는 상태라는 뜻의 생지옥이다. 하지만 홍콩 영화사상 최고 흥행작이기도 한 이 3부작 프로젝트는 두 스파이의 존재론적 투쟁이었던 1편을 거쳐, 누아르 세계의 연원을 파고드는 전사(前史)이자, 비정한 모자이크인 2편에 들어 아예 지옥의 계보학(genealogy)으로까지 나아갔다. 지옥의 역사를 꿰뚫는 이 계보학적 서사는 일약, <무간도>를 <대부> 3부작과 견주게 만들기도 했다. 그리고 이제 그 마지막, 3편 <종극무간>(終極無間)이 도착했다.
시점은 다시 영인(양조위)이 죽고 난 다음인 2002년, 자신의 정체를
질긴 시간의 폐쇄회로, <무간도3 종극무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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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 하나. <스파이더 맨>의 속편에는 제작 초기에 몇 가지 가제가
따라붙었다. 한때는 <스파이더 맨: 노 모어>였고, 또 한때는 <스파이더 맨: 언마스크드>였다. 스파이더 맨의 ‘회의’와 ‘혼돈’을 너무 직접적으로 언급하고 있어서일까. 결국 ‘2’를 붙인 무난한 제목이 선택됐지만, 가제가 암시했던 내용물까지 달라지지는 않았다. 1편의 막바지에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고 되뇌던 피터/스파이더 맨은 2편에서 “사회적 책임감과 개인적 욕망 사이에서” 극심한 갈등을 겪는다. 무엇이 올바른 삶일까 자문하면서.
샘 레이미는 <스파이더 맨2>를 “책임감 있는 청년으로 산다는 게 어떤 것인지를 깨달아가는 피터의 여정”이라고 소개한다. 알려진 대로 그 여정에서 피터를 옥죄는 것은 사랑과 우정이다. 소극적인 피터에게 지친 메리 제인은 편집장의 아들인 우주비행사와 연인이 되고, 친구 해리는 스파이더 맨이 아버지를 죽였다고 오해하
책임감 있는 청년으로 살아가기, <스파이더 맨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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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 양 감독의 영화 <하나 그리고 둘>에 나오는 슬기로운 꼬마 양양은 어느 날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기 시작한다. 소년을 사로잡은 주제는 사람들의 뒷모습이다. 어리둥절해하는 어른들에게 어린 예술가가 밝히는 의도는 명쾌하다. “사람들은 항상 절반밖에 못 보잖아요. 나머지 반을 보여주고 싶어요.” 박흥식 감독의 <인어공주>도 비슷한 소망을 내비친다. 얼굴의 반대편에 있기에 타인은 유심한 시선을 보내지 않고 본인은 아예 잊고 사는 뒷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는. <인어공주>에는 돌아앉은 남녀의 등을 응시하는 숏이 유난히도 많다. 티셔츠를 훌렁 벗고 탕에 들어가는 때밀이 어머니의 등, TV 앞에 멍하니 앉은 아버지의 등, 받아쓰기에 열중한 스무살 처녀의 웅크린 등, 마음 끌리는 처녀의 자맥질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집배원의 등. 그리고 이 모든 뒷모습들은 못나고 가난한 부모에게 절망한 딸이 엄마의 놀라운 ‘뒷모습’과 마주치는 여행 속에 흩어져 있다.
불행한
스무살 시절 엄마를 만난 딸, <인어공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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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비디오 가게에서 발견되는 이상한 블록버스터 속편들이 있다. 아마도 비디오 시장으로 직행하기 위해 만들어진 영화들일 터. 난데없는 <스타쉽 트루퍼스>의 속편도 마찬가지다. 일종의 컬트영화 취급을 받고 있는 폴 버호벤 감독의 전작에서 설정만 따서 만들어진 비디오용 영화이고, 당연히 원작자인 로버트 하인라인의 이름은 찾아볼 수도 없다.
어쨌든 여기서도 벌레들과 인간의 전쟁은 계속된다. 그중에서도 <스타쉽 트루퍼스2>는 전투에서 살아남은 소수의 생존자들이 자그마한 기지에 갇혀 구출될 때까지의 과정을 그리고 있다. 전작에서 가져온 예의 그 ‘배달의 기수’식 패러디는 여전하다. 그런데 이 후속편에 번듯하게 첨가된 프로파간다 풍자는 좀 의아하다. 전작에 대해서는 여러 반론들이 있을 수 있겠으나, 폴 버호벤 특유의 살짝 배배 꼬인 유머들은 나름대로 싱거운 재미가 있었다. 하지만 그 뉘앙스가 거세된 저자본의 비디오용 후속편이 그걸 따라하려 하니 유머는 사라지고 그 허세만
막나가는 B급 비디오영화, <스타쉽 트루퍼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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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음양사>를 좋아하는 이들은 세이메이의 팬인 동시에 세이메이를 연기한 배우 노무라 만사이의 팬이다. 세이메이의 흡입력은 그가 세계와 거리를 두고 느슨하게 연결될 수 있다는 점에서 온다. 인간과 여우 사이에서 태어났다는 소문을 가진 음양사 세이메이는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존재다. 숙명적으로 경계에 위치한 그는 모호하고 양면적인 매력을 발산한다. 교겐(狂言)계의 스타 노무라 만사이는 세이메이 캐릭터에 요염한 자태와 우아한 몸짓을 부여했다. <음양사2>에서 더욱 강해진 세이메이의 활약을 기대한 사람이라면 조금은 유감스러울 것이다. 그 이유는 전작이 비교적 선명한 이분법적 대립구도를 바탕으로 야마토 황실을 수호하려는 세이메이와 히로마사(이토 히데아키)의 활약을 중심에 두었던 데 반해 원작자 유메마쿠라 바쿠가 각본에 참여한 <음양사2>의 축은 오히려 멸망당하고 잊혀진 이즈모국의 복수극이기 때문이다.
이즈모를 멸망시켰던 야마토국의 수도에서 귀족들이 습격
잊혀진 패자 이즈모국의 복수극, <음양사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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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슬아슬한 미니스커트에 루즈삭스를 신은 미소녀, 일본의 학원만화를 본 적 있다면 그녀를 모를 리 없다. <소녀검객 아즈미 대혈전>의 원작만화를 못 봤더라도 그녀는 오랫동안 소년들의 꿈이었다. 그건 꼭 일본에 국한된 이야기도 아니다. 의상과 헤어스타일은 달라도 미소녀 판타지엔 국경이 없다. <소녀검객 아즈미 대혈전>의 은밀한 즐거움은 실사영화로 미소녀 판타지를 충족시킨다는 점이다. 만화보다 강력한 이미지로 다가온 그녀, 아즈미(우에토 아야)는 그 예쁜 얼굴을 남자들의 피로 적신다. 아즈미의 칼이 징그럽고 음흉한 사내들을 벨 때 오르가슴을 느끼는 사람도 생길 법하다.
이야기는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세력과 전쟁을 하던 시기를 배경으로 삼고 있다. 전란통에 고아가 된 아즈미는 어린 시절부터 9명의 소년과 더불어 자객이 되는 훈련을 받는다. 도쿠가와 편인 사부는 전쟁을 종식시키려면 도요토미 수하의 장군들을 암살해야 한다고 믿으며 아즈미와 소년들을 가르친
미소녀 사무라이 액션코미디, <소녀검객 아즈미 대혈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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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당신이 당신의 숨겨진 재능을 깨달아 지금보다 더 자신에게 어울리는 삶을 살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 신작을 탈고했음에도 출판사를 운영하는 친구로부터 자서전 대필만 권유받는 동화(정준호). 순수문학가라는 자존심 하나로 버텨온 그는, 무능력한 가장으로 아내와 어린 아들에게 무시당하는 현실을 벗어나고자 사업가로 자수성가한 조폭 두목 윤만철(손창민)의 자서전 대필 제안을 받아들인다. 이를 계기로 두 사람은 삶의 큰 변화를 겪기 시작한다. 책 집필을 위해 만철의 젊은 시절 일기를 뒤지던 동화는 “상대방보다 반 박자 빨리 나가는” 싸움의 기술을 깨우쳐가고, “이제 주먹질 같은 건 그만두자”고 부하들을 어르는 젠틀맨 만철은 동화의 국문학과 후배 연희(정소영)와 사랑에 빠지면서 안정된 삶을 꿈꾸게 된다.
<나두야 간다>는 집 안팎에서 실패한 인생살이를 경험하는 동화의 주사와 호텔을 전전하며 불안정하게 사는 만철의 한숨을 통해 두 인물이 서로의 삶에 혹할 수밖에 없던 이유를 그럴듯
실패한 소설가와 섬세한 조폭 두목의 인생 재건축 공사, <나두야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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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망대해에 쪽배처럼 떠 있는 캐나다 퀘벡의 작은 섬 생 마리. 한때 이곳에서 고기잡이는 엄숙하고 열정적인 제의였고 하루 열네 시간의 노동을 마친 사내들과 여인들의 잠자리는 온 우주의 불화를 다 잠재울 듯 흡족했다. 그러나 어획량이 줄고 경제발전이 낙도를 비껴가면서 섬사람들의 삶에는 이끼가 낀다. 언젠가부터 일거리가 떨어진 어부들은 배를 띄우는 대신 연금을 받기 위해 우체국 앞에 줄을 선다. 먹고사는 건 둘째다. 주민들은 국가의 시혜가 아닌 노동의 대가로 밥을 먹던 아름다운 시절을 그리워한다. 시장과 경찰마저 생 마리 섬을 등지고 떠나자, 터줏대감 제르맹(레이몽 부샤르)과 친구들은 일자리를 돌려줄 플라스틱 공장 유치에 팔을 걷고 나선다. 하지만 공장 설립에는 까다로운 조건이 하나 따르니, 섬에 상주하는 의사가 있어야 한다는 항목이 그것이다. 의사들에게 보낸 구인광고가 족족 퇴짜를 맞던 어느 날, 방탕한 도시생활로 눈밑이 그늘진 몬트리올의 성형외과 의사 크리스토퍼(다비드 부탱)가 상륙한
낙도 주민들의 요절복통 의사선생 유치작전, <대단한 유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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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뚫린 고속도로는 지루하다, 고 믿는 이들이 있다. 일직선으로 뻥 뚫린 그 길이 설사 시속 160km를 보장하더라도 시야에 변함없는, 기껏해야 매번 똑같이 생겨먹은 휴게소만을 제공하는 고속도로는 질색이라고. 아마도 장진 감독이 이 축에 들지 않을까. 속도를 속시원히 낼 수는 없어도 굽이굽이 돌아가는 국도를 선호하는 부류 말이다. 이런 길은 지루하지 않다, 고 믿을 것이다. 요모조모 눈요기하며 내지르다가 떡하니 눈에 쏙 들어오는 곳이 나타나면 아예 가던 길을 멈추고 잠시나마 한눈팔기에 좋으니까. <아는 여자>는 앞만 보고 내달리는 로맨틱코미디가 아니다. 목적지는 같고, 여하튼 그곳에 도착하기는 하지만 자꾸 딴짓하기를 좋아한다. 그래선 안 될 것 같은 타이밍에 그럴 것 같지 않은 캐릭터가 일을 벌인다. “사랑은 새벽길을 산책하는 것이다. 사랑하는 이와 아침길을 걸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것이다”라고 운치있게 내레이션을 쏟아내던 이가 예상치 못하게 이별을 선언하는
사랑에 관한 사색과 성찰이 담긴 로맨틱코미디, <아는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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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남자친구는 왕자님>. 제목만 들어도 뻔한 줄거리가 머리 속에 쫙 펼쳐진다. 그럼에도 신분을 뛰어넘은 사랑 이야기가 이번에는 또 어떻게 변주될까 기대가 되는 것도 사실이다. 바로 그것이 로맨틱코미디의 매력. 게다가 이 현대판 신데렐라 이야기의 감독이 여성(마사 쿨리지, <섹스&시티
> <앤지> <더 월2> 등을 연출한 경력이 있다)이라면 이 영화가 여성의 얄팍한 ‘환상’만을 자극하지 않고 또 다른 독특한 신데렐라를 창조할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갖게 한다.
페이지(줄리아 스타일스)는 의사의 꿈을 이루려는 미국의 대학 졸업반 학생으로 아르바이트와 학업을 병행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어느 날 그녀 앞에 한눈에도 왕자병 기색이 역력한 철없는 에디(루크 메이블리)가 나타난다. 덴마크의 왕자인 에디는 왕실의 꽉 막힌 생활에 싫증을 느끼고 자유분방한 미국 대학에 교환 학생으로 온 것이다. 첫 만남부터 티격태격하던 그녀와 그의 사랑
현대판 신데렐라 이야기, <내 남자친구는 왕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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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서히 다가오는 심리적 공포, 아름답고 슬픈 호러, 그런 걸 기대한다면 번지수를 잘못 찾았다. <령>은 깜짝깜짝 놀라게 하는 즉각적인 공포로 승부하는 영화다. 놀이공원 귀신의 집 같은 충격을 원한다면 만족할 만하다. 기본 설정은 <가위> <해변으로 가다> <찍히면 죽는다> 등 2000년에 유행했던 한국 공포영화들을 연상시킨다. 5명의 친구가 있고 그중 한명이 왕따를 당하다 죽는다. 원혼이 살아 있는 4명 앞에 차례로 나타난다. <령>이 여기에 덧붙인 것은 주인공 지원(김하늘)이 기억상실증에 걸렸다는 사실이다. 친구를 따돌리고 죽음으로 몰고 간 것이 정말 나였을까? 언뜻 떠오르는 기억과 악몽이 정체모를 두려움을 부추기는 것이다.
영화의 전모를 암시하는 힌트는 크게 두 가지다.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어린 소녀들의 목소리로 부르는 이 노래는 영화의 오프닝에 흘러나온다. <나이트메어&
놀이공원 귀신의 집 같은 즉각적인 공포, <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