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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나영과 장혁, 이들을 “연기 기차게 잘하는 배우들”이라고 한다면 오버라고 생각할 거다. 하지만 “뭐든지 열심히 하는 배우들”이라고 소개한다면 부정할 방법이 없다. 이 젊은이들을 “청산유수에 달변”이라고 수식한다면 코웃음을 칠는지 몰라도 “한마디를 해도 고심한 대답을 내놓는 친구들”이라고 한다면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사람이 없을 거다.
‘학교’의 ‘짱’이 되어 유명세를 탔지만 ‘화산고’를 우스운 성적으로 졸업하고 ‘대망’에 좌절하고 ‘명랑소녀 성공기’의 조력자가 되었던 장혁에게나, 자신이 ‘퀸’이 아님을 인정하고 ‘천사몽’의 꿈을 깨고 ‘후아유’라는 질문으로 본 모습을 찾아 ‘네멋대로’ 펼친 연기를 통해 겨우 CF모델의 이미지에서 벗어났던 이나영에게나 <영어완전정복>은 어떤 부분 절실한 영화였다. 그래서인지 이 영화 여기저기에는 그들의 ‘욕심’이 아기얼굴의 실핏줄처럼 여실없이 드러난다. 그러나 이상한 것은 그 어디에도 ‘야심’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누가누가 잘하나
<영어완전정복>의 두 배우 [1] - 이나영&장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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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가장 기괴한 영화를 만드는 감독을 꼽으라면 누구나 한번쯤 캐나다의 데이비드 크로넨버그를 거론할 것이다. 그러나 그 데이비드 크로넨버그는 “가이 매딘의 영화를 보지 않고는 진정으로 낯선 영화를 봤다고 말할 수 없다”고 상찬을 물렸다. 마치 뉴욕의 우디 앨런이 그렇듯, 가이 매딘은 좀처럼 캐나다의 위니펙을 벗어나지 않는다. 그의 외출은 무척이나 이례적인 일이다. 그가 부산에 온 것이다.
새 영화 <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노래>(2003)로 부산영화제를 찾은 가이 매딘은 영화상영 전 무대인사에서 “나는 거짓말을 많이 하기로 소문난 감독입니다”라고 농담을 던지며 상상의 내기를 제의했다. 하지만 그의 농담은 거의 언제나 진담이다. 1930년대 대공황의 위니펙. 맥주회사 사장 포트 헌틀리 여사는 세상에서 가장 슬픈 노래 선발대회를 개최하고, 각국에서 선수들이 모여든다. <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노래>는 <김리병원 이야기>(1988), <대천사&g
<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노래>로 부산 찾은 감독 가이 매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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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토니오 반데라스는 과하다. 기름칠한 듯 번들번들한 머리칼, 검은 숲 같은 울창한 눈썹, 강렬한 이목구비도 과하고, 혁명가나 영웅으로 등장해 보여주는 지나치게 애끓는 연기도 과하다. 한때 마돈나의 심장을 앗아가고, 부인인 멜라니 그리피스를 의부증에 시달리게 할 만큼 과한 매력에 스페니시 악센트가 남아 있는 발음까지 더해지면 그는 보는 사람에 따라 ‘느끼하다’와 ‘부담스럽다’ 등의 인상을 주기 쉽다. 그러나 안토니오 반데라스, 그와 함께라면 넘치는 것도 미가 된다. 모두들 안정된 연기를 말할 때 그는 과장된 몸짓으로 기타를 튕기고,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고, 총을 쏜다. 특히 귀에 익은 기타선율을 뒤로 하고 긴 머리를 주윤발의 코트자락처럼 천천히 날리며 등장하는 로버트 로드리게즈의 영화 속의 안토니오 반데라스는, 모든 과한 것들의 왕이 되어 그 허구의 세계를 지배한다.
스페인의 말라가에서 태어나 프로 축구선수가 되고 싶었던 소년의 꿈은 14살 때 발에 부상을 입으면서 깨어졌다. 대
무국적 과잉진지남,안토니오 반데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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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이런, 저 사람이 임창정 맞을까. 늦은 밤 스튜디오로 벌컥 들어온 그는 몇 시간 전 스크린 속에서 본 그 모습 그대로다. ‘실제 보니 더 멋져요’도, ‘화면발 잘 받으시네요’도 아니라 그냥 ‘그분이 이분이시네요’다. 스타라는 이름에서 나오는 광채가 환각현상을 일으키는 탓인지 몰라도, 화면 속 인물과 현실의 스타는 달라 보이게 마련. 한데 눈앞의 임창정은 <위대한 유산>의 창수와 같은 인물로 보인다. 그건 혹시 임창정이 그만큼 캐릭터 속으로 쑥 들어가 제대로 연기를 펼쳤다는 뜻일 수도 있지 않을까. 그리고 그건 혹시 임창정이 그만큼 주변에서 쉽게 마주칠 수 있는 편안한 인상으로 우리를 매혹한다는 뜻일 수도 있지 않을까.
<위대한 유산>의 창수는 할인마트의 시식코너를 ‘부페’식으로 섭렵하고, 비디오와 만화로 정서를 ‘함양’하며, 경품 이벤트마다 응모해 살림에 기여하려는 프로급 백수. 동갑내기 소꿉친구인 형수의 지독한 탄압 속에서도 그는 꿋꿋하게 얹혀 살며
˝ 웃기려 하면 할수록 정색하죠 ˝ <위대한 유산> 임창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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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돌아왔다, 라고 말한다면, 스크린만이 세상의 전부라고 믿는 오만을 범하는 일일 것이다. 드라마와 방송 활동에 주력했던 배우 심혜진의 새 영화가 개봉한다. <실락원>(1998)이후 5년 만의 신작이고, 한국영화 르네상스와 더불어 영화(榮華)를 누렸던 ‘1990년대 스크린 스타’의 호칭이 과거시제가 된 지도 3년이 지났다. 심혜진과 영화를 붉고 질긴 실로 다시 이어준 작품은 박기형 감독의 <아카시아>. 박기형 감독에게는 심혜진이라는 배우를 적절한 예우로 스크린에 다시 초대할 수 있다는 사실이 의욕의 촉매가 됐고, 심혜진에게는 ‘미숙’이라는 고요한 극중 인물과 “당신 아니면 안 된다”는 감독의 요란한 확신이 거절할 수 없는 초대가 되었다. 심혜진은 여의도 약속장소에 청바지 차림으로 들어섰다. 시간은 그녀의 유명한 볼우물에 찰랑이던 청량한 물기를 거두어갔지만 대신 갸름한 눈과 입술에 굳센 기운을 불어넣어주었다. 어디 아주 먼 곳에라도 가는 듯한 걸음걸이로 성큼성
<아카시아>로 5년 만에 스크린으로 돌아온 배우 심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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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혜림은 다케노우치 유타카를 “무척 추운 날, 자기도 추웠을 텐데, 조그만 스토브를 밀어준 남자”로 기억한다. <냉정과 열정 사이>를 찍고 있던 두 배우가 오래간만에 다시 만난 날의 일이었다. <냉정과 열정 사이>의 준세이와 그를 연기한 배우 다케노우치가 인연으로 묶여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면, 그런 따스한 면모 때문이 아니었을까. 다케노우치는 연기가 뛰어나다기보다는 진심을 타고난 것처럼 말없는 준세이에게 다가갔다. 준세이는 영원이라 믿었던 사랑을 내치고선 침묵으로 몸을 감싼 남자다. 서른살, 끝없는 회한, 재회를 기다리는 막막한 세월, 꼭 겪지 않아도 되었을 나쁜 일들. 준세이는 그 많은 사연을 삭이면서도 사랑을 애원하는 또 다른 여자에게 마음을 내주려고 애쓰는 착한 남자이기도 하다. 그리고 다케노우치는 눈으로만 손끝으로만 십년의 러브스토리를 우리 앞에 갖다놓았다.
잔잔한 눈빛을 가진 다케노우치는 ‘모델 출신 일본 탤런트’라는, 경박하게 들리기 쉬운
<냉정과 열정사이>의 다케노우치 유타카(竹野內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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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크인
배우 김선아에겐 피곤한 기색이 전혀 없어 보인다. 인터뷰 당일날 아침까지 촬영현장에 있다 오느라 잠은커녕 화장할 시간도 없었다는 사람이 두뺨에 예쁜 생기만 얹고 있다. 머리를 질끈 동여맨 이 키 큰 여배우가 대뜸 묻는다. “<황산벌> 보셨어요?” 이 질문은 분명 <위대한 유산>과 엇비슷한 개봉일을 염두에 두고 업계 동태 파악용으로 물은 것이리라. “저 이상하게 나오지 않았어요?” 그제야 생각났다. 김선아가 계백 장군의 아내로 출연했던 사실. 덜그럭대는 갑옷소리 틈으로 새나왔던 젊은 여자의 앙칼진 목소리. 우직한 계백 장군이 최후가 될지도 모를 결전을 앞두고 처자식 눈앞에서 독하게 칼을 휘두른다. 그러나 더 독한 쪽은 그의 부인이었다. 야속한 칼날 끝 살벌한 바람을 콧방귀 한방으로 날려버리고 악에 받친 여인네가 곧은 소릴 내지른다. 죽일 테면 죽여보랑께! 니가 뭔데 내 자식을 죽이네 마네 하는 것이여!
# 첫인상의 현관 김선아의 얼굴에선 가파르지 않
내숭은 몰라요,코미디는 알아요, <위대한 유산>의 김선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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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를리즈 테론이 나타났을 때 사람들은 그를 ‘지적인 마릴린 먼로’라거나 ‘차세대 샤론 스톤’이라고 부르길 좋아했다. 고전적이면서도 섹시한 테론의 미모는 빼어났지만, 비교를 거부할 만한 발군의 개성은 아니었던 것이다. 비슷한 시기에 데뷔하고 주목받은 애슐리 저드, 안젤리나 졸리와 ‘트로이카’라는 묶음으로 소개되는 일도 잦았다. 언론의 조명을 받으면서도, 대중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주지 못한 그는, 모델 출신의 미녀배우 중 하나로 그냥 사라져갈 수도 있었다.
그것은 민숭민숭한 역할 이미지 탓이기도 했다. <데블스 에드버킷>에서 악의 기운을 감지하고 미쳐가는 섬약한 아내를 연기했던 샤를리즈 테론은 비슷한 스토리의 SF스릴러 <애스트로넛>에서 다시 한번 창백하고 가련한 희생양의 이미지를 체현했다. 소년에게 인생을 알게 해준 첫사랑의 여인(<사이더 하우스>)이나 한 남성을 궁지로 몰아가는 팜므파탈(<레인디어 게임>)이나 낯선 남자에게 계약동거를 제안
누가 이 욕심쟁이를 막을 수 있겠는가,샤를리즈 테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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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판이라도 준비할 걸 그랬나? 내심 그렇게 후회했다. <황산벌>의 ‘쌍웅’ 박중훈과 정진영에게는 장이야 멍이야 주고받을 게임의 규칙이 필요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두 배우가 몰고온 공기는, 온도도 냄새도 몹시 달라 경계선에는 엷은 구름이라도 엉길 듯했다. 박중훈이 빠르게 물으면 정진영은 느리게 대답하고 정진영이 뒤로 몸을 기대면 박중훈은 앞으로 몸을 기울인다. 박중훈은 ‘공중 돌아 뒤후려차기’ 같은 개인기로 영화 한편을 혼자 감당하는 일에 이력난 프론트맨이고, 정진영은 색깔 다른 여러 배우와 영화를 맞들고 리듬을 타는 일에 통달한 베이스 주자다. 황산벌 전투가 계속되는 동안 ‘12시간 촬영 12시간 휴식’의 노동조건을 계약서에 명시한 박중훈은 촬영지 부여까지 바지런히 출퇴근하며 전열을 가다듬었고, 정진영은 ‘군막’에 아예 유숙하는 쪽을 택해 그의 부인이 일주일에 한번 정진영을 서울로 불러올리는 <그것이 알고 싶다>를 고마워할 지경이었다.
완성된 영화 <
矛盾의 두 남자, <황산벌>의 박중훈+정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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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감은 틀렸다. <황산벌>에서 박중훈은 웃지 않는다. 우리를 웃기려고 수고하지도 않는다. 예의 눈웃음이 찰랑이던 눈가에는 피눈물이 그렁이고, 부드럽게 건들거리던 몸은 천근 바위가 되어 미동도 용납하지 않는다. 계백의 눈 속에는 <게임의 법칙>의 공중전화 부스에서 피흘리며 죽어가던 젊은 날의 박중훈이 꿈틀거린다. 세상은 조리가 닿지 않는 지옥이고 가능한 건 소멸을 향해 내가 아는 길로 걸어가는 것뿐이라는 사실. <황산벌>의 계백은 <게임의 법칙>의 건달이 생의 마지막 찰나에 깨달았던 진실을 평생을 두고 터득해온 사나이다. 머잖아 무덤으로 변할 고독한 요새에 서서 제 칼로 벤 처자식의 비명을 듣고 또 듣는 그는 우연히 코미디 안에 발을 들여놓은 한치의 과장없는 계백 장군일 뿐이다. “아쌀하게 거시기해불자”던 말은 결국, 이런 뜻이었다.
<황산벌>은 박중훈이라는 탁월한 코미디 배우를 기용해 성립된 코미디지만, 박중훈을 코미디 연기에서
아쌀하게 돌아온 선수, <황산벌>의 계백 박중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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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을 정의하는 기준은 다양하고 복잡하다. 그러나 원리는 간단하다. 진짜 행복은, 나 자신이 행복하다고 느끼는 순간에 있다. 배우 정진영은 그러므로 행복한 사람이다. 스스로도 그렇게 말할 것 같다. 그는 현재를 받아들이고 미래에 무리수를 두지 않는 순리주의자다. 어떤 이들이 자기 욕심을 다 담아넣기에 심장 한쪽만으론 부족하다 느낄 때, 그는 욕심이란 걸 아예 염두에 두지 않는다. 단순히 “기질 차이”이기도 하겠지만, 배우를 생업으로 삼는 사람에게서 보기 드문 태도이기도 하다. 선택할 권력이 있는 듯 보여도 결국은 선택받아야 할 입장으로서, 욕심내고 박차를 가해 커리어를 가꿔도 늦은 출발을 메울 수 있을지 걱정스러울 때에, 여유가 넘쳐 보일 따름이다.
순리대로 살되 정진영은 수동적이거나 게으르지 않다. 영화와 연기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그는 “공부한다”는 표현을 즐겨 썼다. <황산벌>의 김유신을 연기하기 위해서도 많은 공부를 했다고 한다. “원래 오래 생각해야지 답이 나와
순리를 따르는 겸손한 욕심쟁이, <황산벌>의 정진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