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영애씨 맞으세요? 하마터면 뜬금없는 질문을 던질 뻔했다. 사진을 찍는 동안에도 “이 영화 개봉되면 앞으로 한 2년 동안은 영화 못 찍을지도 몰라요” 하고 까르르 웃음을 쏟던 그는 예고편을 통해 본 금자 캐릭터가 좀 이상하다는 말에 “많이 이상하죠? 상당히 상태가 안 좋죠?”라며 유쾌한 리듬으로 받아넘긴다. 그동안 차가움, 과묵함, 감춤 등의 단어가 어울렸던 이영애가 얼굴에 반달 모양의 주름을 새긴 채 명랑하게 수다를 떨고 있는 것이다. 방 안에 홀로 있어도 헤죽 입을 벌리고 싱글거릴 것 같은 저 ‘오버스러움’의 정체는 뭔가.
“예고편을 보면서 제가 좋다는 느낌이 드니까 기대되는 건 맞죠. (웃음)… 음악이나 믹싱이 안 된 채로 가편집본을 봤는데, 제가 저에 대해서 100% 만족한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시나리오보다 훨씬 재밌게, 전체적으로 잘 나온 것 같아서 설레기도 하고….” 이쯤되면 고도의 논리를 구사하지 않는다 해도 사정이 대충 짐작된다. 이영애가 평소와 달리 들떠 있는 이유는
“금자요, 상당히 상태가 안 좋죠?”, <친절한 금자씨>의 이영애
-
박중훈은 우리 모두가 아는 사람이다. 본인의 입으로도 “내가 내 사진 보는 게 이제 지겨워”라고 말할 정도니, 우리는 얼마나 오랫동안 또 자주 그를 봐왔는가. 제3자의 논리와 명제와 수식어로 보고서를 만드는 일은 의미가 없다. 2005년 현재의 남한군과 북한군이 회오리돌풍에 휩쓸려 이순신이 생존하던 16세기 조선 땅에 뚝 떨어진다는 판타지사극 <천군>의 이순신 역으로 성큼성큼 돌아온 배우 박중훈. 신작 이야기를 새로이 듣고, 배우로서 또 개인으로서 그의 삶을 다시 듣는다. 여섯개의 키워드로 그의 육성을 나눠 담았다.
선배 여름에 경북 문경, 월악산, 순천, 낙양, 읍성에서 찍고나서 중국 베이징 근처의 하북성, 내몽골에서 석달 찍었고 돌아와서는 합천과 이제 겨울이 됐지, 부산의 해운대 기장이라는 데서 찍었다. 육체적으로 별로 힘들지는 않았다. 그런 촬영을 해본 경험도 많이 있고, 선배가 되니까 몸이 참 편해져. (웃음) 다 위해주잖아. 웃통 벗고 매달려 있는 장면이 있는
과거와 미래의 황금비율, <천군>의 박중훈
-
지금은 영업을 쉬고 있는 2층 카페에서 임하룡을 만났다. 임하룡이 세운 이 청담동 건물의 지하는 라이브 클럽을 겸한 바이고, 그도 가끔 내려가 <딜라일라> 같은 옛 노래를 부른다고 했다. “지하는 내 놀이터가 됐지 뭐, 여기는 비싸게 만든 응접실이고.” 생각해보면 임하룡은 언제나 놀고 있는 모습이었던 것도 같았다. 책가방을 옆에 끼고 다이아몬드 스텝을 밟는 <추억의 책가방>, 핑크레이디 한잔하자면서 젊은 언니들을 쫓아다니던 <청춘을 돌려다오>, 대부를 꿈꾸지만 동생들과 장난이나 주고받는 게 현실인 <도시의 천사들>. 그리고 그는 이제 영화와 무대에서 그처럼 재미있게 놀고 있다. <묻지마 패밀리> <아는 여자> <범죄의 재구성> <그녀를 믿지 마세요> 등이 몇년 안 되는 사이 몰아쳤던 그의 영화들. 임하룡은 그동안 혼자서만 튀어오르지 않으면서도 찰기있는 앙상블을 만들어왔지만 너무 잠깐 머물다 사라져서
<웰컴 투 동막골>의 배우 임하룡
-
분홍 리본을 주워온 데서 시작됐다. 제작사인 청년필름 김광수 대표가 어느 날 “뜻하지 않은 곳에서 기회를 만나 모든 일이 가능해질 것입니다”라고 적힌 리본을 보고 기분이 좋아져 주워왔더니 영화사 직원들은 꺼림칙해했다. ‘아! 정체 모를 물건을 줍는 걸 사람들은 두려워하는구나. 특히 여자들이.’ 여기서 <분홍신> 기획이 시작됐고, 1년이 지나자 시나리오 3고가 나왔다. <와니와 준하>로 데뷔한 김용균 감독이 합류한 건 이때다. 호러와는 아무래도 거리가 있어 보이던 그를 제작자 역시 공포장치를 잘 쓰며 공포풍으로 찍어낼 수 있을까 불안해했다. 개봉을 일주일 앞둔 6월25일 기술시사가 끝나자마자 주연배우 김혜수가 감독을 포옹하면서 재밌게 만들어줘서 고맙다는 말을 연발했다(아침 8시였다. 배우가 기술시사에 오는 경우는 많지 않은데, 김혜수는 이른 시간에 ‘꽃단장’하고 영화를 지켜봤다). “좀 당황스러웠다. 내가 아는 김혜수는 좋은 건 좋다고 하지만 작품의 완성도 등에서
호러영화 <분홍신>의 김용균 감독
-
-
이대연은 물 흐르듯 스크린에서 흘러나와 관객 속으로 스며드는 사람이다. 충만하기보다는 비어 있고, 폭발하기보다는 침묵하는 연기는 단번에 뇌리에 꽂히지 않는다. 의사인가 하면(<장화, 홍련>) 형사이고(<복수는 나의 것>) 교사이기도 하다(<연애의 목적>). 믿음직스런 얼굴 뒤편으로 그는 여자를 팔아넘기거나(<나쁜 남자>) 깊은 상처를 안겼다(<여자, 정혜>). 조용하게 만인의 삶을 묵묵히 연기하던 그가 요즘 바빠졌다. 연극 <아트>에서 문방구점 주인으로 질펀한 수다를 쏟아내 사랑을 한몸에 받더니, <댄서의 순정>에서 우스꽝스러운 출입국관리소 직원으로 큰 비중을 차지했고, <연애의 목적>에선 그보다 더 큰 역할인 조 선생 역을 맡아 눈길을 끌었다.
평안도가 고향인 부모님 밑에서 자란 소년은 ‘귀남이’였다. 딸 둘을 낳고 늦게 얻은 아들이었다. 강원도에서 태어났지만 부모님은 일찌감치 초등학교 때부터
<연애의 목적>의 조 선생 역 이대연
-
발음은 ‘킬리언’이다. 미국식으로 ‘실리언’이면 편하겠는데, 까다롭게도 아일랜드식 발음을 따라 그는 ‘킬리언 머피’로 불린다. 랠프 파인즈가 아닌 레이프 파인즈도 그랬다. 미국식 영어에 익숙한 사람들은 종종 발음에 부주의하고, 영국 배우들은 교정의 번거로움을 감수해야 한다. 아일랜드 남부의 소도시 코크 출생인 킬리언 머피(29)도 대니 보일의 좀비영화 <28일후…>의 주연으로 밀려들기 시작한 미국 매체들과의 인터뷰를 치르며 한동안 그렇게 했다. 지겹지만 까다롭게 넘어가곤 한 것이 또 있다. 아일랜드 출신으로 할리우드에 입성한 배우, 라는 꼬리표다. 킬리언 머피는 앤서니 밍겔라의 <콜드 마운틴>과 피터 웨버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를 거쳐 감독 크리스토퍼 놀란과 작가 데이비드 고이어가 성공적으로 완성한 <배트맨> 시리즈의 프리퀄 <배트맨 비긴즈>에서 (행동거지가 너무나 사악해 기억해두지 않을 수 없는) 악역 스캐어크로로 출연했다
아일랜드 연극인의 자존심, <배트맨 비긴즈>의 킬리언 머피
-
인터뷰가 끝나갈 무렵 이재용 감독은 지금부터는 이름없이 이 감독이라고 써달라고 했다. 농담을 하고 계신 건가, 갈등하고 있는데, 진짜라며 정색을 한다. “조카들에게 알리기도 그렇고 하여… 삼촌 뭐하냐고 물어볼 텐데.” 그는 사진을 찍을 때도 나중에 검은 띠로 얼굴을 가리는 수고를 덜어주고자 미리 준비해온 선글라스를 쓰고 포즈를 취했다. 장난 같았다. 놀고 있네, 라는 의미가 아니라, 정말 좋아하는 레고 블록을 앞에 두고 어떤 마을을 만들어볼까 고민 중인 소년처럼 보였다. 이 감독을 이렇게 만든 영화는 B급 달궁의 인터넷 만화가 원작인 <다세포 소녀>. 무쓸모 고등학교가 배경인 이 만화는 사도마조히스틱한 섹스파트너이자 연인으로 맺어진 회장과 부회장, 비유가 아니라 진짜로 가난을 등에 업고 다니는 생활보호대상자 ‘가난을 등에 업은 소녀’, 교내 유일한 숫총각 왕따지만 왠지 게이들에겐 매력적으로 보이는 ‘외눈박이’ 등의 에피소드를 순정만화처럼 고운 그림체로 그리고 있다. 제작사
인터넷 만화 원작인 신작 <다세포 소녀> 준비하고 있는 이 감독
-
참으로 평범하다. 청바지에 평범한 티셔츠, 검정색 작은 어깨 가방 하나, 짧은 머리에 그다지 크지 않지만 단단한 체격의 크리스천 베일이 포시즌호텔의 스위트룸으로 걸어들어온 순간의 첫 느낌이다. <아메리칸 싸이코>에서의 우습게도 광기어린 여피 이미지가 너무 생생한 터라 섬광 같은 아우라를 기대했건만, 그렇지도 않다. 신세대 배트맨다운 신비감과 박력을 보여주려나 했지만, 참 조용하다. 인터뷰 장에서 흔히 접하는 배우들의 세련되고 약간은 닳은 말솜씨나 인사치레마저 생략이다. 그러나 한 문장짜리 질문에 한 문단으로 답하는 그의 ‘배트맨론’만은 참으로 실속있다. 실속있는 배우인 듯하다.
-이번 배트맨은 뭐가 새로운가.
=새로운 게 뭐냐고? 모든 것. 이번 영화는 배트맨의 기원에 관한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다. <배트맨>은 신화적인 슈퍼 영웅의 이야기이긴 하지만,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는 인간의 복잡한 심리물이기도 하다. 배트맨의 어두운 면을 그려내자면 끝이 없을 거다
쿨한 영웅, 실속있는 노력파, <배트맨 비긴즈>의 크리스천 베일
-
고란 브레고비치. 만약 이 이름이 낯설다면 에미르 쿠스투리차 감독의 <집시의 시간> 음악을 떠올리면 된다. 유고슬라비아 출신의 음악가 고란 브레고비치는 동향 출신의 감독이 만든 세편의 영화 <집시의 시간> <언더그라운드> <아리조나 드림>의 오리지널 스코어를 담당했던 뮤지션이다. 그는 1950년 사라예보에서 태어나 16살에 ‘비옐료 두그메’(하얀 버튼)라는 록밴드를 결성, 16년 동안 1500만장의 앨범을 팔아치웠고 현재는 20명 내외로 구성된 ‘웨딩 앤 퓨너럴 밴드’를 이끌고 있다. 자신의 뿌리가 되는 발칸 반도의 음악을 현대적인 문법으로 사려깊게 구사하는 브레고비치의 음악은, 쿠스투리차 영화 속에 담긴 슬라브족의 지난한 삶과 깨끗한 희망을 구체적이고 아름답게 들려준다.
지난 6월11일 고란 브레고비치가 LG아트센터에서 공연을 가졌다. 한국에서의 공연은 처음이다. 이 기회에 대중음악평론가 성기완씨와 함께 그를 만났다. 무려 40년간 지
내한공연 가진 에미르 쿠스트리차의 음악파트너 고란 브레고비치
-
“위원장님, 지금 이미지 관리하실 때가 아니에요. 자극적으로 나가셔야 해요. 그래야 모금운동도 쑥쑥 올라갑니다.” 김홍준 리얼판타스틱영화제 집행위원장은 인터뷰를 나서기 전 김영덕 프로그래머로부터 ‘작전지시’를 받았다. 그 말이 약발이 있었던 것일까. 지난해 말 부천영화제 집행위원장에서 해촉된 이후 거의 입을 떼지 않았던 그는 장장 2시간30분 동안 부천영화제에 대한 비판과 리얼판타스틱영화제를 만들게 된 배경을 봇물 터진 듯 쏟아냈다. 그의 열성은 사진 촬영까지 이어졌다. 현직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원장이자 영화진흥위원회 위원을 지낸 이 영화계 ‘지도층 인사’는 행인들의 힐끔거리는 눈빛도 아랑곳하지 않고 놀라운 코믹 연기를 선보였다. 영상원과 영화제 외에도 인디포럼 이사, 환경영화제 집행위원,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의 한국영화 프로그램 담당자로 일하며, 스크린쿼터 문제에 적극 나서는 데다가 내년쯤 10년 만의 신작을 만들려 하는 그에게서 3시간을 받아낸다는 건 보통 일이 아니다. 그건
리얼판타스틱영화제 준비하는 김홍준 집행위원장
-
오전 11시. 밤새 타오르던 에너지가 수그러든 홍익대 클럽거리 근처의 레스토랑에서 김혜수를 만났다. 길거리로 훤하게 열려 있는 자리가 불편할까 염려되어 밀폐된 좌석으로 옮기기를 청하자 돌아오는 무심한 대답. “괜찮아요. 여기 시원하고 좋네.”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시선에 불편해하는 것은 김혜수가 아니라 소심한 기자들이다. <분홍신>에서의 모습 그대로, 그는 금방 감아서 아무렇게나 말린 듯한 짧은 단발머리를 손으로 슥슥 흔들어댔다. 욕망하는 여자들의 다리를 썩둑 자르는 분홍신의 저주에 사로잡힌 위태로운 눈동자는 없다. 대신 동공을 채운 것은 김혜수다운 무경계 팽창 에너지. 그는 (받아 적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로) 빠르고 똑 부러지는 말투로 연신 “즐겁다! 나 요즘 너무 좋다!”를 외쳐댔다. 내년이면 연기생활 20년을 맞는 김혜수는 그 언제보다 최상의 신선도를 유지하고 있다. 30도가 오르내리는 뜨거운 날씨 속에 진행된 프레시(Fresh)한 여배우 김혜수와의 긴 대화.
“다
한계없는 팽창의 에너지, <분홍신>의 김혜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