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정한 느낌이 좋았다.” 유준상이 이렇게 독하게 나올 줄은 몰랐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에서 그가 맡은 캐릭터 근덕은 ‘의사 사모님’ 누나 인희(배종옥)와 포장마차 운영으로 살림을 꾸려나가는 바지런한 아내 선애(서영희)에게 패악을 부리며 돈을 뜯어낸다. 이 남자는 여자들이 울고 불고 노여워해도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으며 도박과 술값으로 그 돈을 아낌없이 탕진한다. “<태양은 가득히>라는 드라마에서 피도 눈물도 없는 검사로 악역을 해본 적이 있는데, 그때와는 또 달랐다. 시나리오를 처음 읽었을 때 근덕의 비중이 적음에도 불구하고 나를 툭 건드리는 느낌이 있었다. 누나한테 정말 아무 감정없이 막 내지르는 그런 연기를 해보고 싶었다.”
그런데 영화가 중반을 넘어 관객의 흐느낌이 처음으로 곳곳에서 들리기 시작할 때, 그건 바로 무정한 근덕이 때문이다. 껌을 짝짝 씹으며 선애에게 시비를 걸던 근덕은 누나가 곧 죽는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고, 그의 입가는
[유준상] 무정함에 숨은 진심
-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이란 제목은 남겨진 자의 바람일 뿐이다. 엄마가, 아내가, 누나가 죽는다는데 아름다움이 무슨 소용인가. 영원히 오지 않을 줄 알았던 엄마의 죽음은 배종옥을 통해 더욱 뜻밖의 사건이 된다. 지금까지의 배종옥은 엄마보다는 여자였다. <안녕, 형아> <허브> 등에서 연기했던 엄마보다 <굿바이 솔로> <그들이 사는 세상> 같은 드라마나 <러브토크> 같은 영화에서 보여준 여자의 내면이 더욱 강렬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심지어 시집보낼 나이가 된 딸을 둔 엄마라니…. “인희를 연기하기에는 내가 너무 젊은 게 아닌가 싶었어요. 그런데 영화가 담고 있는 평범하고 일상적인 부분에 많이 공감했어요. 시나리오를 처음 읽었을 때 중반 이후부터 눈이 퉁퉁 붓도록 울었어요. 비행기 안이었는데, 스튜어디스들이 이상하게 생각했을 거야 아마…. (웃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은 드라마 작
[배종옥] 이별은… 그녀의 눈빛에
-
배종옥은 당당했고 유준상은 진중했고 서영희는 우아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 때문에 울어서 부은 눈가가 아직 가라앉지도 않았는데, 스튜디오에 들어선 근사한 세 배우들을 보고 있자니 이번엔 웃음만 배실배실 나온다. 이별은 기억을 남기고, 만남도 흔적을 남긴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로 맺어진 세 배우들은 더없이 화기애애했다.
[배종옥, 유준상, 서영희] 이별은 기억을 남기고 배우는 마음을 남기고
-
전라도 벌교에서 전학‘와분’ 소녀가 스크린을 평정했다. <써니>는 심은경이라는 이름의 종합선물세트 같은 영화다. 순수하고 씩씩한 전학생 임나미 역을 맡아 서울말과 전라도 사투리가 어설프게 뒤섞인 화법을 맛깔나게 구사하는 그녀가 없었다면, 눈을 희번덕이거나 막춤을 추며 제대로 망가지는 그녀가 없었다면,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관객을 금세 울려버리는 그녀가 없었다면 <써니>는 훨씬 밋밋한 영화가 되었을 거다. 최근 몇년간 <핸젤과 그레텔> <불신지옥> <퀴즈왕> 등에 출연하며 아역배우의 틀을 벗어나고 있던 심은경에겐 <써니>가 진정한 성장의 출발점인 듯하다. 늘 의지했던 어머니보다 강형철 감독을 가까이 하고, 미국 유학을 잠시 늦추며 참여한 이 영화로부터 열일곱 사춘기 소녀가 얻은 것은 무엇일까. 유학차 미국 피츠버그에 머물다 잠시 귀국한 심은경을 만났다.
-보통 미국 가면 몸무게가 는다고들 하는데, 예전보다 더 말라
[심은경] 배움의 시작 엄마 곁을 잠시 떠나다
-
-
지금껏 박중훈과 이선균의 행보는 사뭇 달랐다. <체포왕>은 이 두 남자의 전격적인 만남을 주선한다. 오로지 실적만 위해 달리는 두 형사의 조우는 18년 전 <투캅스>의 안성기, 박중훈 두 형사를 떠올리게 한다. 코믹 본능을 새삼 확인하게 해준 박중훈, 다소 생소한 코믹 연기에 도전한 이선균. 만남에서 촬영까지. <체포왕>을 둘러싼 선후배, 두 배우의 솔직하기 그지없는 담소를 들어본다.
이선균_사실 형사 버디무비로 <투캅스>의 명성을 뛰어넘은 게 없지 않나. 그러니 좀 진부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런데 아현동 추격신의 템포가 구현된다면 재밌겠더라. <투캅스>와는 달라진 시대상을 담는데, 그 중심에 박중훈이라는 배우가 있다는 것도 신기했다. 게다가 내가 원래 코믹을 좋아한다. 여유있는 코믹을 해보고 싶었다. 액션 역시, 정통 액션은 아니지만 내가 안 해본 부분이라 흥미로웠다.
박중훈_난 시사회 끝나고 좀 놀랐다. 다들 <
[박중훈, 이선균] 코믹 본능 치열한 질주
-
-중간고사는 잘 쳤나.
=경기대학교 연기 전공 4학년 마지막 학기다. 현재 신춘문예 당선작을 각색한 <눈사람>이라는 졸업 연극을 준비하고 있다.
-영화는 어땠나.
=만족스러웠는데 내가 나온 장면은 민망했다. 더 잘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시사회에서 영화를 본 엄마는 ‘내 딸 맞냐’고 놀라셨다.
-어떤 장면이 아쉬웠나.
=학교 공터에서 나미(심은경)를 구타하는 장면. 첫 촬영이었는데 (심)은경이를 때리는 게 너무 힘들더라. 고등학생 때 너무 평범하게 지내서…. (웃음) 겨우 촬영을 끝냈는데 은경이한테 너무 미안했다.
-시나리오를 처음 읽었을 때 ‘본드걸’ 상미는 어떤 친구였나.
=콤플렉스가 많은 친구였다. 그만큼 질투심도 강하다. 나미를 싫어하는 이유도 춘화(강소라)가 나보다 나미를 더 챙겼기 때문이다.
-실제로도 콤플렉스가 많나.
=많다. 얼굴도 안 예쁘고 키도 안 크고. 처음에 배우하겠다고 하니까 주변 반응이 ‘어떻게?’였다.
-그럼에도 배우가 되
[who are you] 천우희
-
<워터 포 엘리펀트>는 어마어마하게 무서운 서스펜스 스릴러영화다. 어떤 독자는 이렇게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IMDb는 1930년대 대공황시대 서커스단을 배경으로 한 사랑 이야기라던데요?” 그 설명도 틀린 건 아니다. <워터 포 엘리펀트>는 분명 사라 그루엔의 동명 베스트셀러를 원작으로 한 멜로시대극이다. 오직 한 사나이가 이 애절한 러브스토리를 서스펜스 스릴러물로 둔갑시킨다. <트와일라잇> 시리즈의 불멸의 연인, 로버트 패틴슨이다.
패틴슨은 <워터 포 엘리펀트>에서 대학을 중퇴한 뒤 서커스단에 합류해 동물을 돌보다가 서커스 단장(크리스토프 왈츠)의 부인(리즈 위더스푼)과 사랑에 빠지는 수의학도 제이콥을 연기한다. 그가 주인공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할 때마다 서스펜스는 찾아온다. 임자가 있는 여자를 사랑하는 남자의 딜레마를 표현해야 할 때, 패틴슨은 이도저도 아닌 우물쭈물한 표정을 짓는다. 위악적인 서커스 단장에 대한 분노를 표출해야
[로버트 패틴슨] 연인에서 배우로 다시, 신인처럼
-
<로열 패밀리> 때문에 금치산자가 됐다. 처음에는 빠른 속도의 이야기로, 그 이후에는 김인숙(염정아)의 복수심으로, 그리고 그녀의 정체에 대한 궁금증으로 질주하는 <로열 패밀리>를 보면서 종종 정신이 혼미해졌다. 모리무라 세이치의 소설 <인간의 증명>이 원작인 <로열 패밀리>는 <히트>와 <선덕여왕>을 쓴 김영현, 박상연 작가가 크리에이터로 참여했고, 이들의 오랜 파트너인 권음미 작가가 집필을 맡은 드라마다. 손에 쥔 패를 쉽게 보여주지 않는 이들의 드라마 작법은 종영을 앞둔 지금까지도 수많은 스포일러를 양산하고 있다. 열성적 시청자가 상상해낸 이야기의 전말은 이미 작가들이 창조한 세계를 넘어버렸다. 극중의 한지훈(지성)은 “진실은 나를 살릴 수 있다”고 말했다. 이제는 작가들이 말하는 진실이 시청자를 구할 상황이다. 작가들이 <로열 패밀리> 15회 모니터링을 앞두고 있던 지난 4월20일 저녁, 그들의 작업실
[김영현, 박상연, 권음미] 대중들은 이젠 착한 사람을 못 견딘다
-
10년 만의 화려한 외출이다. <취화선>(2001)에서 단아한 기품과 깊은 매화향이 나는 ‘매향’을 연기한 유호정이 강형철 감독의 신작 <써니>로 영화 현장에 돌아왔다. <써니>에서 그가 맡은 역할은 남편과 딸의 뒷바라지에 여념없는 가정주부 임나미. 우연히 병원에서 고교 시절 칠공주 ‘써니’ 멤버로 친하게 지낸 춘화(진희경)를 만난 나미는 25년 전 함께 소중한 추억을 나눈 다른 ‘써니’멤버들을 찾아나선다. 극중 유호정은 몇몇 장면에서 전라도 사투리를 구사하고, 교복을 입은 채로 날아차기도 선보이는데, 이는 그간 TV드라마에서 보여준 청순함과 귀여움과는 거리가 먼 면모다. 우리가 알던 그 유호정 맞아? 라고 할 만하다. 햇살이 유독 따스했던 어느 봄날, 유호정을 만나 10년 만에 충무로로 복귀한 소회를 물었다.
-언론 시사회 반응이 좋다. 예상은 했나.
=솔직히 기본 이상은 하겠다, 는 자신감은 있었다. 시나리오가 좋았고, 현장에서 (감독님께서)
[유호정] 언젠가는 팜므파탈이나 술집 작부도 해보려고
-
-영화는 봤나.
=내 연기밖에 안 보이더라. 왜 그렇게 못했을까 싶었다.
-<4교시 추리영역> 때도 그렇게 자학했나.
=그때는 어느 부분이 아쉽다, 그런 생각조차 못했다. 마냥 신기했다. 부모님한테도 딸 나오니까 꼭 보세요 그랬는데 이번엔 좋은 영화 한편 보시라고만 그랬다.
-좋은 영화?
=의상이든 음악이든 다 올드하다. 80년대 것이니까. 그런데 웃음 코드만큼은 세련됐다. 시나리오를 봤을 때는 여기서 웃겨야지, 여기서 웃겨야지 뭐 그런 코미디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더라.
-발차기가 대단하던데. 격투기라도 배웠나.
=요가를 했다. 그냥 스트레칭하는 정도다. 무술감독님이 분노와 스트레스를 담아서 발차기를 하면 된다고 했는데, 촬영장에선 많이 혼나기도 했다. 내가 몸이 좀 뻣뻣하다.
-본인 촬영 분량 중 가장 맘에 드는 장면은.
=문제의 사건이 일어나는 장면. 태어나서 싸운 적이 별로 없다. 먼저 사과하는 성격이라. 그런데 그 장면에선 울컥해서 심장이 튀어나올
[who are you] 강소라
-
안나 파킨을 <피아노>에서 처음 본 순간. 커스틴 던스트를 <뱀파이어와의 인터뷰>에서 처음 본 순간. 내털리 포트먼을 <레옹>에서 처음 본 순간. 어린 소녀의 가죽을 뒤집어쓴 성격파 배우를 스크린으로 목도한 순간. 우리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신음하며 내뱉게 된다. “졌다. 졌어.” 김새론을 <여행자>에서 처음 본 순간도 그랬다. 소녀가 프랑스 땅을 밟으며 영화가 끝나는 순간. 깊이를 알 수 없는 소녀의 마음에 사로잡힌 자 모두 무릎을 꿇었을 것이다.
지금 김새론의 이름은 단순히 인기있는 아역배우의 차원을 슬그머니 넘어섰다. <아저씨>와 <나는 아빠다>는 김새론을 지금 한국에서 가장 어린 ‘스타’로 만들었다. 드라마 <내 마음이 들리니?>에서 그녀가 눈물을 흘리면 다음날 인터넷에는 이런 제목의 기사가 뜬다. “김새론 폭풍 오열. 시청자도 울었다.” 그러니까 김새론은, 지금 한국영화계를 대표하는 ‘엘레지의 여
[김새론] 자신을 버릴 줄 아는 당찬 소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