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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의 다양한 서브 장르 중에서도 가장 창작하기 어려운 소재가 무어냐고 묻는다면 나는 1초도 고민하지 않고 ‘좀비’라 답할 것이다. 매체 불문하고 좀비 이야기를 참신하게 쓰기란 정말 어렵기 때문이다. 이 서브 장르 세계는 이미 수십년간 앞선 창작자들이 파먹을 만큼 다 파먹어 광맥의 막장까지 치달은 광산이다. 머릿속으로 좀비 이야기 아이디어를 하나 떠올려보시라. 정말 아무렇게나 떠올려도 좋다. 이건 정말 말도 안된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일부러 아이디어를 배배 꼬아도 상관없다. 그런 다음 같은 줄거리의 이야기가 있는지 인터넷에서 검색해보면 아마 깜짝 놀랄 것이다. 한국어, 영어, 일본어, 스페인어 정도만 서치를 돌려도 상당히 높은 확률로 비슷한 작품이 발견될 테니까. 이 바닥엔 진짜 없는 게 없다. 어느 정도냐면 <오만과 편견>을 좀비물로 각색한다거나, 가라테를 하는 좀비가 나와도 심심한 아이디어로 느껴질 정도다. 내가 본 작품 중에 이건 정말 미친 아이디어라고 생각한 작품은
[이경희의 오늘은 SF] 좀비, 정말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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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12일, 미 항공우주국(NASA)은 제임스 웹 망원경이 촬영한 우주 사진을 공개했다. 사진의 의미를 읽어낼 과학적 지식은 없지만 사진의 아름다움에 감탄하는 데는 아무런 지식도 필요하지 않았다. 별의 생성과 소멸은 물론이고 은하의 비밀에 다가서는 데 귀중한 자료가 될 것이라는 뉴스를 접하며, 무엇보다 지구에서 1150광년 떨어진 외계 행성에서 수증기 형태의 물이 발견되었다는 얘기를 들으며 이러다 정말 10년 내 외계 생명의 신호를 찾았다는 소식까지 듣게 되는 것은 아닐까 두근댔다. 물론 우주의 시간은 광년(1광년은 9조4670억7782만km)의 단위로 측정하기에도 벅차고 그 광년은 어떻게 해서도 실감할 수 없는 시간과 거리의 개념이라 나는 우주의 원초적 아름다움에 경탄하는 것 말고는 달리 외계 생명체와의 조우를 대비할 방법을 모르겠다. 그렇지만 ‘창백한 푸른 점’에 사는 인간은, 우주의 아득함과 까마득함을 보며 지적 호기심과 상상력을 키워왔다. 칼 세이건이 <코스모스>에
[이주현 편집장] 영화라는 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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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영화 <헤어질 결심>이 개봉한 지 3일이 지난 시점이다. 아직 영화를 보지 못했지만, 이 시점에서 나는 <헤어질 결심>이 어떤 구성으로 되어 있는지, 두 인물이 어떤 만남의 곡절을 겪는지, 결말에 이르러 어떤 인물은 진실을 알고 있고 어떤 인물은 진실을 모르고 있는지까지 알고 있다. 스포일러가 될까봐 여기에는 쓰지 못하지만 결정적인 스포일러도 더 알고 있으니, <헤어질 결심>을 볼 때 아이폰을 끄고 들어가야 한다는 정보 정도는 그냥 생활 꿀팁이다. 여기에 김신영의 천재성과 대사를 얼마나 친절하게 썼는지와 언어유희적 대사(정확한 멘트까지 알아버린)를 버무리면, (결코 평론은 아니겠지만) 대충 평론 같아 보이는 패러디 글 정도는 쓸 수 있을 것 같다.
이게 다 소셜 미디어 때문이다. 트위터고 페이스북이고 인스타그램이고 재빠르게 영화를 보고 온 사람들이 각종 스포일러를 버무려놓은 감상평을 스포일러 경고 없이 올리는 바람에 영화
[김겨울의 디스토피아로부터] 스포일링의 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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힙합 장르에 상당한 지분을 차지하는 거리 문화와 갱스터 랩의 영향으로 갱스터 누아르 영화에 대한 힙합 커뮤니티의 컬트적인 시선과 애정은 남다르다. 이런 장르영화를 단순히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폭력성과 누아르 특유의 매캐한 분위기 때문에 열광하는 이도 많겠지만 힙합 팬들에게는 조금 더 각별한 이유가 존재한다. 많은 힙합 음악에서 고전 갱스터영화들의 무수한 레퍼런스와 오마주들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성전처럼 여겨지는 영화가 있다. 바로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의 1983년작 <스카페이스>다.
80년대 마이애미를 배경으로 한 이 영화는 미국으로 망명한 쿠바 난민 토니 몬타나(알 파치노)가 범죄와 함께 정착, 생존해나가며 도시의 마약왕으로 거듭나지만 결국엔 파멸하고 마는, 한 범죄자의 흥망성쇠를 전형적이면서 직관적으로 그려내는 스토리다. 우리가 줄거리보다 눈여겨볼 건 주인공 토니 몬타나가 처한 신분과 야망, 그리고 원하는 것을 쟁취해내는 태도다. 영화에서
[딥플로우의 딥포커스] 세상은 너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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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안나 카레니나>의 유명한 첫 문장을 박형규 선생은 이렇게 번역했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고만고만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 나름나름으로 불행하다.” 나는 이 말이 품고 있는 생각이 소설에도 그대로 적용된다고 생각한다. 망하고 끝장나고 불행해지는 결말은 다양하게 만들어내기 쉽다. 그러나 문제가 모두 해결되는 행복한 결말로 가는 길은 결코 많지 않고 궁리해내기 어렵다. 동화 중에 행복한 결말로 끝나는 이야기들이 많다보니 소설을 직접 써보지 않으면 행복한 결말이 그저 유치하고 간단한 것이라고 착각하기 쉬운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 설득력 있고 그럴듯하게 행복한 결말을 만들어내는 것은 불행한 결말보다 어렵다는 것을 나는 경험으로 알았다.
그 이유는 삶의 행복이 어렵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러 사람의 삶이 모여 이루어지는 세상도 마찬가지다. 세상이 정말 행복한 곳이 되려면 대단히 많은 조건이 갖추어져야 한다. 커다란 전쟁도 있으면 안되고, 큰 재난도 있으면 안되고, 악
[곽재식의 오늘은 SF] 섬세한 '오메가 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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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21>의 연례행사인 영화평론상 심사를 마쳤다. 올해 총 72편의 원고가 접수됐으니 적어도 72명의 지원자는 두근대는 마음으로 1364호를 펼쳐보지 않을까. 최종심에 올라온 14명의 원고를 <씨네21> 김혜리 편집위원, 송형국 평론가, 김소희 평론가와 함께 검토했다. 최종심 회의날. 각자가 추린 명단을 공유해보니 4명이 만장일치로 거론한 이름은 없었다. 3명이 공통적으로 언급한 이름은 2명이었는데, 공교롭게도 이 2명이 모두 우수상을 수상한 것도 아니다. 영화평론상 심사평(63쪽)에도 썼듯이 심사위원들은 김예솔비, 소은성, 임장혁, 서정 4명의 글을 놓고 긴 시간 고심했다. 여기선 그외의 이름들도 언급하고 싶다.
최종심에서 심사위원들로부터 1번이라도 언급된 이름은 8명이다. 위의 4명을 제외하고 김신, 최연우, 이선인, 김주은이 그들이다. <씨네21> 영화평론상 본심에서 자주 눈에 띈 이름인 김신은 ‘뷰어의 이미지에서 유저의 이미지로: 방역의
[이주현 편집장] 영화평론상에 응모한 모든 이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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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잉크 냄새가 채 가시지 않은 듯한 종이 매체에 이 글을 얹고 있음에 감사한다. 조간신문이 우리집과 옆집 마당에 툭툭 떨어지는 소리도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활자로 남겨진 정보를 찾아보는 것 자체가 어렵고 번거로운 일이 되고 말았다.
사람들이 보고 듣는 매체가 달라지면 전달 방법과 메시지도 변화하기 마련이다. 기사를 보려 수페이지의 광고를 넘겨야 했던 수고로움도 사라졌다. 글 읽기를 귀찮아하는 사람들을 위해 동영상 콘텐츠가 포털의 정보량 이상으로 늘어났다. 단 몇분의 영상도 길다는 이들을 위해 ‘숏폼’이라는 짧고 재미있는 콘텐츠가 가장 인기 있는 전달 방법으로 자리 잡는다. 이러다보니 전통적인 소구 방식인 광고로 상품을 알리던 기업들도 생각을 달리할 수밖에 없다. 예산이 많고 적음을 떠나 소비자의 삶의 변화에 적응하는 것이다. 최근 기업들 사이에서 가장 주목받는 마케팅 기법은 ‘깊은 고객 경험’이다.
최근 세계적인 브랜드가 갤러리로 쓰이던 매장의 일부를 파인다이닝
[송길영의 디스토피아로부터]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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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은 참 평가내리기 복잡한 도구다. 가장 끔찍한 독성 물질이자 인류가 만들어낸 궁극의 에너지. 세상을 파괴할 도구이자 전쟁을 억제하는 훌륭한 우산. 과거 공산권 국가들이 미국이라는 자본주의 괴물에 맞설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도 아마 핵을 가졌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가끔 팔레스타인이, 칠레가 핵을 가졌더라면 그들의 역사가 지금과 어떻게 달라졌을까 상상해보곤 한다.
이보다 더 지독한 상상을 글로 옮긴 고전 SF 소설이 있다. 알프레드 베스터의 <타이거! 타이거!>에서 주인공 걸리버 포일은 PyrE라는 신물질을 세상 사람들에게 무작위로 뿌려버린다. PyrE는 생각만으로 점화할 수 있는 폭탄이다. 그것도 지구를 소멸시킬 수 있는 초강력 폭탄. 말하자면 모두가 평등하게 핵무기를 가진 세상이 도래한 것이다.
이런 식으로 아예 나라에서 국민에게 한발씩 핵폭탄을 나눠주는 정책을 펴보면 어떨까. 아마 세상은 무척 흥미롭고도 끔찍하겠지. 정책 이름도 내가 벌써 지어놨다. ‘208
[이경희의 오늘은 SF] 세상의 파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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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언론사와 인터뷰를 했다. 7월부터 이어지는 ‘전국! 인디자랑’ 투어 공연에 대한 내용이다. ‘전국! 인디자랑’은 내가 속한 밴드 ‘브로콜리너마저’가 언제나 그렇듯 여름 시즌이면 해왔던 ‘이른 열대야’ 공연의 2022년 버전으로 부산, 대구, 세종, 전주, 서울을 돌면서 각 지역 팀들과 함께하는 것이 올해의 특별한 점이다. 지난해에는 교류가 있던 솔로 아티스트들과 작업을 하며 새로운 자극을 받고 기존에 없던 결과물을 내는 것이 목표였다. 이번에는 비교적 신진 아티스트에 가까운, 기존에 함께 공연해본 적 없는 밴드들과 함께하게 되었다. 그런 점이 흥미롭게 다가와서인지 음악 전문 기자가 인터뷰를 제안했고, 함께하는 팀 중에서 마침 일정이 맞는 밴드 ‘문없는집’과 함께 인터뷰를 하게 되었다.
문없는집은 내가 진행하는 SBS 라디오 <애프터클럽>의 인터뷰에 한번 초대한 적이 있었다. 당시에 새 앨범이 발매되었을 때였는데, 내가 타이틀곡 <밝은 미래>에 강한
[윤덕원의 노래가 끝났지만] 희미하고 밝은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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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욱 감독은 데이비드 린의 영화 <밀회>(1945)가 사랑 이야기의 원형으로서 <헤어질 결심>에 직간접적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밀회>는 가정이 있는 중년의 남녀가 사랑에 빠졌다가 본래의 삶으로 돌아가는 이야기다. 기차를 타고 사랑의 도주를 꾀하는 격정 대신 기차를 타고 귀가해야만 하는 혼란한 마음이 영화 속을 내내 부유한다. <밀회>도 일종의 체험 영화라 할 수 있는데, 귀갓길을 재촉하는 기차 소리가 들려오면 주인공의 심리에 동기화되어 덩달아 마음이 초조해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저 기차를 놓쳤으면, 저 기차를 타지 않았으면.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헤어질 결심>의 엔딩에선 애타게 ‘서래씨’를 부르는 해준을 스크린 너머에서 애타게 바라보다 심장이 아려오는 경험을 했다. 결말이 너무나 압도적이라 영화관을 빠져나와서도 얼마간 손발이 저릿하고 머리가 멍했다(오메가3를 챙겨 먹자!). <헤어질 결심>을
[이주현 편집장] '헤어질 결심'의 엔딩, 그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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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뭄이 계속되고 있다. 베란다에 새들이 마실 물통이라도 걸어놓아야 하나 고민한다. 인터넷 마트에서 배송 신청을 하려다가 장바구니를 든다. 고체치약을 씹는다. 기온이 높아져 펭귄들이 아사했다는 소식을 본다. 사진이 보일까 무서워 눈으로만 기사를 훑는다. 과일을 사며 20년 후에도 이 과일을 먹을 수 있을지 진심으로 걱정한다. 한편으로는 여전히 연비 나쁜 자가용을 날마다 몰고 다닌다. 사람 두명과 고양이 세 마리가 사는 집에서 에어컨을 방마다 켠다. 많은 서류를 인쇄한다. 세탁기와 건조기와 의류관리기를 쓴다. 택배로 물건을 산다. 물을 틀어놓고 세수하는 습관을 아직도 완전히 고치지 못했다. 사놓고 안 먹은 음식이 냉동실에 가득하다. 가뭄과 기온 변화로 멸종 위기에 놓인 동물이나 생존을 위협받는 지역 사람들의 이야기에 울되, 그 이야기를 와이파이가 연결된 커다란 텔레비전으로 본다. 기후 위기 대응에 가장 효과적인 일은 아이를 덜 낳는 것이라고 한다. 사람 한명이 연간 배출하는 탄소배출량이
[정소연의 디스토피아로부터] 재난의 본질을 내다보다