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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어디서 태어났나.
=1996년 10월6일 경북 구미에서 태어났다.
-학교는.
=구미 상모중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이다. 인터뷰하러 오기 전 체육과 수학 수업을 들었다.
-사투리는 왜 안 쓰나.
=이런 자리에서는 안 나온다. 사투리는 억지로 하는 게 아니다. (웃음)
-공부도 잘한다던데.
=음. (옆에서 엄마가) 반에서 1등, 전교에서 2, 3등 해요.
-연기는 어떻게 시작했나.
=초등학생 때 가족과 함께 장보러 갔다가 전국 아이모델 선발대회가 있어 참여했다. 수상하면서 MBC드라마 <그래도 좋아>에 출연하게 됐다.
-<귀>에서 맡은 역할은.
=첫사랑을 그리워하는 귀신, 한서희. 사람 같은 귀신이다.
-영화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영화의 마지막, 옥상 액션신과 재환(이풍운)에게 고백하는 장면. 그런데 고백하는 장면은 어려웠다. 실제로 고백해본 적이 없어서.
-경험이 없는데 고백이 잘되던가.
=그래도 해야지. 이풍운 오빠가 멋지
[who are you] 최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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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려 8년이라 한다. 멜 깁슨이 배우로 카메라 앞에 서지 않은 시간 말이다. 생각해보니 정말 그렇다. 2002년 M. 나이트 샤말란의 <싸인>에 출연하며 멜 깁슨은 이렇게 말했었다. “나는 더이상 배우이기를 원치 않아요. 이제 시나리오가 뛰어나게 훌륭하지 않는 한, 영화에 배우로 출연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리고는 예수의 마지막 12시간을 다룬 논쟁작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와 마야 원주민들의 사투를 그린 <아포칼립토>의 연출에 매진했다. 영화들은 깁슨의 얼굴 없이도 흥행에 성공했다. 할리우드는 외모와 이름값을 지워도 평단으로부터 호의적인 말을 들을 수 있는,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후계자로 멜 깁슨을 조심스레 점지했다. 하긴 이미 10여년 전 연출과 출연을 겸한 시대극 <브레이브 하트>(1994)로 아카데미 감독상을 받은 깁슨은 될성부른 떡잎이었다.
이쯤에서 의문 하나. 멜 깁슨의 물리적인 공백만큼이나 우리는 그를 자주 보지 못했나? 그
[멜 깁슨] 사나이는 어떻게 단련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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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랄까, 그 사람만의 이야기가 필요하지.” <방자전>에 나오는 이 대사는 영화의 이야기를 추동시키는 힘이자, 김대우 감독의 욕망이다. 전작인 <음란서생>에서 이야기를 짓는 것을 통해 새로운 기쁨과 권력에 눈뜬 한 남자를 조망했던 그가 이번에는 <춘향전>이란 고전과의 맞대결이란 과제를 수행했다. <방자전>을 단순히 고전의 재해석으로 분류하는 건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오히려 김대우 감독은 원작의 존재감을 인정하고 그 속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길어올렸다. 상상이라기보다 발굴에 가까웠을 그 과정에 대해 물었다.
-<방자전>은 2번째 연출작이다. <음란서생>을 끝냈을 때와는 다른 소감이 있을 것 같다.
=감독이란 직업인으로서보다는 자연인으로서 느끼는 게 있다. <음란서생> 때는 현장이 부담스러웠다. 작가로 살 때는 나 하나만 책임지면 됐는데, 감독이 되어 현장에 갈 때는 모든 걸 결정해야 하니까. 그만큼 육체적,
[김대우] <춘향전>은 고통이자 기쁨이자 존경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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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여정. 그녀의 필모그래피를 보자. 드라마 <집으로 가는 길> <쩐의 전쟁> <얼마나 좋길래> <조선에서 왔소이다> <애정의 조건>, 영화 <흡혈형사 나도열>, 오락프로그램 <우리 결혼했어요> 그리고 각종 CF. 이 가운데 조여정을 배우로 느끼게끔 한 작품이 있었던가. 조여정은 실체없는 이미지로 어필했던 ‘연예인’이었다. 그런데 조여정이 <방자전>에 출연한다고 했다. 그녀는 100일 동안 춘향이가 돼서 김주혁, 류승범, 오달수 등과 함께 <방자전>을 찍었다. 조여정은 <방자전>으로 배우로 거듭날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줄 기회도 잡았다. 하고 싶은 말이 많아 보였다. 이제 조여정이 말한다.
언론시사회 날이 이렇게 떨리는 날인 줄 처음 알았어요. 긴장한 건 아닌데 심장이 쿵쾅쿵쾅거렸어요. 기뻐서 쿵쾅거리는 게 아니라 책임감이 느껴져서. 작품에 대한 갈증이
[조여정] 과감한 노출 연기 부끄럽다고 포기할 순 없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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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어디서 태어났나.
=1978년 4월3일 영국 서남부의 항만도시 엑서터에서 태어났다.
-데뷔작은.
=<체이싱 리버티>(2004). 맨디 무어의 상대역을 맡아 연기했다.
-<싱글맨>에서 맡은 역할은.
=조지(콜린 퍼스)가 사랑한 남자, 짐.
-게이 연기가 부담스럽지 않았나.
=전혀! 이 영화는 게이가 아닌 사랑에 대한 이야기다. 시나리오를 처음 받았을 때 1페이지부터 짐이 죽더라. 이야기가 흥미로워 출연을 결심했다.
-감독 톰 포드는 어땠나.
=그렇게 유명한 사람인 줄 몰랐다. (웃음) 처음 만났을 때부터 열정적으로 설명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영국 출신 배우로 미국인 억양이 많이 신경 쓰였을 것 같다.
=항상 부담스러웠다. 그래서 화술 선생님을 옆에 둘까 생각도 했지만 그러지 않았다. 혼자서 해결해야 할 문제기 때문이다.
-관심있는 것은.
=세계 정치, 국제분쟁, 경제, 인권 등. 직접 운영하는 블로그(http://www.matth
[who are you] 매튜 구드 Matthew Goo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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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아카데미는 영화진흥공사 시절 적잖은 혼란을 빚었다. 1984년 개교 직후 학생들은 부실한 커리큘럼과 불합리한 학사운영를 질타하며 수업을 거부했다. 1997년에는 촬영전공을 신설했으나 전문교수를 확보하지 못해 비난을 샀다. 선임한 지 4개월 만에 주임교수에게 해직통고를 내리는 일까지 있었다. 그때마다 동문회가 나서 파행을 막았고, 이같은 분란은 영화진흥공사가 영화진흥위원회로 탈바꿈한 1999년 이후에야 잦아들었다. 임상수, 허진호, 봉준호, 최동훈 등 국내 주요감독을 배출했지만, 한국영화아카데미의 법적·제도적 존립 근거는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다는 사실을 아는지. 결국 이는 25년 뒤 파행의 재연으로 이어졌다. ‘지원 대신 간섭’하기 시작한 영진위는 직제개편을 통해 한국영화아카데미 원장의 지위를 부장급으로 낮추고, 특별한 사유 없이 3개월 동안 원장직을 공석으로 내버려두고, 책임교수의 계약기간을 월 단위로 바꾸는 등 횡포를 부렸다. 한국영화아카데미 동문회가 시급하게 비상대책
[장현수] 개선이 필요하다면 지원은 더 필요한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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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하다. <폴라로이드 작동법>(2004)의 말갛고 수줍음 많던 배우가 어느덧 박중훈이라는 대선배와 이웃사촌이 됐다. 짝사랑하는 선배 앞에서 한마디 하지 못하고 카메라만 만지작거리던 소녀가 이제 취기가 오른 벌건 얼굴로 선뜻 “우리 잘까요?”라고 말한다. <사랑니>(2005)와 <가족의 탄생>(2006)을 거치며 조금씩 성장하는 것 같던 배우가 마치 점프컷을 한 것 같은 속도로 우리 앞에 섰다. 무엇보다 <내 깡패 같은 애인>의 박중훈과 정유미는 잘 어울린다.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 국민배우와 아직 뚜렷한 흥행작으로 기억되지 않는 젊은 배우의 만남. 이 영화는 두 사람의 절묘한 호흡부터 생동감을 뿜어낸다. 그 첫만남은 어땠을까. “촬영 전 고사 지내는 날까지도 스탭들이 반신반의하더라고요.(웃음) 과연 우리 두 사람이 잘 어울릴 수 있을지. 그런데 생뚱맞게 서 있기만 했는데도 느낌이 오더라구요. 박중훈이라면 아직도 나에게는 ‘연예인’인데 지
[정유미] 당신은 나를 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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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은 멀리서, 한번은 가까이서 이선균을 만났다. 두번의 느낌은 사뭇 달랐다. 첫 번째 만남은 <씨네21>이 마련한 토크쇼 자리였다. 이선균은 기하학적 무늬의 카디건에 동그란 안경을 끼고 나타났다. 화보 촬영하며 입었던 옷을 그대로 입고 온 것이라고 했는데 신선했다. 단색의, 그것도 튀지 않는 색의 카디건이라면 몰라도 흰색과 검은색이 만나 규정할 수 없는 무늬를 만들어낸 옷이라니. 두 시간 남짓 진행된 토크쇼에서 이선균은 카디건의 무늬만큼 위트있는 얘기로 장내 분위기를 이끌었다. 정식으로 인터뷰를 하기 위해 두 번째 만남을 가졌을 때 이선균은 낯을 가렸다. 상대방을 무안하게 하는 낯가림은 아니었는데, 친해지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사람, 달아오르는 데 시간이 꽤 걸리는 사람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이선균이라는 배우가, 매체를 통해 보이는 것보다 훨씬 흥미로운 사람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파스타> 혹은 최현욱
이선균을 눈여겨본 시점은 사람마다 다를
[이선균] 힘을 빼고, 하는 듯 마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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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의 사랑스러움과 노인의 지혜. 이 두 가지가 동일한 육체 안에 공존할 수 있을까. 그녀를 직접 보면 수긍할 수밖에 없다. 화면을 통해서만 듣던 그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생각지도 못한 소박함과 일상성을 품고 있을 때, 그저 추억을 얘기하는 것 같은데 어디서도 듣지 못했던 한국영화사의 한 단면이 겹칠 때 실로 감동적이었다. 실제와 허구 사이를 교묘하게 줄타기하며 여유와 유머를 적절하게 배합했던 <여배우들>, ‘엄마’와 ‘여자’를 동시에 보여주는 <하하하>, 현실적이고 속물적이지만 끝내 스스로를 해방시켰던 <하녀>. 전개상 필요한 역할이 아니라, 그 자리에 바로 그 모습으로 존재해야만 하는 역할들. 영화도 좋았고, 거기서 큰 존재감을 발휘한 배우 윤여정도 좋았다. 우리에게는 이 배우, 윤여정이 있었다.
홍 감독에게 현장에서 막 성질 부렸지만…
이재용 감독의 <여배우들> 텔레비전 배우들이 놀려요. 영화배우로 거듭났다고. (웃음) 기분 좋죠.
[actor/actress] <하녀> <하하하> 배우 윤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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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준 감독은 5월이 끝나기 전 일본에 간다. ‘혹가이도’가 아니라 가 아니라 오사카다. <우리학교>의 속편 제작을 기다려왔던 이들에게 김명준 감독의 선택은 다소 의외다. <불꽃처럼 나비처럼> 촬영을 끝내고 그를 기다린 건 민족학교가 아니라 재일동포 야구단이었다. <스포츠 춘추> 박동희 기자가 쓴 동명의 기사에서 출발한 <슬픈 전설: 재일동포 야구단>은 1955년부터 1997년까지 모국을 찾았던 재일동포 고교야구단의 사라진 역사를 추적하는 다큐멘터리다. 민족 정체성을 지키려는 우리학교와 귀화까지도 받아들여야 했던 재일동포야구단은 서로 상극인 듯하지만 실은 아픈 역사를 동시에 비추는 두개의 거울이다. ‘반쪽발이’라는 비난을 감수하면서까지 ‘조센진’ 야구단이 굳이 모국을 찾았던 이유는 무엇일까. 일본으로 돌아간 뒤 그들에게 모국은 무엇으로 남았을까. 올해 전주국제영화제 다큐멘터리 피칭에서 SMJ 문화재단의 제작지원작으로 선정된 <슬픈 전설
[김명준] “추성훈 같은 동포들이 어디 한둘이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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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뜻은.
=성경의 그 ‘다윗’ 모르나?
-학력은.
=인천 작전고등학교 1학년.
-여자친구는.
=없다. 남중 나와 남고 다닌다.
-연기자가 된 계기는.
=세살 터울 여동생이 있다. 예쁜 어린이 선발대회에서 1등 했다. 오빠 있냐고 찾더라. 그렇게 해서 초등학교 1학년 때 드라마로 처음 연기를 시작했다.
-주요 출연작은.
=영화 <극락도 살인사건> <우리집에 왜왔니>, 드라마 <연개소문> <무인시절> <일지매>
-<시> 출연 계기는.
=오디션 봤는데, 안된 줄 알았다. 됐다기에 냉큼 달려갔다. 감독님이 그렇게 유명한 분인 줄은 몰랐다.
-<시> 출연 중에 기억나는 일은.
=할머니(윤정희)가 왜 그랬냐고 때릴 때 쳐다보는 장면. 감독님이 말씀하셨다. “한쪽은 미안한 눈, 한쪽은 화난 눈을 뜨라”고.
-그걸 어떻게.
=어쨌든 최대한 노력했다. 감독님이 말씀하셨다. “확실하게 드러나지 않
[who are you] 이다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